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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칼럼]거울과 창문

타인의 문제를 대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타인의 문제를 창문으로 보는 사람과 그것을 통해 자신을 살피는 거울로 보는 사람입니다. 창문으로 보면 상대의 모습만 보이고 자신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리한 비판과 평가만 남고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가슴은 차가움으로 채워지고 그들의 언어는 날카롭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걸어다니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만 기쁨과 감사보다 불만과 불평이 그들을 따라다닙니다. 타인의 문제를 거울처럼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문제 앞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자기 자신입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도 모세의 혈기도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타산지석이요 반면교사가 됩니다. 어떤 상황도 예수님이라는 프리즘을 한번 통과해서 이해하려 합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나도 그 분의 마음이 상처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분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내 자신의 감정이나 자아에 이끌리는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의 옷을 입고 보면 그를 축복하게 됩니다. 모두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연약함을 볼수록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따스한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창문에서 거울로 바꾸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해도 오히려 축복하라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그 잣대로 자신이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주님이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대하셨다면 어느 제자도 사도행전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제자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했을 때 그에게 다가온 주님의 모습은 책망과 심판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진실로 사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 때문에 용서 받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신앙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땅 위에서 발을 딛고 서 있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허물과 죄악으로 심판받아 마땅할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으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나의 죄를 위해 피흘리신 주님의 상처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 천국에서 살아갈 날을 미리 맛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지배하는 천국의 그림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2019-03-03

[사랑칼럼]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영국 런던에 있는 WEC 선교본부는 오래된 캐슬을 기증 받은 곳입니다. 지하실에 내려가면 수 많은 가방이 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빛 바랜 가방 위에는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합니다. 선교지로 떠났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주인을 기다리는 가방입니다. 위층 예배실로 올라가면 걸려있는 수십 개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가방의 주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아 훈련을 마치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의 삶을 불태운 선교사들입니다. 더이상 가방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거닐고 있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가슴을 품고 그렇게 선교지에서 삶을 보냈습니다. 우리 나라도 130여 년 전 이름도 생소한 조선이라는 땅을 향해 수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왔고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얼마전 저희 교회 집회에서 에디오피아 마장족을 위해 지난 20년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해온 김명환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선교보고를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주님을 체험한 후에 선교사로 삶을 헌신하고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지난 20년 동안 쏟은 땀의 결실로 마장부족 언어로 신약성경이 탄생했습니다. 신약성경을 번역하는데 20년이 걸렸고 진행되는 구약성경이 끝나려면 앞으로 수십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그때면 성경전체를 마장족 자신의 언어로 읽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고백을 통해 그 긴 세월을 헌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인내와 사랑이었습니다. 현지인들에 대한 판단하는 마음으로 실망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이 사람들을 사랑한단다.” 주님의 그 마음 가지고 그 긴 세월을 인내하며 오늘까지 주님의 마음으로 선교를 감당해 왔다는 고백은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각처에서 주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또한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선교적 삶을 돌아보며 결단해야 합니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교적 사명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켜 파송한 이유가 선교적 사명 때문입니다. 선교적 사명에는 순종하는가 거부하는가의 반응이 있을 뿐이지 피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닙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가 가져갈 유일한 열매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변화된 영혼들 뿐입니다. 주님, 나의 삶이 주님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세상을 품는 글로컬 교회가 되게 하소서.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2019-02-15

[사랑칼럼]부르고 불러도 고마운 이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누구든지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모사랑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도 다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명령이 부모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처절한 고통의 순간에도 남겨두신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십니다. 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음의 잔을 마신 예수님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땅 위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발견하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몸을 찢어내는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면서도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 소리에 모든 고통을 잔잔한 미소로 잊으시는 어머니. 아이의 조그만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자녀가 아파할 때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을 태우시는 아버지. 자식이 조금이라도 잘 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드려도 희생이 아니라 보람으로 여기시는 부모님. 땅 위에서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부모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희생의 예수님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아직 사랑할 어머니가 계시고 존경할 아버지가 계신다면 땅 위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녀가 공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한시 구절처럼 언젠가 우리 삶에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어머니가 없고 존경하고 싶어도 존경할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일로 미룰지라도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은 오늘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부모 사랑은 하나의 윤리를 넘어 진실한 신앙의 증표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가슴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했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마지막 호흡이 가까이 왔을 때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고백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좀 더 일찍 어머니께 사랑과 존경을 충분히 보여드리지 못했던가! 아직은 시간이 있는 줄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시간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직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면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고마움을 표현해 보십시오. 부르고 불러도 고마운 이름이 부모라는 이름입니다. 자녀로 인하여 미소짓는 부모는 세상에 아무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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