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마음의 날개]생각 많아지는 가을

가을이 다가오고 있어서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그분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가!
나는 나를 속인다.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난 그 하나님께 나를 맡기지 못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 나의 전부를 맡길 수 없으면서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까?
하나님이란 이름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 성경 사전에서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이고 영이신 분.

천지를 창조하신 분. 주권자이시며 영원하신 분.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변치 않으신 분.


거룩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시고 신실하시며 자비하신 분. 그래서 그분을 하나님이라 부르면서도, 나의 삶의 작은 것 하나도 맡기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나를 구원하셨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내가 가야 할 천국의 주인이시다. 그분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셨다.

아! 그런데 왜 난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맡기지 못할까?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까?
시편의 기자는,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데,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나의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고,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할 길이 없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신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고, 하나님 앞에선 흑암이 나를 숨기지 못한다(시편 139편 중) 라고 고백했다.

그뿐이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바다를 만드시고 모레로 바닷물의 경계를 만드신 분이다. 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위를 걸으신다.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쏟아 내시고, 이른 아침 광야에 이슬과 같은 식량을 주시고, 메추라기를 날아오게 하신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신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올인(all in)하지 못할까?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한다. 그 보화를 발견한 후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우리에게 보화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왜 나의 전부를 올인 못할까?
그 보화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를 드려도 될 가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라 부를 때의 의미는, 초월자시며 전지 전능하신 분에게 전부를 올인하여도 될 분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백은 하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올인하지 못한다. 우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은 참으로 작고 작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
아!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그 분에게 전부를 드리지 못하는 이 마음.
또 아이러니하게 난 고백한다. 난 예수님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그 은혜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브리서 9, 10장). 그래서 난 좋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


김찬영 목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