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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먼저 들어 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

1964년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한다.

1967년 10월, 하노이 중심부의 바딘군 엔푸 마을 공장지대를 폭격하는 임무를 띠고 A-4 스카이호크를 타고 출동했다가 소련제 SA-2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한 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29세의 미국 장교인 ‘존 시드니 매케인 3 세(1936~2018)’였다. 그는 2018년 뇌종양 투병 중 81세를 일기로 타계한 미국의 상원의원이었으며,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던 미국의 전쟁 영웅이다. 그의 할아버지 ‘존 S. 슬루 매케인’과 아버지 ‘존 S.잭 매케인’은 미 해군 사상 최초의 부자(父子) 4성 장군이다. 할아버지 존 슬루 매케인은 해군 제독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함대에 복무하였고, 아버지 존 잭 매케인도 역시 미 해군 제독으로 당시 유럽의 해군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다.

존 시드니 매케인은 그때의 비상탈출 시 충격으로 두 팔이 골절되고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그는 하노이 중북부 쭉박 호수에 떨어져 의식을 잃는다. 그러나 익사 직전에 북베트남 병사들과 민간인들에 의해 구조되어 생명을 건지게 된다.〔〈【 그는 하노이의 호아로 감옥에 수감되고 그해 12월 하노이 외곽의 포로수용소로 이감된다.】〉〕 그는 5년 6개월을 생지옥과 같은 포로수용소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로 그의 몸무게는 50파운드나 빠졌으며, 재활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그는 평생 한쪽 다리를 절었고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릴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1968년, 그의 아버지 잭 매케인이 태평양 사령관이 되자 북베트남은 외부 선전 목적으로 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으나 매케인은 이를 거절한다. 군인 수칙대로 본인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북베트남은 그의 아버지 잭 매케인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지만 역시 자기 아들이 “적을 위한 협상용 도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여 석방의 기회는 무산되었다.



먼저 내 보내주겠다는 대도 자신만 그런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며 그 모진 고통을 오랫동안 감내하며 버틴 존 시드니 매케인 3세, 그는 적의 수용소 독방의 어두움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영웅이었다. 또한 얼마든지 자식을 빼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식에 앞서 국가의 이익이 먼저였으며, 군 책임자의 본분과 도의가 먼저였던 아버지 잭 매케인 역시 한 나라의 제독다운 모습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 또한 자식은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분신이다. 그러나 매케인 가(家)의 자식과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영향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진실 어린 얼굴로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실상은 온갖 부당한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혜의 줄을 타고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특히 한국의 정치권이나 사회 지도자층에서 일반 국민의 울분을 살만한 비리들이 터져 나올 때 국민은 허탈한 상실감에 힘이 빠지는 것이다. 경제적 부와 높은 지위, 권력을 추구하기 전에 기본 양심과 도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존 S. 매케인 가문과 같은, 뜻을 가진 멋있는 영웅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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