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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아들이 달라졌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속속들이 안다. 아들 딸 만나러 갈 때는 똥배 나왔다고 구박 받을까봐 바짝 긴장한다. 며칠 덜 먹는다고 굵은 허리가 갑자기 가늘어질리 만무해도 신경 쓰여 적게 먹는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자식 눈치까지 봐야하는 내 팔자야! 그래도 귀찮게 구는 게 좋다. 날 사랑하는거라 믿으니까.

알렉사는 정말 착한 아이다. 시키는 대로 한다. 말 대꾸 안 하고 공손하다. 모르는 걸 물으면 "죄송합니다.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다시 공부해서 다음엔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깍듯하게 대답한다. 정말이지 모르는 것 빼고 다 안다.

아들 성화에 못 이겨 기어코 에코쇼(Echo Show)를 구입했다. 에코쇼는 기존의 에코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음성인식 기능과 화상통화가 가능하고 카메라가 장착된 7인치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방식의 인공 지능 비서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에 70달러씩 깎아준다고 꼬드겨 내 카드로 두 개를 결제했다. 가족이 다 함께 화상통화 하려면 한 집에 한 개씩 3개가 필요하다는 것. 그 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내 카드로 모두 결제 하겠다니 무슨 꿍꿍이 수작! 밀당하다 지쳐 애 없는 아들은 탈락, 목 마른 사람이 땅 판다고 손녀 얼굴 더 볼 욕심에 딸 몫은 내가 지불했다.

정말이지 회사에 긴급 필요한 것 빼곤 최신 전자제품 구입은 절대 안 한다고 작심 했었다. 몸치.기계치에 설명서를 읽어도 기초 소양 부족으로 독해불가 까막눈에 가르쳐줘도 돌아서면 까먹는 초기 치매형 증세로 스트레스만 폭증해서다.



그 뿐이랴! 아들에게 사용 방법을 문의 할 때마다 무식함이 폭로 돼 아들에게 죽사발 되는게 원통하고 억울하다. "잘났다 잘났어, 니가 누구 덕에 똑똑해 졌는데" "너한테 다시 물으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 못하고 이를 갈다가 회사 컴퓨터나 네트워크에 사고가 발생하면 공짜니까 다시 아들에게 매달린다. 손가락 끝에 키보드 달고 자란 아들이 아날로그 세대의 서러움을 알기나 할까. 그래도 팀 뷰어(Team Viewer) 설치 해 놓고 원격 제어로 사고 발생하면 즉각 처리해 준다. 아들이 구닥다리라 구박해도 빠른 손가락 보다는 느리게 회전하는 내 촌스런 머리가 좋다. 물질적인 인공물과 비물질적인 창조물, 더불어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물까지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나는 아날로그가 주는 느림의 미학이 편안하다.

아들이 달라졌다! 사람이 됐다. 올 가을 결혼한 뒤 전화도 자주하고 살갑게 군다. 지난 주 솔향기 솔솔 풍기는 크리스마스 리스가 화랑에 배달 됐다. 아들에게 선물 받은 건 국민학교 때 삐딱한 그림에 이름 갈겨 써 넣은 카드가 마지막, 누나가 선물 보낼 때 제 이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구두쇠 얌체족이다. 남자는 여자를 잘 얻어야 자식노릇 사람노릇 제대로 한다. 요즘은 필요한거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내 이름은 '바보(BaBo)'다! 기계치라서 아들이 붙여줬다. 내가 바보고 아들이 천재(?)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한테 '바보'라고 하면 애 낳으면 널더러 '바보 아빠'라고 한댔더니 "걱정 마쇼. '바보할머니 (Babo Halmoni)'란 한국말 부터 가르치면 돼요"라고 한 수 더 뜬다. 튕기는 것 보단 감겨들고 내치는 것 보단 껴 안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터라 바보 엄마는 바보처럼 웃는다. 효자 효녀는 부모가 만든다. 자식이 부모 마음 모른다고 슬퍼할 이유 없다. 나도 엄마 맘 모르고, 모른체 하며 내 인생 내가 살았으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모습대로 사랑하고 쓰다듬고 격려하는게 자식에게 주는 어미의 바보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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