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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회 임시회장 김순학씨 마차사고로 별세"

[LA중앙일보] 발행 2017/12/1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12/10 11:47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12)
에버그린 묘지

리버사이트 한인타운 근처 에버그린 묘지에서는 한인들의 묘비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주총회 임시회장을 역임한 김순학씨의 묘비와 그의 장남 김태선(김티션)씨, 다른 한인 리운경씨의 모친 묘비다.

리버사이트 한인타운 근처 에버그린 묘지에서는 한인들의 묘비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주총회 임시회장을 역임한 김순학씨의 묘비와 그의 장남 김태선(김티션)씨, 다른 한인 리운경씨의 모친 묘비다.

한인타운 리더로 활약…신문에 보도
장남 김태선씨 28세에 암으로 사망해
아버지와 같은 에버그린 묘지에 안장


이선주는 리버사이드 근처의 올리브 우드와 에버그린 묘지에서 한인으로 추정되는 4개의 묘를 발견했지만 그들이 한인이라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묘지에 있는 '김 순(Soon Kim)'은 1919년 2월 25일이라는 사망일자만 적혀 있고, 또 한 사람인 '이김씨 (Kimpsie Lee)'는 1926년 1월 21일에 사망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분명히 한인이라는 증거는 그들의 이름이 한국인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필자는 리버사이드에서 가장 오래된 에버그린 묘지에서 김태선, 김순학, 리운경 모친의 묘비를 발굴했다. 에버그린 묘지 자료에 의하면 리운경도 묻힌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장소와 묘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에버그린 묘지는 리버사이드 시내에 있는 유서 깊은 묘지로 리버사이드시 에버그린 묘지 기념사업회에서 묘지를 관리하고 있고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특히 김순학의 묘비는 다른 한인들의 비석보다 크고 생전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대한인국민회원이며 동시에 흥사단원이며 한국인"이라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아마 한인 장로선교회 목사를 역임했고 리버사이드 한인타운에서 리더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김순학은 "29살인 1904년 10월 12일 도릭 호를 타고 부인과 함께 하와이에 도착했는데 작은 체구"라고 적혀있다. 정확히 언제 미국 본토인 리버사이드로 이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 특히 김순학은 1911년 11월 22일 리버사이드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 총회가 열렸을 당시 리버사이드 지방회 임시회장을 수행하고 있었다. 또한 김순학이 1919년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현지 신문기사도 발굴 되었다. 리버사이드 지역 신문인 '프레스 엔터프라이즈' 1919년 2월 24일 보도에서 "한국인 김순학이 어제 마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나와 있어 김순학이 한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버사이드 디렉터리'에서 1914부터 1917년까지 김순학이 글렌우드 미션 인 호텔에서 베이커로 일했다는 새로운 정보도 확인했다. 그는 마차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이 호텔에서 근무했다. 지역 신문인 '프레스 엔터프라이즈' 1919년 2월26일 기사에 "한인 장로교회에서 있었던 김순학의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광고도 실려 있다.

'신한민보'는 김순학의 마차 사고에 대해 보다 자세히 보도했다. 1919년 2월 27일자 기사는 "김순학씨 비명횡사. 달리는 마차에서 떨어져 즉각 사망. 리버사이드 지방에서 리운경.송종익 양 씨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 23일 오후 4시 그곳에 거류하는 김순학씨는 박충섭씨의 가족과 함께 마차를 타고 농장에 나가다가 중도에서 마차에 매인 말이 부지중에 총알 같이 달아나는 바람에 마차 위에 앉아 있던 사람이 모두 떨어질 때 김순학씨는 두골이 깨어져 곧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입원시켜 의사의 수술을 받았으나 마침내 차도를 얻지 못하고 그날 오후 6시10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튿날 10시 30분에 에버그린 매장지에 안장하였다더라"고 보도했다.

또한 같은 지면에서 "박충섭씨 가족은 중상. 그 마차에서 떨어지는 때에 박충섭씨와 그 부인과 자녀가 다 중상하였으나 위태한 지경은 면하였고 다만 박부인은 잉태한 지 6, 7개월이 된 가운데 마차에서 떨어질 때에 크게 놀랐고 조금 상처를 입어 마음과 신체가 강건치 못함으로 지금 그곳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는 중인데 수일 후면 차도를 얻어 퇴원할 듯하다더라"라고 보도했다. 박충섭씨 부부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다가 김순학씨는 사망하고 박충섭씨 가족은 중상을 입은 것이다.

또한 '신한민보' 1919년 3월 6일자 기사는 "고 김순학 씨의 장례. 호상자 내외국인 46명. 리버사이드에 다년 머물던 김순학씨의 별세 보도는 이미 기재 되었거니와 지난 25일 오전 10시에 그 장례식을 그곳의 윔 암쓰테즈 교당에서 거행하였다. LA.업랜드.클레어몬트 등지에서 호상으로 온 손님이 19인이오, 서양 손님이 14인이오, 본 지방 동포 13인과 더불어 46명이 호상하였다. 장례식은 민찬호 목사가 주장하여 슬픈 기도와 영결의 노래를 마친 후에 내외국인의 슬픈 눈물로 에버그린 매장지에 안장하였다. 후에 고 김씨의 제일 믿는 서양 친구 밀러씨는 모든 손님을 '글렌우드' 여관으로 청하여 오찬을 대접하였더라"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밀러씨는 당시 김순학씨가 일했던 글렌우드 미션 인(Glenwood Mission Inn) 호텔 주인이다. 그가 동양인 종업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문상객을 모두 호텔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김순학씨의 인품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북미 총회가 리버사이드에서 개최되었을 때 임시회장을 역임했고 한인 장로 선교회 목사로도 활동한 김순학은 글렌우드 미션 인에서 일하면서 신임을 많이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차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김태선(Joseph Kim)의 묘비에는 한글로 '김티션의 묘'라고 적혀 있는데 김태선에 관한 새로운 신문 기사도 발굴 되었다. 김태선은 현지 신문인 '프레스 엔터프라이즈' 1915년 11월 23일에 자신이 주방장으로 일하고 싶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1925년 11월 24일에는 그가 사망했다는 신문 보도와 함께 1925년 11월 27일에는 장례식이 거행됐다는 보도도 발견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김순학과 김태선은 부자지간이었다는 사실이다. 1925년 12월 3일 '신한민보'는 사망 소식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김태선 씨는 '캔서(암)'로 불행 별세. 리버사이드에 거류하던 고 김순학씨의 장남 김태선씨는 불행히 '캔서'라는 중병을 얻어 그곳의 공립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였었으나 마침내 백약이 무효하여 24일 오후 12시에 별세하여 같은 달 27일 오후 2시 반에 그곳의 공동 매장지에 안장하였다. 김씨는 금년이 28세 된 아주 젊은 청년 학생으로서…." 이로부터 김순학과 김순학의 장남인 김태선이 부자 사이이며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도 밝혀진 것이다.

또한 리운경 모친 묘도 발견되었는데 '신한민보' 1926년 1월 28일 보도에 의하면 "리운경씨 모친 별세와 장례. LA에 거류하는 리운경 씨의 모친은 금월 21일경에 별세하였다 한다. 그 장례식은 같은 달 21일에 거행하였다는데 내외국인 간 다수 호상객이 그 장례식에 참여하여 동정의 눈물로써 그 곳의 공동 매장지에 안장하였다더라"라고 한다. LA에 거주하던 리운경씨 모친은 바로 이선주 목사가 언급한 이김씨여사로서 그녀는 킨지, 킨새, 진지의 할머니이다.

리운경과 리운경 모친은 파차파 캠프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차파 캠프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한 시기인 1918년 이후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기록들이 '신한민보' 보도에 남아 있다.

리버사이드 시의 또 다른 묘지인 올리브우드 묘지에서는 헤이즐 김(Hazel Kim, 1889~1978)의 묘지가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말리, 쟈니, 루시, 바이올렛의 어머니이다. 말리는 리버사이드 갈보리 장로교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영N(Young N. Kim, 1889~1954)의 묘지도 있다. 에버그린과 올리브우드 묘지에서 한인 6명의 묘지를 발굴했으며 그들이 모두 한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910년 미국 인구 조사 통계에 의하면 김J.H.(남.67세)가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마사기 사카이(여.42세)와 그의 자녀 시그유 사카이(30세)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한인과 일본인이 함께 파차파 캠프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일본인 부인의 나이가 42세인데 자녀는 30세로 12세에 자녀를 출생했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관련기사 창간시리즈-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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