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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우리에게 세금을 부과하라’

자신들에 대한 증세를 요구하는 부자들이 있다. 미국의 ‘애국적인 백만장자들’은 2010년부터 부유세 도입을 주장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인류를 위한 백만장자들’은 최근 공개서한을 내놨다. 83명의 갑부는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열심히 일해 주는 이들에게 빚을 졌다”며 “피해 복구를 위해 우리 같은 백만장자에게 ‘즉각적이고, 대대적이며, 영구적인’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적힌 편지에 서명했다.

구호는 강렬하고 통쾌하다. 감히 ‘Tax Us(우리에게 세금을 부과하라)’라고 외치다니. 그것도 입법 권한을 쥔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말이다. ‘애국적인 백만장자들'의 회원이자 디즈니의 상속녀인 아비게일 디즈니는 CEO와 근로자 간 엄청난 임금 격차 문제를 지적하며 “설령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도 노동자보다 500배 많은 임금을 받을 가치는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새롭진 않지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유한 자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어 사회기반시설과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거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 역시 “자본주의가 멸망이 아닌 진화를 선택하려면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무를 다하려는 부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업 자본주의로 인한 불평이 커가는 상황을 위기로 간파하고 진화에 나선 이들도 보인다. 지난해 갤럽조사에서 18~29세 젊은이 중 51%는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답변은 2010년 68%에서 45%로 줄었다. 지난 세기에만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을 딛고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미국이 믿었던 자본주의에 발등을 찍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일고 있다.



그렇다고 긍휼을 강제하기는 힘들다. 불쌍히 여겨 돌보는 마음을 강요하기는 쉽지 않다. 살을 내놓고 뼈를 챙기라는 식으로 가진 자들을 압박할 수는 있다. 역사를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런 방법도 썼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해법을 위한 대처는 아니다. 누군가는 자발적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한동안 매일 출근 시간마다 똑같은 길목에 남루한 차림의 백인 남성이 서 있었다. 뭔가 적힌 종이를 든 모습이 홈리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애써 외면했지만, 어느 날 눈이 마주쳤다. 애처로운 눈빛이 온종일 잊히지 않았고, 다음날 출근길에는 그의 앞에 차를 세운 뒤 집에 돌아갈 여비에 보태라며 작은 정성을 전했다. 종이에 적힌 사연은 ‘참전 용사인데 미네소타 집으로 돌아갈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자본주의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모른다. 분식회계로 속였던 엔론이나 부실자산을 섞어 판 리먼브러더스 정도는 예상하기 쉬운 수준이다. 이미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꼼수도 엿보인다. 개인에 대한 소득세 인상은 지지하면서 법인세 인상은 반대하며 조삼모사식으로 대응한다. 학교나 도로는 필요하지만, 돈은 다른 이들이 내줬으면 하는 식이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고, 가까이 봐야 이해된다. 자본주의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저 구호가 아닌 한층 정교한 접근이 절실해진 이유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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