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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블루의 행복, 새 친구 오웬

친구란 친구는 다들 떠난 흉흉한 맨해튼서 두 달 반 동안 버티던 둘째네가 보즈맨(몬태나 주)에온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처음 둘째네 식구를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블루가 볼이 통통해서 사과 같은 동그란 얼굴이 되었고, 배까지 볼록 나왔다.

전화하면 둘째는 언제나 블루가 밖에 나가지 못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늘 집안에서 잘 지낸다고 전했다. 친구들과는 엄마들이 공동대화방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하루 한 번씩 화상통화로 친구들과 소통한다기에 다행이다! 싶어서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블루는 자기들보다 한 달 반 먼저 이모네가 보즈맨으로 떠나자 그때부터 보즈맨에 오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전화하면 늘 오케이! 하던 녀석이 큰이모가 보즈맨에 온 후론 전화할 때마다 어디냐, 하이킹 간 거냐, 목장에 간 거냐, 나도 아기 양을 안고 싶다며 늘 큰이모, 막내 이모, 할머니가 뭘 하는지 시시콜콜 알고 싶어했다.

2주간의 격리가 끝나고 난 후, 어느 날 아침 둘째네 부엌 식탁에 블루가 앉아 있길래 창문 밖에서 굿모닝! 하고 인사했더니 블루가 반가워하며 “할머니, 이제 격리가 끝나서 정말 행복해요” 한다. 그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린 블루는 내색은 안 했지만, 그동안의 맨해튼 감옥생활이 힘들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일은 더욱 불가했던 두 달 반 동안의 생활이 어린 가슴에 얼마나 큰 공포였을까.



친구 글렌이 블루에게 산악자전거와 헬멧을 사준 건 정말 대단한 선물이었다. 격리 기간이 끝난 후는 큰이모와 이모부가 블루와 산악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블루는 너무 신이 나서 매일 이모부에게 와서 오늘은 몇 시에 자전거 타러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블루에게 진짜 신난 사건은 친구 오웬을 만난 일이다. 자칭타칭 블루의 몬태나 할머니인 글렌이 블루에게 며느리의 조카인 오웬을 친구로 소개해준 것이다. 그날 나는 글렌집에 안 갔는데, 다녀오자마자 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블루는 “할머니, 오늘 글렌할머니집에 안 간 건 큰 실수”라며, 자기는 오웬과 드론을 날리며 너무나도 재밌게 놀았다고 하이톤으로 속사포를 쏜다. 환희가 블루 얼굴에서 불꽃처럼 팡팡 터졌다.

보즈맨은 거리두기도 실천하고, 마스크도 쓰고 하지만, 뉴욕처럼 코로나가 극단적인 지역은 아니므로 비교적 생활이 정상적이다.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그러므로 친구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다. 하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던 블루에겐 또래 친구 만나 노는 건 그야말로 환상이다. 오웬 만나러 가는 날은 일찍부터 준비하고, 점심도 먹는 둥마는 둥 하고 엄마가 데려다주기를 기다린다.

블루에게 지금의 이 사태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염려된다. 아마도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깡촌이라고 일컫는 몬태나, 볼 것이라곤 위대한 자연 밖에 없는 몬태나에 와서 그 많은 거대한 산들과 광대한 들판을 누비며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동네 골목길에서 뛰놀며, 마당의 텃밭에서 할머니와 씨를 심고 잡초를 뽑으며 즐거워하는 블루에게 지금의 이 피난생활은 아름답고 건강한 추억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또한 블루 세대에겐 더는 인종차별이나 폭력이 없는 평화와 박애의 세상이 될 것을 희망하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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