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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사는 동안 줄 수 있는 것

오래전 ‘애틀랜타 데일리 저널’에서 리프 볼 (Reef Ball)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대서양 한가운데에 배를 띄워 놓고 리프 볼을 바닷속으로 내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함께 실렸던 기사였다. 내가 그 기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리프 볼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 지역 유명 일간지에서 ‘정(Chong)’씨 성을 가진 한국인의 장례식을 기사화했다는 특이함 때문이었다.

화장(火葬)시킨 유골의 재를 바다에 뿌리는 것은 본 적이 있었지만, 콘크리트에 섞어서 모형을 만든 다음, 바다에 수장하는 장례 방법이 있는 것은 그 기사를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 마흔 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은 생전에 바닷속 환경 보존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생전에 바다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스쿠버 다이빙을 즐겼던 사람이라 사후에도 바닷속에 머무는 것이 그의 바람일 거라고 믿은 그의 아내가 결정한 장례 절차였다.

내 상식 안에서 리프 볼이란, 바닷가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거나 해산물을 양식할 때 바닷속에 떨어뜨리는 인공 암초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진 속 리프 볼은 구멍이 숭숭 뚫린 이굴루(Igloo) 같은 모형이었다. 해저에 한번 떨어지면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기 때문에 영생바위 (Eternal Reefs)라고도 부른다는 그 리프 볼은 바닷속에서 마치 자연석 같은 구실을 한다고 했다. 거친 표면은 해저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자생할 수 있는 터전이 되고, 구멍 뚫린 바위 속 공간은 작은 물고기들이 위험을 피해 숨는 피신처가 되었다. 생전에 바닷속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려 했던 고인의 마음을 기리는 그 아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을 때 ‘자신의 장기 기증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었다. 죽고 나면 흙이 되어버릴 육신에 무슨 미련을 두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었지만, 죽은 후 내 몸이 이리저리 찢기는 것 같은 끔찍한 상상이 떠올라서 결국 “아니요.”라고 대답했었다. 산 채로 제물로 바치라는 것도 아니었건만, 머리카락 하나조차 남에게 내어주지 못했던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죽음은 참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남의 일로 지나치든 자기 일로 다가오든, 죽음의 의미가 사람의 의식 속에 스며들면 기어코 지혜의 가르침을 남기고야 만다. 사람이 현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 준다. 몇 해 전 지인의 이십 대 아들이 차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 청년의 죽음은 여섯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그가 생전에 자신의 신체를 기증해 놓은 덕분이다. 장기를 기증하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직접 구하는 일이기에 영생 바위가 주는 의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들 모두 사는 동안 생명체의 귀중함을 알았고, 이타적인 마음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

“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느냐이다.”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다. 맞다.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전혀 줄 수 없는 때는 단 한 순간도 없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는 것.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것. 밝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 것. 남을 위해 문고리를 잡아 주는 것. 끼어드는 차에게 차선을 양보하는 것. 이런 소소한 일들도 모두 사는 동안 내가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는지.

사는 동안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지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어제보다 훨씬 더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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