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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단독 인터뷰] ‘이산가족 상봉 컨트롤타워’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로드맵

최경호(choi.kyungho@joongang.co.kr)
최경호(choi.kyungho@joongang.co.kr)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5/26 08:04

"곧 평양 가서 북한적십자병원 현대화 사업 재추진하고 싶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 확인, 고향방문단 성사 위해 北적십자와 협력…한반도, 동북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로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할 터

대한적십자사가 분주해졌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8월 15일 전후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면서다. 정부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한 것은 1985년.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까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0년부터 2018년 5월까지 이산가족 상봉은 총 20차례 이뤄졌다. 4120가족(남측: 2046가족, 북측: 2074가족), 1만9771명이 상봉했다. 한 번에 남북 각각 100여 가구 규모로 진행된 셈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컨트롤타워’인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법, 대북지원 계획, 조직개혁 방안 등에 대해 상세히 공개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박 회장이 적십자사 엠블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경서 제29대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대한민국 ‘인권의 얼굴’로 불린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박 회장은 대한민국 인권대사,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장, 유엔 인권정책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다. 박 회장과 인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박 회장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국장으로 18년 동안 활동했다. 박 회장은 WCC 국장 자격으로 28차례를 포함해 총 29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1992년 1월에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박 회장은 5월 8일 서울 중구 소파로 적십자사 본사에서 열린 제71회 세계 적십자의 날 기념식에서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으로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한반도에서 인도주의 적십자 운동이 큰 역할을 해내리라는 기대와 설렘이 그치지 않는다”며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남북의 주요 인도주의 현안에 대해 북한 적십자사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월간중앙이 ‘남북 이산가족 컨트롤타워’인 박경서 회장과 5월 14일 적십자사 본사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적십자사 개혁 방안 ▷이산가족 상봉 로드맵 ▷대북 지원 계획 등에 대해 상세하게 공개했다. 지난해 8월 취임 후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는 월간중앙이 처음이다.


Q : 제29대 대한적십자사 회장에 취임한 지 1년(8월)이 가까워 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A : “지난해 8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대한적십자사 회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18년간 WCC 아시아국장으로 북한과 아시아 지역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일해 온 것과 7년간의 인권대사 경험 등 평화와 인권 분야에서 일했던 경력이 고려된 것 같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오게 돼 참 감사했고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취임 당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됐고 남북관계가 크게 경색된 터라 남북 인도주의 현안 해소 등 남북의 화해·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주력하면서 9개월을 바쁘게 달려온 것 같습니다. 취임 후 ‘동북아시아,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새 비전으로 제시, 추진하고 있습니다. 4·27 판문점선언으로 그간의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지난 73년 동안의 분단의 악순환을 뛰어넘어 전쟁과 폭력, 핵에서 해방되는 ‘평화 공존의 한반도 새 시대’를 여는 데 적십자사 고유의 기능·경험·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국민 신뢰 회복하고, 위상 재정립하겠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 대전 중구 평안남도 도민회 이산가족들이 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김성태


Q : 적십자사는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A : “지난 5월 8일이 세계 적십자의 날이었습니다. 앙리 뒤낭이라는 위대한 선각자가 적십자 운동을 탄생시켰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191개국의 적십자사와 적신월사(赤新月社)의 1200만 봉사원과 직원이 함께 인도주의 운동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유엔도 하지 못 하는 일을 적십자가 인종·국가·정치·사상을 초월해서 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1903년 1월 8일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의 제네바협약에 가입하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05년 10월 27일에 고종황제 칙령으로 처음 설립됐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하에서 독립군과 재외 거주 동포를 위한 활동에서 1950년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피란민 구호활동을 벌였습니다. 또 4·19 혁명, 5·18광주 민주화운동 등 정치적 격변 시기에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Q : 밖에서 보셨던 적십자사와 안에서 보신 적십자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A : “국민들이 알고 있는 남북 사업, 헌혈 관련 업무 외에도 재난구호, 사회봉사, RCY(Red cross youth, 청소년적십자), 병원 사업 등 생활과 밀접한 영역 속에 적십자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적십자사는 소중한 공공자산입니다. 공기 중에 있는 산소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처럼 현재 적십자사는 평가절하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임기 동안 적십자가 어떤 일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목적으로 적십자 인도주의 운동을 어떻게 수행해 나갈 것인지, 우리가 하는 일을 국민들에게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보여 주자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적십자 인도주의 운동의 가치를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것으로 보여 주면서 국민들이 따뜻한 인도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인도주의 사업 펼쳐 나간다

2007년 8월 30일 군산항에서 인부들이 북한으로 보낼 쌀 3000t을 베트남 선적 롱슌엔호(號)에 싣고 있다.


Q : 적십자사가 국민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 “먼저 재원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후원자들에게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상세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국민에게 유리알같이 투명한 적십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신뢰 구축을 위한 기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8000만 겨레의 70년의 염원인 이산가족의 근본적인 해결과 남북의 인도주의 협력을 위해 적십자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적십자사가 남북관계에서 보여 준 전문성과 인도주의의 명분이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을 바꾸고 국민의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국민과 접점에 있는 사업(재난 구호, 사회봉사, RCY) 활성화를 통해 적십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적십자의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국내외 재난에 대응하는 역할을 명확히 하고 민간 전달 체계로서 희망풍차 사업을 발전시키며 이주자·이른둥이 등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통합 역량을 키울 것입니다. 미래 헌혈 자원인 청소년이 생명 나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병원 사업 특성화로 시장 경쟁력 열위(劣位)와 격차를 극복해 나가겠습니다.


Q : 선진국형 적십자사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입니까?
A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적십자사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십자사가 하는 인도주의 사업은 국가가 하기 어려운 세세한 부분의 일들을 대신 수행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 보조자로서 역할과 책임이 충실히 이뤄질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와 적십자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십자 사업에 장애 요인인 낡은 규정 개정부터 정부 차원의 안정적인 재정 지원 등이 선행된다면 적십자사는 더 많은 다양한 인도주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Q : ‘선진(先進) 적십자사’의 궁극적 비전은 무엇입니까?
A : “평화인권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가치관이 높이 평가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적십자사가 나아가야 할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각기 다른 사고를 포용하는 제3의 길을 만드는 것이 ‘선진 적십자사’로 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Q : 재임 기간에 펼칠 역점 사업은 무엇입니까?
A : “재임하는 동안 대한적십자사는 ‘동북아시아,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이라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제3의 길을 모색해서 포괄적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연맹(IFRC),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유엔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지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기관 운영에 있어 비효율적이고 관행적인 운영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대내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적십자사를 구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적십자사는 국내 비영리단체 최초로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했고, 기부금의 모금·집행 과정은 물론 기관 운영과 관련한 재무 프로세스를 대폭 개선함으로써 조직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공정한 조직체계 마련을 위해 투명하고 균형 있는 인사혁신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위(非違) 행위자에 대한 엄정한 인사원칙 적용, 비정규직의 단계적인 정규직 전환, 투명한 고위 직원 검증 기준 수립, 외부 전문가 적극 활용 등 대내외적으로 신뢰받고 인정받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투명경영을 실천하겠습니다.”

새 시대 흐름에 어울리는 변화된 모습 보일 터

KBS는 1983년 6월 30일부터 138일간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이산(離散)의 아픔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여의도 KBS 방송국 주변을 가득 메운 이산가족과 그들의 사연을 적은 편지들.


Q : 향후 재원 조성 방법과 재정 운영 계획이 궁금합니다.
A :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회비, 기부금품, 자체 사업 수입을 주요 재원으로, 재난 구호, 사회봉사, RCY, 보건 안전, 국제 협력, 남북 교류 등 포괄적 공익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적십자회비는 1949년 4월 30일 법률 제25호로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제정되고 6·25전쟁 중에 국민 모금 운동으로 전개돼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연간 약 500억원 수준의 적십자회비 이외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445억), 2013년 필리핀 태풍(89억), 2015년 네팔 지진(51억) 발생 시 기부금품을 모집해 해당 국가의 재건 사업에 집행한 바 있습니다. 2016년에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하는 고액 기부자 클럽인 ‘Red Cross Honors Club(레드 크로스 아너 클럽)’을 출범시켜 1년 만에 90여 명의 고액 기부자를 발굴했습니다. 또 2015년 시작한 ‘Red Cross Gala(레드 크로스 갈라)’는 국내 대표적인 연말 모금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기존의 적십자회비 모금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참신하고 다양한 시도를 전개할 계획입니다. 이른둥이, 국내 난민 등 주요 이슈를 주제로 참여형 모금 상품을 출시하고 온라인상에서 스토리 펀딩을 전개하는 등 보다 많은 사람이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Q : 적십자사 내부 개혁 방안을 갖고 계십니까?
A : “적십자사의 개혁은 진행형입니다. 늘 우리 내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꾸준히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3년 동안 인도주의 사업을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세부적인 실천을 위해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함으로써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청렴한 조직문화 조성 및 자체 행동 강령 준수 등 부정부패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규제와 시대 흐름에 어울리는 변화된 적십자사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Q : 최근 적십자사가 진행한 입찰과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A :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적십자사는 2003년 혈액 사고 이후 국민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단호하고 엄중한 혁신을 통해 조직 쇄신을 단행했습니다. 왜곡된 사실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해 적십자 구성원들의 명예와 국가 혈액 사업의 주무 기관으로서 신뢰를 지킬 것입니다.”


Q : 지난해 취임사에서 동북아시아,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A : “대한적십자사의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도적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론이 동북아시아,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입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한반도가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에 적십자사가 앞장서 나가겠습니다.”


Q :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그 후속 조치로 이산가족 상봉 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 “8·15 전후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사항은 남북 적십자회담을 통해 남과 북이 합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다만 이산가족이 고령화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한계 상황까지 왔기 때문에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의 생사 확인과 함께 보다 많은 인원의 상봉이 이뤄져야 합니다.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이산가족들이 재결합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이산가족들은 고령, 더 많은 인원 상봉 이뤄졌으면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형제가 서로 신원(身元)을 확인하고 있다.


Q : 남북 이산가족 상봉 역사가 궁금합니다.
A : “8·15 광복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북의 이산가족이 생겨났습니다. 휴전 이후 남북의 냉전 구조가 심화되면서 1970년대가 될 때까지 남북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출구를 찾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71년 우리 측이 제의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북한적십자사가 수용하면서 분단 이래 남북대화의 첫 문이 열렸습니다. 1983년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특별 생방송을 통해 남한 내 이산가족을 찾기 시작한 이후 이산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1984년 북한의 수재물자 지원을 계기로 남북 적십자회담이 재개됐고, 1985년 8·15를 기념해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이 실시됐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은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해 극적으로 상봉, 재회의 감격을 나눴으며 이것이 사실상 첫 이산가족 상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됐습니다.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상봉(대면) 행사를 시작으로 2015년 제20차 대면상봉을 했고, 7차례의 화상상봉을 통해 남북 총 2만3519명이 상봉했습니다.”


Q : 회장님은 지금까지 29차례 북한을 방문하셨죠?
A : “1988년 첫 방북(평양) 때 인상은 ‘잘산다’였습니다. ‘이렇게 잘사는데 왜 원조해 달라는 걸까’ 의문을 가졌죠. 그런데 원산에서 함흥까지 일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가게 됐을 때 생각이 달라졌어요. 도로 사정이 나빠 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다 보니 나중에는 고개를 들거나 움직이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북한을 29차례 방문하면서 일관된 느낌은 ‘낯설지 않다. 다르지 않다’였습니다. 전 세계 200여 개국 가운데 지금까지 180여 개국을 가봤어요. 그런 나라들과는 느낌이 달라요. ‘나랑 똑같은 언어로, 내 민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 가장 최근의 방문은 언제입니까?
A : “2015년 10월 25일~11월 1일이었죠. 16년 만에 갔는데 변했더라고요. 7박8일 동안 7개 현(한국의 군[郡])을 다녀왔는데 ‘고난의 행군’ 때와 달리 절대빈곤은 면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국가의 경제 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사회적 이탈을 막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놓은 당적(黨的) 구호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1938년 말∼1939년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 빨치산이 만주에서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Q : 1992년에는 김일성 주석도 직접 만나셨죠?
A : “덩치도 크고 생각도 큰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중립국이 가장 좋은데 현실적으로는 고려연방제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Q : 회장님의 방북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A : “한완상 적십자사 회장(재임 2004년 12월~2007년 12월) 시절 북한적십자사와 병원 현대화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이후 실행이 안 됐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평양에 가서 북한적십자사와 만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 확인, 고향방문단 등의 문제를 풀려 합니다. 또 북한적십자병원 현대화 사업 재추진, 빵 공장 건립, 주민들을 위한 보건·의료사업 등도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전 총재를 만나 식사를 했는데 ‘병원 잊지 마’라며 당부하시더라고요.(웃음)”

南北, 일방적 지원 아닌 상호 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이산가족인 김영식 할아버지가 1월 9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본사를 찾아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작성한 뒤 직원의 배웅을 받고 있다.


Q : 우리가 북한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 “한반도의 평화와 우리 민족의 번영을 위해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합니다. 적십자 운동은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돕는 인도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남북 간의 평화와 협력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2분의 1만 결정하고 2분의 1은 양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Q : 적십자사의 대북협력 사업으로 어떤 활동이 있습니까?
A : “그동안 북한 내 대규모 수해물자 지원, 기초의약품 지원, 비료·쌀·손 세정제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을 해왔습니다.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국제적십자사연맹과 협력해 2016년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피해 이재민 지원과 연맹CAS(Cooperative Agreement Strategy, 협력합의전략)사업에 정식 회원사로 가입해 재난 대비·대응·복구 사업, 생계 지원, 보건, 물과 위생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Q : 향후 대북 지원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A : “우선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영유아·아동·여성·노약자 등에 대한 보건·의료·혈액 분야 지원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향후 북한적십자사와 협력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예정입니다.”


Q : 막중한 임무를 맡으셨습니다. 스트레스가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A : “스트레스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것이 제 일이고, 그 사명을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임무를 통해 보람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항상 즐겁습니다. 소확행(小確幸)이라고 하지요. 제 일상의 작은 행복이라고 하면 여유 시간이 생길 때 사무실 인근 남산 등산로로 가족·직원들과 함께 산책하는 것입니다.”


Q : 회장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A : “전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기념비를 찾아가 무릎을 꿇은 사건이 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노력을 본인이 저지르지 않은 과오를 책임질 줄 아는 용기를 보여준 행동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초대 인권대사, WCC 아시아국장 등을 역임하며 타인의 잘못까지도 포용하고 책임질 줄 아는 용기와 신념,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인도주의 운동을 실천해 왔습니다.”


Q : 남북관계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적십자사 수장을 맡으셨습니다. 비전이나 포부는 무엇입니까?
A : “제 인생에 영향을 줬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소용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현 상황에 딱 들어맞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의 평화가 전제되고 확정돼야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있는 3년 동안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을 다해 동북아시아,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남과 북의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 최경호·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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