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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고통을 잊게 하는 대화

“어, 오빠. 잠이 안 와?”

“너무 아파서 잘 수가 없어. 네가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해서.”

시간으로 보면 한국은 새벽 2시경. 여기 LA 시간은 오전 10시경이다. 분명 오빠는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라 내가 먼저 전화할 순 없다. 그러나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니 언제고 오빠가 전화를 해주면 냉큼 받아 수다를 떤다.

몹쓸 놈의 통증이 팔순의 오빠에게 마구 들이대면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지옥 같은 시간 속으로 끌려가서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내가 전화를 하고 상황을 모른 채 주절주절 얘기를 하다보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다고 신기해 하신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나는 단잠을 방해하는 무엇이든 철저하게 차단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쓴다. 양질의 수면을 취해야만 일상이 순조롭다. 에너지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나고 상대편의 상태를 고려할 수도 없고 배려는 더더욱 쉽게 고장 난 상태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통화를 시도했을 때도 반드시 물어 온다. 너 잘 시간 아니냐? 어서 전화 끊고 자라. 통증이 심해서 그냥 전화했다. 저번에 너랑 통화하다 보니 금방 안 아파졌거든. 병원에서 진통제를 센 걸로 주더라. 곧 죽을 사람이니 통증이나 없애주겠다는 거지. 허 내가 이런 사람이 됐다. 너무 걱정 마라.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물갈이를 해야지. 떠날 사람 떠나고 태어나는 사람과 교대해야 세상이 제대로 균형을 잡고 돌아 갈 테니까.

다행이다. 죽음이 코앞인 걸 인정하지 않고 미련으로 억지라도 쓴다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피곤할 뻔 했는데 오빠는 다르다. 만약 내가 오빠의 상태라면 난 담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하늘에 대고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억울하다고 악을 쓰며 난리를 칠 거라 짐작한다. 나름대로 믿음생활 철저하게 하면서 부활의 아침에 깨어나면 된다느니 쉽게 남에게 하던 소리는 다 내다 버리고 죽기 싫어서 아등바등 난리도 아닐 거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막상 여기저기서 세상 떴다는 동기들의 소식이 잦아 들면서 뭔가 다시 다짐을 해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홀로 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무슨 수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내가 맡아야 할 부분은 어디쯤인지 책임을 묻고도 싶다. 내게. 누구든지, 뭐라도 돕고 싶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형제란 인식조차 힘들었던 오빠다. 두 살 터울인 큰 오빠, 작은 오빠, 자기들끼리만 형제였지 나는 여덟, 여섯 살 아래에다 계집애였으니 오빠들과의 살가운 추억이 없다. 이제와서 오빠의 통증을 잊게 해주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시간을 때우며 히히하하 오빠를 웃게 해줄 얘깃거리가 필요한데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통증이 심해지면 전화가 자주 올 거다. 자칫 엉뚱한 소리로 오빠의 화를 돋을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없는데 타인을 무슨 수로 위로하겠나. 이럴 때, 기도로 물어보자.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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