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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내 삶의 후반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언젠가는 그의 종착역에서 내려야 한다.

삶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느덧 종착역에 가까이, 그래서 조만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이 유일한 기회는 드레스 리허설이 없는 그야말로 생방송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Heidegger)는 삶을 이해하려면 죽음에서 시작하라고 한다. 겨울이 봄을 품고 있듯 삶 또한 죽음을 품고 떠난 여행이 아닐까? 마감해야 할 그 날에 후회 없는 좋은 여행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시작해 이 얘기 저 얘기로 불어나 제법 무거워진 보따리를 살짝 들여다보니 거긴 과거의 실망과 아픔, 보람되고 기뻤던 지난날들이 한데 어울려 빼곡하게 차 있다. 남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나 또한 처질까 정신없이 세상의 성공, 명예, 돈을 좇아 달리고 달렸다. 어쩌면 한 번쯤은멈춰 서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 그리고 ‘내 영혼은 안녕하신지?’ 하고 물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코앞의 죽음 아래 보따리를 풀어보니 과거에 그토록 중히 여겼던 것들의 그 중함이 퇴색되고 완전히 맛을 잃은 삶의 껍데기들이 되어 날 당혹하게 한다.

개인 심리학의 아버지 알프레드 아들러(Adler)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타인의 기대를 만족하게 하려고 세월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내 삶을 살지 않고 누구의 삶을 살아야 하나? 그렇다고 또 다른 삶을 집어 들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가 하늘 아래 어디 있을까? 우리의 이 여행길은 죽음이라는 문지방을 넘어들어가면서 완성 되는 것 같다. 그 문지방은 돈도, 명예도, 성공도 따라 들어가지 못한다.

애초부터 사랑 안에 죽음을 안고 떠난 길. 이제 죽음을 통해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광주리에 담아 무게를 잴 수도 없으나 우린 모두 사랑의 엄청난 힘을 알고 사랑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닐까? 빌 게이츠나워런 버핏 등 성공한 이들도 “삶의 성공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답한다.

그렇다. 서로 주고받은 사랑이란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주고받고 나눌 때 그 향기를 더하고 내재해 있는 것을 재발견하고 개발해 나가고 만들어가야 한다. 마치 꽃에 물을 주며 가꾸듯이 말이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주듯 사랑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천재라는 것엔 남들보다 더 많은, 오랜 숙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뛰는 방향으로 같이 뛰지 않아도,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건 죽은 물고기인 것도, 세상의 고통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생각은 내 키를 크게 한다는 것도. 창의성과 문제 해결의 능력도 이렇게 생각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난 삶의 후반전에 와서야 ‘아하’ 하며 깨닫는다.

내일은 보장되지 않은 미지의 시간이요, 지난날은 이미 지나간 기차처럼 남기고 간 기적 소리만 기억 안에 재처럼 앉아있다. 그러니 ‘지금’ 이 현실은 내가 가진 전부가 아닌가? 그래 오늘을 살자. 지능도 후천적 영향에 달려 있고 머리로 소통하는 줄 알았더니 가슴의 언어가 있음도, 몸을 낮춰 사진을 찍으니 예전에 못 본 키 작은 꽃이 찍히고, 깊이 미처 보았더니 보여지는 것이 있음을, 쥐를 잡기엔 호랑이보다 고양이가, 바퀴벌레 소탕은 기관총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대화는 지식도 기술도 화술도 재주도 아닌 단순하고 진실됨으로 통한다는 것 …. 나 후반전에야 알아냈다.

남의 눈, 체면 때문에 헛된 삶을 힘들게 달린 전반. 다람쥐는 도토리를 뭍을 때 하늘을 보며 나중에 어디다 묻었는지 알려고 하듯 나 또한 파란 바닷물에 금을 긋고 표를 정하고 행복은 미래에 속한 걸로 생각해 옆으로 밀어 놓고. 그래서 지금은 오늘은 그 미래의 행복 땜에 불행을 참고 삼키며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린 헛된 달림이 이젠 느긋하게 앉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것 같이 마음이 서성거린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말자. 희망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실존이 아닌가.


독자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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