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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가장 소리 높은 침묵의 울림

최인성 / 경제부 부장
최인성 / 경제부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4/09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4/08 16:43

'마셀라 모레노'라는 신예 감독이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 '가장 소리 높은 침묵(The Loudest Silence)'은 4명의 성폭행 피해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장 일반적인 그러나 처참한 피해 여성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침묵하는 그들의 큰 목소리를 화면에 담은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여성 4명 중 한명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가해자의 대부분은 '면식범'이다. 일상에서 알던 이들의 성폭행 피해를 받은 이 여성들은 무거움 침묵으로 자신과 지인들에게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줄거리다. 할말이 너무 많지만 할 수가 없어 오히려 침묵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울려내는 것인데 이 침묵의 목소리를 듣는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소리보다 그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역설이 설득력을 얻는 영상이다.

독특한 비음이 특징인 가수 모리스 무어가 부르는 같은 제목의 노래는 사랑을 소재로 한다. 사랑은 포기하는 순간 곧바로 '싸울 가치가 없는 버려질 기억'에 불과하다고 가수는 노래한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겉으로의 표현보다 소리없는 '울림'으로 싸우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다는 주장이 리듬속에 섞여있다.

비록 내놓고 스마트폰의 하트 이미지를 반복해 보내지는 않더라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랑의 울림을 반복하는 옛 사람들의 노력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메시지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꼭 말로 해야만, 들려야만 메시지일까.

플로리다 파크랜드 교내 총격 사건의 생존자인 엠마 곤잘레스는 지난달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에 앞서 7분간 무대 연설했다. 이 여학생은 2분 10초 동안 친구들의 이름을 내놓고 연설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단상 앞에 서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청중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부 뉴스방송 채널은 현장 모습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일부 시청자들은 방송 사고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엠마는 연설을 시작한 뒤 정확히 6분 20초에 다시 입을 열었다.

"친구 17명이 이 짧은 침묵의 시간동안 범인의 총격 아래 숨을 거뒀습니다. 우린 앞으로도 생명을 위한 행진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18세인 엠마가 기획한 이 4분 10초의 침묵을 CNN과 주요 언론들은 '역사상 가장 오래 기억될 소리높은 침묵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21세기는 '보임'의 문화가 지배한다.

장식은 화려하고, 색은 진하며, 소리는 높아야 팔린다. 물질의 부는 마음 속 침묵을 무시한 지 오래됐다. 지금 시대 우리의 감정과 애정도 보임이 위주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를 능가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진하고,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강하게' 느껴오는 울림이 아닐까.

큰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침묵해야하는 우리 사회. 겉으로 보이는 것들과 맞서 싸우면서 내면을 잃어버린 듯한 미국. 어찌보면 미국은 지금 가장 강력한 침묵으로 가장 큰 소리를 내야하는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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