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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한 박자

아이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한 박자만 참으면 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 뒷모습을 보며 한 박자 쉽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들이 수학 시험을 보던 날이었습니다. 시험은 아침 9시에 구글 클래스룸에 떴습니다. 제출 시간은 같은 날 밤 11시 59분이었습니다. 15시간가량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오전 내내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점심 후에는 유튜브 영상만 시청했습니다. 보다 못해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들, 공부하고 시험 봐야지.” 저녁 6시, 마침내 아들이 수학 시험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첫 문제부터 힘들어했습니다. 노트에 문제를 풀다가, 쓱쓱 싹싹 연필로 마구 긋고, 다시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씨-”도 수십 번 하더군요.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게 분명했습니다. 제출 시간까지는 6시간 정도 남았으니, 노트를 복습하고 문제를 풀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몇 번 클릭 클릭하더니 30분도 채 되지 않아 ‘submit’ 버튼을 눌렀습니다. 옆에서 여분의 종이를 준비하던 저는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클릭’. 빨간 숫자가 보였습니다. 50/100. 순간 제 온몸의 피가 머리로 치솟는 느낌이었습니다. “50?” “짜아악!” 저는 아들 등짝을 후려쳤습니다. 넙데데한 등짝에서 매서운 소리가 났습니다. 아들은 아주 아팠을 것입니다. 제 손도 얼얼했으니까요.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저는 아들 얼굴에 대고 어떻게 50점을 받을 수 있냐고 추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날은 아들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부정한 어깨 위로 덥수룩하고 제멋대로 뻗은 까만 머리카락이 보였습니다. 잔뜩 움츠린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아들이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들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 두 손을 잡았습니다. 아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잘못했어요.”

그 날 처음으로 저는 아들 뒷모습에서 아들의 감정을 읽었습니다. 앞이 아닌 뒷모습에서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고사리처럼 구부정하게 앉은 모습이 안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실수다. 아들도 괴로울 텐데, 내 감정을 못 이겨 아들 등짝을 내리쳤어.” 괜한 짓을 했습니다.



어쨌든 그 날 이후, 저는 아들 뒷모습을 자주 봅니다. 물론 아들은 여전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동생을 괴롭히기도 하고, 숙제를 제때 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와 아들은 전보다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아들 뒷모습을 먼저 보기 시작한 후 달라진 모습입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면 더욱 어렵습니다. 이럴 땐, 아이의 뒷모습을 먼저 찬찬히 살피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아이를 향해 끓어오르던 내 화가 살포시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한 잘못을 추궁하기 전에 잠시 숨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로 아이 뒷모습 보기입니다. 정면 돌파보다는 돌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클수록 효과 있는 방법입니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와 관계도 달라집니다. 아참, 주의해야 할 것은 아이의 뒷모습만 보아야 합니다. 방심하고 아이 앞모습이나 아이가 보는 곳을 같이 보면 꺼진 화가 다시 끓어오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강인숙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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