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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 행장 찾아가 협조 요청하라"

[LA중앙일보] 발행 2017/05/31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7/05/30 22:24

'김경준의 주홍글씨'BBK를 말한다 #4

대선을 코앞에 둔 2007년 12월16일 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원 등 당직자들이 ‘BBK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영상에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001년 1월 광운대학교 강연중 본인이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내용이 담겨있다. [중앙포토]

대선을 코앞에 둔 2007년 12월16일 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원 등 당직자들이 ‘BBK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영상에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001년 1월 광운대학교 강연중 본인이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내용이 담겨있다. [중앙포토]

김승유

김승유

BBK 사무실 얻고 MB가 주문
사업 설명에 김 행장 "알겠다"
그후로도 최소 5차례만나

e캐피탈서 대출 MB와 합의
BBK 주식 담보로 30억 빌려


다시 말하지만 BBK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와 함께 그린 '큰 그림'의 출발점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언론에 'BBK 사건'으로 보도됐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오해할 수 있어 다시 한번 밝혀둔다. MB와 합의한 사업 구조는 4가지였다. 투자자문업(BBK) 증권업(ebk증권) 은행업(하나은행과의 연계) 보험업을 자회사들로 연결하는 인터넷 종합 금융회사다. 이 4가지 사업을 연결하는 사업만 할 수 있으면 당시 한국내 대부분의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단일 금융업체에 이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는 허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4개 부문별 회사를 설립해 표면적으로는 서로 별개로 보이도록 한 뒤 지주회사(소프트웨어회사 Lke뱅크)를 만들어 통합시키기로 했다. 물론 편법이라는 것은 나와 MB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됐다면 BBK를 통해 투자한 펀드의 가치를 담보로 ebk증권으로 주식이나 채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투자자의 신용조회가 가능해져서 그 데이터를 LKe뱅크를 통해 다른 금융업체에 팔 수도 있었다. 이 구조는 내가 고안한 게 아니다. 당시 미국에선 보편화된 금융기업의 구조였다. 한국의 첫 모델을 MB와 내가 만들려 했을 뿐이다.

전편에서 언급했다시피 자본금 5000만 원에 법인 등록만 했던 회사가 삼성생명 빌딩 17층의 75%를 빌릴 수 있었던 것은 MB의 영향력 때문이다. MB는 자기가 삼성생명과 잘 안다고 했고 투자도 받을 테니 삼성생명 빌딩에 사무실을 얻는 게 좋겠다고 했다.

MB가 공식적으로 사업 전면에 나서겠다고 한2000년(선거법 위반 혐의 사면 받은 해)이다. 그 전에 종합금융에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 구축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금감원에 BBK의 투자자문업 인허가부터 신청했다. 인허가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은 30억이었다. MB는 이 돈을 자기가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인허가 절차가 빨리 진행되면서 MB가 전면에 나서는 시점인 '2000년' 전에 그 돈이 필요했다. MB가 전면에 나설 수 없었기에 우선 BBK 회사 명의로 자본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였던 홍종국씨가 당시 대표로 있던 e캐피탈에서 30억을 빌렸다. BBK의 주식 99%(60만 주)가 대출 담보였다. e캐피탈의 홍 대표는 내가 MB와 한배를 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본금 5000만 원짜리 회사에 30억을 누가 빌려주겠는가.

그래서 e캐피탈은 돈을 빌려주면서도 오히려 동업자로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30억을 받고 2개월만인 99년 11월 금감원은 BBK에 투자자문업 허가를 내줬다.

99년말 LA에서 부모 방문
MB 논현동 자택에 저녁 초청
김윤옥 여사 반찬 일일이 설명


그 사이 거래 시스템 구축에도 매달렸다. 우선 BBK 가 운용할 해외펀드를 만들었다. 아일랜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라부아 등 3개다. 아일랜드와 라부안은 한국과의 조세조약에 따라 펀드를 만들면 당시 국내 주식거래와 마찬가지로 시세 차익에 대한 세금이 면제됐다.

난 MB의 소개로 정재계의 실력자들과도 만나야 했다. 어느 날 MB는 내게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투자를 받아야 하니 협조를 요청하라는 주문이었다. MB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사업계획만 가진 30대 초반의 날 은행장이 만나줄 리 만무하다.

"이 회장(MB)께서 어떻게 이 사업을 하시게 됐습니까?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김 행장은 새파란 30대 청년이 MB와 동업을 하게 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1시간여 동안 사업 취지와 현재까지 사업 추진 과정을 설명했다. 다 들은 그는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김 행장과는 최소 5차례 이상 만났다.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매끄러웠지만 평생 잊지 못할 슬픔이 찾아왔다. 12월3일 사랑하는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부모님은 내 걱정을 하셨고 크리스마스 즈음 한국에 오셨다.

그 소식을 들은 MB가 논현동 사택에 부모님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 했다. 아직도 그 저녁식사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부모님과 나 MB 부부 그리고 'MB의 집사'인 김백준까지 6명이 함께한 자리였다. MB의 아내 김윤옥 여사가 직접 만든 반찬이라면서 하나하나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해줬다. 예를 들어 김튀김을 살짝 튀겨서 6번에 걸쳐 만들고 시금치는 어떻게 버무리는 등등이다. 돌아보면 그때부터 김윤옥 여사는 한식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다.(MB 정부 주요 사업중 하나가 한식 세계화다. 김윤옥 여사가 직접 나서서 주도했다.)

식사 후 다들 소파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셨다. 대화하던 중 내 어머니는 작은 실수를 하셨다. 부모님은 90년대 초반 유행했던 MB를 모티브로 한 '야망의 세월'의 애청자였다. 어머니는 각색된 드라마가 사실인 줄 아시고 MB 부부의 연애사에 대해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셨다.

다들 웃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자리를 파하면서 MB가 부모님께 말했다. "김 사장(MB는 날 사장이라고 불렀다)과 함께 일하게 됐으니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MB의 그 말에 아마도 부모님은 한국에 있는 하나 남은 아들에 대한 근심을 놓으셨던 듯 하다. 어떤 부모든 그렇지 않겠는가. '야망의 세월'의 주인공이자 '현대 신화'를 만든 사람이 한 약속이다.

지금까지도 MB는 2000년 이후에 날 만났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99년 MB를 만나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는 지금까지의 내 설명은 모두 거짓말이다. 부모님과 MB와의 저녁식사도 내가 꾸며낸 이야기가 된다.

독자들에게 묻겠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가.

BBK 사건수첩

김승유

1943년 충북 청주 출생이다. 경기고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1965년 한일은행을 거쳐 71년 한국투자금융(하나은행 전신)의 창설멤버로 입사한 하나은행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30대에 임원이 됐고 97년 2월 은행장에 올랐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하나은행의 LKe 뱅크 투자과정에 김 행장이 적극 개입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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