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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영국과 한반도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싱겁지만 아픈 역사 우스개가 있다. 그 유명한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모르는 사람은? 답은 가쓰라와 태프트이다. 이 두 당사자는 비밀 회담 끝에 국가 간의 약속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밀약'은 어불성설이란 주장이 강하다. 따라서 가쓰라-태프트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밀약'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가 밀약을 했든,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미 현실화된 기정사실을 재확인했든, 본질은 같다. "코리아는 일본 땅, 필리핀은 미국 땅!"이란 제목의 미.일 합장(合唱)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민족에게 이 음악이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carrezando' 풍으로 불렸든 아니면 명백함과 확실함이 담긴 'chiaramente'로 연주되었든 차이는 없다. 이렇게 한민족은 열강들 사이의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호구(虎口)안으로 빨려 들어가 먹잇감이 되었다.

하지만 가쓰라-태프트 때문에 간과되는 일제 침략사의 한 면이 있다. 3년 앞선 영.일 동맹이다. 1902년 일본과 영국은 동북아시아 헤게모니 싸움에서 한통속이 된다. 차이나와 코리아를 특정 국가가 침략, 식민통치 할 수 없도록 이 나라들의 "독립과 영토 보전 유지"에 합의를 했다. 혹 영국 또는 일본이 특정 국가와 전쟁을 한다면 다른 나라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영국 또는 일본이 두 개 나라 이상의 연합군과 전쟁을 하게 되면 영국과 일본은 동맹이 된다. 지도상 중국과 한반도에 가장 가까이 있는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영국은 중국에서, 일본은 한반도에서 특별한 이익을 갖고 있음을 이 동맹은 인정했다. 영.일 동맹을 합창곡 제목으로 묘사한다면 "코리아를 일본으로!"쯤이 된다. 영국과 일본은 이 노래를 세계를 향해 아주 힘차게 불렀다.



그 후 3년, 이 두 나라는 러.일 전쟁이 벌어지던 1905년(가쓰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해) 내용이 강화된 제2차 동맹을 체결했다. 제1차 때 명시됐던 코리아의 독립 유지 합의는 없어지고 한민족에 대해 일본은 정치, 군사 및 경제상 "최고의 (Paramount) 이익"을 갖고 있음을 명시했다. 이런 필수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은 코리아에 대해 지도 (guidance) 통제 (control) 및 보호 (protection)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업그레이드 된 영.일 동맹 합창곡의 제목은 "코리아는 일본 것!"

영.일 동맹은 일본의 식민 침략주의 역사의 전환점이다. 세계 최강국 영국이 아시아의 소국 일본을 동등한 입장에서 식민주의 국가 클럽의 회원으로 받아준 격이었다. 영국과 동맹을 맺고 한반도의 헤게모니 국가로 인정받은 일본은 자연스레 미국과도 친구가 되었다. 그 후 10여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미국, 일본은 승전국이 된다. 영.일 동맹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핵심인 '코리아의 일본화"는 이렇게 완결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지친 격언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영국이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북에 대한 전략자산 시위중인 미국을 돕기 위해서이다. 영국이 국가 전략을 미국과 함께 한다는 뜻의 합미 (合美)로 정한 것이다.

전형적인 안보 투자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이 증명했듯 해양대국과 대륙강국의 동맹은 전략적 필수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 또는 관할지역 출신 이민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반(反)서방 정서와 여기서 파생된 테러행위에 대한 공동전선이 영국에 중요하다. 브렉시트 움직임에서 나타난 유럽 이웃들과의 거리감도 영국을 미국에 밀착토록 한 요소이다.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서의 비협조를 포함한 과거 냉전시대 미국의 군사정책과 일정거리를 두었던 좌파 정책노선의 후퇴도 새로운 영.미 특수 관계 (Special Relations)의 부상을 도왔다.

북핵문제는 영국에 멍석을 깔아주었다. 이를 빌미로 영국은 자국의 포괄적인 전략적 이익을 취하는 형국이다. 115년 전과 본질은 같다. 일본과 동맹을 맺어 한반도를 일본 쪽으로 밀쳐놓고, 중국과 식민지 인도에서 이익을 확실하게 움켜짐으로써 아시아에서 군사, 경제적 우위를 지켰던 역사의 되풀이이다. 그래서 우리 선대들은 절대 주변 열강을 믿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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