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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문건 "BBK는 MB의 회사"

'김경준의 주홍글씨' BBK를 말한다 #6 LKe와 하나은행

BBK 지주사 LKe뱅크 설립
자본금 30억서 60억 증자
하나은행 투자 거부서 선회
5억 받고 5만주.4% 양도
MB 별장서 직원 단합대회도


"김 사장, 우리 자본금이 얼마지?"

2000년 2월 BBK의 지주회사인 LKe뱅크를 법인으로 등록한 직후 즈음이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뜬금없이 LKe의 자본금이 얼마인지 궁금해 했다. 당시 다스의 1차 송금액 50억 중 e캐피탈에서 빌린 30억을 갚고 남은 돈과 여기저기 투자금을 합해 30억쯤 됐다. 다스는 MB의 형 이상은이 회장으로 있는 자동차부품납품회사다. MB는 내게 다스가 자기 회사라고 했다.

"자본금이 그것(30억)밖에 안돼?"



MB는 LKe뱅크 자본금이 무조건 60억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게 언론들은 왜 자본금을 60억으로 결정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LKe뱅크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감원의 감시를 피할 목적으로 만든 소프트웨어회사기 때문에 많은 자본금이 필요 없었다.

자본금이 60억으로 2배 뛴 이유는 단순하다. MB가 당시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에게 LKe에 투자를 권유하면서 자본금이 60억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뱉은 말을 되돌릴 수 없어 그 금액을 무조건 맞춰야 했다.

MB는 추가로 필요하게 된 자본금 30억을 마련하기 위해 나에게 다스로부터 받은 자금 등이 섞여 있는 회사 운영금을 이용해 Lke 자본 총액을 60억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자본금을 60억으로 늘린 뒤 하나은행으로부터 5억을 투자받았다. 하나은행의 투자는 사업 파트너로서의 참여였다. 이미 밝힌 대로 MB와 내가 합의한 사업 계획은 지주회사(LKe) 아래 투자자문회사(BBK), 증권회사(ebk증권), 보험회사, 은행의 4개 자회사를 둔 인터넷종합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직접 은행을 세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파트너 은행이 필요했고, MB와 친분이 있는 김승유씨가 행장으로 있던 하나은행이 적격이었던 것이다.

하나은행의 투자는 MB의 전화 한 통화로 이뤄졌다. 투자 유치 한 달 전인 5월 나는 'MB의 집사' 김백준과 하나은행의 인터넷 관련 팀을 찾아가 '인터넷종합금융회사' 개요를 설명했다. 당연히 투자할 거라 예상했지만, 하나은행 측에서는 시간만 끌다가 '투자 거부 통지'를 보내왔다.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는 내 설명을 들은 MB는 화를 내면서 내 앞에서 바로 김승유 행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MB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김 행장에게 따졌다. 며칠 뒤 하나은행 측 투자 실무 부서가 인터넷 팀에서 행장 직속 비서실로 바뀌었고, 곧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다. 5억을 투자받고 주당 1만 원씩 5만 주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분으로는 4.0%다.

MB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증거는 당시 하나은행이 작성한 내부문건에도 명시되어 있다. LKe뱅크의 지분을 나와 MB가 반반씩 갖고 있고, BBK가 LKe뱅크의 자회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은 "하나은행에 투자 설명을 한 사람은 바로 김경준이다. 하나은행은 김경준의 설명에 근거해 LKe뱅크를 이해했을 것이고, 하나은행의 문건 작성자가 이를 오인해 품의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LKe뱅크를 설립한 뒤 MB에게 새 명함이 생겼다. MB의 첫 명함은 BBK 회장이었지만 LKe뱅크, e뱅크증권주식회사 등 2개 회사명이 추가됐고 직함은 '회장/대표이사'였다. 이 명함도 MB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자주 거론됐다. 하나은행 투자로 LKe뱅크 지주회사 아래 BBK와 은행 2개 부문 설립이 완료됐다. 이때 즈음 MB가 직원 단합대회를 하자고 했다. 경기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세 버스로 직원 20여 명과 함께 별장으로 갔다. 도착 15분 전쯤인가 그가 버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별장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돈이 많아 이 별장을 산 게 아니라 현대건설에서 일할 때 회사를 위해 헌신하느라 쉴 시간이 없는 날 위해 회사가 휴식 공간으로 마련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난 '자기 별장을 가면서 굳이 직원들한테 이런 설명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의아해했던 터라 그때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은행을 파트너로 뒀으니 이제 나머지 자회사들의 설립도 서둘러야 했다. 하나은행 투자유치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e뱅크증권중개(ebk) 인허가를 금감원에 신청했다. ebk는 우리에게 고객계좌를 열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해주는 중요한 자회사였다. BBK만으로는 투자 자문만 할 수 있고, 직접 고객의 자금을 받을 수 있는 계좌를 만들 수 없었다.

금감원으로부터 ebk의 예비 인가를 받으려면 BBK와의 연관성을 철저하게 지워야만 했다. 당시에 투자자문과 증권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BBK의 주주 구조를 모호하게 했다.

신청 4개월만인 10월에 고대하던 ebk의 예비 허가를 승인받았다. 예비 허가만 받으면 정식 허가를 받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업은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예비 인가를 받고 사업 계획이 탄력을 얻자 MB는 공식석상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쏟아냈다. ebk가 끝내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까지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MB의 입 때문이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BBK 사건수첩

▶정봉주 전 의원

1960년 서울 출생이다. 17대 대선 당시 'BBK 저격수'로 통했다. 한국외대 재학시절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3년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대통합민주신당의 BBK진상조사단장을 맡아 MB의 BBK 관련 의혹을 앞장서 알리다 '허위 사실 유표'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2012년 12월25일 만기출소했다. 사진은 정 전 의원이 충남 홍성교도소에서 출소한 직후 두부를 먹고 있는 장면이다.SBS 라디오 '정봉주의 정치쇼'를 진행하는 등 정치평론가로 활동중이다.

▶하나은행 내부 문건

2007년 10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봉주 의원이 하나은행으로부터 받은 'LKe뱅크 출자 및 agreement 체결의 건'을 말한다. LKe가 '700억 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BBK 투자자문(주)를 100% 소유하고 있으며…'라고 적혀 있다. 또, LKe의 주요 주주가 '김경준 50%, 이명박 50%'로 명시되어 있다. 당시 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건을 공개하면서 "BBK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던 MB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공식 문서"라고 주장했다. 문서에는 담당 직원은 물론 준법감시팀과 협의를 마쳤다는 서명과 감사의 서명, 은행장 서명까지 적혀있다.


정리=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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