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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새해 아침에 여는 담론

우리는 복에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들다며 한숨을 쉬고 불평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미국 독자들 가슴을 뒤흔들었던 감동의 책이라든가, 전세계 독자들 인생을 바꿔 놓은 위대한 책들을 보면 별 게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얘기들이 쓰여 있을 뿐이다. 이런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것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아닐까? 행여 희망으로 가는, 행복으로 가는, 빛으로 가는 가느다란 길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목말라 있다는 설명이 되리라. 이른바 학자들이 우리 손에 쥐어주는 행복 철학이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시간이며, 그것을 최선으로 가지는 것이 가장 잘 살고 행복한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럼 이 귀중한 선물인 시간을 잘 사용하는 방법은? 그것도 어렵지 않다. 첫째, 현재 속에 살기다. 지금 바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다.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두는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고통이란 현재 상태와 우리가 바라는 상태의 차이일 뿐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해가므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집중하다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에서 배우자.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바란다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돌아보라. 그것에서 소중한 것을 배우자. 지금부터는 다르게 행동하자. 오늘을 살면서 불행하거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나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와는 다르게 살 것을 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미래를 계획하기다.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멋진 미래를 마음 속에 그려라.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계획을 세우고 지금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것은 계획이 되어있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공은 나에게 맞지 않는 어떤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행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주위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의 내용이 우리에게는 새로울 게 없다. 우리는 수 천년 역사 속에서 예수님 말씀을 비롯, 공자·맹자의 말씀, 석가의 말씀을 들었다. 채근담, 삼국지도 읽었고, 인간의 삶이 부딪힌 모든 국면을 담은 거대한 창고 같은 포송룡의 요재지이도 읽었다. 법정의 무소유의 의미도 알고 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인간들이 이제 불행을 씻어보려고 찾아 헤매는 것들이 동양철학 속에는 다 들어있었던 셈이다. 동양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는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수 천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떠드는 책들이 다 알고 있는 얘기 한마디로도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인간이다. 새해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것이 최선이다. 김령 / 시인·화가

2018-01-05

[김령의 퓨전에세이 698] 야만과 문명의 공존

2주째 캘리포니아가 산불로 타고 있다. “매 3개월마다 한반도의 절반가량이 사막화되고 있습니다. 남극의 빙산이 녹아 수위가 높아지며 우리들의 생활터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원시림 아마존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TV를 켜보면 본 프로가 시작되기 전에 더럭 겁이 나게 하는 이런 나레이션이 나오던 때가 있었다. 마치 처절한 한편의 서사시처럼. 캐나다 빅토리아 평원도 300년 후면 얼음이 다 녹아 지구위에서 빙원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시베리아의 광대한 영구 동토도 녹을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영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평균기온 섭씨 1.5도가 올라가면 시베리아가 녹아 생긴 이산화탄소가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대량 배출할 것이라 한다. 2005년 런던, 상해, 이스탄불 등 세계 66개 대도시 사람들이 모인 세계환경의 날 회의에서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스왈즈네거가 미국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은 캘리포니아이지만 온실가스를 5년 안에 2000년 수준으로 낮추고 2050년까지는 1990년보다 80%를 낮추리라고 했다. 그 후 미국은 풍력태양광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 반면 중국, 인도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에스키모의 후손 리파 파트시우락이라는 남자가 30년에 걸친 도시생활을 청산, 가족들과 함께 북극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에게 얼음캠프적응훈련을 시켰다. 1년 후 가족회의를 열었을 때 모두 북극으로 이주하는데 찬성이었다. “인간은 지연으로부터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쌍무지개를 보았다. 어릴 때 ‘학원’지에서 읽었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란 글이 떠올랐다. 그러나 쌍무지개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맥도날드 마크처럼 보이는 쌍무지개는 꼭 나를 위해 뜬 것 같았다. 이제 서울에선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한다. 1995년 10월5일 오후 3시55분부터 8분 동안 뜬 무지개가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대기 중에 물방울이 태양광선을 받아 굴절되는 현상이 무지개인데 대기가 혼탁해서 더는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지독한 스모그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를 생각하면 여기 앉아서도 괜히 기침이 나올 것 같다. 사라져가는 것, 죽어가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닌 이 시대의 불행은 지구 전체가 이렇게 앓고 있는 것 아닐까. 고비사막 한 가운데 기적처럼 놓여있는 ‘초승달 호수’도 말라가고 있단다. 사해가 정말 사해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이 공동으로 운하를 만들고 홍해의 물을 끌어와 고갈을 막으려고 하지만 그 효과는 고작 20~30년이라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2090년의 오래된 비망록’이란 글을 보면 한마디로 절망스럽다. “매달 호흡기에 쓰는 공기에 대한 뇌물상납금을 내야 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말이다. 세상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문명이라는 흉악범이 한 생물을 멸종시키는 연쇄파괴 끝에 에코의 예상처럼 된다면 파트시우락처럼 문명의 반대 길로 가는 게 낫겠다. 범죄소굴이 된 문명도시, 인심은 석기시대보다 더 야만인 오늘, 우리는 이제 ‘문명과 야만’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곳 아닐까?

2017-12-22

[김령의 퓨전에세이] 야만과 문명의 공존

2주째 캘리포니아가 산불로 타고 있다. “매 3개월마다 한반도의 절반가량이 사막화되고 있습니다. 남극의 빙산이 녹아 수위가 높아지며 우리들의 생활터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원시림 아마존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TV를 켜보면 본 프로가 시작되기 전에 더럭 겁이 나게 하는 이런 나레이션이 나오던 때가 있었다. 마치 처절한 한편의 서사시처럼. 캐나다 빅토리아 평원도 300년 후면 얼음이 다 녹아 지구위에서 빙원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시베리아의 광대한 영구 동토도 녹을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영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평균기온 섭씨 1.5도가 올라가면 시베리아가 녹아 생긴 이산화탄소가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대량 배출할 것이라 한다. 2005년 런던, 상해, 이스탄불 등 세계 66개 대도시 사람들이 모인 세계환경의 날 회의에서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스왈즈네거가 미국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은 캘리포니아이지만 온실가스를 5년 안에 2000년 수준으로 낮추고 2050년까지는 1990년보다 80%를 낮추리라고 했다. 그 후 미국은 풍력태양광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 반면 중국, 인도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에스키모의 후손 리파 파트시우락이라는 남자가 30년에 걸친 도시생활을 청산, 가족들과 함께 북극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에게 얼음캠프적응훈련을 시켰다. 1년 후 가족회의를 열었을 때 모두 북극으로 이주하는데 찬성이었다. “인간은 지연으로부터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쌍무지개를 보았다. 어릴 때 ‘학원’지에서 읽었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란 글이 떠올랐다. 그러나 쌍무지개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맥도날드 마크처럼 보이는 쌍무지개는 꼭 나를 위해 뜬 것 같았다. 이제 서울에선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한다. 1995년 10월5일 오후 3시55분부터 8분 동안 뜬 무지개가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대기 중에 물방울이 태양광선을 받아 굴절되는 현상이 무지개인데 대기가 혼탁해서 더는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지독한 스모그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를 생각하면 여기 앉아서도 괜히 기침이 나올 것 같다. 사라져가는 것, 죽어가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닌 이 시대의 불행은 지구 전체가 이렇게 앓고 있는 것 아닐까. 고비사막 한 가운데 기적처럼 놓여있는 ‘초승달 호수’도 말라가고 있단다. 사해가 정말 사해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이 공동으로 운하를 만들고 홍해의 물을 끌어와 고갈을 막으려고 하지만 그 효과는 고작 20~30년이라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2090년의 오래된 비망록’이란 글을 보면 한마디로 절망스럽다. “매달 호흡기에 쓰는 공기에 대한 뇌물상납금을 내야 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말이다. 세상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문명이라는 흉악범이 한 생물을 멸종시키는 연쇄파괴 끝에 에코의 예상처럼 된다면 파트시우락처럼 문명의 반대 길로 가는 게 낫겠다. 범죄소굴이 된 문명도시, 인심은 석기시대보다 더 야만인 오늘, 우리는 이제 ‘문명과 야만’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곳 아닐까?

2017-12-22

[김령의 퓨전에세이]인간 미래의 연구과제 Cockroach

이런 기막힌 세상이 올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보니 바퀴벌레 생각이 난다. 바퀴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이외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인간들은 이제 바퀴벌레가 미워도 빙하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바퀴를 굴리며 종족을 보존해온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는 표해야 한다”고 곤충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에 의하면 생명력에 대해서 바퀴벌레만큼 위대한 곤충이 없다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양치식물이 처음 싹을 틔울 때도 이미 존재했고 공룡과 같은 시대에 대지를 누비고 다녔으며 빙하기에도 살아남아서 종족을 번식시켰다고 한다. 바퀴벌레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현재 4천종 정도로 분화되었으며 3억5천만년이라는 엄청난 세월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이른다. 그만큼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곤충이라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못 먹는 것이 없다. 모든 음식찌꺼기를 비롯해서 머리카락, 비듬, 발톱, 굳은 피, 분뇨는 물론 죽은 동료의 몸까지 먹는다. 종이, 가죽, 접착제 페인트, 비누, 전깃줄 같은 유기물질도 먹을 수 있다. 목이 잘린 바퀴벌레는 1주일쯤 산다.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먹이를 먹지 못해 죽는 거다. 방어 능력도 뛰어나다. 틈이 1~2mm만 되면 어디든 비집고 숨을 수 있다. 사람 발에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며 적에게 잡혀 다리가 끊어지면 탈출 후 다리를 재생시킨다. 살충제에 의해 혼이 난적 있으면 이를 기억했다가 미리 피할 줄도 안다. 곤충을 상대로 한 미로탈출 테스트에서도 가장 높은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가 하면 홍콩에서는 바퀴벌레 튀김을 길거리에서 팔아 연인들이 잘 사먹고, 유럽에서는 바퀴벌레를 말린 가루로 늑막염치료제로 쓸 뿐 아니라, 대만에선 감기약으로, 일본에서는 생리불순치료제로 씀으로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한다. 3억 년 전 화석에 바퀴벌레가 있어 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하니 지구 최고의 원주민임이 분명한데 거만한 인류에게 영토를 빼앗긴 한 많은 이산동물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고 곤충학자 파브르는 말한다. 어쨌든 바퀴벌레는 줄행랑을 치는데도 선수인데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도 고작 0.001초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보다 100배나 빠른 셈이다. 덕분에 곤충학자들은 물론 영양학, 신경생리학, 유전학, 심지어는 암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이 총 집중되고 있다. 질병에 강하고 안 먹고도 견디는 강인한 체력에 탁월한 운동신경 때문이다. 그래서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에 탑승하는 영광을 갖기도 했다. 지금쯤 그들이 우주 속 어느 혹성에서 원주민 행세를 하며 대세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에 착용하면 근육에서 나오는 신경전자신호를 감지해 큰 힘을 내도록 하는 로봇이 머잖아 나오리라고 한다. 앞으로의 로봇은 약점투성이의 사람 모양을 모방할 게 아니라 바퀴벌레 모양을 빌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버트 폴 교수가 제의했었다. 사람이 바퀴벌레를 완전히 닮는 날이 온다면 이는 인간 최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런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2017-12-16

[김령의 퓨전에세이] 이 세상 모든 학문이 사라진다 해도

멋쟁이였던 우리 선조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학식 유무와 관계없이 글짓기를 생활화하다시피 했다. 서당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주막거리에서 탁주 한잔 마시며 시를 지어 읊었다. 주모가 이를 듣고 즉석에서 장원을 뽑는다. 술값내기였다. 나귀를 타고 가는 봄놀이, 가을 단풍구경 가는 길 위에서도 시를 지었다. 한 사람이 한 연씩 지어 윤창(輪唱)을 하다보면 아름다운 시조 한편이 어렵지 않게 완성되기도 했다. 여 말과 이조 초의 문신 권근의 글 속에 나오는 이주도의 얘기도 그렇고, 김홍도의 그림 ‘장터길’을 보면 이런 풍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 장수의 병사 통솔에도 시문(詩文)이 다리 역할을 해왔다면 그들의 생활 속에 문학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숙주가 변방 육진에 가 있을 때 여진 오랑캐들이 포위해왔다. 참모들이 당황하는데 신숙주는 지필묵을 가져오라 이르고 시 한수를 지어 의젓함을 보이니 참모와 장수들이 이에 힘을 얻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를 조정에 보고하자 세조는 표주박으로 술잔을 삼고 “그대에게 이 잔으로 정을 나누노라” 하며 잔 밑에 시를 한수 써서 주었다. 이처럼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나눔은 신라 때도 있었으니 우리는 그 흔적을 포석정에서 보고 있다. 어찌 멋진 민족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즈음 출판 문화와 더불어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 같은 사정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책이라면 거의가 문학서적이었는데 이제는 생활의 도구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쟁사회가 되어 온갖 기술 이론 서적이 앞지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친구에게서 이성으로 넘어가는 사춘기에 이성과 성에 대한 호기심, 곧 리비도를 우리는 책속에서 찾았었다. 긴 소설 속에 나오는 단 몇 줄 속에서 인간의 애증을 헤아렸고, 시인의 시 속에서 인생의 슬픔과 낭만과 아름다움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이라는 매개체 없이 빠르고 손쉬운 전자 매체나 직방으로 이성에 접근, 성을 알아버릴 기회가 많아졌으니 구태여 책 속을 헤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문학을 통한 대리경험이나 멀리 돌아가는 길이 불필요해진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야만적인 힘에 의해 모든 학문이 사라지고 하나만 남겨져야 한다고 가정할 때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은 문학이다”라고 말한 롤랑바르트의 경고나, 문학의 죽음을 예고한 앨빈 커넌이나, 우리들의 우려는 문학이 사라질 때 오는 인간성의 사막화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럼은 “돈이나 지위, 권위는 생명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치고, 인생을 즐기고 보람과 의를 추구하는 존재의 욕구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인이 아니어도 적성에 맞는 아마추어 시인, 화가, 음악인이 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서 보이지 않게 삶의 질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자는 것이다. 저간 물신주의가 팽배해가는 이 시대 시인이나 수필가 등 문필가나 화가, 음악인 등 예술인들이 늘어가는 역설적 현상은 현대 사회의 내적 갈증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2017-12-08

[김령의 퓨전에세이] 인격(人格)과 국격(國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회의 초청으로 토론회에 참석하여 아버지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느라 수고했다. 어떤 땐 결혼도 안 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판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는 그녀가 딱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뭐 결혼이 다 냐’ 할 수도 있지만 정치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처럼 허접스러운 게 없다고 하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그녀는 죄수다. 대통령에서 죄수, 진보파와 비판가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파괴했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한국 민주노총 등 60여개의 시민단체회원들이 몇 년 전 서울 여의도에서 민중대회를 가졌는데 대회가 끝난 후 일부 참가자들이 전국 경제인협회 회관으로 몰려가 박정희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 준공기념비를 훼손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이 있다. 이 기념비는 자연석에 새긴 창조, 번영, 협동이라는 휘호인데 붉은 스프레이로 칠해 놓았다. 이 휘호는 박정희 서거 10.26 바로 직전에 쓴 마지막 휘호여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다고 했다. 그때 즈음해서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매헌 윤봉길 의사(義士)의 사당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사적 229호) 현판을 몰래 떼어내어 세 조각을 낸 뒤 내다 버렸다. 이 사람은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몰아부쳤다. 한 정치인의 정치이념을 이해하는 시각은 자유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그 관점은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속단만으로 역사적문화재를 훼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숭례문에 불 지른 사람,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 있는지 기회 있으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지금도 불 지르기 잘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중학시절 새로 지은 학교강당에 상아당(象牙堂)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손수 쓴 휘호를 내려주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 하와이 망명이 결정된 후 떼 내어 어쨌는지 궁금하다. 어린 나이에도 그 웅혼한 필치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중앙일보가 역대 대통령들의 휘호 경매가를 집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친필 휘호는 미술시장의 감초라고 한다. 거래총액을 기준으로 할 때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라고 했다. 뒤를 이어 이승만, 김대중, 김영삼, 윤보선 순이었다. 최규하,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거래가 없었고, 글씨 값은 글 쓴 사람의 지조, 행동, 사상에 좌우되는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은 아니었더라도 안중근 의사의 글씨가 5억을 상회하고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글씨는 가격이 형성되지도 않았고, 김영삼 대통령의 글씨는 거래를 회피하고 있었으니 세상 참 공정한 것 같기도 하고 간사한 것 같기도 하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국가 개조와 경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우린 경제대국이 되었다. 지금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을 따라하며 한국에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머잖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것이다. 체력도 국력에 비례한다. 박정희대통령 그만 씹었으면 좋겠다. 이승만을 돌아보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적이나 문화재는 시대가 변해도 민중을 깨우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또 국격 얘기가 나온다. 국격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요즈음 안팎으로 아쉬운 점 많다. 외상전문의 이국종씨와 김종대의원 사이, 인술과 인간사이, 인격과 국격 사이를 한참 아프게 방황하게 한다. 김령/시인, 화가

2017-12-01

[김령의 퓨전에세이]인본주의 최후의 보루(堡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동안 총기규제를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총기사건은 매일 미국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때마다 규제 얘기가 나오다가 용두사미가 된다. 몇 년 전 TV연속극 “in to the west” 와 ”Hell on the wheel”을 보고 이 나라가 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총으로 죽고 다친 대통령만도 몇인가. 그런데 큰 총기사건이 날 때마다 총이 더 많이 팔리고 있다니 참 어이없는 일 아닌가. 얼마 전 한 이웃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한 동네 오래 사는 동안 그녀는 어엿한 40대 교사가 되었다. “제니퍼, 아무래도 내 직업을 버려야 될 것 같아.” “왜 그런 말을 하는데?” “글쎄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임신을 했어요. 8학년, 13세야.” “그래서?” “학부형 면담을 했어요. 그런데 그 애 엄마가 하는 말이 그건 내 딸아이의 선택권이니 선생은 참견 말라는 거야. 내 속이 얼마나 쓰렸는지 몰라요. 차라리 이 직업을 버리고 책을 쓰면 부자라도 될 텐데 말예요.” 그러면서 하는 그 선생님의 결론엔 뼈가 들어 있었다. 요즈음 미국 젊은이나 아이들 도대체 예의라는 게 없고 존경이라는 걸 모르는 게 제일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총기사고도 잦다는 것이다. 이점 나도 동감이다. 얼마 전 이웃 판사 한분도 내게 요즈음 법정에 서면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오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참 기분 나쁘다고 했다. 단정한 복장은 판사인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법을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동서 문화가 합쳐지는 날이 올 것이로되 그때는 동도서기(東道西器)하라던 선각자의 가르침은 서양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이되 정신은 우리의 것을 지키라한 것이다. 오늘 다시 명언으로 다가온다. 예의를 아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효(孝)를 알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다. 결국 학교교육 이전에 가정교육이 먼저라는 얘기 아닐까.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것도 13살짜리 딸의 선택권이라는 엄마가 무슨 가정교육을 했을까 싶다. 어설픈 민주주의가 낳은 어이없는 항변이다. 서양에는 효라는 말조차도 없다고 한다. 동서 문화의 차이가 바로 효를 알고 모르는데서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수년 전 서양학자들이 한국의 효를 연구하고 국제화시키겠다고 했던 일이 있다. 그 후 어찌되었는지 모르겠다. 효라는 말을 굳이 영어로 만들어보면 filial duty 또는 filial piety쯤 된다고 하나 효의 개념 중에 극히 일부를 의미할 수 있을 뿐이라 한다. 무슨 수로 미국 아이들에게 효를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가 조부모에게 하는 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나 효를 알 테니 말이다. 효를 아는 자녀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늘 부모가 무얼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며 살 테니. 총기규제와 더불어 종교를 갖게 하고 집에선 효도정신을 가르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종교계는 왜 총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나. 수정헌법 2조, 그 존재와 고수(固守), 그것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인간을 초월하는 법도 있을까? 총기소유, 그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요 최고의 척도인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2017-11-29

[김령의 퓨전에세이]삶에도 쉼표를

하루 24시간, 우리는 시계를 보며 산다. 시간에 적응하지 못하면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시간은 누가 만들었나, 시계는 누가 만들었나, 그건 몰라도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한 에디슨의 말을 믿으며 살고 있다. 1895년에야 주 7요일제가 도입되었고, 그다음 해부터 약력을 쓰기 시작했던 한국. 있는지 없는지 모르던 극동의 작은 반쪽짜리 나라를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국으로 세우는 데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권력과 자본에 흡수된 개개인의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 영국의 한 매체가 1000년 동안 인류가 내놓은 최악의 발명품 리스트를 유명학자들로부터 받아냈다. 그 최악의 리스트에는 이 세상에서 마땅히 없어져야 할 제품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비닐봉지, 총, 마약, 스팸 메일 등…. 인간 생물학(chronobiology)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에게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명종’이라고 답 할 것이라 한다. 현대인의 수면을 방해하고 낮의 일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발명품, 인간의 일주기 리듬을 생각하지 않은 무자비한 발명품이 자명종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자고 깨는 일주기 리듬을 관장하는 생체시계는 뇌에 있으며, 빛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자명종은 빛의 영향을 받고 수면과 깨어남을 조절하는 생체시계와는 상관없이 소리로 대뇌피질만 깨우기 때문에 사람의 일주기를 망가뜨리고 온종일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리듬이 망가지면 판단도 흐려지고 실수도 잦아진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판단 실수의 많은 경우가 의사와 간호사의 일주기 리듬이 망가졌기 때문이며, 인도의 보팔화학공장, 옛 소련의 체르노빌, 미국의 쓰리 마일 섬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의 일주기 리듬을 거슬렀던 직원들의 판단 착오로 벌어진 대형사고였다는 것이다. 일본인 의사 샤이쇼 히로시의 말도 생각해봄 직하다. “야행성 인간이 성공한 일은 역사에 없다.” 밤이 되면 휴식의 의무를 지닌 부교감신경이 활발해져 졸리게 되고, 아침이 되면 활동의 의무를 지닌 교감신경의 기능이 활발해 움직이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자연적인 생리라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유전자 711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4년 전 영국의 연구팀이 밝혀냈다. 닭울음 소리에 일어나 땅을 갈고 해지면 돌아오던 옛 농부들의 생체시계가 옳았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다.” 이건 카네기의 말이고, “아침은 입에 황금을 물고 있다.” 이건 이탈리아인들의 잠언이다. 그런데 복잡해진 현대구조는 밤과 낮을 완전히 바꾸어 살아야 하는 직업을 만들어 냈다. 밤일하는 공장, 밤일하는 경찰, 소방직원들, 수많은 사람이 생체시계를 거스르며 우리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린 참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고맙고 미안하다. 전압이 높아지면 서킷 브레이커가 킥 아웃 되듯 생체시계를 거스르고 한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는 우리 삶에 필요한 게 있다. 쉬는 것이다. 우린 쉬는 게 죄처럼 산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 인생에도 자주 쉼표를 넣자.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으니까.

2017-11-18

[김령의 퓨전에세이] 향내가 오는 길

“이 종이 한 장이면 화장실의 악취가 모두 사라집니다. 이 종이 한 장이면 화장실은 꽃밭이 됩니다.” 그러나 우체통에서 꺼내온 이 광고지 한 장 때문에 끝내 나는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 서양인들의 냄새감각은 우리와 다른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어쩜 전적으로 개인적인 차이인 것도 같고. 서양인들은 구두 한 켤레를 사도 손에 들고 냄새를 맡아보는 습성이 있단다. 프랑스의 가발장사는 가발 냄새만 맡고도 게르만계 사람의 머리카락인지 라틴계 사람의 머리카락인지를 알아맞힌다고 한다. 우리는 좋은 냄새를 향내라 하고 나쁜 냄새를 악취라 한다. 어젯밤 화장실에 놓아둔 종이 냄새는 악취는 아니었지만 내겐 두통을 일으키게 했다. 향내라고 다 누구에게나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민한 사람은 아니라도 인공향내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진한 향수가 참기 어려울 때도 있고. 서양인들이 악취라고 몰아붙이는 마늘 냄새에 우리는 별로 겁을 먹지 않는다. 우리들이 상식하는 마늘은 깨, 꿀과 함께 세계영양학자들이 꼽는 10대 식품에 들어간다. 10여 년 만에 만난 흑인 여자의 모습이 하도 변하지 않아 이유가 뭐냐고 덕담 삼아 비결을 물은 일이 있다. 그녀는 정색하고 “마늘과 물”이라고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즈음 미국인들도 마늘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 같다. 동네 미국식품점에서도 통마늘, 다진 마늘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그렇다고 마늘 냄새를 마구 풍길 수는 없지만, 마늘에서 냄새를 제거한 제품이 드럭스토어에 나와 있는 걸 보면 마늘 좋은 줄은 알고 있나 보다. 하와이 여행 중에 마늘 아이스크림도 먹어보았다고 자랑하던 이웃도 있다. 그런가 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냄새를 식품화하는 산업도 늘고 있다. 향수 세일 광고지에서는 그 향수 냄새가 난다.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과 함께 스파게티 냄새가 나고, 매운탕을 먹는 장면과 함께 매운탕 냄새가 흘러나오는 TV가 나오리라던 얘기가 있었던 것도 10년이 넘었다. 앞으로의 시대는 냄새 과학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도 같다. 냄새를 이용해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영국의 심리치료사 킨쥐 박사. 그는 냄새를 이용한 방법으로 많은 치매 환자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며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꽃이 저마다 가진 냄새가 다르듯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아지랑이 속 생명이 되살아나는 듯한 향긋한 봄 내음, 불타듯 이글거리는 여름 냄새, 그리고 모두가 떠나가버릴 듯 허전한 가을 냄새, 삭풍 속에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 내음, 그렇듯 자연 속 생물마다 사람마다 인종마다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체취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다움, 그 인격의 체취도 있다. 이것만은 과학의 힘으로도 어떻게 되지 않으리라. 부정한 생각, 부패한 욕심, 시기, 질투, 모함, 불친절, 몰 예의 등 그 인성이라는 냄새, 이것들은 오직 자신의 성찰로만 다스려질 수 있는 냄새이리라. 생선 장수에게서도 고결한 사람 냄새가 날 수 있고, 향수를 파는 사람에게서도 사람 냄새가 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참사람 냄새’, 그것에는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오묘함이 숨어 있는 듯하다. 김령/시인·화가

2017-11-10

[김령의 퓨전에세이] 고목생화심불로(古木生花心不老)

오랜만에 2층 유리 집에 앉았다. 키 큰 나무들에도 가을이 와있다. 망사창 사이로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이맘때 어느 결혼식을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그 영감님은 나의 고객이었다. 평소에도 나이 같지 않게 잘 웃고 농담도 잘했다. 이 영감님과 대화할 때면 균형 잡힌 유머 감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나이에 이르니 느끼는 게 많다. 그렇게 싫어하던 희극이 좋아지고, 동창 모임이나 선후배, 심지어 스승까지 모신 자리에서도 격의 없이 농담할 수 있는 걸 보면서 나이 드는 게 좋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감님 그때 연세가 여든둘이었다. 어느 날 늘씬한 금발의 노인 할머니를 대동하고 나타나서는 대뜸 내게 약혼자라고 소개했다. 잉그릿 버그만 체격에 그레이스 켈리의 얼굴이었다. 영감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할머니는 내가 지기라도 되는 듯 반가워했다. 내주에 결혼하는데 결혼식장은 새로 생긴 동네 쇼핑몰이라는 것이다. 그 쇼핑몰에 결혼식장이 없는 걸 아는 내가 어리둥절하니까 설명을 했다. 몰의 영업이 끝난 밤, 식장은 2층, 신부가 흰 드레스에 부케를 들고 아래층으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들러리와 손자 손녀 아들딸들이 뒤따라 올라온다는 얘기다. 하객들은 2층에서 박수로 이들을 맞고. 내 손목에 낀 바이오 팔찌를 가리키며 똑같은 거로 두 개를 사달라는 부탁도 했다. 신혼여행 때 둘이 꼭 같이 끼어야겠다는 것이다. 10년 넘는 세월이 갔으니 그 영감님 95세는 되었을 테고, 할머니는 두 살 아래였으니 아흔은 넘었으리라. 이웃의 한 노부부 생각도 난다. 영감은 퇴직했고 부인은 학교 선생님이시다. 영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해 부인에게 먹이고 학교까지 운전해 데려다주고 온다. 집에서 점심거리를 만들어 때맞춰 또 학교에 가져다주고 온다. 퇴근시간이면 학교에 가서 부인을 싣고 온다. 내가 알기만도 10년이 넘는다. 드디어 얼마 전 부인이 퇴직했다. 이제부터는 부인이 전용운전기사가 되었다. 또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여인은 D.C에서 일했다. 남편은 1시간 넘어 운전을 해 부인을 D.C에 데려다주고 온다. 퇴근 때 맞춰 또 D.C로 나가 부인을 싣고 온다. 그들도 수년을 그렇게 살다 부인이 한 달 전쯤 퇴직을 했다. 차례차례 계획을 세워 여행을 시작했다며, 자기들을 걸 프렌드 보이 프렌드로 불러달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50은 지명, 60은 이순, 70은 종심이라 했다. 그 이상 나이가 들면 늙었다는 뜻을 내포하지 않은 숙년, 존년이라고 했다. 폴리네시아의 일부 종족들은 유아와 할머니의 호칭이 같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결혼 60년이 되면 회혼이라 하여 때때옷을 입고 크게 잔치를 했다. 일본에서도 노년이라는 말 대신 실년이라 하고, 서양에서도 올드 에이지(old age) 대신 시니어(Senior)라 하지 않는가. 고슴도치도 둘이 턱을 비비며 살고, 북극곰은 짝을 잃으면 죽을 때까지 굶는다고 한다. 우리 모두 이만큼 장수를 누렸으니 복인들이요, 땅속으로 들어갈 날을 세지 않고 꿈도 꿀 수 있으니 복인이다. 그야말로 인생 말년에 ‘고목생화심불로’ 다. 뒷마당 키 큰 나무들 석양에 노란빛이 더 곱다. 김령/시인·화가

2017-10-21

[김령의 퓨전에세이] 미·중·북 사이, 한국은 어디에?

2011년 꼭 이맘때 일이다. 중국이 아리랑을 자기네 노래라고 우기며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했다. 그즈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은 지도 35만부를 만들어 미국 학교에까지 뿌렸다. 만리장성 동쪽 끝은 베이징 근처 산해관인데 그게 평양인 것처럼. 21세기에 만리장성이 무슨 소용이길래 그랬을까. 역사도 날조해 가며 침략준비를 하는 것 아닐까? 지난 100년 가난했던 중국, 이보다 시급한 일이 많을 터인데, 거꾸로 돌아가는 그들의 처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그들의 정치체제가 오히려 먼 훗날 그들의 자손들이 무릎을 치게 만들 흉계로도 보인다. 중앙당교 출신 골수파들의 머릿속이 소름 끼치게 한다. 통일되면 우리 땅이 될 압록강 두만강 유역까지 손대는 것도 그렇다. 중국 정부는 백두산 지역에 원자력발전소 6기를 건설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송화강 상류엔 천연광천수가 있는 수자원 보호구역이다. 중국 그 넓은 땅 다 놔두고 왜 하필 그곳일까? 그런가 하면 동해로 진출하기 위해 김정일을 꼬셔 나진항을 쓰기로 한 것도 그렇다. 훈춘에서 나진까지 50여km에 도로포장도 하고. 중국에서 오래 산 어느 교포 한 분이 말했다. 중국은 우리를 자기네 새끼발가락쯤으로 여기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생각한다고. 1618년 후금은 명나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조선에게는 “너”라고 칭하는 국서를 보냈나 하면, 인조 때는 후금을 거스르다 1627년 정묘호란을 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1636년엔 더 참혹한 병자호란도 겪었다. 인조는 한겨울 남한산성까지 나가 청나라 홍타이치에게 큰절을 세 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내리는 갑옷을 받고 무릎을 꿇은 채 또 여섯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청에 끌려간 50만 명, 성노리개로 끌려간 조선 여인들, 중국 본처들에게 뜨거운 물세례를 받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서는 화냥년(還鄕女) 소리를 들어야 했던 아픈 우리 백성들. 중국에 새로운 강국이 기존 패권국에 도전할 때마다 예외 없이 한반도엔 위기가 닥치곤 했다. 중국의 원·명 교체기, 명·청 교체기, 청·일의 국력 역전기, 그때마다 기존 패권 국가와 신흥강국 사이에 터지는 새우등이 되었던 우리나라, 오늘날 신흥 대국이 된 중국은 기존 대국 미국에 맞장을 뜨고 있다. 지금 또 위기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해야 할 지는 제일 밑바닥에 깔린 문제다. 두렵지만 미국 편에만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옛날부터 우리를 우습게 알아온 중국에 얼마나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굴욕적이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외교 노선의 정답이 무엇인지.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맥아더 장군이다. 그가 북한을 쳐서 통일시키자 했을 때 했더라면 오늘 이런 양호유환(養虎遺患)의 상황은 없었을 것을. 세계에서 제일 긴 핵폭탄 지하 갱까지 만들어 놓은 중국, 머잖아 일본도 핵을 가질 것이다. 북한, 인도, 파키스탄 모두가 핵보유국인데 우리만 없다. 지리적으로 제일 약세인 우리야말로 핵이 필요하다.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으로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제안했을 때가 적기였는데. 왜 우린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지, 이러다 월남 꼴이 될까 무섭다. 김령/시인·화가

2017-09-29

[김령의 퓨전에세이] 멸치 두 마리의 행복

“오늘은 뭘 해 먹지?” “맛있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해줬잖아.” “돼지고기 말고 멸치 넣고 한 거 말이야.” “거기 다 들었어. 고깃가루도 멸치 가루도 다 들은 거야” “아니 통멸치 넣고 끓인 거 말이야.” “그까짓 통멸치, 맛 우러나고 나면 지저분해서 다 건져버려야 하는데 왜 그래?” “난 그 멸치가 맛있어. 아무리 국물로 다 빠져도 씹어봐. 씹을수록 맛 나는 게 멸치야. 김치 한 조각에 멸치 반쪽 얹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그이가 통멸치를 좋아하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한동안 고깃가루와 멸치 가루만 넣고 끓여준 데 대한 불만이다. 하긴 그가 멸치 찌개에 대해 쓴 시도 있었다. “등심도 안심도 갈비도/ 메인주 왕게고 랍스터도 싫다/ 영계백숙이고 장어고/ 낙지고 대구찜이고/ 깐풍기고 류산스고/ 다 그렇고 그래/ 얼큰한 김치찌개 속 남해 멸치 두 마리/ 머리 떼고 똥 빼고 둘로 쪼갠 통멸치/ 반쪽에다 걸치는 포기김치 한 가닥/ 아 꿀 같은 멸치 두 마리 때문에/ 밥 한 주걱 찬물에 더 만다/ 밥도 그렇다/ 현미에 조에 찰수수에 콩에 보리에/ 팥에다 녹두라 (…) 새를 보면 안다/ 가벼이 날고 싶거든/ 새같이 살거라이” -멸치 두 마리의 행복 이 시가 언젠가 어느 주간지 안 표지에 크게 실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편집인도 그이와 똑같은 추억이 있었나 보다. 우리 집 아래 위층 냉장고엔 멸치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장에 가서 멸치만 보면 집고 또 집는 탓이기도 하지만, 연말이면 잔 멸치, 굵은 멸치 꼬박꼬박 보내주는 친구가 있어서도 그렇다. 그의 시처럼 남해 대변항, 전국 멸치 어획량의 60%를 차지하는 항구. 비옷에 모자와 장화,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어부들. “얼씨구 좋을시구, 으싸 으이쌰, 어기영차” 노랫가락에 맞춰 그물을 털면, 거짓말 조금 보태 꽁치만한 왕멸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은빛 비늘 휘날리며 떨어진 왕멸치들을 잽싸게 주워 담는 아낙네들. 갈매기도 빠질세라 이 잔치에 모여드는 항구, 머리와 꼬리가 제대로 붙어있는 싱싱한 왕멸치는 양쪽으로 살짝 살을 떠서 생 멸치회로, 또 갖가지 채소에 양념을 넣어 버무려 놓으면 유명한 대변항 멸치회가 되고, 더 튼실한 놈들은 골라 고등어나 참치처럼 석쇠에 구워 왕 멸치구이를 하고 남는 건 팔딱팔딱 뛸 때 천일염에 버무려 즉석 젓갈을 만든다. 멸치야말로 몸통, 꼬리, 뼈까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는 물고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물고기에게 준 이름을 보면 어이없다. 업신여길 멸(蔑)에 내던져질 치(致), 그래서 멸치가 된 것이다. 사람의 등뼈는 26개, 멸치 뼈는 44~47개, 사람보다 더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미안해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 칼슘왕. 그렇다. 멸치는 사람의 몸을 돌며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혈전을 예방해 혈압을 낮추어주고, 심장근육도 강화해 준다니 우리 나이엔 꼭 필요하다.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가루 조미료를 끊고 꼬박꼬박 왕 멸치 잘 다듬어 넣고 김치찌개 끓여주어야겠다. “마누라 아니면 누가 날 이렇게 먹여주나.” 안 하던 소리 가끔 하는 걸 보면 철 좀 들었나 보다. 이만큼 철드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김령/시인·화가

2017-09-17

[김령의 퓨전에세이] 신의 숙제

오린은 부싯돌을 집어 들었다. 입을 벌리고 아래위 앞니를 부싯돌로 딱딱 쪼아댔다. 단단한 생이빨을 두드려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다. 후까사와 시찌로가 『나라야마 부시고』를 발표했을 때 일본 문단은 “우리는 이런 소설을 50년 기다렸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 신주, 첩첩 산골짜기 작은 촌락, 예순아홉의 오린은 20년 전 남편을 잃고 외아들과 같이 살아왔다. 정월이 오면 그녀는 줄 참나무 산으로 올라가려 한다. 해가 바뀌면 가능한 한 빨리 아들 지게에 올라 산으로 버려지러 가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멀쩡한 이를 뽑아내며 늙은이 시늉을 한다. 줄참나무산은 일곱 골짜기와 세 개의 못을 지나야 한다. 사람들은 거기 하나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오린은 산에 오르기 전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할 술도 장만했고 산에서 깔고 앉을 깔판도 3년 전 이미 만들어 두었다. 마지막 날 밤 술 대접엔 산에 다녀온 사람만을 초대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산으로 갈 때 꼭 지켜야 할 일들을 한 가지씩 일러둔다. 첫째 산에 가거든 말을 절대 하지 마세요, 둘째 집을 나설 때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떠나야 합니다, 셋째 부모를 산에 두고 돌아올 땐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산에 오르는 날 눈이 오면 행운이라 했다. 몹시 춥고 어두운 밤, 아들 닷배는 엄마 오린을 등판에 앉히고 떠났다. 몇 개의 계곡을 넘고 못을 돌아 줄참나무산까지 거의 다 왔다고 짐작되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해골들이 하얗게 깔린 게 보였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이 갓 죽은 사람도 있었다. 엄마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 내려놓으라는 독촉이었다. 빈 바위 옆에 내려진 오린, 그녀의 얼굴엔 이미 죽은 이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오린은 아들의 몸을 지금까지 왔던 쪽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아들의 등을 왈칵 떠밀었다. 아들은 걷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면 안 된다기에 그냥 걸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틀비틀 산에서 내려오는 아들의 눈에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줄참나무 사이로 눈이 내리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 아!” 하고 소리 지르며 산의 예법을 어기고 엄마가 있는 산을 향해 달렸다. “엄마! 눈이 와요, 눈이 와요, 엄마 춥지요?” 엄마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내려가라고, 돌아가라고. 결핍 속에 살아남기 위한 질서가 이렇게도 눈물겹고 아름답다. 날이 갈수록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 희대의 살인마가 나타나 노인 260명을 몰살시키겠다고 공언을 하고, 19명 노인을 흉기로 살해하고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일이 있었다. 심각한 가족해체가 고장 난 세상을 알리는 것 같다. 한국도 별 차이 없이 이런 길로 가고 있나 보다. 시설이 부실한 양로원에서 불이 나 질식사한 노인이 한둘이 아닌가 하면, 얼마 전엔 치매 부모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에 불을 지른 자식이 있었다. 몇 년 전엔 DC에서 84세의 아버지를 총기로 살해하고 자살한 54세의 딸 얘기도 있었다. 유난히도 사이좋았던 부녀, 그러나 알츠하이머의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어 함께 생을 마감한 딸, 미국판 『나라야마 부시고』가 아닐까. 먹을 것을 아끼느라 70이 되면 스스로 산에 오르던 시대는 갔다. 그러나 달라진 게 무얼까. 노인은 더 외로워져 갈 뿐이다. 신의 숙제가 무겁기만 하다. 김령/시인·화가

2017-09-02

[김령의 퓨전에세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국 정치인들

1960~1970년대 중국의 지식 청년들은 하향(下鄕)정책에 따라 학교를 중퇴하고 농촌으로 내려가야 했다. 지식 청년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줄지어 동북의 머나먼 변방지대로 내려갔다. 집체생활 공농병학원(工農兵學員)이라는 낯선 말 속에서 농사꾼이 되었다. 1966년 문화혁명으로 망가졌던 대학이 되살아난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추진세력 덕분이었다. 1977년 대학입시 제도가 부활했다. 그 첫 대학입시에 670만 명이 응시하여 27만 명이 합격했다. 그 이전까지의 대학입학은 추천제였다. 농촌, 공장, 군대에서 당성을 기준으로 대학생을 뽑다 보니 나이, 학력이 뒤죽박죽이었고 질 문제는 치명적이었다. 1997년 8월 ‘교육과학 공작좌담회’에서 덩샤오핑이 소리를 질렀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지 혁명가를 양성하는 데가 아니야” 라고. 그랬다. 16년 전 중국 동포문인 몇이 워싱턴에 왔었다. 대학공부는커녕 영어 한마디 배우지 못한 그들의 실상이 실감 났다. ‘오리지날’이라는 말을 두고 한 문인은 ‘오지리날’이 맞다 하고 그의 부인은 ‘오리지날’이 맞는다며 말다툼을 했다면서 어떤 게 맞느냐고 내게 물었다. 세상 한쪽엔 이렇게 미국과 등진 나라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중국에서 고급간부로 성장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이다. 이 학교 학생은 세 가지로 나뉜다. 고급 당간부, 소수민족 간부(중국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이론을 공부하는 석, 박사생들이다. 고급 당간부 반은 다시 장관급 반, 청장급 반, 현 서기 급 반으로 나뉜다. 초점은 장관급 반으로 당 중앙조직부가 직접 관장한다. 당 조직부가 각 성(省)이나 정부 기구에 입학생 수를 할당 통보하면 해당 부서에선 미리 준비해둔 순서대로 고위간부들을 당교에 입학시킨다. 약 4개월 과정에 50명쯤 되는 장관급 반에선 무엇을 배울까. 핵심은 3개 기본과 5개 당대(五當代)다. 3개 기본은 정신무장이다. 마르크스주의 기본문제, 마오쩌둥 사상 기본문제, 중국 특색사회주의 이론체계 등이다. 5개 당대에서는 현실 문제를 다룬다. 당대 세계 경제, 당대 세계 과학기술, 당대 세계 법제, 당대 세계 군사, 당대 세계 구조다. 최근에 당대 세계 민족종교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제 세계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오쩌둥, 류사오치, 화거펑, 차오스, 후진타오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인사들이 교장을 역임했다. 후진타오는 거의 10년 동안 재직했고 지금은 국가주석인 시진핑도 교장을 역임했다. 보도로는 요즈음도 중국의 지도자들은 공부에 빠져있다고 한다. 서태후가 살던 집 베이징 화이런탕에 고위간부들이 둘러앉아 전국선전간부학원 교수들이 4개월 동안 준비한 교재로 강의를 듣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을 한다. 주제는 다양하고 66차례 집단학습도 한다. 바야흐로 뛰고 있는 중국이 보인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르지만, 고위직에 앉아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태도는 부럽다. 그들의 굴기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도 산적한 문제를 두고 싸우고 반대하는 정치인들 보다 공부하는 정치인들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령/시인·화가

2017-08-12

[김령의 퓨전에세이]내 인생에 박수

유럽의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 이름 샹그릴라. 샹그릴라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있다는 이상향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도연명의 도원경 같은 곳이다. 인도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던 때 미국과 영국의 외교관과 선교사 등 4명이 소형비행기를 타고 피난을 가다 길을 잃어 티베트 히말라야 산중 샹그릴라라는 마을에 불시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눌러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의 나이가 거의 100세가 넘고 최고령자는 200세를 넘고 있었다. 이들이 먹는 것은 약간의 샐러드와 그레이프프룻 그리고 녹차 한잔이 고작인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소식이었다. 그들의 장수비결은 별것 아니고, 고기를 먹지 않고 무공해식품을 먹되 아주 소량이라는 것과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요즈음 세상은 모두가 장수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100세, 120세 시대가 코앞이라며 야단법석이다. 한국은 더 유난스러운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주례하시는 결혼식에 몇 번 갔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른 분의 주례사에도 이 말은 빠지지 않길래 그러는 건가 보다 했다. 백년해로라는 말 이제는 알겠다. 그러나 둘이 한날한시에 같이 가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여자의 나이가 남편보다 몇 살 아래인 데다 여자가 4~5년 더 산다니 거의 10년을 혼자 더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전적인 준비도 되어있어야겠지만 혼자 살아가는 힘, 즉 고독력(孤獨力)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 없이 사는 것에 두려움이 많다고 한다. 평생직장에 다니며 돈 벌어다 주면 아내가 알아서 아이들 기르고 살림해주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얼마나 두려울까. 그래서 혼자 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 남자들은 한국남자들보다 혼자 살 수 있는 준비들이 되어있는 것 같다. 아침 식사도 자기가 만들어 먹든 출근길에 사 먹든 알아서 하고, 정원 가꾸기도 잘하고, 아내가 쥐여준 ‘허니 두 리스트(Honey do list)’를 들고 다니며 장도 잘 본다. 일본인 시모다 가게키는 『남성독신보감』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배우자가 있더라도 독신인 양 미리 연습하라고 한다. 요리하는 즐거움도 배우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운동해서 노화를 늦추고, 혼자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몰두하라 쓰고 있다.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의 조건』이란 책 속에 행복조건 7가지를 언급하면서 적당한 음주도 권하고 있다. 가끔은 그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의식 무의식 속에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타인의 시선이다. 이만큼 살았으면 이제 조금은 흐트러져도 좋고, 적당히 망가지는 것도 좋다고 했다. 고독력을 기르려면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고 자신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만들라 권한다. 특히 한국남자들은 소소한 얘기를 갖고 소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거대담론이 아닌 소소한 대화에도 함께 할 줄 아는 게 좋겠다. 세상 만물은 끝날 때가 아름답다. 낙조가 일출보다 아름답고, 가을 단풍이 봄날의 신록보다 아름답다. 나는 한국 가수 현숙의 ‘내 인생에 박수’라는 노래를 그래서 가끔 불러본다. 김령 / 시인·화가

2017-07-21

[김령의 퓨전에세이] 한여름 밤의 꿈

2007년 5월 17일. 금강산 역을 출발한 북한의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제진 역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문산을 출발한 남한의 열차는 도라산역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양양과 안변을 잇는 동해북부선과 서울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의 운행이 끊긴 지 56년이 지난 시점에 믿기 어려운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2000년 남북한은 물론 동북아와 유럽을 잇는 철도가 동북아의 물류 대동맥을 이루는 실크로드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 한국, 중국, 북한이 의기투합하자 장삿속에 밝은 일본까지 끼어들어 한몫 하려 했다. 부산에서 대구, 대전을 거쳐 서울로, 서울에서 문산, 평양을 지나 신의주로, 신의주에서 중국 하얼빈으로, 만주리를 지나 울란우데, 여기서 시베리아를 횡단, 러시아의 노보시비리스크와 에카테린부르크, 그리고 모스크바를 지나 동유럽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까지, 더 나아가 베를린까지의 꿈을 꾸었다. 김일성 저작집 제44권엔 신의주 개성 간 철도를 복선화해서 중국 물동량을 나르면 연간 4억 달러, 러시아와 중국 동북지역 물동량을 동해안 철도로 나르면 10억 달러의 수입이 생겨, 북한은 가만히 앉아서 한해에 14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써놓았다.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우리만 한 것이 아니었다. 1998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유럽연합과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등 12개국 정상들이 모여 유라시아 관통 루트 건설에 합의했다. 이들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로 갈 수 있는 실크로드를 염원했다. EU는 8800만 유로를 투입했고 2000만 유로를 추가했다. 우즈베크와 타슈켄트, 키르기스스탄의 오슈를 연결하는 길목에 두 개의 터널을 한국의 삼성 건설이 담당하기로 했었다. 이 길은 고구려의 고선지 장군의 원정길이기도 해서 의미가 깊었다. 한편 남과 북을 잇는 역사적인 경의선 철도 복원도 2000년 9월 삼부요인, 주한 외교사절, 국제대표, 실향민대표 등 1천여 명의 참석,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렸다. 남측 547억원 투입, 문산에서 임진각 철교를 건너 군사분계선까지 12km 구간을, 북한은 장단 역에서 개성역까지 12km 구간을 복원했다. 동시에 24만평 부지의 지뢰 제거작업도 병행했다. 경의선의 복원사업은 단순한 철도연결사업이 아니다. 한반도 주변 국가는 물론 유라시아까지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는 게 모든 전문가의 한결같은 전망이었다.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면 액체화물을 담은 유조선수송이 가능해지고 교역품목의 다양화, 일본과 선진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 지역 자원개발, 인프라 건설사업 등 우리도 엄청난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90년대 초반부터 세계 각국이 이 지역 자원개발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동광, 철광, 우라늄, 석탄광 등이 세계의 최고수준이라고 했다. 계획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얼마나 좋을까. 이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면 서울과 유럽 간의 운임은 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오며, 일본까지 합세하면 한국이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가 된다고 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러시아의 푸틴은 경의선 복구와 시베리아 철도건설, 북한의 핵무기 불능화를 이루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려 했었다. 내 나라 산도 돈 주고 간다는 발상 속에 돈 쏟아부은 금강산 관광투자를 비롯 개성공단 재산을 일방적으로 동결 몰수당했다. 문 대통령 요즘도 가끔 한 번씩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얘길 하는데 잘 생각해야지, 또 당할까 심히 걱정스럽다. 또다시 한여름 밤의 꿈이 되는 건 아닐까? 김령/시인·화가

2017-07-15

[김령의 퓨전에세이]너 어디 있니, 운수야

길 위에 서면 가버린 미국에서의 수십 년 세월이 몰려오고 흩어져 간다. 어쩌다 TV에서 만나는 미국인도 얼굴에서 가버린 세월을 볼 수 있다. 시간은 그렇게 가고 보이지 않지만, 얼굴에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은 역력하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걸까? 사람들은 운수가 대통하고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운수, 운수, 이 운수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고 이 운수 앞에선 아무도 장담은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은 요행스럽기를 끊임없이 바란다. “뭘 하러 여기 왔지?” “그걸 몰라서 왔습니다.” 한스가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흠! 흠! 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자네는 굶주리지는 않았겠지?” “네,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럼 마시는 데는?” “물이나 우유에 굶주린 적은 없어요, 맥주는 몰라도.” “입는 데 불편을 느낀 적은?” “네, 없어요.” “그렇다면 자네는 굳이 운수를 찾을 필요가 없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겠는데, 운수인들 그 이상의 일은 별로 해줄 것 같지가 않은 걸.” 할머니의 대답이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한스가 다그쳤다. 이 대화는 미국 작가 파일이 쓴 ‘한스 데클만의 운수’의 한 부분이다. “운명은 낙천주의자에게 보답한다.”라고 말들 한다. 우리도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운명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보답하리라고. 낙천주의자들에게 매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례없는 장기간의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이 조사는 6세에서 16세 사이의 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었다. 해당 아동들은 환경 및 특징상의 공통점, 예를 들면 백인이며 머리가 뛰어나고, 중산층이라는 공통적인 기준을 가지고 형성된 그룹이었다. 그리고 부모와 교사들이 25가지 성격적 특성을 평가받았다. 미적 감각, 재주, 그리고 유머 감각까지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추적조사는 그들의 생활환경이나 사건, 그리고 체험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실험 대상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학자들은 살아있는 실험대상자들을 조사, 해당 자료들을 정리 평가했다. 특히 6가지 특성을 고려했다. 그것은 사회성, 성실성, 낙천성, 에너지, 그리고 감정적 안정성 등이었다. 결과는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성실성과 낙천성만이 실험대상자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고 판명되었다. 긍정성보다는 성실성이야말로 장수의 보장이라는 것이다. 루이스 터반은 1920년부터 캘리포니아의 12세 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1990년까지 추적 연구를 했다. 이른바 ‘터먼 라이프 사이클’, 이 결과도 놀랍다. 이혼이 평균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혼은 수명을 줄인다는 얘기다. 한 배우자와 일생을 같이하는 사람은 유년기부터 이미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헤클만’처럼 운수를 기웃거리지 말고 오던 길 똑바로 그냥 주욱 가겠다고.

2017-07-08

[김령의 퓨전에세이] 신의 한 수, 신의 두 수

로댕의 작품 중 ‘신의 손’이라는 조각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 작품을 보고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자신과 똑같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무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도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대칭되지 않는다고 노발대발 거울을 내던졌고, 양귀비도 짝짝이 눈을 감추려고 일부러 눈을 찡그리곤 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것 같다. TV 탤런트들을 보아도 눈이 짝짝이인 경우가 허다하고, 그나마 옛날엔 흔하지 않던 사시(斜視)가 많아진 것은 이 시대 생물학자들의 필수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싶어 한다. 몇 년 전 인터넷에 ‘한국인의 평균 얼굴’이라는 합성사진이 떴다. 20세기 초 촬영한 한국인 얼굴을 수치 데이터로 바꾸어 평균치를 낸 것이었다. 남녀 사진 두 장이 공개되었는데 모두 사각 턱이라는 것이 특이했다. 이 사각 턱이 형성된 이유는 질긴 음식을 씹어야 하는 데서 생긴 거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그런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며 만드는 V라인 얼굴이 요즈음 한국 거리에서 많이 눈에 띤다고 한다. 어쨌든 인구당 성형수술 건수도 한국이 세계 1위라 한다. 성형수술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다. 기원전 800년경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행실이 나쁜 여자나 딸을 둔 남편 혹은 아버지는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을 내렸다. 외모가 흉해지는 건 물론이고 어디를 가건 코로 인해 배척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수스트라’라는 의사에 의해 코를 재건하는 수술이 생겼는데 이는 단순히 외모교정에 그치는 게 아니고 범죄자의 낙인을 없애주는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마취기술이 없던 때라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야 하고 항생제도 없던 때이므로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지만 새 삶을 위해 기꺼이 수술에 응했다고 한다. 인도의 성형수술은 로마로 전해졌다. 검투장에서 투사들이 입은 상처를 수술하는 일이다. 등에 난 상처는 도망가다 입은 것이므로 비겁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게 싫었다는 이유다. 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 시대에 들어서면서 성형수술은 중단되어 발전할 수가 없었다. 신이 내린 육체에 손을 대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성형수술이 부활하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포탄 등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얼굴을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성형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럴드 길리스(Harold Gilles)는 1917년부터 1만1000 건의 수술 집도를 하고, 5000명의 부상자에게 새 얼굴을 주었다. 페니실린 발명으로 사망자 수도 줄었다. 요즈음 성형외과 의사는 성형수술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여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 육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머잖아 유전자까지 조작해서 미남미녀만 꽉 찬 세상이 올지도 모르고, 인종 간의 구별이 어려운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쩌다 보게 될 못생긴 얼굴이 각광을 받을 때가 올 수도 있겠다. 세계인의 얼굴에서 인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지구 위에 평화가 오게 될까? 오늘도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종 갈등, 성형이 이 문제를 해결해낸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신의 한 수, 아니 신의 두 수는 없는가? 김령/시인·화가

2017-06-10

[김령의 퓨전에세이] 세계의 시선이 아시아로 향하는데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 문재인.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문재인도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대선은 끝났고, 청와대 입성도 끝났다. 약식취임식 이후 그의 일정은 빽빽한 것 같다. 현재까지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일단 안도한다. 모든 국민이 다 그러하겠지만 “더 두고 봐야지, 끝을 봐야지” 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2009년 아침 출근길, 우체통에서 꺼낸 조간신문 1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기사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즈음 이웃 나라 일본에선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사퇴했었다. 그의 정치자금 담당 비서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던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부패정당 자민련을 몰아내고 일본정치를 일신하겠다던 그 사람의 불법 의혹이 터지자 여론은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40대에 자치상과 간사장을 지냈던 정치실력자인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다나카와 전 총리, 카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 등은 공교롭게도 일본 정치사에서 금권정치 대명사로 통하던 사람들이었다. 그의 40년 정치 인생의 최종목표는 총리였다. 그걸 눈앞에 둔 상황에서의 그의 사퇴는 씁쓸했다. 또 다른 이웃 대만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천수이벤의 점심은 언제나 고구마였다. 친구들이 볼까 봐 두 팔로 가리고 얼굴을 파묻은 채 먹었다. 대를 이어오는 빈농 집안, 문맹인 부모, 그러나 그는 신동이었다. 초·중·고를 전교 1등으로 졸업, 22세에 대만 최연소 변호사가 되었다. 다음 해 중학교 동창회에서 우수전을 만났다. 우수전의 부친은 이름난 의사였다. 여섯 살 딸에게 집 한 채 값의 피아노를 사줄 정도였으나, 천수이벤을 한번 본 우수전은 막무가내 그와의 결혼을 감행했다. 대만의 제2 도시 미려도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인권기념행사에서 시위자들과 경찰이 충돌, 49년 계엄령선포 이래 가장 격렬한 시위였다. 주동자들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그의 친구 하나가 천수이벤에게 변호를 부탁했다. 고생만 하고 수임료를 못 받을 것 같아 망설이던 그를 재촉한 건 우수전이었다. “이런 사건을 맡지 않으려면 뭐하러 변호사를 하느냐” 였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그는 정치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거유세를 다니던 우수전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우수전의 뒷받침으로 천수이벤은 입법의원이 되어 의정활동을 했다. 그의 대정부질문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고 부정부패 폭로에 앞장섰다. 그가 국민당의 금권정치를 비판할 때 국민은 후련했다.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대만 전역을 누비며 두 팔로 장애인 부인을 안고 유세장에 나서면 모두가 숙연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주변 인물이 연루된 뇌물수수로 감옥에 갔다. ‘대만의 아들’에서 ‘대만의 치욕’이 되었다. 노 전 대통령과 닮은 데가 있다. 사람이 두 발로 서서 지구를 지배하고 살면서 탐욕과 비열함을 다스리지 못한 모습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자신의 생명과 죽음이 치욕스럽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해본다. 앞으로의 세상은 아시아 중심이 되리라 학자들이 내다보고 있다. 한국도 일본도 대만도 이런 추한 모습은 더 보이지 말아야 지구 위의 중심이 되리라. 문재인 대통령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오래오래 이어갔으면 참 좋겠다. 부디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문재인(問題 因)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믿고 싶다. 김령/시인, 화가

2017-05-26

[김령의 퓨전에세이] 남자들이 립스틱을 바른다는데

미장원에서 손톱을 더운물에 담갔다가 정리를 하고 반짝거리는 매니큐어를 바르고 로션을 듬뿍 발라 손 마사지를 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는 고국 소식을 접한 지는 오래되었다. 요즈음 한국 TV를 보면 남녀 할 것 없이 성형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힘이 든다. 눈꺼풀 수술은 그렇다 치고 코를 너무 높여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남자들이 눈 화장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입술에 붉은 립스틱까지 바르고 있다. 또 어려 보이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이마를 덮는 머리 모양이 대세다. 너 나 없이 앞머리를 내리다 보니 누가 누군지 정말 알 수 없다. 남녀 탤런트나 가수 배우 모두 비슷비슷해서 분간이 어렵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뭔가 뒤죽박죽, 한국인 고유의 얼굴들이 사라지고 가짜만 꽉 찬 나라 같아 정직하게 말하면 고국이 싫어질 때 가 있다. 손대지 않은 순수한 한국 얼굴을 볼 때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반갑다. 생각해보면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남녀가 평등하고, 몸이 최고의 가치이며, 외모가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세상이니 성형을 탓할 수만 없긴 하다. 0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쓴 『The against boys』라는 책 속에서 “Let boys be boys”라고 외친 것도 2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단순히 외모에 관한 것이 아닌듯하다. 세상이 변하려고 남자들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간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들의 수컷들이 점차 암컷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그 이유를 환경호르몬 등에 오염된 탓이라고 했다. 영국의 비영리기관인 켐 트러스트가 세계 250여개의 논문을 조사한 결과 이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주의 로체스터 연구소는 환경호르몬인 프랄레이트의 수치가 높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자아이에게 신체 구조적 이상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네델란드 에라스무스 대학의 연구에서는 플리염화페닐에 노출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자아이들이 인형이나 찻잔세트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캐나다 러시아 이탈리아 등의 화학물질 오염지역에서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두 배 정도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수컷이 암컷화 되는 현상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물고기 두꺼비 찌르레기 등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며, 알라스카에선 수사슴의 3분의 2가 뿔이 제대로 자라지 않고 있다고 한다. 비영리단체인 ‘환경보건과학’의 피티마이어 박사는 “정교하게 균형 잡힌 호르몬 체계에 우리는 10만 개의 화학물질을 뿌리고 있어 역사상 가장 빠른 진화단계를 밟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위에 암컷들만 남는다면 종족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스티브 호킹 박사는 우주탈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100년을 버티기 힘들다하고, 역사학자들은 우리가 문명 후기에 와 있다하고, 캘리포니아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조목조목 문명 붕괴설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지구위에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일까? 모든 문명은 최전성기를 누린 직후에 붕괴되어 왔음을 증명하고 있는데…. 김령/시인·화가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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