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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적 소명

깜짝 놀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라고. 린치 감독이 누구인가. 컬트 영화의 거장이자 베니스영화제가 영화 역사에 기여한 공로로 평생공로상을 수여한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 아닌가.

물론 그는 공화당원도 아니고 트럼프 지지자도 아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가 그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하자 대통령 선거에서는 제3당인 자유당의 개리 존슨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뉴스를 접한 다른 사람들만큼 놀랐는지 자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득달같이 리트윗했다. 그런데 린치 감독이 영국 일간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견해였다. 요지는 이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정치 풍토를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어느 누구도 지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대적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리더들은 미국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했고 아무 일도 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 같다. 트럼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트럼프의 기여가 다른 아웃사이더들을 정치권에 유입시키고 보다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트럼프가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그랬다. 트럼프의 등장은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이자 기성 체제와 벌이는 전쟁이었다. 트럼프는 무수한 먹이사슬과 이해의 관계망 속에서 다듬어진 워싱턴 정치판에 "이제 그 따윈 다 필요 없다"고 외치면서 뛰어들었고 글로벌의 보편적인 생각이자 가치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을 원색적인 발언과 무자비한 정책으로 공격하며 하나씩 부숴가고 있다.

사실 냉전시대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서유럽 국가들과 창설한 나토는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 존재의 이유와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내 불체자 인구가 1000만명이 넘는데도 양당의 대립 속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민개혁법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자국 주도의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무역 적자를 보면서도 거대한 소비시장을 열어준 덕분에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경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만큼 이제 미국에 그 비용을 좀 지불하라는 요구도 미국 입장에서는 타당성이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린치 감독도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페이스북에 해명성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기회를 얻었으나 불행히도 지금처럼 계속한다면 기회를 잃을 것이라고, 고통과 분열을 멈추고 우리를 다시 뭉치게 하는 쪽으로 배를 돌려세우라고, 애정이 담긴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우리가 역사적으로 봤다시피 파괴를 하는 자에게 애정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는 없다. 둘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의 낡은 것들을 부셔야 그 자리에 뭔가 새롭고 더 좋은 것이 들어설 수 있는데 어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적 역할은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그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국으로 가는데 필요한 고통스런 파괴, 창조적 파괴자의 역할이 아닐까. 트럼프 대통령이 부수고 있는 기득권의 폐허 속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세대, 그들에게 개혁된 미국을 기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트럼프 파괴의 효과는 민주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뉴욕주 연방하원의원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를 예약한 10선 중진의원이 정치경력이 전무한 28세의 바텐더 출신 사회주의자 여성 후보에게 패배했다. 민주당도 기성 정치권에 대쪽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신복례 / LA 사회부 부장·외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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