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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집 나간 '합리'를 기다리며

아침에 출근해 붙박이로 켜진 CNN방송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참, 저 사람들도 안됐다. 매일 아침을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시작해야 한다니."

기자들하고 정치평론가 너댓 명이 둘러앉아 전날부터 아침 사이 새로운 정치 뉴스와 현안을 놓고 얘기를 나누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도마에 오르는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하기야 지금은 '트럼프 지키기'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폭스뉴스도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 때는 그랬다.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이 이슬람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대사 등 미국 외교관 4명이 숨진 사건이 2012년 9월에 발생했는데 2016년 대선때까지 4년동안 거의 매일 폭스뉴스 웹사이트 메인 기사는 '벵가지 사건'이었다. 사건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를 흠집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새로운 큰 뉴스가 발생하면 그 뉴스를 메인에 실었다 다시 '벵가지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참으로 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언론이 정치적 당파성을 갖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전에는 겉모양만이라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앞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파라는 안경을 끼고 모든 것을 보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공동체의 갈등 해소에 기여한다는 제 역할 조차 가로막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고교 시절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상원 법사위 청문회가 열린 지난 27일. 똑같은 내용의 증언임에도 언론들의 보도는 극명히 갈렸다.

폭스뉴스는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고 주장하는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매의 눈을 하고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모습의 사진과 자신에 대한 의혹이 너무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 울먹이는 캐버노 지명자의 사진을 나란히 싣고 성폭행과 관련 없는 사안들에서 포드 교수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썼다. 반면 CNN은 눈물을 참는 포드 교수의 사진과 성폭행 거짓말 때문에 자신의 명예와 가족이 짓밟혔다며 분노를 터뜨리는 캐버노 지명자의 사진을 함께 싣고 포드 교수의 성폭행 진술을 상세히 소개했다. 똑같은 미국이지만 CNN을 보는 사람과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몸싸움을 하다 결국은 '의원 쪽수 싸움'으로 끝날 것 같았던 '캐버노 드라마'가 공화당 상원의원 한 명 덕분에 반전을 맞게 됐다. 반트럼프 진영에 서는 바람에 11월 중간선거 출마를 포기해야 했던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이 캐버노 지명자의 성폭행 의혹에 대한 FBI 조사를 전제조건으로 찬성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며 고민 끝에 내린 그의 결단에 서너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동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FBI에 캐버노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트럼프 찬반 양측이 극한 대립을 해온 지난 2년을 통틀어 거의 처음 구경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미국 사회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판례를 만들고 거기에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을 뽑는데 그에게 성폭행 의혹이 제기됐다면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만약 캐버노 지명자가 거짓말을 했다면 지명은 없던 일이 될 것이고 포드 교수가 거짓말을 했다면 캐버노는 명예를 회복하고 대법관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결정에 따른 합리적인 결과다.

'캐버노 드라마'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사회에 다시 합리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신복례 / 사회부 부장·외신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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