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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12시 30분 입장권


댈러스에 갈 때마다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미루던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장소에 가보는 일을 이번에는 드디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댈러스에서 만난, 샌프란시스코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을 지내러 날라온 미국인 친구 덕분이다. 그도 댈러스가 처음은 아니나 이번에는 작심하고 그 역사적 장소를 가보겠다고 나섰다. 인터넷에 들어가 식스스 플로어 박물관(The Sixth Floor Museum) 입장권 두 장을 미리 사서 우버 택시를 타고 나를 픽업하러 왔다. 추수감사절 바로 전날이었다. 오즈월드가 케네디를 향해 총을 쏜 옛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Texas School Book Depository) 건물은 1989년에 식스스 플로어 박물관이 되었다. 케네디와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와 암살에 관련된 내용 등이 전시되어 있다.
케네디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정사생(丁巳生)엔 인물이 많지” 하시던 내 선친 말씀이다. 정사생이란 1917년 정사년(뱀띠)에 출생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곤 늘 첫손에 꼽으시는 것이 케네디였다. 케네디 다음은 박정희, 인디라 간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등을 꼽으셨다. 아버지 자신이 정사생이라고 하신 일은 없지만, 집안에선 다 아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같은 뱀띠 유명 인사들에 대한 자부심 비슷한 것을 느끼고 계셨던 것 아닌가 한다. 택시 안에서 내 친구가 올해가 케네디 탄생 100주년이라고 귀띔해 줬다. 100세 시대가 유행인 요즘 세상에 2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단명하신 것처럼 느껴졌다.
케네디가 누구였던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미국 최연소 대통령으로 뉴 프런티어 정신을 앞세운 진보주의의 기수가 아니었던가. 한국에서도 특히 스무살을 갓 넘었던 나와 내 또래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고 우리의 영웅이요 우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암살자의 흉탄에 첫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가다니.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참담함이 이런 것이려니 했다. 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텍사스 그리고 댈러스는 저주받은 땅쯤으로 여겼다. 미국에서 살면서 댈러스에 사는 아들 집에 자주 다녔지만, 케네디 암살 장소만은 일부러 피해왔다. 아마 귀신 나오는 집을 꺼리는 심사가 이런 것 아닐까?
우리의 박물관 입장권은 12시 30분이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선 긴 줄 뒤로 갔다. 갑자기 내 친구가 12시 30분이 거의 다 됐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12시 30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도로 한가운데 X 표식이 선명한 케네디가 저격당한 지점이 있었다. 54년 전 오늘(1963년 11월 22일) 12시 30분에 케네디가 이곳에서 암살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택시 안에서 그가 건네준 12시 30분 입장권도 사전에 계산된 각본에 따른 그의 깜짝 선물이었음이 밝혀졌다. 나는 치밀한 그의 계획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로 옆 잔디에는 54년 전 오늘 이곳에서 요절한 케네디를 추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2시 30분이라며 일동 묵념의 발성이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얼떨결에 케네디의 명복을 비는 데 동참하고 나서 우리는 박물관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물관을 둘러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난 것이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 연설문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나라나 우리가 못되길 바라는 나라 모두에 대해 우리는 자유를 확실히 존속시키고 성공시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달게 받고, 어떤 짐도 짊어지고, 어떤 어려움과도 맞서며, 어떤 친구라도 돕고, 어떤 적들과도 싸울 것임을 모든 나라들에 알리고자 합니다.” 케네디 간지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 내가 탄 미국이라는 기차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역주행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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