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다른 사람에 나를 비춰보자
이 창 민 / LA연합감리교회 목사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던 묵자는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고 했다. '비칠 감(鑑)'을 써서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추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비춰보라"는 뜻이다. 물에 비추면 외모를 보게 되지만, 사람에게 비춰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도 다 드러난다는 뜻이다.
"무경어수 경어인(無鏡於水 鏡於人)." 사마천은 사기에서 '비칠 감(鑑)' 대신 '거울 경(鏡)'자를 쓰며 이렇게 풀이했다. "사람을 물에 비치면 외모를 보게 되지만, 사람에 비춰보면 그의 앞날까지 볼 수 있다."
주위에 있는 사람에 자신을 비추는 이는 다른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음을 일기 때문이다. 또,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언젠가 그 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을 비추는 것이 어디 물과 사람뿐이겠는가? 지금까지 애쓰며 이룬 것들도 사람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조금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 땀 흘리며 살아왔던 것 아닌가?
또, 사람은 저마다 자신을 비추며 살 양심 한 조각 정도는 가지고 있다. 고달픈 삶의 현장이라고 나를 비춰 줄 양심마저 버리고 살 수는 없다. 그 양심에 떳떳하고자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여태 살아온 인생 아닌가?
조금 더 진실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들여다보아야 할 거울이 또 하나 있다. 그 거울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거울이다. 불교도라면 불경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자신을 비추며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자신을 비추며 살아야 한다. 물이, 사람이, 세상에서 이룬 것들이 또는 종교적 가르침이 나를 비추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앞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시인 윤동주는 '자화상'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이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우물에 비친 사내의 모습이 미워져 돌아가다 생각하니 가엾어져서 도로 가 들여다보기를 여러 번, 이제 그 사내를 보는 눈에는 그리움이 비췄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그 가엾은 자신을 만나기가 두려웠던 것은 아닌가?
무감어수 감어천(無鑑於水 鑑於天). 이제 눈을 들어 하늘에 나를 비춰보자. 윤동주 시인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도 물에만 비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비추며 당당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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