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중앙 칼럼] 공자가 소정묘를 처단한 이유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진짜, 가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가짜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각종 명품을 모방한 짝퉁 제품은 어느 집에나 하나쯤 있을 정도다. 예술품, 특히 미술계에서의 위작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 검찰에서 발표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품 판정에 대해 유족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뉴스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그럴듯한 배경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말 실력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인연과 아부로 차지한 것일까. 철이 들면서 이 세상에 진짜 같은 가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초 한국에 소개된 '게맛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게살'로 알았다. 하지만 '게맛살'은 명태 등 생선 살과 향료를 주 원료로 만든 어묵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게맛살은 게살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있다. 그렇다, 게맛살과 게살은 질적으로 다르다. 게맛살은 사이비에 다름 아니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본질이 완전히 다른 것이 '사이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이비의 달콤함에 쉽게 빠져든다. 달콤함에 빠지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진짜 게살 덩어리를 주면 "이건 진짜 게맛살이 아니다. 진짜를 달라"고 외칠지 모를 일이다. 이른바 가치관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세이 저자는 "가짜를 진짜로 아는 사람은 진짜를 가짜로 간주한다. 사이비 맛에 길든 사람은 본질을 껄끄러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비극이다"고 갈파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는 수많은 '진짜와 가짜', 즉 '진위'를 가늠하게 한다. 그런데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다. 분명 진실은 있는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짜가 가짜로 대우받고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호통치고 뻣뻣하다. 누가 조사위원이고 누가 조사대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거짓말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거짓으로 매도된다. 왜곡이다. 왜곡은 사이비다. '~인 것'을 '아닌 것'으로, '아닌 것'을 '~인 것'으로, 나아가 '아닌 것'으로 '~인 것'을 절멸시킨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에 목민심서가 있다. 백성을 위해 일하는 목민관의 도리를 기록한 이 책에서 그는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는 일을 할 때만 존재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세력자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산은 세력자의 횡포를 징계한 대표적 사례로 공자가 소정묘를 처단한 사건을 들었다. 공자는 노나라의 대사구(법무장관)가 된 지 7일째 되는 날, 정치를 문란시킨 소정묘를 죽여 그 시체를 3일간 궁정에 내걸었다. 이에 한 제자가 공자의 행위에 의문을 제기하자 공자는 소정묘가 5대 악을 범했기 때문에 죽음이 마땅하다고 답했다. 공자는 ▶만사에 통달해 있으면서 흉험한 짓만 하는 것 ▶행동이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것 ▶말이 거짓되고 교활한 것 ▶괴이한 일을 잡다하게 많이 알고 있는 것 ▶틀린 것은 교묘하게 옳은 것처럼 꾸며대는 것을 5대 악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현대에 적용하면 고위권력층의 친인척, 비서실, 지방 유지, 또는 이들의 힘을 믿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세력자들이다. 다산은 이들의 횡포를 가차없이 척결하고 세력을 억눌러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통치자나 권력자, 국가공무원이 한 개인이나 정파, 세력을 위해서 일했다면 과감히 도려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가짜가,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을 막을 수 있다.

2016-12-26

[중앙 칼럼] '주권자님'이 행동하는 시대

'한국이 좋은 나라가 되어야 미국사는 한인들과 2세들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명제에 크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없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뼈아픈 현실이지만 국가와 국민은 더 도약할 기회를 갖게 됐음이 분명하다. 이번 사태가 바꾼, 아니 업그레이드시킨 많은 것들 중의 한 가지에 주목한다. 바로 '주권자님들'의 보폭이다. 최순실 사태가 탄핵으로 번지면서 눈에 띄게 많아진 표현 중의 하나는 바로 '주권자님'이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그 숫자가 많다고 해서 존칭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1표를 행사하는 주권자도 존중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님만 님이 아니다. 이는 이번 사태가 가져온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업그레이드 중 하나다. 가끔 한국의 70~80년대 '주권자님들'에 대한 대접이 어떤 식이었는지 설명하면 듣는 10~20대들은 말도 안 된다며 모두 놀란다.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희생을 강요받고 쉼없이 달려야만 했던 많은 노동자들. 국가 권위를 수호한다는 이유로 다수의 다양한 목소리는 무시되고 억압되기 일쑤였다. 제도적인 폭력과 기업의 폭력도 난무하던 시기였다. 건전한 비판과 주장은 도전으로 인식됐고 '적'으로 규정되곤 했고, 이내 사회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곤 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주권자님들은 이제 이전의 선배들과 달리 자유로운 시기를 맞이했다. 민권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목소리도 분출됐고 여론과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교육 현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발전이 있었다. 소수의 목소리인 줄 알았던 정치적 주장들이 공론화되고 폭넓은 논쟁이 가능해진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주권자님들은 지쳐있었다. 경기는 하강곡선을 그렸고 비정규직에 신음하는 주권자님들이 적지 않았다. 주권보다는 빵이 더 급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 주권자님들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광장의 목소리'다. 동시에 국가의 녹을 받는 공무원들은 '무능' 자체가 '죄'일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 학습을 통해 배운 것이다. '먹거리 주권'에 대한 광장의 외침은 여러 파장을 불러왔으며 지금엔 4대강 사업, 에너지 수출사업에 대한 의혹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권자님들이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기대된다. 후세들은 우연치 않게 '12345678'로 상징화된 탄핵 투표 결과도 기억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주권자님' 스스로 길거리에 나서서 사실상 21세기 한국판 '권리 장전'을 외친 것이라고 봐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겸연쩍은 면도 없지 않으나 좀 늦으면 어떤가. 일이 성사된다면 다행이 아닌가. 누구든지 지지여부를 떠나 비판하고 견제하고 훈계할 수 있는 주권이 국민들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온 것을 '현장 학습'한 것이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해 '현시대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판도 좋지만 투표로 참여하고 나서 말하라." 올해의 기운을 이어 한국의 젊은 주권자님들의 의무와 권리가 새롭게 업그레이드될 역사적인 2017년을 기대해 본다.

2016-12-18

[중앙 칼럼] 미디어도 정치도 소통이 관건이다

양방향 미디어의 호흡은 가쁘고 정신없지만 대단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게 바로 대세인 이유다. "답답하니 앞에 있는 컵 좀 치워주삼." "인터뷰 재미없네요. 빨리 끝내주시죠." "왜 매체별로 선거인단 집계가 다른가요." "전화 볼륨이 안 들려요. 키워주세요." "벌써 펜실베이니아는 넘어 갔네요." 지난 대선 토론회와 선거일 개표방송을 10시간 가량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하면서 마주한 시청자들 댓글 수천개 중의 일부다. 솔직히 신문과 라디오 방송의 경험을 가진 기자가 맞이하기엔 조금은 생경한 과정이었다. 이미 콘텐트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TV와 온라인 매체를 익숙하게 봐왔지만 실제 제공 당사자의 입장에서 시청자들을 대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던 것이다. 특징들은 이랬다. 먼저 '자유롭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댓글로 옮긴 표현과 내용은 다른 구애를 받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 철학은 물론 사사로운 조그만 것들에 대한 자기 표현에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누군가 자기 생각의 배경과 이유에 대해 질문 받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당했다. 물론 트럼프 후보에 대한 소위 '수줍은 지지'가 반영된 부분은 있었지만 의외로 거침없는 표현과 자신감은 독특했다. 둘째로는 나름의 '정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명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익명의 공간일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과격한 발언을 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웃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반영하면서도 여전히 예의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뿌듯하게 했을 것이다. 셋째로는 TV나 신문처럼 일방적인 소통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1~2주가 지나도 이메일로, 텍스트 메시지로 평가를 보내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알고 있는 지인들의 평가가 상당수 차지했지만 이들의 반응 정도로 가늠하자면 일반 시청자들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놀라운 것은 '공간 초월'의 메커니즘이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한국과 미국이 아닌 일본, 필리핀에서도 내용을 지켜봤으며 시간대가 다른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도 지켜봤다고 알려왔다. 이들은 다른 지역, 다른 시간대, 다른 접근 방식과 철학을 갖고도 소통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보수적 공급 방식을 가진 매체에 종사해온 기자로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모든 매체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그 뿌리를 달리하는 목소리와 생각들을 섭렵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래서 이시대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에 열중하는 것일 테다. 자신의 목소리로 참여하고 주장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스려가는 것이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부와 사회 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국민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쉬움이 솟는다. 조그만 화면 아래 크게 자리를 차지한 컵을 치우라고 댓글을 준 시청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합당하다면 과감히 수용해 실천하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트럼프 당선인과 박근혜 대통령이 기억할 시간이다.

2016-11-24

[중앙칼럼] 강석희·최석호·조재길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발전은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트로이카(삼두마차)에 힘입은 바 크다.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제약됐던 당시 한국 영화계는 이들 미모의 여배우 3인방에게 적지 않은 빚을 졌다. 30~40년 전 한국에 여배우 트로이카가 있었다면 현재 오렌지카운티와 인근 지역 한인 정치계엔 '한인 1세 시의원' 트로이카가 존재한다. 어바인의 강석희 시장과 최석호 시의원 세리토스의 조재길 시의원이다. 강 최 의원은 2004년 미주한인 이민사상 초유의 단일 도시 한인 시의원 동반당선 기록을 세우며 어바인 시의회에 입성해 오렌지카운티 한인 정치력 신장의 쌍두마차가 됐다. 3년 뒤인 2007년 조재길씨는 2전3기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세리토스 최초의 한인 시의원에 당선됐다. 한인 1세 정치인 트로이카가 완성된 것이다. 트로이카는 그 동안 먼 길을 달려 왔다. 강 의원은 유색 인종으로선 최초로 어바인의 수장이 됐고 지난 해 시장에 재선됐다. 최 의원 또한 2008년 여유있게 재선 의원이 됐다. 선출직이 아닌 순번제이긴 하지만 한인으로선 세리토스 최초로 시장을 지낸 조 의원도 지난 달 재선에 성공했다. '한인 1세 시의원 트로이카'가 '재선 의원 트로이카'로 거듭 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4년 이후 1~2년 간격으로 끊임 없이 선거를 치러 온 이들의 존재는 OC 및 인근 지역 한인 정치력 신장에 기폭제 구실을 했다. 이들 트로이카에게 올해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더 큰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최 의원은 일찌감치 내년 11월 열릴 어바인 시장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 강 시장 퇴임 후 최 의원이 시장에 취임하게 된다면 어바인에선 전국 최초로 한인 2명이 잇따라 시장을 지내는 대기록이 수립된다. 목표를 정한 최 의원과 달리 강 시장과 조 의원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더 큰 무대 진출을 위해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기가 왔는데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오리무중인 탓이다. 강 시장이 도전할 수 있는 무대로는 카운티 수퍼바이저 선거와 가주 하원 연방하원 선거가 있다. 문제는 이들 선거구가 모두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 지역이란 점이다. 민주당 소속인 강 시장에겐 어느 하나 만만한 목표가 없다. 하지만 강 시장 주위 인사들은 "그 동안 보여준 경험으로 보아 강 시장이 출마할 경우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달 재선에 성공한 조 의원도 당선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부터 장고에 돌입했다. 조 의원은 가주 하원 56지구 출마를 놓고 고민 중이다. 56지구는 토니 멘도사 현 의원이 내년에 임기제한으로 출마를 할 수 없어 무주공산이 된다. 게다가 56지구는 아시아계 주민 비율이 20%에 육박할 정도여서 한인 후보가 출마하기 좋은 선거구로 가장 먼저 꼽혀 온 곳이다. 이같은 배경은 조 의원이 '중대 결심'을 놓고 고민할 만한 충분한 여건을 제공한다. 한인 재선의원 트로이카는 머지 않아 다음 여정을 확정하게 될 것이다. 결심의 시기는 '선거구 재조정'의 윤곽이 드러나는 8월을 전후한 시점이 유력하다. 트로이카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트로이카가 내년 선거 이후에도 건재할 수 있다면 한인 정치력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도 대중의 지지와 성원을 먹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2011-04-12

[중앙칼럼] 미국생활이 궁금한 한국 네티즌

웹사이트 '중앙USA' 코너 생생하고 훈훈한 기사에 한국 네티즌들 폭풍 클릭 올들어 한국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에 '중앙USA'코너가 새로 생겨 미국 소식을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작은 창'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이미 한국에서도 세계 각국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코너에 어떤 소식을 보내야 '좋은 창'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또 미주한인 사이에서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정작 한국에 사는 한국인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는 뉴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네티즌들은 미국에서 생겨난 한인 사이의 여러가지 일들에 고른 관심을 보였고 점차 조회수도 높아지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고 특히 같은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모양이다. 최근에 보낸 기사로 다발성 암을 극복하고 USC의대에 입학한 제니 김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수만명이 클릭하고 "숭고한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는 고마운 댓글도 달렸다. 4번의 암 10번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는 제니의 스토리에 한국의 네티즌들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화답했다. 인정받는 변호사직도 버리고 아이의 자폐치료에 매달린 세실리아 장 희망재단대표의 기사도 많은 반향을 불러왔다. 3년 넘는 치료 끝에 아이의 자폐를 떨쳐낸 그가 '자폐치료 전도사'로 나선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다. 사연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시선을 집중시키기 마련이다. 선천성 색소결핍증인 백색증을 앓고 있는 12살 소녀의 아버지가 불법체류 신분으로 추방위기에 몰렸다는 기사와 미국으로 남매를 입양시킨 노모가 40년만에 중년의 '아이들'을 처음 만난 이야기도 미국과 한국의 모든 코리안들을 가슴 저미게 했다. 하와이 이민초기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사연들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한국에 계속 소개돼 역사 속에 숨어있던 새로운 사실을 찾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계적인 불황에 경제관련 기사도 높은 관심에서 빠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인구유입을 위해 땅을 공짜로 주는 마을이 있다는 기사는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클릭이 일어났다. 전세난 속에 부동산값이 들썩이는 한국에서는 '공짜 땅'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화들짝 놀랄 일인 것이다. 중국의 뭉칫돈이 몰려와 코리아타운의 부동산을 거둬간다는 기사에는 "중국의 야심찬 팽창이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의견들이 모였다. 미국과 한국을 잇는 '중앙USA'창을 환한 소통의 빛으로 비추려면 조금의 수고도 필요했다. '개스비'는 '주유비'로 고쳐 써야 한국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개스비'라고 쓰면 한국에서는 '도시가스요금'으로 착각할 수 있다. 마일은 킬로미터로 인치는 센티미터로 고쳐야 한국에서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LA 뉴욕 워싱턴DC 인근의 도시 이름이나 길 이름도 한국 네티즌들을 위해 일일이 LA남쪽 뉴욕 중심 등의 수식어로 설명을 보태야 했다. 한국에서 미국의 뉴스를 들을 때 워싱턴 정가와 뉴욕 금융권 소식 등을 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 다르게 미국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들여다 보면서 서로 교감하는 창을 만들 수 있다면 약간의 설명을 더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 아니라 신명나게 휘파람 불 일이다. 지구상에 있는 코리안 모두를 기분좋게 만들 수 있는 멋진 일들만 가득해서 기사가 넘쳐난다면 어깨춤 또한 마다하지 않으리라.

2011-03-09

[중앙칼럼] 엘리트 한인 2세가 전하는 북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파이낸싱 플래닝 회사를 경영하며 나름 경제적 성공도 이룬 한인 2세였다. 그런 그가 탈북자를 지원하기 위해 중국 선교를 떠나겠다며 회사를 정리하고 나서자 부모는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게다가 탈북자라니. 미국에서 고생하며 키운 아들을 말리기 위해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렇게 중국으로 훌쩍 떠났다. 마이크 김(33)씨의 이야기다. 지난 6일 한미연합회(KAC) LA지부 주관으로 웨스트LA의 조그만 책방 '자이언트로봇 2'에서 열린 자신의 책 ‘북한탈출기’ 사인회에서였다. 책방에 모인 50여명의 한인 2세들과 아시아계 학생들, 또 파란 눈의 미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중국에서의 4년과 탈북자들의 생활을 생생히 들려줬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벗어난 탈북고아와 탈북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여성들은 매춘부로 전락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팔려갔다. 대낮에 의자에 묶여 있는 탈북 고아의 몸값을 매겨 판다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했지만 결핵으로 죽어가는 엄마와 생활 때문에 매춘부로 살아가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녀를 제3국가로 보내기 위해 국경 근처인 언덕을 넘어갔습니다. 도중에 기력이 다한 엄마는 ‘딸만이라도 구해달라’며 산길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렇게 두고 갈 수가 없어 엄마를 업고 부축하면서 겨우 국경을 벗어났습니다. 그 때 ‘살려줘서 고맙다’며 눈물로 인사하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중국여행 도중 방문한 지하교회에서 만난 탈북고아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도 머리 속에는 탈북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1년 동안의 준비를 마친 그는 2003년 편도 항공권과 가방 2개를 들고 북한 국경을 향해 시카고를 떠났다. 북한인이 운영하는 태권도장 수강생으로 들어간 그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름한 집에서 침낭 한장에 의지해 바닥에서 자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씨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머물면서 ‘크로싱 보더스(Crossing Borders)'라는 기독교 비정부기관을 설립해 탈북자 지원사업을 펼쳤다.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중국 공안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활동은 주로 점조직으로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갈 곳 없는 탈북자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했고 수백 명을 이웃 국가로 탈출시켰다. 그중 일부는 현재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책 속에는 북한의 현실과 탈북자들의 처참한 생활이 더 생생한 모습으로 기록돼 있다. 또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하면서까지 탈북자 구하기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도 담겨 있다. 반면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도 있다. 김씨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전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탈북자 문제에 더 무관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정권 퇴진을 이끌어낸 민주화 시위가 리비아에 번져 진행중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된 이집트는 새 각료를 세우는 등 독재청산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반면 리비아는 무력진압으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는 언제쯤 민주화 바람이 불까. 마이크 김의 북한탈출기가 ‘한국의 옛 과거’로 남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해 본다.

2011-02-24

[중앙칼럼] 엘리트 한인 2세가 전하는 북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파이낸싱 플래닝 회사를 경영하며 경제적 성공도 이룬 한인 2세였다. 그런 그가 탈북자를 지원하기 위해 떠나겠다며 회사를 정리하고 나서자 부모는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게다가 탈북자라니. 부모는 미국에서 고생하며 키운 아들을 말리기 위해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렇게 중국으로 훌쩍 떠났다. 마이크 김(33)씨의 이야기다. 지난 6일 한미연합회(KAC) LA지부 주관으로 웨스트LA의 조그만 책방에서 열린 자신의 책 '북한탈출기' 사인회에서였다. 책방에 모인 50여명의 한인 2세들과 아시아계 학생들 또 미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중국에서의 4년과 탈북자들의 생활을 생생히 들려줬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벗어난 탈북고아와 탈북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여성들은 매춘부로 전락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팔려갔다. 대낮에 의자에 묶여 있는 탈북 고아의 몸값을 매겨 판다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했지만 결핵으로 죽어가는 엄마와 생활 때문에 매춘부로 살아가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녀를 제3국가로 보내기 위해 국경 근처 언덕을 넘었습니다. 기력이 다한 엄마는 '딸만이라도 구해달라'며 산길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렇게 두고 갈 수가 없어 엄마를 업고 부축하면서 겨우 국경을 벗어났습니다. 그 때 '살려줘서 고맙다'며 눈물로 인사하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중국여행 도중 방문한 지하교회에서 만난 탈북고아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도 머리 속에는 탈북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1년 동안의 준비를 마친 그는 2003년 편도 항공권과 가방 2개를 들고 북한 국경을 향해 시카고를 떠났다. 북한인이 운영하는 태권도장 수강생으로 들어간 그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름한 집에서 침낭 한장에 의지해 바닥에서 자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씨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머물면서 '크로싱 보더스(Crossing Borders)'라는 기독교 비정부기관을 설립해 탈북자 지원사업을 펼쳤다. 중국 공안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활동은 점조직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갈 곳 없는 탈북자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했고 수백 명을 이웃 국가로 탈출시켰다. 그중 일부는 한국에 정착했다고 밝혔다. 그의 책 속에는 북한의 현실과 탈북자들의 처참한 생활이 더 생생한 모습으로 기록돼 있다. 또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탈북자 구하기에 나서고 있는 진한 사랑도 담겨 있다. 반면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도 있다. 김씨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전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탈북자 문제에 더 무관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정권 퇴진을 이끌어낸 민주화 시위가 리비아에 번져 진행중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된 이집트에서는 새 각료를 세우는 등 독재청산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반면 리비아는 무력진압으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는 언제쯤 민주화 바람이 불까. 마이크 김의 북한탈출기가 '한국의 옛 과거'로 남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해 본다.

2011-02-23

[중앙 칼럼] 유럽 경제위기 '강건너 불' 아니다

경제학 행정학 공공정책학 등에서 가장 해묵은 논쟁 중 하나가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에 관한 문제다. '내 뒷마당만 아니면 된다'는 의미로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의 한 인기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의 표현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 할 수 있다. 갑작스레 님비 현상을 들먹이는 것은 이러한 문제가 비단 사회 현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출발해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융위기로 세계는 큰 몸살을 앓아왔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한 것은 물론 세계 각국도 같은 현상을 겪었다. 다행히도 각국 정부는 전에 없는 긴밀한 공조를 통해 세계 경제의 추가 하락을 막고 올해 초부터는 회복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주요 경제학자들의 경고도 많았고 회복세로 돌아서려면 적어도 3~5년은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세계 경제는 놀랄만큼 빠른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에 큰 걸림돌이 등장했다. 남유럽 재정위기라는 암초가 불거진 것이다. 그리스에서 촉발된 재정위기는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으로 옮겨갔으며 영국으로까지 확대될 위기에 몰렸다. 신조어로 '돼지들(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의 머릿글자를 딴 말)'이라는 경제용어까지 등장했다. 과도한 국가 부채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탐욕스런 국가들이라는 뜻이다. 특히 지구촌이 전에 없이 글로벌화 된 상황에서 재정위기라는 불길이 영국까지 번지면 이는 곧바로 세계 경제로 확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곧바로 최악의 시나리오인 '더블딥(경제가 회복했다 다시 불황으로 빠지는 현상)'으로 연결됨을 의미한다. 이같은 남유럽의 재정위기도 조기에 진정시킬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이 때문에 유로존 및 IMF내에서도 이미 오랫동안 그리스 처리 문제를 두고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다른 국가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다. 이 때문에 IMF와 유로존 국가들은 문제 해결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일단 자신들 뒷마당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만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했고 이 때문에 어느 국가 하나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들 국가들은 각국의 이익을 지키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했다. 이 사이 그리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결국 유로존 위기라는 상황으로까지 확대됐다. 위급한 상황을 뒤늦게 인식한 유로존과 IMF는 결국 240억유로(약 315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를 실시하기로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돼 그리스에 대한 재정 지원만으로 불길을 끄기에는 늦은 상황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천억유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옛말처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결국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세계 경제에 또 한번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2010-05-02

[중앙 칼럼] '주류사회'에 대한 잘못된 정의

미주 한인사회에서 '주류사회'란 표현은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한인언론에선 주류사회 대신 '타인종 커뮤니티'란 표현이 늘기 시작했다. 타인종 커뮤니티란 한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주류사회'의 대안으로서도 흔히 쓰인다. 한인언론들도 예전엔 주류사회란 표현을 많이 썼다. "우리 자녀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은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평소 "타인종 커뮤니티에 진출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타인종 커뮤니티'란 말을 언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주류사회 진출'이란 말이 한인들이 스스로를 비주류로 낙인 찍는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주류사회란 표현이 '주류=백인'이란 등식을 소수계 사이에 은연중에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온갖 인종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주류사회'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한인사회가 비주류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시각은 분명 일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사회의 대안으로 등장한 타인종 커뮤니티란 표현은 문제가 없을까. 한인과 비한인을 구분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류사회란 개념의 대안으로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돌이켜보면 주류사회란 표현이 문제가 된 가장 큰 원인은 '주류'가 '사회' 앞에 붙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주류와 비주류는 존재한다. 이는 단일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나 다인종 국가나 매한가지다. 미국 사회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는 인종과 관계 없이 존재한다. 엄밀히 말해 주류나 비주류는 한 사회의 하부구조이다. 사회의 하부구조인 주류 또는 비주류가 상부구조인 사회의 머리에 타고 앉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흔히 단일민족 국가라고 일컫는 한국에서 "주류사회에 진출하자"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각 인종 커뮤니티를 나누어 놓고 주류사회란 표현을 쓰니 특정 인종 그룹의 구성원 모두가 한꺼번에 주류가 됐다 비주류가 됐다 하는 것이다. 이젠 미국 사회란 큰 틀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논해야 한다. 애초에 사회계층적 분류인 주류와 비주류에 인종 개념이 끼어든 것도 문제다. 물론 사회지도층이 백인 일색이던 예전엔 백인 그룹을 주류사회라 칭해도 무리가 없었겠지만 타인종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오늘날엔 은연중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주류사회란 표현을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서구에선 전통적으로 '메인스트림 소사이어티'란 표현을 사용해 왔지만 이는 사회지도층 인사 또는 특정 분야의 주도권을 쥔 그룹을 지칭하는 의미이지 특정 인종그룹을 통칭한 것은 아니었다. 한인들은 전통적으로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유독 집단의식이 강한 한인사회가 개인적 차원에서 분류돼야 마땅한 주류와 비주류란 개념을 커뮤니티에 덧씌우게 된 것 또한 '주류사회'란 어색한 표현을 낳게 된 이유라고 본다. 주류사회란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타인종 커뮤니티란 표현을 원뜻 그대로 이웃 커뮤니티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주류사회란 개념을 대치하는 데 쓰지 않는 것이다. 대신 주류란 표현은 철저히 개인적 차원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주류 정치인 주류 음악인 주류 스포츠 스타 등의 표현엔 인종적 배경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애초에 개개인의 몫이었던 주류란 표현을 제 주인에게 돌려 주자. 그래야 본의 아니게 주류의 대척점에 놓였던 한인사회도 미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란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2010-04-11

[중앙 칼럼]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 박동우 장애정책위원의 연방 고위직 진출은 단번에 이룬 것 아니다

지난 주 파머스앤머천트(F&M) 은행 가든그로브 부지점장으로 재직중인 박동우(58.영어명 조셉)씨가 연방상원의회의 인준을 거쳐 마침내 오바마 행정부 고위직에 해당하는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에 오르게 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추천으로 시작해 상원 인준을 거쳐 이제는 선서식만을 남겨두게 된 박 위원의 백악관 고위직 입성은 분명 한인사회의 큰 경사임에 틀림없다. 그가 오르게 될 정책위원은 연방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직급으로 강영우 박사가 오바마 대통령 바로 전임자인 공화당 소속의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의해 임명돼 지난 2002년부터 6년간 재직하며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직책이다. 15명의 정책위원으로 구성된 국가장애위원회는 평소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다 연방 차원의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현안이 발생하면 워싱턴DC에 모여 백악관에 포괄적인 정책을 건의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이렇듯 미 전체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정책을 마련하는데 있어 박 위원의 큰 활약이 기대되지만 이에 앞서 그가 상원인준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은 한인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소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져 온 박 위원은 한쪽 팔이 없는 소아마비라는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오랜 기간 차근차근 정치 입문을 위한 준비를 해 온 덕에 연방 행정부의 고위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를 꿈꾸는 한인들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그동안 가든그로브 지역을 중심으로한 한인사회에서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통해 얼굴을 알려온 그는 한편으로는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일부를 관장하는 로레타 산체스 연방하원의원을 비롯해 주류 정치인들과 개인적 친분을 쌓으며 한인사회를 위한 각종 정책 마련에 보이지 않게 기여해 왔다. 이를 반영하 듯 박 위원은 OC교통국 교통위원회 장애인자문위원 가주재활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장애인들의 낮은 고용률 개선에 힘써왔지만 이같은 사실이 한인사회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또 2002년에는 가든그로브 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아쉽게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동안 정치계 입문을 노렸던 한인들의 상당수가 한인사회의 일방적 지지를 요구하고 선거 자금 마련의 발판으로만 여기다 낙선하면 결국 저조한 한인 선거율을 탓하고 한인사회와의 관계를 멀리해 왔다. 그러나 박 위원은 낙선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꾸준히 한인사회에 관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주류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다지는데 힘써왔다. 이같은 나름대로의 묵묵함과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지난해 4월 OC주민들 가운데 능력 있는 인물을 행정부에 추천하기 위한 취지로 코스타메사에 구성된 블루리본 커미티와 OC민주당협회 프랭크 바베로 의장 OC에 지역구를 둔 로레타 산체스 연방하원의원 로저 에스피노자 라하브라 시의원 등으로 부터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 추천을 받아 연방상원 인준이라는 큰 대어를 낚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박 위원의 이번 인준은 결국 '스스로 준비된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올해 11월에도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만 6명의 한인들이 각 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왕 나설 선거라면 지금부터라도 내 자신을 돌아보고 차근차근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꼼꼼한 준비과정이 있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2010-03-24

[중앙 칼럼] 빌 게이츠의 '말 실수'

20세기에 들어서기 1년전인 1899년. 당시 찰스 듀얼 미 특허청장이 "발명될 만한 모든 것은 이미 다 발명됐다"는 발언과 함께 대통령에게 특허청 폐지를 건의한 후 사임했다고 알려져 두고두고 비웃음거리가 됐었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고 9년 뒤인 1908년 헨리 포드가 모델 T 자동차를 제작했다. 컴퓨터 인터넷 TV 페니실린 DNA 등의 발명과 발견은 20세기에 이루어졌다. 다음날 다음달을 못보는 사람들을 빗대어 말할 때 많이 인용하는 사례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1995년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이 일화를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는데 1989년 GE의 한 사서가 듀얼 청장이 실제로는 그런 발언을 한적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워낙 재미 있어서 여전히 연설 등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듀얼 청장은 오히려 '미국에서 미래의 진보와 번영은 과학 산업 상업의 확대를 통해 다른 나라를 따라잡는 데 달려 있고 그러기 위해 발명에 집중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발명이 불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다. 특히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한창 발명품을 내놓을 때 특허청장이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자신의 저서에 이런 내용을 실은 빌 게이츠에게도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얘기가 있다. IBM에 도스(DOS)를 납품하는 빌 게이츠는 1981년 막 세상에 나온 IBM PC의 메모리가 640KB로 제한된 것을 옹호하는 의미에서 "640KB면 누구에게나 충분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PC는 인텔 CPU인 8088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메모리가 640KB로 제한돼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상당히 적은 용량이지만 당시 애플II 같은 8비트 컴퓨터의 64KB에 비하면 상당히 큰 용량이었다. 어쨌든 게이츠의 이런 확언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재 위상과 맞물려 독단적이고 한치 앞을 못보는 대표적인 말실수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언자인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여러 사람이 증명하려 했지만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빌 게이츠 자신은 이런 발언을 극구 부인했다. 90년대 중반에 쓴 한 칼럼에서 게이츠는 이 발언에 대해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가끔 멍청한 말도 하고 틀린 말도 하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옛날이라도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정도의 메모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할리는 없다." 그리고 그는 말미에 "내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누구도 어디에서 한 말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은 루머처럼 계속 떠돌아 다닐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작가는 "빌 게이츠의 확고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며 "왜냐하면 이 말이 컴퓨터 업계에서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내달 3일 발매를 시작하게 될 애플사의 '아이패드'와 관련하여 말들이 많다. 생각보다 사전 주문이 적으니까 거품이다 연초에 경쟁사들이 태블릿PC를 많이 내놔서 큰 성과를 못 거둘거다 등 아직 시장에 나오지도 않은 제품을 두고 온갖 관측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비록 허구로 판명났고 본인도 부인하고 있지만 앞의 두가지 얘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2010-03-21

[중앙 칼럼] 불황의 끝이 보인다

정말 숨가쁘게 달려온 기축년 한해도 저물어간다. 2009년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어울리는 한해였다. 특히 경제계 입장에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해였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실업사태를 맞았다. 미국 2위의 전자제품 판매체인인 서킷 시티가 매출 부진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고 새턴 폰티액 같은 자동차 업체가 간판을 내리게 됐다. 라스베이거스의 트로피카나 같은 대형 카지노 업체가 파산절차에 들어갔고 올 한해에만 130개가 넘은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한인사회에 미친 영향도 컸다. 한인 은행으로는 최초로 미래은행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해 강제폐쇄 당하고 곧이어 윌셔은행에 의해 흡수됐다. 또 한인 은행들 사이에는 증자 바람이 불었다. 금융감독국이 요구하는 자본비율을 지키기 위해 증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갈수록 악화되는 경영환경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증자가 선택이 아닌 필요불가결한 요건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경기라는 한파에 어려움을 겪은 곳은 부동산 및 소매 분야였다. 수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파산하거나 개발하던 프로퍼티를 차압당했고 부동산 중개 및 에스크로 융자 등 관련분야 종사자들은 악화된 환경으로 인해 종사자의 3분의1 이상이 업종을 포기해야만 했다. 실제로 LA다운타운 최대의 개발업체중 하나인 아스타니가 지난 가을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미 서부지역 최고 빌딩인 '파크피프스'를 개발하던 업체도 결국 손을 들었다. LA한인타운에서 콘도를 개발하던 업체들도 이미 대여섯곳이 사실상 파산한 상태고 한인 부동산 업체도 올해들어 10개 가까이 문을 닫았다. 수많은 식당 및 소매업소들이 장사를 포기하면서 텅텅 비어가는 상가가 늘어가고 더 이상 모기지 페이먼트가 힘들어진 건물주들은 급기야는 상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결국 봄이 온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살을 에는 북풍한설에도 꽃은 싹을 틔우면서 희망을 얘기한다. 역사상 최대의 불경기라고 하는 대공황도 1930년대 중반부터는 회복의 길을 걸었고 1970년 오일 사태에 따른 세계적 경제 위기 90년대 초반 저축대부조합 대량 파산으로 인한 위기도 곧 극복됐다. 이번 위기도 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종료됐다고 보고 있다. 주택 경기가 이미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고 뉴욕증시는 올해 최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도 경기가 안정세로 진입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을 정도다. 이제 두주만 지나면 희망찬 새해다. 2010년은 경인년 호랑이해다. 경제적 흐름을 보면 내년은 정말 중요한 시기다.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인가 다시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인가를 가름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희망의 싹이 보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희망의 싹을 어떻게 꽃피우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중환자는 혼수 상태에 있을 때 보다 회복될 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회복될 때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건강한 상태로 거듭날지 허약한 체질이 될 지 다시 건강이 나빠질 지 결정된다. 그리고 회복될 때 느끼는 아픔이 더 크다. 지금 경제는 중환자가 중환자실에 있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요양을 하는 단계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길 지는 우리가 결정하게 된다.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새해에는 건강한 경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12-20

[중앙 칼럼] 나만 사는 '인생 역전 홈런' 은 없다

야구 경기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역전 홈런이다. 그것도 패배 일보 직전인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의 뒤집기 홈런은 짜릿함 그 자체다. 이런 전율은 야구팬 뿐 아니라 야구가 직업인 프로선수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역전 홈런이 터지면 벤치에 앉아있던 모든 선수가 홈 플레이트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등과 머리를 두드리며 축하한다. 경기에서 이겼다는 기쁨과 함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에 대한 자축 의식인 셈이다. 인생에서도 역전 홈런은 나온다. 단 한번의 기회를 살려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사람들이다.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을 통해 토크쇼의 전설로 통하는 래리 킹은 고졸이 학력의 전부다. 20대 초반까지 임시직을 전전했지만 그의 꿈은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격 미달인 그를 받아 줄 곳은 없었다. 결국 마이애미의 조그만 지역방송국에서 잡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진행자 한명이 갑자기 그만뒀고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그는 여기서 역전 홈런을 터트린다. 당연히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준비된 대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70대 중반인 그는 요즘도 각종 시사문제의 흐름을 잡기 위해 매일 몇 개의 신문을 정독한다고 한다. '아이포드 신화'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출생에 얽힌 아픔이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다른 가정에 입양이 됐고 대학도 중퇴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집중했고 친구인 워즈니악과 함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내놓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등 굴곡을 겪었지만 10년 만에 당당히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해 신화를 이끌고 있다. 나라은행의 최대 주주이자 벤처신화로 유명한 이종문 회장은 50대 중반에 '알거지'가 됐던 경험이 있다. 당시 '다이아몬드 컴퓨터시스템'을 운영하며 잘 나가던 그는 특허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전 재산을 모두 날렸다. 하루 세끼 먹거리조차 걱정할 처지로 철저히 망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듯이 다시 일어섰다. 50대 이후에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다는 속설을 보란듯이 부셔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스티브 잡스와 이종문 회장의 좌우명은 '좌절은 없다'로 같다. 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언제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실패하고 싶지도 않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도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성공 스토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이면에 깔린 험난한 고생담이다. 줄곧 성공가도만 달렸다면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관중들은 멋진 역전 홈런의 주인공에게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불경기가 길어지다 보니 단번에 역전 홈런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운 상황을 단 번에 뒤집어 보고 싶은 것이다. 카지노를 찾고 로토에 매달리는 것도 이같은 심리다. 더 문제인 것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한 몫 챙기고 보자'는 부류들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다급한 심정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들이다. 대형 사기사건이 꼬리를 무는 것도 이들 때문이다. 역전 홈런은 앞에 주자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무리 장외 홈런을 치더라도 홈런 한방으로는 1점 밖에 낼 수 없다. 역전 홈런을 노리고 있다면 주자들부터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 올해 달력도 어느덧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한방만 노리다 병살타만 치지 않았나 차분히 복기해 볼 시간이다.

2009-11-28

[중앙 칼럼] 동국대 - 예일대의 '신정아 전쟁'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거의 지워졌던 '신정아 사건'이 동국대-예일대의 법정분쟁 확산으로 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파문은 4년전 예일대 미술사 박사를 사칭한 미혼 여성이 고위층의 주선으로 동국대 교수로 취직한뒤 가짜 학위가 들통나 대한민국 주요인사 상당수가 '명문대 사칭 고해성사' 시리즈를 이어나갔던 스캔들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공무원도 있구나"라고 감탄했던 측근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얽히자 '깜도 안되는 사건'이라 일갈했던 비리의 실체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와 한 나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바 있다. 이후 대기업.연구소가 앞다퉈 직원들의 학위 확인에 나서고 심지어 예비 부부끼리도 상대방의 졸업장 제시를 요구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학벌 만능주의 사회가 초래한 한바탕 해프닝이었다. 독자 이해를 돕기위해 복잡했던 사건의 상황 전개를 잠시 되돌아보면 2007년 신 씨의 학위 날조 의혹이 터지자 동국대는 예일대에 진위여부를 의뢰했지만 한국을 얕잡아본 슈마이스터 부원장이 없는 학위증명서가 '존재한다'는 팩스를 한국으로 보내며 일이 더 꼬였다. 이후 예일대는 한술 더떠 "학위 확인 요청 편지를 받은 적도 없고 동국대가 제시한 팩스는 한국에서 위조된 가짜이며 정작 피해자는 우리 학교"라고 발표했다. 예일대의 발뺌 이후 한국 여론은 교수 학위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동국대를 '난도질' 해댔다. 예일대로부터 받은 증명서를 보였지만 여론을 되돌리기에는 턱도 없었다. 예일대의 무례함 때문에 피해자이면서도 이미지가 무참하게 실추된 동국대는 마침내 50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코네티컷주 법원이 최근 정식 재판을 명령 2라운드에 본격 돌입했다. 동국대가 제시한 피해는 ▷재학생 및 향후 지원 학생의 부정적 인식 형성 ▷합격생중 미등록자 증가 ▷모교에 대한 재학생 만족률 추락 ▷사건 관련 교직원 및 교수진 보직해임 초래 ▷정부지원금.기업.동문 후원금 200억 원 이상 감소 ▷법학전문 대학원(로스쿨) 지정 탈락 ▷비난 대응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 지출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일대가 보여준 태도는 한인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실정이다. 신정아가 검찰에 체포된 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쁜 업무 탓에 잘못된 팩스를 보냈다"고 마지못해 시인하면서도 버젓이 소송 기각을 요청하는 이중잣대를 드러냈다. 동국대는 "예일대는 '신정아 스캔들'이 심각한 사안임을 알면서도 한국 검찰의 소환장을 받기 전까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예일대는 "동국대가 불필요한 소송으로 교육.연구 활동 대신 의미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엔 우리가 승소할 것"이라 자신했다. 이제 한 여성이 일국의 정부 관리와 싸구려 소설 같은 연애를 벌여 협찬금을 얻어냈다는 사실은 본류에서 벗어났다. 향후 주요 관심사는 한-미 두 대학의 '자존심 대결'에 따른 최종 법원 판결문로 옮겨졌다. 미국 아이비리그 최고 명문이 한국의 사학을 나락에 떨어뜨린 이번 사건이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자못 궁금하다.

2009-11-20

[중앙 칼럼] 관심을 먹고 크는 '우리 학교'

또 다시 사고를 친 문제아에게 부모가 등을 돌려 버린다. 잘해 보겠다고 다짐을 해도 귀를 닫아 버린다. 한인 사회와 윌셔 사립 초등학교는 사고뭉치 문제아의 훈육을 포기하는 부모와 마지막 기회를 호소하는 자녀처럼 관계가 어긋나 보인다. 한인 커뮤니티와 한국 정부의 지원 속에 1985년 문을 연 윌셔 초등학교는 '한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정규 사립 초등학교'라는 의미있는 타이틀 아래 한때 학생수가 180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남가주한국학원이 1993년 의욕적으로 추가 설립한 중학교 운영에 실패하고 그에 따른 재단 재정 적자 여파로 초등학교까지 위기에 몰리면서 한인 사회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겼다. 이후 한인사회에서 대대적인 모금 캠페인을 전개해 가까스로 파산 위기에 몰린 초등학교와 재단을 기사회생시켰지만 커리큘럼이 기대에 못미치고 한인 학부모들이 외면하면서 학생수가 50여명 선까지 감소 또다시 폐교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회생과 위기를 거듭하는 학교에 지친 듯 커뮤니티의 후원 열기는 식고 윌셔 초등학교 문제는 한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던 윌셔 초등학교가 지난 11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새 운영진과 커리큘럼.교사진 보강 장학생 선발제도 신설 등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학교 정상화를 외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여러 명의 후원자들로부터 30만달러의 초등학교 운영기금을 확보한 것을 두고 개인 투자자에 학교 운영권을 넘기려 한다거나 새 운영진을 비영리기관 형태로 따로 분리해 향후 3년간 자체 운영권을 부여하려는 계획에 대해 남가주한국학원 이사회가 재정난에 대한 책임을 새 운영진에 전가하려는 결정이라는 등 학교측 발표에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의혹과 비난의 시선들이 많은 현실이다. 다른 학교를 찾아 떠나는 학생.학부모들을 붙잡지 못하고 커뮤니티가 어렵게 살린 학교가 또다시 폐교 위기로 내몰릴 때까지 이렇다 할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한 이사회의 무능력을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야 말로 명백한 책임 전가다. 윌셔 초등학교는 우리가 자비를 털어 지켜내고 다음 세대들에 대한 성원과 염원을 담은 '우리 학교'다. 이사회를 비난하기에 앞서 어렵게 살린 우리 학교에 대해 스스로 '관심'을 거둔 한인 사회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윌셔 초등학교의 새 운영진은 학교를 살리는 방안으로 경쟁력 강화를 들고 있다. 운영진을 이끌 서니 박 이사는 "한국어 공부 뿌리교육도 중요하지만 다른 우수 학교들처럼 일반 커리큘럼에 초점을 맞춰 재학생들을 명문 중학교에 대거 입학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규 수업 중에 한국어 수업이 포함돼 있어 주말 한글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고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까지 무료인 학교에 교육 수준까지 개선된다면 한인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다. 학교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단시일 내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다면 그 시일을 앞당길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윌셔 초등학교를 살리는 것은 이사회가 아닌 한인들의 관심과 지원이다. 문제가 있다고 자녀에게 등을 돌리는 듯한 태도라면 학교의 미래는 없다. '우리 학교'는 '우리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2009-08-16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