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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경제 전염병'도 예방접종 필요하다

16세기 스페인의 탐험대장 에르난 코르테스는 불과 수백 명으로 아즈텍 왕국 전체를 점령했다. 총기와 대포를 앞세운 화력, 처음 선보인 말 탄 백인이 주는 공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원주민을 괴롭힌 건 이들과 함께 건너온 천연두였다.

천연두에 아무런 면역력이 없었던 탓에 당시 왕국의 2000만 명에 달했던 인구는 100년 뒤 16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비슷한 시기 잉카 제국을 멸망케 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더 적은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상륙해 천연두가 휩쓸고 지나간 제국을 손쉽게 접수했다.

유전적으로 저항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유행병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 접하는 전염병이라면 더욱 위협적이다. 특정 병원균에 자주 노출된 집단은 이후 면역력을 가질 확률이 높지만 고립된 경우라면 속수무책이다. 20세기 초 캐나다 북극지방에서 생활했던 한 에스키모족은 표류해 온 포경선의 선원이 걸린 이질이 퍼지면서 전 부족민 56명 중 51명이 몰살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며 경제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변화에 민감한 증시는 전 세계적으로 출렁거렸다. 그러나 다우지수는 지난 6일 2만9379.77로 마감하며 신종 코로나가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전인 지난달 17일 2만9348.10 수준 이상을 회복했다. 넘치는 유동성 속에서 잇단 긍정적인 경제 지표와 미·중 무역합의에 따른 미국 수출품의 관세 인하가 호재로 작용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정가의 움직임도 시장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공포가 경제 전반을 짓누를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3주가량 지난 현재 분위기는 ‘잘 견뎌내고 있다’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다양한 경제 관련 예방접종의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비근한 예로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티머시 가이트너는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의 교훈으로 비은행을 포괄하는 통합감독, 위기 극복을 위한 충분한 자금 투입 능력과 의지, 민간회사의 CEO까지 교체할 수 있는 과감함 등을 꼽았다. 모기지 부실이 문제였지만 은행 고유계정의 트레이딩을 금지해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볼커 룰’도 최종 목적은 도드-프랭크 법을 제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언제 창궐할지 모를 경제 전염병에 대비해 체력을 길러가며 단계별로 예방접종을 해 온 성과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달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 2020 연차총회'도 의미가 크다. 한자리에 모인 1만3000명 이상의 경제학자들은 민간 분야와 인프라, 공공부문, 교육과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미흡을 지적했다.

또 중국과의 무역 전쟁, 과잉 부채, 중동발 석유 위기와 군사 충돌 가능성, 사이버 테러, 연금 부채 급증 등을 위협으로 지목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정책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부족해지면 자산 거품만 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감염 내과 차원에서 보면 유행병은 영민하다. 세균도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겪는 기침, 콧물, 재채기 등의 감염증상은 병원체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숙주를 조종하는 방법이다.

경제와 관련된 전염성 악재도 인간의 탐욕을 매개로 진화하는 것이 유행병과 닮았다. 경제 시스템도 아즈텍이나 잉카제국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꾸준한 예방접종이 필요한 법이다. 역사를 교훈 삼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대비해 나갈 수 있는 백신과 같은 집단지성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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