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철학이 있는 사색] 21세기 바벨탑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 운행과정에서 어느 때와 시점이 되면 인간을 심판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예들 중의 하나는 노아시대 홍수심판이다. 홍수심판 발생 이유를 보면, 당시 죄악이 가득차고 인간들의 마음이 항상 악한 것을 생각하므로 하나님이 심판하려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홍수로 악한자들을 심판하여 세상을 바꾸어 놓으려 하신 것이다.

그 후 인간들은 탑을 쌓는다. 일명 바벨탑이다. 그때 사람들이 탑을 쌓으려 했던 목적을 보면 하늘에 닿게하여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힘을 하나로 하여 천하에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도에 대해 하나님은 그 탑을 허물어 버리시고, 그들이 쓰던 언어를 혼동케하여 인간들을 흩으려 버리셨다 하고 있다.

두 사건을 보면, 당시 인간들이 도덕적인 면에서 불의한 삶을 살았고, 교만이 극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노아의 경우, 그의 의로움을 대비시켜 당시 인간들의 악한 모습을 말하고 있고, 바벨탑 사건 역시, 인간이 얼마나 교만한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늘에 닿을 탑을 쌓자” 라는 말은 자신들이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임의대로 세상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신에 대한 일종의 도전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오늘의 인간 모습 역시 노아 시대나 그 이후의 모습과 유사하다. 물질이 풍성하여 잘 살게 되니 물질에 의지하여 희희낙락하여 살아가고 있다. 기아의 그늘에 앉은 자들이 많음에도 부의 상징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100층 이상의 높은 건물 건축하기를 국가마다 경쟁하듯 하는 것에서 바벨탑을 연상하게 하는 느낌이 든다.



뿐만 아니라, 학문은 발전하여 하나님은 없다하며, 인간이 신의 자리에 앉아 세상을 판단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과학주의 이전에는 성경말씀이 사물과 현상, 인간 정체성을 판단하고 규명하는 주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인간 지식이 신과 성경을 판단하는 주인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기도 하며, 존재한다 해도 인간 스스로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주장하여 믿음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 그만큼 교만한 존재들이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심판의 일종으로 세계인류가 코로나로 혼돈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사건과 현상마다 성경에 갖다 붙이는 것이 좀 근본적인 주장일 수 있으나, 어쨌든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성경은 삶에 아무런 교훈이 될 수 없기에 이 기회에 인간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 교훈에 비추어 생각하고, 그 결과 삶의 정신과 자세를 바로잡아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불의와 악한 사건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심판을 지구의 종말로만 이해하는 착각을 하는데, 그런 것만이 아닌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건이라든가, 그에 따른 혼돈에 처해 있는 마지막 현상 같은 것 역시 종말의 뜻을 갖는다. 이는 노아홍수나 바벨탑 사건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 사람들은 노아 시대나 바벨탑 환경을 겪고 있다. 그때처럼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시절인데 무엇이 문제인가”하고 한숨 놓고 지내다 코로나 질병에 우왕좌왕하여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엄청난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을 생각하면 비극적인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서야 백신이나 치료 약 개발을 하고는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역사 섭리를 잃어버리고, 인간 이름만 하늘에까지 나타내려 했던 교만한 삶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부 목회자들은 코로나 재난을 피하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 주장하기도 했는데, 정작 무엇을 회개하자는 것인지 그에 대한자세한 설명이나 내용이 없다. 교세 불리기로 바벨탑 쌓는 것에 대한 회개인지, 아니면 자신 역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했던 교만에 대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는 언젠가는 잡힐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전과 같이 우쭐한 삶을 살게 되면, 언젠가 인류가 유사한 불행을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역사의 비극적 사건에서 늘 보아오던 일이 아닌가.


장석민 목사 / 빛과 사랑교회 담임, 언더우드대 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