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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다양성 부족할 때 장점 최대한 살리는 과목선택 효과

천성이 여리고 착하디 착한 내이튼은 중학교를 가서도 거의 자기 해야 할 일을 잘 기억하고 잘 해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내이튼은 생각만큼 우수학생이라는 평가를 점점 덜 받게 되었고 도리어 버릇이 없다거나 재미없고 지루 하다거나 용기가 적고 융통성이 없다거나 예의는 바르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성적은 괜찮지만 우수한 과목을 배정받아 쑥쑥 나아가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좀 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로 변화되어 갔고 대입을 얼마 앞두고서는 부모와 잦은 의견차이로 부모의 걱정을 사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평가 알아보니 내이튼은 지시를 받은 일 자기의 의무라고 주어진 일 부모로 부터 부탁받은 일들은 정확히 꿰고 있고 또 기대되는 만큼 잘 해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부모생각에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길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거나나 당연히 해야할 것 같은 선택대신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을 한다거나 자신의 의지가 필요한 일들은 주로 선택하지 않는 다거나 하는 일련의 성향들이 도드라지면서 부모로 부터의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을 했다. 예를 들면 학교에 가져가야할 체육복이 주말내 빨려져서 잘 개어있어도 자신의 방 옷장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찾아보거나 엄마에게 여쭙지 않고 그냥 등교하여 체육시간을 운동장에서 공치고 앉아있었다. 결국 누구나 좋은 성적을 맞는 체육에서 말도 안되는 낮은 성적을 받기도 하고 하교길에 갑자기 급한 일로 올 수가 없게된 엄마의 부탁으로 라이드를 해주기 위해 와준 아줌마가 애타게 내이튼을 찾아헤매는 동안 정작 본인은 엄마와 만나던 곳에서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못 만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와버려 부모의 애를 타게하는 것 들이 그 것들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자신의 주변에 주어진 일이 아닌 것 즉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끄고 있는 편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유행하는 영화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는 섬세히 꿰고 있지만 자신의 관심밖의 영화는 모든 자기 친구들이 다 알아도 내이튼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등이 내이튼을 매우 독특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호불호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남들과는 매우 다르고 자연히 쉽게 남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가지 중요한 특색은 자신이 무언가를 결정하여야 할 때에 그 결정을 내리는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결정을 내릴 권한을 주변에 양도하거나 결정을 남에게 의뢰하는 경향이 매우 짙었고 특별히 결단이 필요한 순간은 두려워하며 피하기가 일 쑤였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요즘 세대의 평균적인 학생들과 달리 특별히 순수하고 정의롭고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결과 이공계 과목에서 앞서나가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내이튼의 성적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들에 심취하여 능력발휘를 하게되었다. AP Calculus AP Physics AP Chemistry AP Biology AP Computer Science AP Statistics AP Microeconomics AP Macroeconomics를 비롯한 이공계과목에서 우세한 학과목과 성적을 얻게 되었다. SAT에서도 이공계 subject test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냈다. 중요한 일에 대한 결단력이 아직 부족하여 전공선택이나 학교선택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고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대입지원서 작성 원서제출등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두려움을 가져서 최종결정 단추를 누르는 순간에는 함께 하여 지원해주었다. Berkeley UCLA Carnegie Mellon Vanderbilt등 우수대학에 모두 합격하였다. 자신의 특수한 성향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이상하게 보고 단점으로 여겨 자신감을 잃을 수 있었으나 주변이 변화하여 그를 이해해주고 장점으로 인식시키고 용기를 북돋아주자 자신의 본 모습에서 자신감을 되찾아 성공한 케이스이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시험공포증 등은 심리상담으로 치유 내이튼의 적성검사결과 내이튼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나 부상이 있을 수 있는 스포츠등에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리정돈을 잘 하거나 계산을 깔끔하게 하는 일등에 자신이 있고 또 실제로도 자신의 방정돈이라든지 개인위생등에 대해서는 여느 여학생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앞서있었다. 수학 과학등의 아카데믹스에는 강하지만 창조성 예능성 사회성 인간관계등에는 뒤져있었다. 자연히 학교생활에서도 클럽활동이나 인문계통의 과목들에 관심이 적었다. 장점을 키운다는 원칙을 내세워 수학 과학등의 과목들에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대입준비과목들중에는 내이튼으로서는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더욱 앞서 나갈 수 있는 이과계과목들에 집중하도록 유도하였고 Math Club 수학경시대회참석 그리고 이공계대학 여름캠프등에 참가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결단력부족 약간의 시험공포등에 대해서는 심리카운슬러를 소개하여 카운슬링을 받도록 하였고 곧바로 도움의 영향이 보였으며 본인도 원하여 그 이후로 매월 한번씩 상담을 하도록 하였다. --------------------------

2010-12-05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천방지축 9학년

◇케이스 산드라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극진한 사랑으로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버지는 1.5세로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영어도 잘하며, 매사에 남들보다 열심히 살고, 경제적인 성공에 대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는 억척스럽고 동분서주하는 분이다. 어머니와 산드라는 주중 내내 아버지를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없이, 덩그라니 큰 집에서 고급 옷을 입고 행복한 줄 알았다. 아버지는 가정내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거의 모든 가정사를 결정하였고, 어머니에게는 집안일도 일꾼들을 시키고, 한마디로 아무 걱정없이 아무 것도 모른채 행복했다.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한다거나, 사회생활을 하여야 겠다는 의식도 없었던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남편의 그늘속에서 지냈다. 자신과 어울릴 만한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도, 다른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영유하면서 사회생활도 모르고 더더욱이 미국에서 교육도 받지 않아 조금은 철없는 어머니는 주변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안방마님이지만 속으로는 외롭기 그지 없었다. 어머니는 산드라와의 관계가 거의 삶의 전부인 셈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아버지는 사업에 전념하느라고 가정생활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외롭고 지루한 가정생활을 보내며, 산드라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공주같은 대접을 받았고 본인도 그렇게 재밌게 살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오던 산드라는 남들이 볼 때 어느정도는 버릇없고 제 멋대로인 아이였으나, 부모의 울타리가 모든 것을 감싸주었었다. 그런데 산드라가 중학교에 가고 몸이 커가면서, 나약한 어머니는 산드라의 땡깡을 감당할 수 없게된다. 학교가 끝나고 산드라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학교에 가보면, 어디론가 친구들과 사라져버리기 일쑤고, 친구들과 어울리겠다는 것을 어머니의 권한으로 허락하거나 불허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산드라는 자기가 한다면 하는 작은 폭군이 되어버렸다. 점차로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산드라는 보스가 되었고, 학교에 가져가야 할 과제물 챙기기 등도 거의 어머니의 일이 되어 간신히 간신히 하다가, 결국에는 원치 않으면 학교 갈 생각도 안하거나, 학교에서나 학교밖에서 말썽이 생기는 등 것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타주와 해외까지 여행이 잦아진 아버지는 사업경영으로 전혀 산드라를 돌볼 수가 없었다. 이후로 고등학교 중반까지 산드라의 부모들이 겪은 어려움은 말고 형용할 수 없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평가 만나본 산드라는 예쁜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거친 언사를 거침없이 내 뱉고있었다. 거의 권위에 대한 반항, 분노등으로 대화가 지속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학교공부를 걱정해야 할 그런 단계가 아니었다. 방황기의 청소년들을 잘 도와주는 카운슬러와 심리학자, 정신과의사, 목회자등을 소개하였으나 산드라의 비협조로 도움의 손길은 산드라에게 닿기 어려웠다. 많은 주변의 도움이 모두 헛수고이고 희망이 더이상 없다고 포기할 때 즈음인 10학년 중반에 가서, 한 상담센터의 상담원과 마음을 주고 받는 성공적인 세션들이 생기면서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부모로 부터 받았어야 할 discipline의 부족, 의존적인 어머니와 감정적인 상호의존, 정서적인 외로움등이 사춘기의 폭발적인 호르몬 변화와 어우러져 산드라를 괴롭게 하였다고 판단이 되었다. 교우관계도 워낙 파괴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다른 방황하는 친구들과만 유지되어왔었고 모든 판단과 행동의 근거는 친구들로부터의 인정을 받기위함에 집중되어왔었다. 인간관계방법도 미숙하여 시간이 가면서 그나마친구들로부터도 거의 소외된 상황이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건강하지 않았고, 관계가 깨어진 후의 방황도 있었다. 감정조절, 사고패턴조절, 남을 이해하는 방법,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등을 상담을 통해 깨달으면서 산드라는 점차로 남들로부터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방황을 끝내고 자기 인생을 재출발하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변화였다. 이제 고교생활을 제대로 마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비로소 자신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우선 크게 고교졸업을 목표로 하고 졸업에 필요한 학과목이수를 위해 그 동안 손을 놓았던 학업으로 축적되지 못한 과목별 기초를 쌓는 일로 남은 10학년을 보내도록 하였다. 도움이 되는 상담은 꾸준히 지속하도록 하였다. 자기 맘대로 살았던 것 같은 산드라는 실제로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을 시작하도록 하고 그의 적성에 맞는 몇가지의 여가 생활을 시작하도록 권하였다. 이제 학교생활이건 여가생활이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인식과 그에 따른 애정과 책임감이 성공의 우선요소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 들로는 드럼, 댄스스포츠, 그리고 사진이었다. ◇결과 비온 뒤에 땅굳는다고 산드라는 놀랍게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꿈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대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 떨어진 자긍심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그 만큼의 시간과 어려움이 동반된다. 산드라도 분명 지난 시간으로 낭비한 젊음을 회복하는 데에 극복해야 할 흉터도 생겼을 터이지만, 고마운 것은 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같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상담해 주고 도와주는 카운슬러나 소셜워커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심리학이나 교육을 공부하고 싶다는 목표감이 이제 산드라의 학교생활을 지탱해 줄 큰 힘이 된 것이다. 당면목표로 고교졸업을 삼아야했던 암울했던 10학년을 마치고, 11학년, 12학년을 거치면서 산드라는 목표를 자신이 갈 수 있는 4년제 대학으로의 진학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성적도 점차로 나아져서 산드라는 UC Riverside, Cal State Fullerton, 그리고 몇개의 리버럴 아츠칼리지에 합격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립대학교로 진학하였다.

2010-11-20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떨어진 성적으로 자신감도 상실

케이스 보영이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초등학교때도 중학교 때도 학교와 집 밖에 몰랐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가도 엄마를 보면 집에 갔고 집에 가면 자기 할 일을 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무언지 모를 정도로 자기 할 일을 착착 해내었다. 그런 보영이는 친절하고 자상하기까지 해서 자기할 일을 해 놓고는 엄마를 돕거나 동생을 돌보는 일도 기꺼이 해내었다. 평가 보영이의 적성검사 결과 보영이는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의학과 과학쪽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보인 것 이외에는 그 것에 대비할 만큼 특별히 싫어하는 분야 없이 골고루 이것 저것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거의 전 분야에 있어서 자신감은 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있어서도 보영이는 자신감만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개 이렇게 관심을 많이 보이는 분야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자신감이 관심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능력개발을 권유하고 그 반대로 자신감은 있으나 관심이 적은 경우에는 좀 더 그 분야에 대해 탐구하여 관심이 생길지를 권유하게 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어서 시간을 두고 이야기해보고 관찰해보면서 상담하는 일이 필요하다. 검사당시의 기분이나 환경적인 요소등이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아직 어린 학생들이므로 커가면서 변화의 소지도 있다는 것도 감안하여야 한다. 여하튼 보영이는 자신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학 과학부문에서조차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알고보니 9학년때까지 완벽한 성적을 보이던 보영이는 10학년에와서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높은 성적을 기반으로 택한 두과목의 AP과목에서 B와 C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고 공부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였고 AP 두과목을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학기 내내 언제나 어려웠다고 하며 항상 자신있었던 과학 수학과목에서 조차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PSAT점수도 170점밖에 나오지 않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해 보니 오랜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사가 되겠다는 꿈 을 외골수처럼 가지고 있는 보영은 10학년에 맞은 성적변화로 이 꿈을 접어야 하느냐하는 혼자만의 고민을 가져오고 있었다. 10학년이 되어 학과목들이 많은 reading과 writing을 요구하고 수학과 과학도 한 단계 어려워지면서 자신이 그 동안 해오던 공부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느꼈다고 한다. 특히 성적이 떨어진 과목들에 대하여 보영의 이해수준과 문제해결능력을 검사해보니 생각보다 보영이의 상태는 심각하였고 현재의 학과목진행패턴으로 11학년 12학년을 지내기는 심각하게 더욱 어려운 상황도 만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결과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충분한 준비와 많은 대화를 통해 얻은 결정이었고 나름대로 갖고 있던 어깨를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한결 덜어지고나서 보영이는 한결 밝은 표정이 되었다. 예상대로 보영이는 11학년을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게 보내면서 어려운 가운데 전과목 A를 이루어내었다.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1년 동안 성적관리와 함께 지속해온 Critical Thinking 자기 의견 만들기 궁금증가지기와 질문하기등을 통해 보영이는 한단계 발전하였고 새로 치루어 본 테스트 결과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높아졌고 키도 마음도 한결 컸다. ACT도 꾸준히 발전해 최종 32점을 얻었다. 12학년도 무리하지 않고 자신이 무리없이 잘 해낼 수 있도록 2개의 AP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의대진학에 대한 꿈은 다시 강화되었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작은 리버럴아츠칼리지들에 지원하고 합격하였다. 이제 보영은 4년 후 준비된 의대지망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AP과목 수 4개로 2개로 조정 보영은 이제까지 자신의 성실성과 꾸준한 노력으로 높은 성적을 위지해 오고 있었으나 이제 수학과 과학도 간단한 산술조작의 범위를 넘어서 단계별 해석과 응용이 필요하기 시작하고 언어와 사회과목에서도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이 필요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순종적인 학생 책임감 깊은 학생 정리정돈을 잘 하는 학생들로서 고교 과목들이 한단계 높아지면서 이러한 어려움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 비판적 사고 모험심 유연성 적응성등이 이제껏의 삶 속에 그리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발전이 더뎠을 수도 있었겠다. 보영이가 느끼는 이런 어려움은 명확하고 현존하는 어려움이고 어떻게 극복해 나갈 지는 학생개개인의 발달진행에 달려있을 수도 있다. 대개의 학생들이 성적이 떨어질 때 노력이나 학습량의 부족등이 주원인인 것과 달리 보영의 경우 이해와 적응도의 문제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우선은 성적이 떨어진 과목들에 대해 늦었더라도 전반적인 이해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일대일 복습을 시켜보고 새학년 학과목들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예상되므로 예습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 것의 결과에 따라서 11학년 학과목도 조정하기로 하였다. 어려웠던 과목에 있어서 보영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급격히 늘어나는 많은 량의 새로운 개념들과 그 것들을 적용하는 부분 그리고 유입되는 정보들을 요약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끄집어 내는 부분등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 11학년에 하려고 했던 4개의 AP과목을 보영이가 해결하기는 너무나도 힘이 들 것이라는 판단이 되었다. 절대공부량이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2개의 AP과목을 유지하고 나머지 과목들은 단계를 낮추기로 결정하였다. 의대진학을 위해 최상의 학과목군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지금 한 발 물러서서 성적관리에 힘을 기울이기로 결정하였다. 심지어 과학과 수학쪽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이 분야를 AP에서 물러서기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병원봉사와 장애인봉사활동등을 즐거워 하였기에 지속하기로 하였다. SAT보다는 ACT가 더욱 적절한 상대라고 보고 이를 위해 준비하도록 하였다.

2010-10-24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섵불리 선택한 사립학교서 대입준비에 절망

▶ 케이스 경민이는 강남의 한 중학교를 다니면서 요즈음 대세는 미국명문대 학위라면서 한국의 명문대학 몇군데를 들어가지 못할 바에는 미국유학을 가서 명문대 졸업장을 따야 앞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TV연예인도 미명문대학출신들이 있었고 영어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학원에 가도 미명문대출신의 발음도 좋고 멋져 보이는 강사들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서 외고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학을 다니는 선배가 여름방학을 기해 서울에 와서 후배들에게 해 준 강연을 들으면서 유학을 결심한다. 선배의 미국대학 생활이 너무 멋지고 글로벌시대의 젊은이로서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강연중에 "미국고등학교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직접 대학지원하는 것이 어쩌면 쉬울 수도 있다"는 선배의 말에 마음이 꽂혔다. 이 후 경민이는 유학정보사이트를 훓으면서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홈스테이를 통해 작은 사립학교로 유학할 길을 찾아내었다. 부모는 전연 생각지 못했던 경민이의 결정에 크게 당황하였으나 워낙이 경민이가 바르고 책임감이 강하고 그 동안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오던 것을 믿고 승락을 하였다. 와서보니 학교가 규모도 작고 건물도 후져보이는 것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고 대학진학을 그리 잘 시키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경민이를 보호해 줄 부부가 좋아서 부모는 마음을 놓고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 경민이는 영어적응도 하고 문화차이도 느껴보면서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하였다. 한국 학생들이 없어서 외로운 점도 있었지만 빨리 적응하여야 겠다는 목표감으로 견디면서 되든 안되든 외국친구들과 사귀기 위해서 애썼다. 옷에서 부터 학용품 걷는 모습등 전혀 다른 친구들 틈에 섞여서 점차로 그 들에게 인정받고 일상대화에 낄 수 있게 되었다. 워낙이 한국에서도 우등생이던 경민이는 미국에 온 후로는 더욱 열심히 공부를 파게 되었다. 적응이 되면서는 처음에 길었던 공부시간이 어느새 짧아졌고 점차로 학교공부가 쉬어졌다. 그렇게 적응파악이 되고 나니 학교가 공부를 너무 안시킨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채플 바이블 PE 기타 인성과목등이 발달되어있고 경쟁의식을 강조하지 않으며 우수대학이 원하는 College Prep 코스들은 미약하며 할 수 있는 활동도 적었다. 4년제 대학으로의 진학률도 낮아 경민이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꿈이 높은 학생이 다니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9학년을 마치면서 비로소 대학진학률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짜임새 있는 사립학교를 찾아 전학하게 되었다. 전학후 새학교의 좀 더 짜임새있는 시스템속에서 경민이는 여러가지 학교클럽활동과 스포츠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과목내의 경쟁은 좀 더 치열했지만 경민이는 여기서도 악착같이 공부하며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10학년 중반이 되면서 경민이는 한학년 100여명 중 아이비리그와 Stanford등 명문대학에 오직 5명 정도만이 진학하는 것을 보면서 일등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런데 자신의 학과목이 너무 약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영어대화나 수업이해도도 모두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단어가 약하고 전자사전에 많이 의존하는 자신이 과연 아이비리그에 합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평가 경민이는 똘망똘망 똑똑하고 훌륭한 학생이었다. 자신이 원하여 시작한 미국유학길이었고 부모에게 많은 짐을 지웠으니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착한 학생이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 될 부모의 희생에 보답하려면 자신은 꼭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학진학을 이뤄야만 마음이 떳떳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니 잘 가이드 해 달라며 자신은 꼭 하버드에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깔끔하게 이야기하는 경민이도 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각오대로 9 10학년의 학과목들은 모두 Honor과목없는 Regular Course들로서 전부 A를 기록하였다. 영어는 ESL과 English9 수학은 Alebra 1 Geometry 사회는 World History 과학은 Biology Chemistry 외국어는 없었다. 또한 이미 배정받은 11학년 과목중에는 AP과목이 하나도 없었다. SAT를 치러보니 총 1500점이 나오질 않았다. 학교에서는 Tennis와 Track & Field를 하였다. ▶결과 경민이는 11학년 여름에 SAT점수를 1900점까지 올리고 12학년 지원철이 되어서는 2300점을 돌파하하였다. 11학년 학교수업은 AP과목없이 세개의 Honor과목 뿐이었지만 5월에 치른 AP시험들은 AP Physics AP Chemistry AP Biology의 세개의 과학과목을 모두 5점을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 업적의 달성을 위해 경민이는 근 8개월동안 강도 높은 개인교습을 하였다. 학과목의 부족을 단번에 매워줌과 동시에 대학측에 경민이의 능력과 의지를 뽐 낼 수 있는 중요한 업적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Student Council에서 Co-President를 하였고 Math Club Science Bowl등에 참여하였다. SAT subject test에서도 과학 3과목과 Math에서 두개의 만점과 두개의 750점 대를 기록하였고 한국어 만점을 기록하였다. 12학년에는 여러개의 AP과목을 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전학 후 피나는 노력으로 명문대 합격 SAT점수가 너무 낮으니 11학년 여름방학에는 최종목표를 1900점 이상으로 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하였다. 일단 1900점 이상으로 올릴 수 있으면 대입까지 남은 15개월 동안 2300까지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SAT준비에 전념하는 방학동안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 시간을 쪼개 주말에는 주변에서 Volunteer할 것을 찾아 주 몇시간이라도 하도록 하였다. 11학년에 들어가서 택하는 과목들이 어떤 과목은 학교가 개설하지를 않아서 또 어떤 과목은 Prerequisite(전제과목) 때문에 AP과목을 택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니 개인적으로 공부하여 SAT subject test들과 AP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무리해보이는 계획이지만 본인의 능력이나 의지가 이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학생이라고 믿었다.

2010-10-17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사립학교 토론식 수업 적응 어려워

 ▶ 케이스  준영이의 부모는 원하는 한국의 상위계열 대학들에 진학하기에 어려울 것을 감지한다. 한국의 다변화된 대학입시의 그 어느 전형에서도 유리한 구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이 시험에 강하지도 않았고 입시지옥에서 준영이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준영이의 교육을 위해 사업체의 지사를 새 법인으로 미국에 설립하고 준영이를 미국에 데려와 사립학교에 넣었다. 자연히 어머니도 함께 이주하여 기러기가족이 되었다. 대학진학에 대한 스트레스로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준영은 새로운 돌파구에 희망을 걸게 되었다. 작은 사립학교지만 매년 여러명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진학하고 있는 학교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바로 그 것이었다.  ▶ 평가  9학년때 준영이는 이 학교에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공부를 하면서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루 종일 학교생활 후 방과후에는 학원들을 순례하며 살던 준영이에게 미국의 9학년은 누워 떡먹기처럼 쉽게 느껴졌다. 단지 6교시 뿐이고 수학 과학 등은 영어가 문제였지 내용은 다 아는 것이었다. 시험도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고 숙제도 영어의 도움만 있으면 금방 끝내버릴 수 있었다. 조금 어렵다 싶으면 가정교사를 붙여 도움을 받았다. 자연히 숙제는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다. 시험준비가 문제였으나 한국에서의 시험때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필수로 시키는 체육과 성경공부도 그런대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0학년이 되면서 성적받기가 수월치 않아졌다. 점차로 과목들이 어려워지면서 영어의 중요도가 높아져만 갔다. 선생님에 따라서는 영어의 부족을 들어 성적을 한단계 낮추어 주기도 하였고 특히 영어 사회과목에서는 노력에 비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문제는 준영이에게 익숙한 한국에서 공부하던 방식이 잘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작문숙제와 역사과목의 에세이식 답안작성에 애를 먹었다. 외워서 답하는 것은 잘 하는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은 도저히 잘 되지를 않았다. 게다가 좀처럼 준영이가 해내기 어려웠던 부분은 이 학교에서 중요시 하는 수업방식이었다. 교사가 주로 강의(lecture)하고 주입식으로 정보전달에 중점을 두는 한국식 수업방식에 익숙했던 준영이는 교과서의 내용 뿐만 아니라 관련 참고자료(reference)도 스스로 읽어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강의 내용과 이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하는 수업방식이 피를 말리는 것 같았다.  어렵게 듣고 말하기가 익숙해 지면서 영어를 좀 하는 줄 알았지만 많이 읽어 내용을 파악한(critical reading) 후 자기 의견을 만들어 말하거나 조리있게 써내려가는 쪽은 많이 부족하였다. 10학년들어 성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다.   적극적 수업태도 서서히 익숙 소규모 인문대서 법조인 꿈키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준영이와 대화를 해보고 Writing sample들을 살펴보고 부모와 상담을 나누면서 준영이가 상당히 부모의존적이며 자기의견을 내어놓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전반적인 사고패턴이 수동적이었고 자신의 진로에 대한 의견에도 부모의 의견을 복사한 듯한 말을 할 뿐이었다. 학교성적관리에 있어서도 어머니의 철저한 주도에 이끌려 가고 있었는 데 정작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준영이었지만 시험이 언제인지 어떻게 준비할 것 인지 숙제는 Due Date가 언제인지 오늘은 어떤 tutor가 뭘 도와줄 지 등도 모두 어머니가 결정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준영이는 자기 생각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책임있게 노력하는 어머니의 노고가 잘 작동하고 있었다. 영문과 출신의 어머니의 조직적인 사고와 영어실력이 준영이를 지탱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영어실력이 10학년 11학년 12학년까지 준영이를 도와줄 수는 없을 것이고 더더우기 이런 의존적인 학습태도로는 준영이가 고교생활을 제대로 이행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대학진학이 어려울 것이 자명해 보였다.  어머니나 준영이가 목표로 하는 일류대학진학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준영이와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통해 학습습관을 대대적으로 변경할 것을 처방하였다. 가능한 모든 학업중의 결정을 준영이가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의 역할을 준영이에게 넘기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 무슨 도움이 필요한 지를 준영이가 찾아내고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전권을 주었다. 그 동안 숙제도움이나 시험준비를 가정교사 주도로 하던 것을 준영이 주도로 바꾸도록 하였다.  특히 많은 읽기도 가정교사가 주로 읽어 정리(summary)해 주던 것을 어렵더라도 준영이가 읽어내고 스스로 summary하는 훈련을 시킬 수 있도록 가정교사를 지도하였다. 9학년부터 방향없이 이것 저것 하던 스포츠와 봉사활동들도 일단 중단하도록 하였다. ▶결과 초반에 준영이와 어머니가 이런 과정에 매우 어려워하였으나 차차 준영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면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의존적이던 준영이가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었고 10학년 둘째 학기에는 비록 과목별 성적에 있어서는 첫학기와 비슷한 성적을 받았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얻은 자신의 올바른 성적이라는 것에 크게 고무되게 된 것이다. 수업참여도 많이 발전하였고 교우관계도 매우 좋아졌다.  10학년을 마치고 비로소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겠다는 준영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진지하고 현실적인 2개년 계획을 세울 수 있게되었다. 원하는 대학들은 크고 유명한 일류대학들이었으나 현실적으로 합격할 수 있고 준영이의 성향에 맞추어 법대(law school)합격을 도와줄 수 있는 작은 리버럴 아츠 대학들을 목표로 학과목과 성적목표들을 세웠다.  학교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클럽활동들과 스포츠를 결정하였다. 11학년에는 성적도 우수하게 받을 수 있었고 12학년 여름에는 명문대학교의 여름학기에도 참여하여 좋은 성적을 받는 등 대학에서의 성공에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대학지원시에는 2년전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안정된 대학준비생의 모습으로 훌륭한 지원서패캐지를 준비하게 되었고 40위 안에 드는 인문대학들에 지원하여 무난히 여러대학으로 합격하였다. 만들어지기 보다는 스스로 능력을 쌓아 막연한 목표가 아닌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여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겠다.

2010-10-10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작은 리버럴아츠 칼리지통해 지망전공 꿈 이뤄

▶ 케이스 에디아버지는 본국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치과의사 라이센스를 땄다. 개업을 하고 안정적으로 치과의사의 삶을 영위하며 미국생활을 만족하며 살게되었다. 대도시의 작은위성도시에서 개업하여 로칼 로타리클럽에도 참여하는등 미국주류사회에서 기반을 잡게 되었다. 가족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종교를 지향하는 사립학교는 없어서 종교는 달라도 보수적인 싱앙교육을 토대로 교육하는 보수적인 기독교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어 쭉 교육시켰다. 에디 자신도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서과목을 학교에서 배우면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미국문화와 양식 매너들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딸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권유하여 대학에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치과의사 아버지는 에디를 치과의사로 만들기를 이미 오랜전부터 희망해 왔다. ▶ 평가 안정과 풍요속에서 자라서인지 에디는 근심없이 자유로운 한마디로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극도로 조용하고 순종적인 어머니를 가져서인지 아버지가 모든 일을 결정하는 가운데 자기주도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없고 예의바르고 순종적이었다. 독립심이 적고 어려운 일은 모두 아버지가 해결하는 것이 타성이 된 듯 보였다. 에디는 열심히 공부를 파는 투지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는 성향도 별로 없어서 경쟁이 심한 치과대학진학을 주도할 의지가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미국에서 고교및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전문가의 도움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아직까지 하라는 대로 잘 하는 아이이니 제대로 가이드만 잘 해 주어 전문직진입을 유도하면 충분히 훌륭하게 치과의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선 에디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했고 다행히 에디는 치대진학을 동의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진로 정하니 학습효과 쑥쑥 에디학교는 작은 사립학교이다보니 에디의 카운슬러는 학생들의 능력과 성향에 잘 맞는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튀지 않고 마일드하며 학업에서도 경쟁력은 있되 우수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에디의 성향으로 볼 때 카운슬러들은 부모의 의견을 듣기 전에는 평범한 학과목선택을 유도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에디부모의 분명한 목표와 에디의 희망을 잘 알고 있는 필자는 에디의 학과목선택에 약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문과성향의 학생으로 보이긴 하지만 에디가 원하는 이과 즉 자연대학쪽 진입을 위해서는 과학과 수학과목에서 조금 앞설 필요가 있었다. 수학과 생물학 화학등에서 에디의 경쟁력을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동안 뒤져 있던 수학과 과학에 집중적인 기초쌓기 작업을 처방하였다. 학교에서 해당과목 교사들이 최근 젊은 교사들로 교체된 후 에디와 같이 교사에게 의존하는 학생층의 성적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현상을 매우 우려하게 되어 특히 이 과목들의 기초를 다지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이후 AP화학과 AP캘컬러스를 지도하며 만나본 에디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해야하는 과제의 최소한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스타일이었다. 과목의 성격상 매일매일 그날 배운 새로운 개념(concept)을 이해하고 예제를 풀어 확인하는 길고도 지루한 공부를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서도 제대로 하려면 탐구정신과 지구력이 필요하였다. 학교에서 아무런 스포츠도 하지 않고 있던 에디에게 테니스를 시작하기를 권하였고 원체 튼튼하고 키가 큰 에디는 곧 테니스팀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테니스와 학생회 봉사클럽등을 꾸준히하도록 하였고 아버지 인맥을 동원하여 병원봉사도 주선하였다. USC만을 고집하던 에디와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는 큰 주립대학들을 선호하던 아버지를 설득하여 작은 리버럴아츠칼리지들에 지원토록 하였다. 에디가족은 에디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priority(우선순위) 였기에 대학선택은 우선 에디가 추후 치과대학에 합격할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선택하도록 하였다. ▶결과 학과목을 상향조절한 이후로 사실 에디의 삶은 많이 어려워졌다. 쉽게 쉽게만 공부해오다가 치과대학을 최종목표로 해서 대학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수학 과학등에서 철저히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카운셀링으로 목표감이 생긴 에디는 점차로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 후로 에디는 수학 과학과목의 모든 AP과목을 택하게 되어 우수한 성적을 얻게되었다. 성적관리와 SAT점수 향상은 개인교습의 효과를 톡톡히 보아 더디지만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결국 에디는 UCLA USC 옥시덴탈칼리지등에 합격하였다. 본인은 USC로 진학하기를 초반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애초에 합의한 대로 합격한 대학중에서 에디의 Dental School(치과대학) 합격에 가장 도움이 될 학교로 진학한다는 온가족의 결정으로 옥시덴탈대학으로의 진학하였다. 입학후 역시 예상한 대로 에디는 새로운 화학과목과 생물학과목들에 어려움을 겪으며 초반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고 꾸준히 학교내 튜터프로그램과 학교밖 과외공부등을 통해 좋은 성적으로 대학도 졸업할 수 있었다. 뒤늦게 치과대학진학에 열의가 생긴 에디는 DAT(Dental Admission Test)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어 USC Dental School에 입학하여 아버지와 동창이 되었다. 이후 아버지 병원에서도 일하였다. 자신의 성향을 잘 깨닫고 약점보완을 꾸준히 하여 자신의 꿈을 이룬 케이스라고 보겠다.

2010-09-19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자폐증 언니로 인해 소아심리학 전공 관심

▷케이스 샤이니는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아가씨이다. 너무나도 흠잡을데 없는 학생이다. 그런데 그 크고 밝은 눈망울안에는 쉽게 드러나는 마음의 아픔이 담겨있다.알고보니 그의 깊은 내면에는 나름대로 아픔이 쌓여있었다. Autism Spectrum Disorder(자폐성 증상)을 오래동안 가지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고집이 있고, 혼자 놀기 좋아하고 떼를 잘 쓰던 언니는 커가면서도 친구를 사귀거나 가족과 잘 지내는 쪽에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렵고,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버릇이 없어서 라고만 생각했다. 어려서 부터 언니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룰을 잘 지키지 않았으며, 부모는 물론 교사들이나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고, 과제물을 잊기 일수 였다. 가족끼리 의미있는 대화가 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다.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들을 가지고 부모는 언니를 훈육시키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주의력 결핍 하이퍼 활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진단을 받기도 하였다. 많은 의사들을 만나보았지만, 어떤 진단에 어떤 처방을 받아도 변화가 별로 없었 다. 충동적으로 생각없이 저지르는 일도 많았고, 강박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한가지 생각에 빠지면 세상일이 그 것 뿐인것 처럼 다른 일 모두에서 줄을 놓아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언니는 고교말년에 가서야, 심하지 않은 자폐성증상이라는 진단과 함께 처방받은 약물치료가 효과를 보이면서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평가 오랜동안 샤이니와 부모는 언니가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사람인지를 알지 못했다. 금술 좋은 부모는 오직 언니 문제 때문에 많은 말다툼과 싸움을 하였고 샤이니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언니의 문제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머리가 크면서 샤이니는 이러다가 부모가 헤어지고, 자신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약없는 인생이 될 까 큰 두려움을 갖게되었다. 부모의 시련을 세심히 목도하면서, 힘에 겨운 상대와 힘든 전투를 하고 있는 부모가 불쌍해서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자연히 샤이니는 찾아보기 힘든 모범학생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는 샤이니 걱정없이 언니에게 골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샤이니는 자신의 소중한 어린시절을 부모의 따뜻한 애정과 가족의 안정속에서 보내지를 못하고 덜 익은 과일처럼 애어른이 되어 일찌감치 커버렸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슬픔을 마음에 뭍어둔 것이다. 적성검사에서 샤이니는 소아심리학자나 소아정신과의사,또는 소아과 간호원, 소셜워커 등 남을 돕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자신을 위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내지 못하였다. 한번도 자기를 위해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결과 카운셀링이 시작되고서 샤이니는 좀 더 밝은 표정을 하기 시작했다. 일년후 다시 해본 적성검사에서는 애초가지고 있었던 소아심리학과 함께 비즈니스와 저널리즘에도 관심을 나타내게끔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언니도 많이 좋아졌고, 가족관계도 더불어 발전하였다.눈망울안에 숨어있던 슬픈 빛도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학교성적도 점차 발전하여 11학년에는 오랜만에 모든 과목을 성공적으로 패스하면서 10학년 GPA 3.5에서 11학년 GPA 4.0으로 크게 올려냈다. 샤이니는 특별히 힘에 부치는 대학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합리적인 대학선택을 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한 에세이들을 작성하여 보낸, 보스턴U, 보스턴C, USC, NYU, Tufts등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적성검사로 인해 할 일 찾아 샤이니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였다. 정기적으로 심리카운슬러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조언하였으며, 대학지원을 위한 적성검사도 1년후에 다시 한 번 치러 보기로 하였다. 부모들에게도 특별히 부탁하여 언니로 부터 시선을 옮겨 샤이니만을 위한 부모의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듬뿍가지도록 하였다. 남은 11학년 학교성적을 안정적으로 맞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처방하였다. 클럽활동등 학과외활동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싶어서 하는 것으로 마음 가짐을 바꾸도록 하였고, 하고 싶었던 활동을 골라 더하여 자신의 숨은 감정에 충실하도록 주문하였다.

2010-09-12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과외활동은 2~3개에 집중하는게 효과

▶ 케이스 미국에 파견나온 아버지를 따라 현수 가족은 좋은 학군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이미 한국에서 큰 딸의 대학진학을 경험한 터라 이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 임을 몸소 겪은 엄마의 생각으로는 현수의 끈기와 머리를 볼때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아빠를 따라 미국에서 대학 진학하는 것이 어쩌면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 도착해 이웃이나 교회 다른 학부모들로 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보니 한국에서보다 간단한 교육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교육용어나 정보들이 생소하고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이라서 큰아이를 기르면서 나름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와 잘 맞지 않아 당황하게 되었다. 하지만 큰 애 때와는 달리 사춘기에 들어선 현수는 꼼꼼히 엄마의 의견을 챙겨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고집을 세우기 일쑤여서 엄마를 더욱 어찌할 바 모르게 하여 답답했다. 미국에 오자마자 영어 적응하느라 아무런 학과외활동이 없었다. 엄마와 현수는 이공계나 의과대학진학을 원하고 있으며 그 것도 명문대학이 목표였다. 해야 할 일은 많은 것 같은 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 지 몰랐고 과목설정 클럽활동등 내려야 될 결정들은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각각의 결정들이 잘 내린 결정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의욕이 앞서있는 현수가 욕심껏 계획을 하면 누구보다 아들을 잘 아는 엄마는 아들이 현실성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해 했고 수집한 정보들이 결심에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혈기가 왕성한 현수는 스포츠를 하고 싶어했고 어머니는 과도한 체육활동이 학업에 방해가 될 것 같고 대학측이 좀 더 학구적인 활동을 원할 것 같아 원치 않았다. ▶평가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엄마가 체득한 것은 부모는 중요한 정보를 잘 수집하고 가능한 훌륭한 학원과 적절한 멘토링으로 계획대로 착착 뒷바라지 해 주고 자녀는 최선으로 따라와 주면 결과적으로 얻은 성적과 수능점수에 따라 현명하게 지원결정을 잘 하여 가장 등수높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보니 학교에서 클래스도 종류와 등급이 여러가지고 SAT시험도 봐야하고 AP 봉사활동 음악 등 해야할 일도 많아 다양한 모습으로 학생들이 살아나가는 것이다. 자연히 엄마와 현수의 생각은 언제나 이렇게 하는 것이 저렇게 하는 것보다 좋을까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이 결정은 실책이나 아닐까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누구에게 새로운 정보를 들으면 저 것이 이 것 보다 좋은 가 궁금하기만 하였고 그 답을 찾기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게되기 일쑤였다. 대답은 천차만별이었고 도무지 종을 잡을 수 없었다. 처음 현수가족을 만나서 현수의 적성과 현수의 열정 현수의 목표등을 이야기할 때에도 현수와 부모의 관심은 정보수집이었고 셀 수 없는 질문들만이 던져졌다. 그러나 모두 우선 항해사의 마음을 가진 후 방향을 정하면 해결될 것 들이었다. 게다가 현수와 엄마는 마음이 맞지 않는 선장과 항해사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결과 스포츠에 심취한 현수는 시즌별로 스포츠를 택하였고 비록 체력소모와 부상가능성이 높은 구기종목과 개인스포츠들이었지만 적절한 준비와 체력안배 등으로 여러번의 위기를 견뎌내며 무사히 성적유지를 이룬다. 스포츠를 통해 얻은 에너지로 수학클럽과 로보틱스 클럽 키클럽 등에도 참여를 계속하였고 학생간부 포지션을 받았고 총 300시간의 봉사활동도 해내었다. 두번의 서머기간을 이용해 이공계 대학의 서머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역사과목에서 2개의 AP 수학에서 2개의 AP 과학에서 2개의 AP와 2개의 칼리지 크레딧 3년의 외국어 4년의 영어를 이수하는 등 초반에 어렵게 여겨졌던 모든 목표들을 무사히 완수한다. 원하던 이공계대학들에 지원할 충분한 조건들을 마련하였고 UC 버클리 조지아 텍 유니버시티 오브 일리노이카네기 멜론 미시건 대 등에 합격하였다. 경쟁이 심한 한국을 떠나 자신의 특색인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적절한 성적관리를 통해 원하는 대학진학을 이룬 현수와 혼동스러움 속에서도 아들을 믿고 적절히 지원해 준 엄마의 훌륭한 합작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스포츠활동 즐기며 성적 유지 버클리 등 지원대학에 모두합격 항해에 목표가 확실치 않고 항해지도도 불분명하며 배의 성능과 정비상태를 모르고 선장과 항해사의 뜻이 맞지 않을 때에는 항해를 시작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대입이라는 항해는 일단 최선의 계획들을 세우고 출발을 하는 수 밖에는 없다. 엄마와 현수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설명을 해 가면서 다른 의견들을 조율하고 접점들을 찾아내어 간단한 목표들을 세웠다. 수학만은 Algebra 2로 높은 클래스를 택하고 있으나 영어의 부족으로 ESL에 속해있는 현수가 이공계진학을 위해 자신있는 수학과 과학에 중점을 둔 학과목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는 클럽활동들을 선택하도록 했다. 영어부족으로 택할 수 없었던 외국어과목은 가정교사를 섭외하여 미리부터 수개월 준비하여 10학년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출발을 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현수의 루트에 색깔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우선 10학년 여름에 1년 크레딧을 받을 수 있는 영어과목을 인근에서 택하여 영어의 기틀을 잡도록 하였다. 이공계에 중점을 두기위해 영어에서의 걸림돌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영어실력을 필요한 만큼 확장시켜 또 다른 가능성을 여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스포츠를 꼭 하고 싶었던 현수와의 극적인 타협으로 개인적인 체력강화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다른 과목 예습들을 철저히 하며 성적이 떨어질 경우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스포츠를 시즌별로 하기로 하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현수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커서 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0-08-29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목표 없던 우등생이 밴드 조성후 적극적 돌변

리처드는 어릴 때 큰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워낙 어릴 때 일어난 일이라 리처드는 부모에 대한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홀로 남은 리처드는 서울의 할어버지댁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미국에 사시던 큰아버지가 입양해 사촌 가족과 함께 자라게 되었다. 큰아버지 가족은 이 모든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레 가르쳐 주었기에 리처드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사촌들도 친형제와 다름이 없었고 아무런 차이없이 가족의 일원으로 잘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처드는 (이하 부모로 칭함)가 원하지 않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이로 자랐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효자 중의 효자가 되었다. 간혹 형제들은 부모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였으나 모두 착하고 올바른 형제였다. 리차드의 부모는 공부를 많이 하고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분들로서 자녀들의 교육에도 성공적이셨다. 자연이 자녀들도 높은 교육수준을 추구하게 되었고 명문대학으로 진학하여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리차드는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학군의 공립고교로 진학하였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리차드는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부모와 형제와 거리가 생기는것 같았다. 어느날 리처드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부모들은 무엇을 원하느냐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걸었을 때 부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원하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상관이 없으며 단지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며 교육에 관해서는 부모가 최선으로 뒷바라지 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 평가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교사들이나 부모의 평가는 리차드가 책임감은 있으나 꼭 해야할 것 이상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며 특기활동을 위해 부모가 제공한 것들은 잘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은 별로 없다는 평가였다. 초등학교때 부터 영재반에 들어갔고 중학교때 SAT점수가 좋아서 명문대학에서 여름에 제공하는 영재프로그램에 다녀왔으며 수학은 가장 앞선 트랙을 나가고 있었고 테니스도 잘 했다. 모두 형제들이 해 나간 전철을 잘 밟아나가고 있었다. 부모의 걱정은 그맘 때에 형제들은 자신의 목표가 생겨 능동적으로 모든 일을 하였었으나 리차드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주어진 일은 잘해내고 있지만 수동적인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리차드의 적성을 살펴보니 학업에 대한 드라이브나 전문직에 대한 자신감 인간관계에 대한 즐거움등은 형제들이나 자신의 외향적인 모습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창조적인 성향이 강하고 리스크를 택하는 것을 좋아하고 변화무쌍한 삶에 대한 열망이 컸다. 전체적으로는 다방면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만 관심분야는 엔터테인먼트 공연 음악 연극 심리학 인간관계 연출 등에 매우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는 리차드가 그런 관심을 많이 보인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면서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예술계에서 공부하셨다는 생부모의 성향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신기해 하게되었다. 리차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가족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며 결국에는 부모들과 형제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 분야로 자신도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대학에 가서 좀 더 생각해 보고 차차 결정하겠다고 한다. ▶결과 고교생활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 리차드는 빠르게 변화했다. 부모도 리차드가 그렇게 드라마와 코러스등에 재미있어 할 줄 몰랐다며 기뻐하였다. 리차드도 부모가 자신에게 세심한 배려로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어 허락하였다는 것을 매우 신기하다며 감사해했다. 이후 리차드는 이외에도 기타에도 심취하여 밴드를 조성하기도 하며 고교생활을 완전하게 즐기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부모는 전공과 학교선택등에 대해서는 손을 떼고 리처드가 전적으로 권한을 가지고 결정하도록 해 주었고 리처드는 형제들이 진학한 몇 개의 동부 명문대학들과 UC버클리에 비즈니스 전공으로 지원하였다. 명문 아이비대학 한 곳과 모든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합격하였으나 자주 집에 들리기 위해 먼 곳 보다는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고 싶으며 학비부담도 원하지 않는다는 리차드는 버클리에 진학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드라마와 코러스에 흥미 유발 리차드에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도 리차드는 잘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어른이 되고 무언가 자기가 결정해서 해야만 할 때가 되면 알게 될지도 모른 다고 말한다. 리차드는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왔으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을 잘 해 나가면 형제들과 같이 명문대입학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학과외활동등에서는 드라이브가 약해서 앞에 주어진 것만 잘 하는 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리차드에게는 아직까지 해보지 않았지만 본인이 흥미를 은연중에 나타낸 드라마와 코러스등을 제안하였다. 아지껏 그런 제안을 받아보지 못했던 리차드는 그런 것이 대학가는 데에 도움이 되느냐며의아해하면서도 미소를 띄우면서 해보겠노라고 하였다. 학과목은 우수 명문대에 진학하기에 충분한 로드맵을 제시하여 계획을 짰다.

2010-08-15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우수학생들 사이에서 차별화 하는데 주력

▷ 케이스> 카니는 작은 기계부품업체를 운영하며 바쁘지만 안정된 생활을 하는 부모의 둘째 딸이다. 카니는 항상 행복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부모는 특별히 많은 교육을 받지 않은 분들이지만 오랜 객지 생활로 미국 중산층의 안정 된 생활에 만족하며 합리적이고 가정적인 분들로써 공부는 학교에서 배우고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교회에 다니며 착하게 살면서 대학은 자기 능력에 맞는 대학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히 가정생활이 화목하고 특별히 부모자식간의 갈등도 없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복많은 카니의 부모는 카니의 교육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지만 카니는 알아서 학교생활을 잘 꾸려나가고 성적도 좋았다. 악기로는 클라리넷을 배웠고 덕분에 고교에 들어가면서 오케스트라를 하기시작했다. 카니의 꿈은 예일대학인데 교회에서 함께 생활한 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평가 이제까지 무리없이 완벽한 성적을 유지해 오고 있으므로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학과목을 진행하면 학과목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애매한 인문사회학보다는 답이 정확한 수학과학등에 적합한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려서 부모와 캠핑하며 하늘의 별자리를 배웠을 즈음 중학교 과학시간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교사의 영향을 받아 우주의 신비에 대한 호기심과 지구과학 환경보호등에 관심이 많았다. 지구환경보호 오개닉 먹거리 자원재활용사회참여 등에 관심이 많은 교회에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결과 SAT 는 예상대로 Critiacal Reading 800 Math800 M Writing 760 그리고 자신의 강점인 Math II 800 Biology 800 Spanish 800을 기록하였다. 중간에 보아 본 ACT도 35점을 기록하였다. 학교 성적은 완벽한 4.0 그리고 치른 AP시험은 European History 5 US History 5 Biology 5 English Language 5 Spanish 5 등 모두 만점을 기록했다. 12학년도에도 학과목은 AP Calculu BC AP Physics AP Economics AP World Literature를 택해 모두 A를 기록했다. 학교신문에서는 editor-in-chief 실내악 오케스트라 마칭 밴드등에서 리더를 하였고 All-State Orchestra All-State Band등에 뽑혀 참여하였다. 천문학클럽을 시작하여 회장을 하였다.지역 고교생들과 함께 관악5중주로 컨서트에서서 연주하였고 인근 도서관에서 200시간정도의 봉사활동도 하였다. 교회에서는 Youth Program에서 자원재활용을 위한 컴퓨터및 가정용전자기기 수거 프로젝트를 고안하여 모금하여 재활센터에 기부하였다. 교사들의 추천서도 매우 훌륭했고 완벽에 가까운 학교성적과 시험점수들을 가지고 있지만 학과외활동이 전부 다 학교내에서 이루어졌고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으로 확신이 없어하는 카니를 설득해 본인의 드림스쿨인 Yale을 조기지원학교로 하고 Cornell Johns Hopkins Carnegie Mellon Williams Amherst Chicago등의 학교들에 정규지원하였다. 여름방학부터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에세이들이 훌륭하게 잘 나왔다. 겸손한 카니는 지원학교 중 한 곳에만 합격하여도 감사하다고 늘 말했는데 조기지원한 예일대학을 비롯하여 지원한 모든 대학에 합격하는 행운을 안았다. 그 중에서도 Williams Amherst 등에서는 정규발표가 나기 근 1개월전에 좋은 Financial Aid Package와 함께 합격하여 카니는 매우 영광스러워 하였다. --------------------------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중형 사립학교서 성공적 적응 카니를 자기와 비슷한 프로파일을 가진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도록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게 하는 일은 매우 쉽지 않은 일로 보였다. 오케스트라 이과계열 여학생 중산층 어느 하나 다른 학생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들을 2~3년 안에 이룩할 거리도 별로 없었고 또한 카니나 부모님이나 특별한 것을 추구하는 가족도 아니었다. 함께 얘기하며 카니의 적성과 관심에 맞는 일들이 비록 특별하지는 않아도 카니에게 있어서만은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카니는 클라리넷도 너무 좋아하고 과학도 좋아하고 특히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을 즐기며 항상 리더쉽을 발휘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그 부분들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되 탄탄한 수준까지는 활동하여야 하며 대입에세이는 카니의 본모습이 훌륭히 드러나도록 심혈을 기울여야만 할 것 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다른 지원학생과 다른 무엇인가를 입학사정관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에 충실하기를 원하는 카니에게 좋아하는 클라리넷을 지속하여 Orchestra Marching Band등의 활동을 지속하도록 하였고 과학에 관심이 많으니 모든 Calculus와 모든 과학과목에 AP과목을 택하여 다른 과목에 우선하여 집중하도록 하였다. Spanish에 능하니 Spanish Club에서 적극적으로 활동도록 조언했다. Newspaper에 참여하여 가능하면 음악 과학 언어부분에 기회가 있을 때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였다. 겸손하고 착한 카니는 원하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2010-08-01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UC지망 결정, 과외활동 댇신 성적에 집중

▷ 케이스 정원이는 일찍부터 UC에 입학하기를 꿈꿔왔다. 부모는 평범한 분들로써 이민생활이 녹록치 않았기에 열심히 사는 것이 우선이었고 정원이에 대한 특별한 뒷바라지란 없었지만 큰 탈없이 정원이는 고교까지 자라주었다. 대부분의 바쁜 부모의 자녀들처럼 부모의 큰 개입없이 그런대로 학교생활을 해 왔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왔다. 이제 10학년이 지나고 11학년을 앞둔 싯점이 되면서 부모는 이제는 그야말로 그 동안 미뤄왔던 정원이의 대입준비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임박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의 지인들과 상의를 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부모는 많은 다른 학부모들에 비해 자신들이 너무 아는 것이 없고 또한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정원이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안한 마음에 정원이와 대화를 하게 되면서 다른 부모들에게 들은 여러가지 진학정보를 사용하여 다른 학생들의 상황과 정원이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갈팡질팡하는 여러날을 보내게 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 지를 알 수가 없었다. 11학년을 앞두고 가족은 아무래도 정원이의 학과외 활동이 너무 부족하다는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스포츠와 악기 그리고 봉사활동도 필요하다는 주변의 의견들을 듣고 그 동안 하지 않던 스포츠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으며 그를 위해 여름방학에 테니스렛슨을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수소문하여보지만 다른 아이들이 하거나 하게 된다는 봉사활동은 이미 자리가 다 찼다고 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한이봉사기관에 일단 가입하도록 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SAT도 치러야 하니 학원도 다녀야 하겠고 누구는 그 점수면 충분하다 누구는 너무 낮다하니 종을 잡을 수 없었다. 정원이의 부모님이나 정원이는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느 쪽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다. ▷ 평가 이렇게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대학에 진학을 해야할 지 모를 때에는 가장 먼저 학생의 성적을 보아야 한다. 캘리포니아처럼 주립대학이 줄줄이 있어서 그 수준이 거의 결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성적하나로도 거의 학생의 합격가능대학은 점쳐진다. 정원이의 성적으로 합격가능성이 높은 대학은 UC 얼바인을 목표대학으로 해서 그 보다 합격률이 높은 좀 더 수월한 다른 캠퍼스들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요즈음 UC의 입학사정관들이 개개인의 사정을 좀 더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성적이외의 다른 요소들까지도 들여다 보게 되어 간혹 이 성적으로 이 캠퍼스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외다 라거나 이 성적으로 이 캠퍼스에 합격하다니 무언가 다른 장점이 있는가 보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의외성이 많은 경우들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적만으로 합격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학생의 입장에서도 성적이외의 다른 조건들도 함께 감안해서도 어떤 학교가 안정권인지 좀 불안한지 좀 안심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바로메터는 최근의 통계이다. 그래서 정원이의 성적으로 우선 합격가능성이 높은 학교 수월한 학교를 감안해 보고나서 성적 이외의 것들을 다시 함께 들여다 보면서 과연 성적을 도와 줄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이 풍부한지 그렇지 않은 지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적을 보고 다른 요소들을 볼 때 정원이의 SAT점수는 경쟁성이 별로 없었다. 일단 절대점수가 낮았으며 학점과의 대비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학과외 활동또한 그러하였지만 이 싯점에서 대학에서 가장중요하게 볼 수 밖에 없는 아카데믹 스트렝스(학업능력)을 보이는 데에 꼭 필요한 GPA와 SAT점수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고 GPA와 SAT점수를 뛰어넘는 훌륭한 상황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스포츠활동 중단하고 SAT대비 주력 정원이의 경우에는 우선 학점으로는 원하는 UC 어바인에 합격한 통계를 볼 때 약 60%정도가 합격하므로 상당히 가능성이 있었으나 SAT점수로는 훨씬 가능성이 적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통해 정원이 합격가능성을 높히는 방법으로는 SAT점수를 일정 점수 이상으로 올리는 것 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는 평가를 했다. 학과외활동을 새로 시작해서 부족한 SAT점수를 보완해 줄 만큼의 결과를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런 노력보다는 차라리 해당대학이 원하는 학업능력을 확고히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원이를 보아 SAT점수를 통계적으로 합격을 좀 더 하는 점수군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방학중에는 SAT에 전념하도록 하였고 11학년 때 성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학과외활동을 무리없이 하도록 새로운 스포츠를 시작하는 일을 중단시켰다. 그보다는 GPA를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방학중에는 예습을 그리고 학기중에는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방해요인을 줄일 수 있도록 규칙적 생활과 학점관리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결과 정원이는 목표와 할일이 뚜렷해 진 후 열심히 공부하였고 GPA도 SAT점수도 UC얼바인에 합격하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만들어내었고 무난히 UC 얼바인과 다른 몇개의 UC캠퍼스에 합격하였다. 가정의 형편에 도움이 되는 파이낸셜 에이드도 받아 부모와 정원은 매우 만족하고 기뻐하였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 무언지를 확실히 정리하여 선택과 집중을 바로하여 노력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여 목표를 달성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2010-07-17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유학원만 믿고 고교 2년 허송세월

▷ 케이스 광철이가 미국에 온 것은 9학년이었다. 유학 브로커의 소개로 교회와 연관된 단체가 스폰서하여 홈스테이를 통해 미중부의 한 공립고등학교에 도착하였다. 막상 유학을 할 때는 큰 희망을 품고 왔으나 실상 한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않은 광철이로서는 갑자기 친지도 없는 외국땅에 그 것도 미국인 가정에 홀로 떨어져서 하루하루가 막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치른 실력평가에서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도 모르는 채로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배정받은 과목들은 주로 ESL과목들이었으나 실제로 그 고등학교는 외국학생이 거의 없어서 광철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를 몰라 임시방편으로 광철이를 핸들하였다. 고국에 있는 부모는 이런 사실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광철이도 무엇이 옳은 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1년을 지나고 나서 귀국한 광철이와 가족은 비로소 처음 유학브로커와 스폰서단체가 학생을 모집할 때에 약속한 사실들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스폰서단체를 계속 믿을 수 없어할 때에 유학브로커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이번에는 대도시의 사립학교로 광철이의 진로를 권유하게 되어 광철이는 다시 새로운 희망을 얻고 새학교로 들어간다. 확실히 학교가 좀 더 나았다. 사립학교이고 작은 학교에다가 교사들도 훨씬 친절하였고 광철이는 방치되었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였다. 홈스테이 가족도 지난번 가족보다는 교육수준도 높았고 식사시간에 대화도 걸어주는 등 좀 더 쾌적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다시 1년이 지나면서 광철이는 좋아하던 농구도 하고 영어도 많이 늘어 주변에서 무슨일이 돌아가는 지 알아듣게 되었다. 수업도 훨씬 수월해 졌다. 11학년을 앞두고 대학진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광철이는 카운슬러와의 미팅에서 자신과 카운슬어의 대화가 좀처럼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 평가 학교로 부터 받아든 광철이의 성적표를 보고 모든 일이 파악되었다. 9학년때의 시골공립학교에서는 거의 대학지원때 쓸 수 있는 과목들이 없었다. 영어가 되지 않았을 때이고 외국학생을 다룰 줄 몰랐던 학교는 부모나 책임있는 성인과의 절충없이 무려 절반이상을 ESL 자습과목에 배정했었고 수학은 Algebra 사회와 과학과목은 대학진학용 과목이 아닌 초보과목들을 배정했었던 것이다. 10학년에 들어간 사립학교에서도 광철이는 역시 부모나 책임있는 가디언이 없었던 관계로 광철이 쪽의 희망이 배제된 채 대학진학용 과목이라고 볼 수 없는 한마디로 고교졸업용 과목들을 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학교는 매년 졸업생의 절반이상이 졸업후 4년제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않는 학교로서 학교의 목표도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고 있는 학교였다. 광철이가 최근 느낀대로 학교측은 광철이를 부모의 무지와 업체의 무책임 그리고 학교의 무관심속에서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학교와 나눌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과 광철이의 지칠줄 모르는 의지는 남은 기간 인 11학년 12학년 모두 거의 모든 과목을 A를 받게 만들었다. 부족한 대학바운드 과목을 12학년에도 여러과목 학교측의 배려로 해결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기간에도 여름학기 1과목과 칼리지에서 1과목 그리고 틈틈이 SAT 시험공부까지 더하였다. 졸업때까지 AP과목은 12학년에 택한 단2개 뿐이었지만 12학년 1월까지 기적처럼 SAT를 1400점에서 1960점으로 올리고 Toefl 110점 SAT Math II 750 Chemistry 700 Korean 800 등을 갖추니 훨씬 지원팩캐지가 돋보였다. 광철이는 큰대학을 가기를 원하여 지원한 Miami대학 Michigan주립대학 Colorado 주립대학 Indiana 주립대학 Pennsylvania 주립대학 등에 합격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11학년 말 12학년 초 성적에 주력 SAT점수까지 높여 주립대 진학성공 광철이의 능력을 조사해 본 결과 본인과 부모가 느끼는 것 처럼 능력이 부족한 학생은 아니었고 영어도 이미 정규과목을 택할 정도까지 발전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11학년 2학기와 12학년 과목을 학교측과 절충하여 챌린징한 과목들로 택하고 대학측에서 광철이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학교측에서는 광철이측에서 책임있는 성인이 출현하자 유연하게 태도를 바꾸고 광철이를 대입과정 학과목들로 신속하게 변경하여 주게 되었다. 수학도 Algebra 2에서 Honors Algebra2 - Pre Calculus로 한단계 올리고 과학도 Honors Chemistry로 옮겼으며 2학기에 들어가서 연결할 수 없는 과목들은 교사와의 절충과 또한 여름학기에 수강기회가 있는 것은 택할 수 있게 조치해주었다. 그럴 수 없는 과목은 교장허락하에 Independent study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고안되었다. 문제는 그 동안 한번도 챌린징한 과목을 택한 적이 없는 광철이가 이 것들을 견뎌줄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다행히 그 동안 가졌던 좌절속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게 된 광철이는 전에 없이 밝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였고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튜터의 도움까지 동원하여 기어코 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겠다는 다짐이 섰다. 워낙 ESL등 하급과목이 많이 눈에 띄는 광철이의 영어실력을 인정받게 하기위해서 Toefl준비와 SAT reasoning test를 동시에 준비하도록 하였다.

2010-06-27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미 유학생활 3년만에 한국 명문대 진학

▷ 케이스 진호의 부모는 강남에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다. 젊어서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건물들을 관리하는 건물임대업으로 몇번의 부동산 가격상승등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이제는 직원들에게 일을 맞기고도 사업이 착착 굴러가 하루 두세시간만 할애해도 충분히 사업에는 지장이 없었다. 자연스레 부모는 진호남매의 교육에 거의 전념하다시피 해 오고 있었다. 진호는 부모를 잘 둔 덕에 이제 대학교육을 잘 받으면, 사업체를 물려받아 가업을 3대째 이어받으면 되는 셈이었다. 사실 우수명문대학 진학이 진호 삶에 꼭 필요한 일은 아닌 셈이다. 자신들의 교육에 크게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진호 남매는 그래도 명문대학을 졸업하여, 사업뿐 아니라 사회활동에도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떳떳한 사업가가 되기를 바랬다. 진호는 강남에 살고 있었지만, 부모들이 다른 강남의 부모들 처럼 진호를 학원으로 뺑뺑돌려가며 대입준비를 착착 시키는 편도 아니었다. 자연히 진호의 학교 석차는 명문대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친구들과는 격차가 있었다. 이러다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은 고사하고 대학진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생겼다. 진호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급격히 늘어난 대학전미국유학의 바람이 진호에게도 미쳤다. 미국으로 옮기면 좀 더 진호에게 적절한 교육의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가 진호는 착하고 모나지않은 성격과 그런대로 성실한 학생이었다. 부모가 시키면 하고, 학교에서도 교사들의 주문을 잘 따라하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머리가 좋다거나 이해력이 남다르거나 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우관계도 평범하고, 착하고 겁많은 학생이었다. 투지도 그리 세지 않았다. 어려서 부터 시킨 외국인 영어과외덕에 간단한 일상적인 영어회화는 하고 있었고, 외국인과의 접촉에 대한 내성도 있었고, 알아듣기도 어느 정도 하였다. 한1년여의 ESL도움만 있으면 미국고교생활을 해 낼 것 같았다. 튀지 않고 삐져나오지 않아 묻히기 일쑤인 진호는 한국의 치열한 경쟁구도에 적절치 않다고 보여졌고, 교육제도가 안정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성실성으로 차라리 학업에 어려움이 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진호와 잘 맞는 학교에서라면, 적절한 교과목들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괜찮은 미국대학으로의 진학에는 무리가 없어보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빠른 적응위해 가톨릭 사립고 선택 다행히 원하던 사립고등학교들에서 Admission을 받고 부모와 함께 들러볼 기회를 가진 진호는 그 중에서 한국인들이 사는 지역의 한국학생이 적으면서 국적이 다른 외국학생들이 있어서 ESL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있는 기독교계 사립학교를 선택하여 고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학교를 다니면서 첫해부터 진호는 매우 행복한 고교생활을 하였다. 함께 주변으로 이주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안정된 가정생활 속에서 한국에서와 다름없는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 학교생활은 100% 미국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래 숨어있던 끼가 학교 연극반에서 살아났으며 다인종이 함께 섞여있다보니 아시아인으로서의 특색이 진호의 캐릭터로 받아들여져 비록 단역들이었지만 꼭 필요한 역할들을 맡아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하였다. 이미 닦여있던 기초와 영어대화를 할 기회를 많이 얻어 진호의 영어는 날이 다르게 발전하였고 12학년이 될 때는 불편없이 대화를 할 뿐 아니라 SAT 에서도 600점대 후반을 받을 만큼 발전하였다. 학교생활에서 과목들은 무리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선택하였고 대입지원시까지 AP 5과목을 택해 GPA 3.4를 마크하였다. UC GPA 3.8과 SAT 2070점 학교에서의 연극반활동등을 가지고 진호는 무난히 UC Irvine에 Undecided Major로 합격하였고 이것과 그리고 Toefl iBT 110점으로 자신의 발전한 영어실력으로 영어특기자로서 글로벌 리더 특별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SKY중 한 곳으로 당당히 합격하였다. 한국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은 미국에서의 성실한 고교생활과 UC합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전한 영어실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을 일이다. 적절한 시기에 미국고교생활을 선택한 것이 진호에게는 일생일대의 성공적인 선택이되었다. 이로써 한국과 미국의 명문대학에 큰 기대가 없었고 가능성이 적었던 진호의 명문대입성은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2010-06-13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9학년에 의대진학 계획, 과학점수에 주력

▷ 케이스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중공업회사에서 용접일을 했던 애슐리의 아버지와 은행에 다니던 어머니는 가족 초청으로 동부에 이민와서 바닥에서부터 열심히 일하여 작은 청과물상을 인수했다. 성실과 근면으로 오직 열심히 일할 줄 밖에 모르시는 부모님들은 쉬는 날 없이 새벽에 나가면 저녁이 될 때까지 일하여 가게가 크게 발전시켰다. 싱싱한 청과물을 가져다가 잘 관리하며 정성을 쏟아부어 10년이 되자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알찬 사업체로 성장하였다. 직원들도 생겼고 수입도 탄탄해 졌고 부모는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다. 애슐리는 고지식하고 철두철미한 두 부모의 변함없이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몸소 배우게 되었다. 가톨릭 여고에 진학한 후에는 방과후에는 부모의 가게에 들렸다가 가게근처의 도서관을 가거나 태권도장을 다녔다. ▷ 평가 주말마다 한글학교에 다녀 한글과 한국말도 수준급이었다. 9학년에 모의SAT를 치러보니 CR:680 M:570 W:680으로 비교적 괜찮은 점수였다. 부모는 가까운 학원이 없어서 따로 SAT공부를 시키지 못하는데 요즘 한국으로 SAT공부를 시키러 보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이 많았으나 그러지 않고도 충분히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자기집처럼 드나들면서 집처럼 놀이터처럼 살다보니 많은 독서로 영어 어휘력도 좋았으며 조리있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 할 줄 알고 차분하고 예의바르며 총명한 에쉴리는 3년안에 스스로 충분히 점수를 올리리라 예견하였다. 이미 AP Euro AP Chem을 택하고 있었고 성적도 우수했다. 자신은 의사가 되어 부모들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적성검사결과 Academics에 대한 동기의식이 뚜렷했고 학문적인 자긍심도 컸다. 인간관계형 직업이 어울리게 지도력에도 많은 흥미와 관심이 있었다. 말도 조리있게 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리서치하는 것도 어울렸다. 정식으로 스패니쉬를 배우지 않았을 때 이미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과 대화를 터 기초적인 스패니쉬를 하고 있었다. ▷결과 애슐리의 고등학교도 비교적 학생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써주어서 과목별로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쳐 준 덕에 AP시험준비도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어 AP Euro AP Bio AP Chem AP US History AP Government AP Physics AP Calc BC AP Econ AP Spanish AP English 등 모두 10과목을 이수했고 11학년말까지 치른 5개의 AP에서 모두 5점을 받았다. SAT 시험에 관해서는 10학년과 11학년에 각각 5주씩의 SAT 워크샾에 참여하였고 매해 조금씩 향상되어 11학년에 이르러서는 PSAT 223점을 받았고 11학년말에 치른 SAT Reasoning Test는 CR:800 M:740 W:800 총2340 점을 기록하였다. Subject Test도 Chem:780 US History:780 Math:790 Literature:790등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ACT도 34점으로 비슷한 수준을 받았다. 학교에서의 성적도 Unweighted GPA 3.8로 학교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받았다. 교사들은 훌륭한 추천서를 써 주었다. 대입지원철에는 태권도 2단을 획득하였다. 학교에서는 Academic Decathlon Science Club에도 계속 참여하였다 스포츠로는 Soccer를 했다. 가장 재미있어 하던 Speech/Debate팀이 대회에 나가 2년연속 Forensics Finalist가 되기도 하였다. PSAT점수가 좋아서 National Merit Scholarship Finalist가 되었고 National Honor Society에 들어갔다. 부모가게에서 캐쉬어를 한 시간을 세어보니 수백시간이 되었고 도서관 봉사활동도 근 500여시간을 채워 기록을 세웠다. 에세이로는 어릴적 가게앞에서 초췌한 모습의 유기견을 데려다 보살폈던 이야기와 초등학교 선생님의 보살핌을 연결하여 자신의 꿈과 원하는 대학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연관지어 수려한 에세이를 써냈다. ED으로 써낸 앰허스트에서 Deferred 된 후에 Wellesley Swarthmore Vassar Barnard Bryn Mawr Bowdoin등 지원한 나머지 대학 모두에 합격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안정적 환경선호해 사립대 지원 태권도를 그만하겠다는 것을 말려서 최소한 주 1회는 가도록 하였고, 졸업까지 2단을 목표로 운동하기를 권했다. 어려서부터 제 집처럼 드나드는 가게 근처의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였고, 어짜피 갈 수 밖에 없는 도서관에서 봉사활동과 함께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학교에서는 원하는 학교 액티비티에 주저없이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SAT는 3개월에 한번씩 모의고사를 쳐서 점수변화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학과목은 그의 능력과 열심을 감안하여 가장 챌린징한 과목들로 4년간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외국어는 스패니쉬로 하기로 하였고, 영어가 강점이니 역사와 영어 쪽은 택할 수 있는 AP를 모두 택하기로 하였다. 의대진학을 강하게 원하므로, 과학쪽도 모두 AP과목을 택하도록 하였다. 하나뿐인 딸을 방학중 특별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외부로 내보내기를 원치않는 부모와 학생자신의 의사대로 방학때는 부모의 가게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음학기 예습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부모와 학생본인은 경쟁이 치열한 대학이나, 크기가 너무 큰 종합대학보다는 풍요로운 분위기에서 대학생활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의대진학에 성공하기를 원하므로, 리버럴 아츠 칼리지로의 진학을 권하였다.

2010-06-06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적성에 맞는 학과활동으로 대입성공

▷ 케이스 제니의 부모는 이민직후 자신의 사업체를 갖고자 하여 북가주의 작은 소도시의 가장 큰 백화점이 들어서 있는 몰내의 커피숍을 인수하여 정착하게 된다. 한인이 적은 곳이라서 한인마켓이 있는 대도시로 가끔 장을 보러가고 주일에는 한인교회를 가고 위성으로 한국드라마를 보지만 그 외에는 한인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제니가 어릴 때 이웃으로 이주한 외삼촌내 가정과 주변에서 사귄 몇몇 한인가정들은 그래서 제니에겐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가깝다. 제니는 학교가 끝나면 주로 집에 들려 간식을 하고 꼭 수영을 즐기고 부모의 가게에 와서 일손을 덜어주곤 하였다. 교회에서는 주로 아이들을 돌보거나 앞에 나서서 액티비티를 이끄는 편이었다. 9학년이 지나고 대학준비를 할 때가 되어 부모와 함께 자문을 구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 평가 10학년 초 제니를 만났을 때 제니는 500명이 넘는 큰 고등학교에서 100등 정도를 하고 있었다. 제니가 다니는 학교는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이지만 대개의 소도시 백인지역 명문이 그러하듯이 전반적으로는 대도시 명문에 비해 경쟁과 수준이 한두단계 떨어지고 있어서 상위권에 들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제니는 하나를 들어면 서넛을 알아듣는 학생이었다. 잘만 이끌면 학교내에서의 등수도 한껏 올릴 수 있을 학생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외향적이어서 학교내 특별활동들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SAT 모의고사는 1650점을 받았고 적성은 영향력과 리더쉽쪽이 두각을 보였다. 학구열보다는 대인관계 봉사활동 등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학교생활은 만족하고 있었으며 얼마전부터 시작한 플륫으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있었고 수영과 야외생활을 좋아하여 스윔팀이나 트랙에 들고자 하였다. 다부진 체격이지만 크지 않은 키와 통통한 신체적조건으로 보아 수영이나 트랙등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앞으로 뭘 해야 되는 지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수학 과학 쪽은 아닌 것 같고 역사 영어 쪽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성적표로만은 거의 대등해 보였다. ▷결과 리더쉽과 퍼블릭 서비스쪽에 중점을 두고 사회와 영어과목에서 앞서보라는 추천을 받고 제니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갖기시작하였다. 모의재판 클럽에 들어가면서 학업대한 열의도 높아갔다. 부모들의 말을 빌면 공부를 왜 해야되는 지를 깨달은 사람처럼 공부를 하여 이제껏 내심 걱정하던 마음을 바꾸게 되었으며 밤에는 어서 자라 그만 해라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고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플륫렛슨과 오케스트라연습이 없어지면서 그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에 봉사활동도 나가고 모의재판 팀멤버들과 잦은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제니가 학과외활동에서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의재판은 제니가 가장 좋아하는 액티비티가 되었고 제니학교팀은 카운티 챔피온 스테이트 파이날에서 2년연속 상위 순위를 받기도 하였다. 둘째해에는 제니는 백인남학생과 함께 캡틴이 되어 팀을 리드하게 되었다. 도서관 봉사활동은 꾸준히하여 매년250시간씩 졸업때까지 하게 되었고 시에서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것이 인연이되어 시장실 청소년자문위원회에 들어가 매달 시청에 가기도 하였고 로칼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었다. 추후 장학재단에 추천되어 청소년 리더상을 받아 수천불의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다. 또 학생회에서도 여러 직책을 거쳐 회장에 당선됐다. 성적도 UC GPA 4.3 Unweighted 3.9를 기록하였다. SAT점수는 최종적으로 Math:750점 Critical Reading: 710점 Writing: 690점을 기록하였고 SAT Subject는 Literature: 710점 US History: 750점 Math IIC: 760점등을 기록했다. 제니는 버클리 코넬 웰슬리 컬럼비아에 상당한 그랜트들을 받으면서 합격했다. 대도시에서 새로운 경험과 큰 시스템을 배우고자 원하던의 제니는 컬럼비아로 진학하였으며 법조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적성을 찾아 학과외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된 전형적인 성공케이스라고 하겠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10학년까지 전교 100등 성적 11학년말 4.3으로 컬럼비아 진학 제니는 문과성향이 이과성향에 비해 크게 앞선다는 판단을 내렸다. 학과목에 있어서는, 비록 수학, 과학성적이 아직까지는 좋았지만, 우선순위는 영어와 사회과목에 두기로 하고 과목선택을 하여 3년간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2년간 해온 스패니쉬와 병행하여 라틴을 선택하여 공부하기로 하였다. 액티비티도 영어, 사회, 인관관계, 리더쉽쪽으로 집중하기로 하고, 관심분야 활동을 착수토록 하였다. 관심과 열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오케스트라, 스포츠는 대신 중단하도록 하였다. 내심 관심이 많았지만 주저하던 모의재판 클럽에 조인하도록 하였고, 여름 활동도 같은 계통을 하기로 하였다. 봉사활동은 도서관에서 규칙적으로 주 5시간씩 하도록 하였다. 학교학생회에도 참여하여 직책을 맡아 활동하도록 하였다. SAT는 목표점수 2200까지 올리도록 주문을 했고, 학교성적도 관리하여 상위 5퍼센트까지 올리도록 하였다.

2010-05-23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대학의 꿈 찾으니 SAT 급상승효과

▷ 케이스 다이아나가 내 사무실을 찾은 것은 11학년 초였다. 첫 눈에 보기에 말이 없고 매우 얌전하고 예절이 바른 학생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이야기 하지 않는 과묵한 태도를 보아 자신의 일을 꽤나 잘 처리하고 있는 성숙한 학생이었다. 부모의 직업으로 인해 중산층 백인지역에서만 계속 살아 온 다이아나는 한국어를 이해하지만 영어가 훨씬 편하였기에 줄 곳 영어로 이야기 하였다. 얘기를 나눠보니 얼굴에 밝은 표정이 별로 없고 자신의 얘기를 선뜻 꺼내기를 꺼려하였다. 부모는 한인들이 없는 곳에서 자수성가한 분들로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서구적인 보편성과 합리성에 입각한 사고를 하시는 분들이지만 가치에 있어서는 매우 동양적이고 보수적인 인생관을 고수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대학에서 공부할 전공이나 학교에 대해 아직 생각해보지 못하였다고 하는 말을 학교에서 톱 3에 속하는 우수한 학생에게 듣게 되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평가 대개 학교에서 학과성적으로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목표가 나름대로 뚜렷한 것이 자연스럽다. 뚜렷한 목표감과 그에 따르는 뛰어난 동기의식 없이 경쟁에서 줄 곳 이기기 어려운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나는 미래에 대한 꿈을 동기로 하여 자신의 수월성을 발전해오기 보다는 전통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성실과 책임감 그리고 가족과 자신 스스로의 높은 기대와 표준에 맞추려는 강한 의지로 톱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고 보였다. 어떻게보면 기계적인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였다. 부모와의 인터뷰에서도 역시 높은 표준과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세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뤘다. 대개 이런 여정을 걷는 학생들은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어서 벗어나야 겠다는 도피의 마음이 강할 수 있다. 적성검사를 통해 다시한 번 특이점을 발견한다.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다이아나는 흥미없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그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심이 없다는 식의 대답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런 모든 분야에서도 자신은 모두 해낼 수 있다는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들 또한 잘 할 수 있다거나 아주 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들이 아니라 남들 만큼 평균정도로 잘 할 수 있다는 대답이 주종이었다. 전체적으로 자긍심이 높지 않고 행복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던지는 대답들이다. 그러나 유독 창조적분야에서만은 능력도 관심도 많다는 대답을 하였다. 대개 이렇게 창조성에 편중된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창조성과 거리가 먼 아카데믹한 부분에서는 학생마다 관심과 성취가 다양하게 표출되더라도 음악이나 미술등 예술계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기 일쑤인데 놀랄만한 일은 다이아나의 성적표의 과목들에는 이런 과목들이 없었다. 점차로 이해하게 된 바는 부모들은 다이아나의 예술적 재능을 어려서부터 보아왔지만 전혀 키워주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막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 미칠듯이 댄스를 하고싶어 하던 것도 막았고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것도 키워주지 않았다. 체조를 하고 싶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역량을 아카데믹스에 쏟아 전통적으로 인정을 받는 분야로 공부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다이아나는 학교성적에서는 탑을 이루고 있었지만 실제로 아카데믹스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다는 것이 다른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SAT점수도 학교 GPA에 전연 걸맞지 않게 터무니 없이 낮은 1500점 대였고 SAT과목시험들도 500점~600점대 였다. 이는 다니는 학교의 전반적인 수준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뜻을 두지 않는 공부의 결과 일수도 있겠고 애초부터 다이아나의 적성이 보여주는 한계일 수도 있었다. 학과외활동은 주로 학교내 클럽들로 우수학생들이 하는 활동은 모두 하였다. ▷결과 늦게 해금된 예능과목에서 다이아나가 굉장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술공부와 드라마클래스는 다이아나의 마음을 풀어주었고 얼굴에는 밝고 환한 미소가 담기게 되었다. 쾌활한 성격이 살아나고 말이 많아졌고 부모는 어릴적 본래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며 가슴을 쓸었다. 12월까지 주말을 바쳐서 공부하고 마지막 치른 SAT에서 2190점을 기록하였다. 자신의 적성과 꿈을 표현한 훌륭한 에세이를 쓰며 지원한 여러대학중에 버클리 UCLA 다트머스 프린스턴 미들베리에 합격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상위권 성적에도 미래계획 전무 알고보니 자신의 꿈 억제된 결과 한 학년 600여명에 육박하는 학교에서 톱을 유지하는 학생으로서 그토록 낮은 SAT점수는 낮은 AP점수들과 함께 다이아나를 저평가 받게 할 것이 분명했다. 우수사립대에는 지원할 수 없을 것이고, GPA를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UC에서도 크게 불이익을 받을 것이어서, SAT점수 들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급하게 11학년말 AP준비와 방학중 SAT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SAT과목시험들도 수개월 준비한 후에 치르토록 하였다. 또한 적성이 지시하는 관심분야인, 무용은 이미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원하는 미술공부는 곧 바로 시작하게 하였고, 12학년에는 학교 드라마과목을 꼭 택하도록 하였다. 대학지원은 부모가 원하는 우수대학들의 인문계전공들 중에서 택하되, 예능분야의 공부를 학부에서 해보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창조성이 살 수 있는 전공들로 대학에서 바꾸라고 조언하였다.

2010-05-16

[Dr.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흔들리는 성적 부모의 지원으로 극복

▷ 케이스 에릭은 회사의 어카운팅부서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와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사이의 장남이다.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과 안정된 생활 속에서 무리없이 자란 에릭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별 탈없이 잘 보내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착하고 소극적인 에릭은 자신의 위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냈다. 작고 차분한 에릭은 외향적이지도 않고 리더십이나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스타같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의견이 있고 룰을 잘 지키며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할 일을 하는 학생이다. 바운더리를 잘 알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학생이어서 부모의 근심을 사거나 스스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없었다. 학과목에서 뛰어나게 잘 하는 과목이 있다거나 하지는 아니었고 머리가 비상하거나 이해가 출중하지도 않지만 성실히 수업에 참여하고 과제를 열심히 해서 제출하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무난하게 좋은 성적들을 받아내곤 했다. 10학년 1학기가 끝날때 쯤 중간성적이 떨어져 근심하게 된 부모는 경험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는 에릭의 대학진학을 염려하여 상담을 요청한다. ▷평가 성적하락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학진학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보기 위해 부모와 함께 방문한 에릭의 성적은 9학년까지 크게 뒤떨어진 과목없이 아너트랙으로 A들을 받았고 어려워지기 시작한 10학년과목들에서 첫 학기에 고전하고 있었지만 남은 시간 동안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에릭의 학과목은 일반 고등학교의 기본적인 트랙에서 벋어나지 않으면서 각 과목에서 아너과목을 택하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서 한마디로 고교 모델 커리큘럼을 정상적이고 성공적으로 이수해 나가고 있었다. 성정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큰 학교에서도 작은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해 낼 수 있는 학생으로 보였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 온 보이스카웃이 추구하는 책임감있는 태도와 차분하고 규칙성있는 생활태도에 딱 맞았다. 주변을 잘 관찰하고 상황판단을 잘 해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일을 잘 파악해 차분이 해결할 수 있고 개인으로서나 팀의 팀원으로서나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킬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워 온 피아노를 꾸준히 해 오고 있었고 햇수에 따라 받아내는 레벨테스트를 무난히 패스해오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마칭밴드에서 호른을 불었고 학생회와 저널리즘 키클럽 아너 소사이어티등에 속해 활동하고 있었다. ▷결과 10학년 첫학기 에릭은 부모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과제와 시험공부에 도움을 주었고 가족간의 팀워크로 무난히 첫학기 성적을 복구하기에 이른다. 부모와 끈끈한 팀을 이룬 에릭은 필요할 때마다 부모에게 또는 개인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스템으로 성적관리를 잘 해 나갔다. 10학년 초에 경험한 성적관리에 대한 어려움은 필요과목에 대한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후 고교 졸업때까지 자신이 택하는 모든 과목을 아무 사전 지식없이 학교에 가서 처음 접하는 일이 없어졌고 자연히 성적은 안정되고 이후로 아무런 문제가 없이 우등졸업을 하게 되었다. 지속해 온 보이스카웃은 이글스카웃에 도달하게 되었고 저널리즘에서는 편집장 피아노도 레벨10 키클럽과 아너소사이어티에서도 리더십포지션을 획득하였다. SAT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오르다가 결국 2290점을 받았다. 8개의 AP과목과 5개의 AP과목에서 4점 5점들을 받았고 SAT Subject Test 에서도 Math II 800과 Literature 780를 비롯하여 730점 이상씩을 받았다. 희망전공으로 여러가지가 에릭에게 떠올랐고 그 중에서 의학과 비즈니스에 큰 관심을 보였다. 11학년 중반즈음에 점점 굳어지는 비즈니스의 어카운팅 방향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도록 여름방학에 비즈니스관련 수업을 대학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하였고 이후 에릭은 비즈니스를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정하였다. 여러개의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하였으며 멀리 보내기를 원치 않는 부모의 뜻에 따라 USC로 진학하여 Accounting을 전공하게 되었고 추후 Master를 획득한 후 월스트릿의 증권회사로 진출하였다 ■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중단하려던 보이스카웃 지속하도록 어려운 과목 선행학습 습관화 지도 어려워진 과목들의 경우 교사들의 강의가 에릭이 커리큘럼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 과목의 경우에는 에릭이 필요한 도움을 알아내어 해결하는 법을 길러야 하는 극복해야 하는 고교생활의 첫번째 관문에 불과했다. 다행히 부모가 에릭의 학과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와 협조하여 뒤쳐지는 과목을 따라잡을 수 있을 지 노력해 보도록 조치하였다. 추후로는 부족한 부분이 생긴 후에 이를 따라잡으며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대신, 약점부분을 미리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단원씩 예습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조치하였다. 이를 위해 어려움을 겪었던 Honors Algebra 2 와 Honors Chemistry는 개인교습선생님을 섭외하여 주 1회씩 도움을 받도록 하였다. SAT 모의고사를 치러보니 CR W Math 골고루 비슷한 성적을 받으며 1800점 대를 기록하였다. 에릭의 경우 빠르고 급격한 점수향상을 보이기 보다는 꾸준하고 차근차근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로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주 2~3시간씩의 꾸준한 학습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학과외활동에 있어서는, 학과공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단하려하던 보이스카웃을 지속하도록 하였고, 다른 모든 학교내의 학과외활동도 지속하도록 하였다. 하고 싶은 전공과목이나 가고 싶은 대학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 부모의 희망, 자기수준에 맡는 우수대학들에 대한 리서치,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정리할 기회를 꾸준히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2010-05-02

[Dr. 양과 함게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치밀한 로드맵으로 ESL서 명문대로

▷ 케이스 캘텍가서 공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철수는 갓 미국에 들어온 학생답게 어휘와 용법등이 모두 한국식 사고에 기초를 둔 콩글리쉬(Broken English) 수준이었다. 영어실력이 바로 영향을 미치는 역사계열 외국어계열 영어계열 과목들에서는 경쟁상대인 다른 우수학생들보다는 한 두 단계 떨어지고 있었다. 세계최고의 공과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강점으로 가져야만 하는 수학계열과 과학계열 과목에서도 언어장벽으로 갈길이 멀어보였다. 학과외활동에 있어서도 특별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안되면 되게 하겠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앞으로 남은3년여의 고등학교 기간을 통해 기적같은 일을 해 내겠다는 투지만은 강해 보였다. 부모나 학생자신은 미국교육시스템이 요구하는 마라톤식 또는 장인식 개념과는 거리가 먼 전투식 속전속결식 각개격파식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평가 철수는 갓 미국에 들어온 학생으로서 자신의 상황이나 대입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할 아무런 경험과 데이타가 없었다. 워낙 좁은 문의 명문대학을 진학목표로 삼기에는 아직 너무도 갖춘 것이 없었기에 그 꿈이 사실 무모해보이기 까지 했다. 9학년 들어가 Honors Chemistry 와 Algebra 2는 A를 받고 있었으나 영어는 ESL클래스에 들어가 있고 외국어 역사는 택하지 않고 있었다. SAT 모의고사를 치러보니 Critical Reading 450 Writing 480 Math 650로 1580점 이었다. 대화를 통해 철수가 상황판단력과 이해력이 뛰어나고 영어도 에세이 샘플을 보니 비록 콩글리쉬이기는 해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결과 철수는 9학년을 마치고 명문대 고등학생을 위한 서머코스에 참여하여 나름대로 대학진학에 열의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인 비한인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고 부대끼면서 말하기 듣기가 부쩍 발전하였고 미국식 사고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목표도 조금 더 구체화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0학년에는 Science Olympiad Team에 합류하게 되었고 스테이트 챔피언쉽에서2등을 하는 행운도 얻었다. 10학년동안 철수는 학과목에 있어서 조금은 무리한 계획이었는 데도 미리 짜여진 로드맵에 근접하는 성과들을 냈다. AP Chemistry 와 AP Euro History를 위해 거의 잠을 줄이는 강행군을 했고 어려운 고비는 Tutor의 도움과 교사와의 컨퍼런스를 통해 해결해 나가며 성적은 B를 받고 AP테스트에서는 5점씩을 받아냈다. 한단계올리기를 성취하고 얻은 자신감은 추후 철수가 로드맵의 다음 단계들을 하나씩 해결해 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정기적으로 SAT모의고사를 치러 시간날때 마다 해결하여 준비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받은 SAT점수는 2260점이었고 National Merit Scholarship Finalist도 되었다. 11학년과 12학년여름에도 알아주는 과학계통 서머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결국 계획했던 모든 과목들을 성공적으로 이수하였고 졸업까지는 AP 7개 과목을 이수할 수 있었다. SAT Chemistry Physics Biology를 모두 800점을 받았고 UC GPA 4.2를 기록하였다. 아쉽게도 Caltech 조기지원에는 Deferred되었고 MIT에 Waitlisted 되었으나 지원한 다른 모든 대학들(UC Berkeley UCLA USC Duke Rice Carnegie Mellon Northwestern)등에는 합격과 함께 많은 그랜트들을 포함한 훌륭한 학자금 팩키지들을 받아내었다. 철수는 자신의 목표인 공학자가 되기 위한 준비된 학생으로 이미 충분히 성공했음을 깨닫고 부모와 함께 무척이나 만족해 했다. 오직 소수의 학생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어려운 로드맵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던 확고한 목표감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부모의 뒷받침 덕이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학년마다 서머캠프 참여 큰 효과 AP 집중 공략으로 발전 가능성 증명 철수의 3년간의 마라톤 대학진학코스를 성공하려면, 몇 개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목표와 동기 그리고 투지의 상태에 걸맞는 로드맵을 그린다. 둘째, 문제 발생시에 신속한 개입과 빠른 해결방법 강구를 위해, 다른 케이스보다 좀 더 자주, 좀 더 유용한 데이타를 수집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셋째, 로드맵을 재조정할 만큼의 상황변화시에 유연하게 옮겨탈 수 있도록 제 2, 제 3의 로드맵을 함께 그린다. 이에 따라 처음 과목별 계획을 수립한 것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영어는 9학년을 ESL탈출 단계로 잡고 ESL탈출을 위한 Test준비에 집중, 10학년에는 첫정규과목인 만큼 안전하게 성적관리를 하는 단계, 11학년은 SAT준비를 비롯하여 Honor레벨 과목의 몰입단계, 12학년에는 AP과목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외국어는 10학년부터 12학년까지 3년을 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 더 하기로 하였다. 과학은 Chemistry, Biology, Physics 세 과목을 모두 AP과목을 공략하기로 하고, 9학년에 들은 Chemistry에 이어 10학년에는 AP Chemistry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이후 이 과목의 성적추이를 보아 Physics와 Biology 순으로 하면서 조절하기로 하였다. 10학년을 앞 둔 여름은 AP Euro History, Spanish 1, AP Chemistry 등 가을학기 예습을 깊이있게 예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9학년 여름, 10학년 여름, 11학년 여름의 세번의 여름을 연구활동이나, 대학과목 수강등을 통하여 이공계 학생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보일 수 있도록 활용하기로 하고, 남는 기간은 예습과 SAT 점수향상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첫 여름에 동부의C대학에서 공학기초와 분자생물학 기초 중 택일하여 이수키로 하였다. 이후의 모든 일정과 계획은 철수의 학업성적변화에 따라 신속히 변경, 보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근접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기로 하였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개인학습습관을 새로 바꾸기로 하였다. 문제해결식 공부법에서 철저히 문제예방식 공부법을 채용하도록 하였고, 선행학습으로 이를 해결 하도록 하였다.

2010-04-11

[Dr. 양과 함게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공립학교 불행 딛고 소규모학교로 전학

▷ 케이스 데니스는 작은 기독교사립학교를 다녔다. 주변의 초등학교중에서 기독교교육도 시켜주고 클래스사이즈도 작고 개인의 발전에 중점을 두는 학교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학교를 보내면서 데니스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받고 공부도 잘해주어 부모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데니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친구들은 같은 계열의 중학교로 진학하였지만 데니스는 집주변의 공립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무래도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좋은 학군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여야 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킨더가든에서 6학년까지 채 100명 남짓하던 학교에서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거의 3000명 가까이 되는 중.고등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큰 학교에 가게 되어 친구들이 많아질거라면서 좋아하던 데니스는 일종의 컬쳐샥을 맡는다. 이전에는 경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항상 탑을 하고 칭찬만 듣던 데니스는 큰 물에서는 자신이 그리 잘 하기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목들도 이미 선행수업을 하여 어려운 과목을 듣는 친구들도 있었고 선생님의 칭찬도 받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낙심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친구 사귀는 방법과는 다른 방식의 인간관계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귀고 싶은 친구들이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예전에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다른 모습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대로 적응하리라 믿던 데니스는 PE 체육복을 안가져 왔다거나 숙제를 제출하지 않고 지각을 많이 한다는 연락들이 심심치 않게 학교에서 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던 데니스였기에 부모들은 많은 실망으로 꾸중을 하고 벌을 주기 시작했다. 생활이 그렇다보니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고 부모들이 조바심을 내던 중 학교에서 정학통보를 하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고 만다. 데니스가 학교화장실에서 흡연을 하였다는 것이다.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데니스는 초등학교때의 행복했던 나날과는 전혀 다른 사춘기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 데니스는 부모와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무언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고. 집에서는 게임만 하고 늦게 까지 자지 않고 학교보내기 위해 깨우는 것이 힘들었다. 숙제 챙기느라 엄마와 전쟁을 하여야 하고 방과후 픽업을 가면 늦게까지 엄마를 기다리게 하고 금요일이면 친구집에 갔다오겠다고 성화였다. 이러다가 대학을 갈 수 있을 지가 걱정이었다. ▷평가 데니스와 대화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이미 9학년초입에 들어서 몸은 많이 컸으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하게 방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외롭고도 어려운 투쟁이 데니스 안에서 복잡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새로운 환경 부딫치는 가치관 그리고 외로움을 이기고 친구들(peer)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사춘기 청소년의 외로운 고투가 보였다. 학교성적의 저하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학칙과 질서를 어겨서라도 그룹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외로움과 속상함을 푸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데니스는 현 상황을 스스로 극복할 능력도 그를 도울 도움의 손길도 다니는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적도 많이 떨어지고 공부에 대한 동기도 없어져서 마라톤선수로 치면 중반을 지나 그로기 상태로 넘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형공립고등학교에서는 이제 데니스는 키워야 할 학생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문제인 셈이었다. 친구들도 이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만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려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결과 데니스를 전학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신이 이 학교로 들어와서 친구사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다시 자기를 같은 고통을 겪게 할 것이냐고 반항했다. 우여곡절 끝에 데니스는 집에서 30분 떨어진 지역의 한 교회학교로 전학했다. 부모도 데니스를 위해 이사도 결심하여 9학년 봄부터 데니스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한 학년 30-40명의 작은 교회학교였다. 처음 데니스는 학교와 학생 교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반항도 당분간 지속되었으나 데니스의 사정을 아는 학교측에서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고 가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어렵지 않게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교사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곧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학년말 학교에서 단체로 요세미티캠프를 다녀오면서 데니스는 이제 열심히 하기로 했다는 선언을 하여 부모를 기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데니스는 학교가기를 싫어할 이유도 친구를 사귀기 위해 학칙을 어길 필요도 없었다. 10학년이 되면서 언제 그랬느냐 싶게 행복하고 우수한 학생으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농구팀에 들어 작은 디비젼에서 게임도 하러다니고 드라마도 열심히 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 AP과목도 몇 없었지만 GPA 3.8과 SAT 2100점으로 UC San Diego로 진학하였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충돌에 따른 불만으로 숙제·준비물·지각 지적 잇달아 무엇보다도 데니스 자신이 현재 행복하기만 하다면 정신을 차릴 여력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데니스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다니는 학교에는 없었다. 학교가 데니스를 위해 신경을 써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환경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대개 부모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이것 저것찾아 다하게 되지만,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학생의 귀중한 시간과 부모들의 아쉬운 노력만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환경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깊은 고심끝에 초반에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학생에게는 시간과 고통을 덜 수 있게 된다. 데니스를 작은 기독교사립학교로 전학하기를 강권하였다.

2010-04-04

[Dr. 양과 함께하는 대입전략 어드바이스] 11학년 2학기 전학 결과 UCLA진학

▷ 케이스 혜리는 어려서부터 우수한 학생이었다. 활달한 성격과 튼튼한 체력으로 친구들을 리드하였고 반장을 하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설립한 미국현지법인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시면서 혜리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초등학교 후반을 보낸다. 생각보다 쉽게 적응한 혜리는 줄 곳 좋은 성적을 받았고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지냈다. 회사가 시작한 사업들도 성공적이어서 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게 되고 혜리의 중학교 졸업과 함께 인근에서 가장 우수한 학군의 고등학교 인근에 새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게 된다. 혜리가 다니게 된 고등학교는 주내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중에 하나며 미 전국에서도 열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이름 난 우수 공립고교 이다. AP과목개설 숫자로나 주립대 진학률 등은 주 평균의 두세배가 되는 학교다. 그런데 입학 후 문제가 생겼다. 학교가 어렵다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숙제와 시험준비로 늘어난 공부량에 기특하게만 생각하였는데 이제껏 행복하던 혜리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거나 헤어진 친구들이 그립다면서 주말이면 옛친구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였다. 부모들도 학부모중에 아는 사람도 없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학부모회에 나가도 이전학교의 학부모들과는 컬쳐가 달라 사람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세달이 지나면서 곧 적응이 되겠지 기대하였으나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되면서 그 동안 잘 해 오던 혜리가 예전보다 성적이 시원치 않아진 것이다. 그동안 한번도 A를 놓쳐본 적이 없었던 혜리는 B도 여럿 받아오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부모는 혜리가 새학교 새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를 좋아하고 수학을 잘하면서 다음학기 또 다음학기 열심히 성적관리에 주력하였다. 아너트랙을 숨가쁘게 좇아가던 혜리는 10학년에도 가까스로 어려워하던 AP US History에서 B를 맞고 Chemistry에서도 B를 맞아 그런대로 잘해주었다. 3개의 AP과목을 야심차게 택하며 시작한 11학년을 맞은 후 혜리의 생활은 곤두박질 하였다. 첫학기말이 되어 혜리는 D와 C와 B와 A를 골고루 포함한 성적을 받고 절망하게 되었다. ▷ 평가 그런대로 잘 할 줄 알았던 과학과목에 안타깝게도 가장 어렵다는 교사 클래스에 배정되고 혜리가 약한 역사과목도 과제와 시험이 너무 어려웠고 그리고 새로 사귄 두 친구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혜리의 첫 학기는 악재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밤을 새는 일이 연이었고 숙제에서 모두 A를 받다가도 시험에 가서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기 일 수 였었다. 이제까지 자기가 해오던 공부방식이 통하지 않는 클래스를 만나 고민을 나누어줄 친구 함께 공부할 교우없이 혜리는 당혹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고 이런 혜리의 어려움을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는 교사도 없었다. 떨어지는 성적을 보고도 학교측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회동을 요청하지도 않고 걱정과 격려의 이야기 한마디 없었다니 최우수학교라는 허울속에 여린 학생들을 이끌어줄 진정한 교육은 없었던 셈이다. 11학년 첫학기에 얻은 D와 C는 그 동안의 대입준비과정에서 성공적이었던 혜리의 대입여정에 먹구름을 짇게 드리우게 되었다. 성적도 많이 깎아먹었지만 D와 C를 버젓이 성적표에 두고는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은 물건너 간 셈이다. 이제로부터라도 변화가 생겨 둘째학기 성적을 정상화하고 12학년을 잘 마무리 한다면 아쉬운 대로 대학진학을 하겠으나 문제는 혜리의 마음상태였다. 도저히 자신의 성적을 용납할 수 없을 뿐아니라 남은 학기에 어떤 변화로 자신이 재기할 수 있을 지 전연 자신이 서지 않았다. 혜리의 성격과 공부하는 스타일은 교우관계가 부재하고 경쟁이 심한 학교와 맞지 않는 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과 혜리네는 고민끝에 이전에 살던 지역의 고등학교를 선정하여 1주일 안에 아파트를 계약하고 긴급히 이사할 수 있었다. 옮긴 학교는 지난번 학교에서 보다 훨씬 공부하기가 수월하여 지난학기 과목들과 같은 과목들을 택할 수 있었다. 교사들도 훨씬 친절하였고 진도가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여러모로 배려를 해주었다. 예전의 친구들도 만나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침 좋아하는 저널리즘 클래스에서는 새 친구들도 여럿 사귀게 되었다. 옮긴지 얼마되지 않아 혜리는 놀라울정도로 회복되었다. 학교가는 것이 행복하고 성적도 잘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부모들도 마음을 비우고 혜리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하였고 혜리는 새학교에서 2학기 성적을 모두 A로 회복하는 것으로 화답을 하였다. D맞았던 과목을 위시해 두개의 AP시험을 치러 4점과 5점을 받을 수 있었다. 추후 D맞은 과목은 재수강으로 A로 바꾸었다. 12학년에서도 여러개의 우수과목을 택하여 훌륭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덕분에 점차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고 자신의 어려웠던 고교시절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훌륭하게 써냈다. 이런 어려움을 겪었어도 혜리는 AP 7과목 UC GPA 3.9 SAT 2280 SAT Subject Test 4과목 평균 750을 기록하고 자신이 꿈꾸던 UCLA로 진학하였다. 과감한 전학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치열한 분위기 '명문고교' 과감히 벗어나 자신감 회복 혜리를 과감히 가능한 빨리 전학하기를 처방하였다. 학교선택의 우선순위는 첫째 경쟁이 덜하고, 둘째 교우관계가 부드러운 학교라 하며, 빠른 시간내에 정착할 수 있어야 하였다. 11학년중이어서 소모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학후 학과목 선택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는 첫째, 성적관리가 될 과목, 둘째, 그러면서도 가능한 이전과목들보다 너무 단계가 낮지 않은 과목들로 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11학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전에 받은 D를 여름학기나 12학년 때 재수강하기로 하였다. 만일 정착이 빠르고 성공적일 경우, 지난학기 D맞은 과목의 AP시험 준비가 가능하다면 5월에 AP시험을 치르기로 하였다. 학교선정 등은 11학년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아 하기로 하고, 혜리의 성격과 공부스타일에 맞는 대학으로 진학하여 대학생활에서도 이전과 같은 어려움이 있지않도록 하기로 하였다. 양민 원장 (US EduCon) △(213)738-0744

201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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