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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시리즈 '독자를 만나다'] "독자의 설렘 헤아려 신문 제작해 주길"

1976년부터 42년 본지 독자 열린 신문·공정한 논조 최고 깔끔한 편집·활자체도 강점 실생활 정보·깊은 기사 필요 뿌리깊은 나무같은 역할 기대 "지난 44년 동안 신문은 물론이고 한인 언론의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에 뿌듯합니다." 미국으로 건너와 1976년부터 42년째 중앙일보 독자로 인연을 맺어온 박철웅(사진) 일사회 회장은 중앙일보와 흠뻑 사랑에 빠져 칭찬부터 했다. 그는 "최근 오피니언 면에 라인(선)을 없애 '열린 신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신문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한 것은 중앙일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편향된 이념이 아닌 공정성을 염두에 둔 논조는 정론지가 가야할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중앙일보의 칼럼니스트로도 합류했다. 그는 중앙일보가 창간 초기부터 한인사회에 끼친 영향을 회상했다. 박 회장은 "70년대 말 타운내 한인 업소 숫자는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신문 광고를 보고 아파트를 찾고, 차를 사고, 보험인을 물색하는 등 이민생활의 받침대 역할을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본지를 1등 신문으로 꼽는 또 다른 이유로 '깔끔한 편집'과 '선명한 인쇄'를 꼽았다. 그는 "중앙일보를 더 선호하게 된 이유는 눈에 확 들어오는 편집과 읽기 쉬운 활자체"라며 "무엇보다 중앙일보에서만 읽을 수 있는 관심 있는 기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도 중앙일보만의 강점으로 꼽았다. 박 회장은 최근 몇 년 새 신문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며 중앙일보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침에 독자가 신문을 받아볼 때의 산뜻한 기분과 설렘을 생각하면서 신문을 만들면 생명력이 더 길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단순 전달보다는 그 배경을 정확히 분석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까지 제시하는 깊이를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읽히는 기사를 써달라고도 주문했다. 박 회장은 "한인들 실생활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한 줄이라고 더 쓰는 공감 가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며 "사회의 그늘진 곳, 외로운 사람들에게 밝은 빛과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매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또 1.5세와 2세를 더 한인사회에 참여시키는 길잡이 역할도 더 신경 써야할 부분"이라며 "광고로 돈을 벌겠지만 너무 많은 광고는 오히려 독자를 신문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잖습니까. 중앙일보가 뿌리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도 무성한 잎과 열매를 맺어 한인사회가 그 그늘을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김병일 기자 kim.byongil@koreadaily.com

2018-10-03

[창간특집 시리즈 '독자를 만나다'] "중앙일보 여행가이드 덕에 대륙횡단 두번했죠"

80년대 미국온 이민 30년차 지난해 은퇴 후 첫 남부 횡단 8월 3주간 중부 대장정 마쳐 여행가이드 닳을 만큼 숙독 잘못된 뉴스 범람하는 시기에 건실한 저널리즘 필요성 절실 "인제 다 너덜너덜해졌어 최기자, 한 권 더 부탁해도 될까?" 지난달 22일 동안 가주에서 워싱턴 DC까지 대륙 횡단을 마친 이근주(69.레이크우드) 전 TPS 대표와의 전화 첫마디였다. 힘이 넘치는 목소리는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일 것이다. 본지가 7년 전 발행한 '미국 여행가이드' 책자를 보며 매번 여정을 계획하다 보니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고 해져서 불편해졌다는 '자랑섞인' 푸념이다. 지난해 2주여 텍사스를 거쳐 남쪽 횡단을 감행하고, 지난 8월 두 번째로 중부 주들을 훑는 3주 동안의 대장정이 끝나고서다. "주요 방문지를 정하고 도시와 시골에서 보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데 가이드북이 도움이 됐지. 온라인에도 정보는 넘쳐나지만 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신문사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표현과 묘사도 더 깊게 다가와서 좋았어." 이 사장은 80년대 지상사 파견 근무로 시작한 미국생활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운송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잠시 접었던 여행의 꿈을 지난해 은퇴 후 실현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도 장거리 운전과 '풍찬노숙'을 꺼릴만도 한데, 틈만 나면 가이드북을 들고 차 시동을 걸고 싶어진단다. "차를 몰고 운전하는 시간보다는 숙소를 찾고 현지 지역의 색다른 문화와 시스템이 힘들었지. 하지만 겪고 나면 다 추억이야. 30년 미국 생활에 이름만 어렴풋이 듣던 곳들을 직접 보니 시야가 훨씬 넓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 부인 이동숙씨도 거든다. "이젠 중부와 동부에 허리케인이 오거나, 큰 사건사고가 나면 어떤 곳이고 어떤 사람들이 많이 사는지 금방 떠올리게 돼. 30년 전에 진작 횡단 여행을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씨 부부는 이민 초기부터 신문에서 정보와 한인사회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걱정도 앞선다고 말한다. "뉴스와 사람들 이야기를 스마트폰으로 SNS를 통해 듣는다고 하는데 각자의 이해요구에 따른 것들이 많아 때로는 잘못되거나 일방적인 관점을 강요하는 측면이 적지 않아. 종이신문이건 온라인이건 건실한 저널리즘은 반드시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요구가 충분히 분출되는 이상 이들을 접목할 좋은 방법이 나올 것으로 믿어봐야지." 이미 너덜해진 가이드북 대신 새 가이드북을 전해드리겠다고 말했지만 헌 책도 잘 보관하면 추억이라 싶었다. "(헌책도) 누군가 다시 보고 뭔가를 기억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사장님. 책의 좋은 정보가 도움이 됐다니 뿌듯하네요." 이들 부부는 내년에 눈이 녹을 즈음에 아직 못 가본 10개 주를 확인하러 다코타와 와이오밍을 건너는 북쪽 횡단 구간 도전에 나선다. 바람에 불리면서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자는(풍찬노숙), 불편하지만 매번 새로운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최인성 기자 choi.inseong@koreadaily.com

2018-10-02

[창간특집 시리즈 '독자를 만나다'] 나라 지키던 여군, 한인 부부들 '행복' 지킴이로

가주 방위군 공군 6년간 복무 웨딩코디 병행하다 최근 임신 군출신 웨딩플래너로 입소문 출산 후 다시 군입대할 예정 미국와 18년간 중앙일보 구독 "디지털 진화하는 언론되길" 웨딩코디네이터인 서문정(35·사진)씨는 요즘 만삭에도 결혼식장을 다니느라 바쁘다. '블러시이벤트(Blush Event)' 대표인 서씨의 달력에는 출산 예정일 'D-day' 이 외에 수 십개의 또 다른 'D-day' 들이 표시돼있다. 예비 신랑 신부들의 '결혼식'이다. 업계에서 서씨는 일명 '군인 웨딩코디네이터'로 유명하다. 서씨는 지난 2012년부터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공군으로 얼마 전까지 복무해왔다. 계약 기간이 끝나 출산 후 다시 재계약할 예정이다. 주 방위군은 입대 후 기초 군사 훈련 등을 포함해 약 3~4달간의 훈련기간을 거친 뒤 매달 1~2일 정도 복무한다. 그는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밤에 너무 추워 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 안고 잤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씨는 임신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웨딩코디네이터 일과 군 복무를 병행해왔다. 덕분에 서씨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현역 군인' 웨딩코디네이터가 맞냐고 묻는다. 그는 "병행하기 힘들어 군복무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쪽 업계에서 이미 그렇게 알려져서 군인 신분을 저버리기엔 이미 늦었다"며 웃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는 결혼식에 체력은 필수. 그는 군대에서 단련된 체력의 덕을 톡톡히 본다고 한다. 서씨는 지난 2001년 한국에서 유학와 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그 후 대학원 시절 그저 이벤트를 좋아했던 서씨는 처음 한 두 번씩 친구의 결혼식을 도와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어엿한 9년차 웨딩코디네이터가 됐다. 그는 군 출신답게 단호한 결단력과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10년전 서씨는 웨딩 코디네이터라는 직업과는 상반되게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일한 경험도 전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는 여러 건의 이혼 서류들을 보면서 결혼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서씨는 "나부터도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잘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다"며 "덕분에 결혼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고 웨딩 코디네이터 일에 더 진심으로 임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씨는 2년 전 프리랜서 활동을 접고 웨딩코디네이터 회사를 차렸다. 즐겁게 하던 웨딩 코디네이터 활동이 '일'로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한 그는 처음에 회사 차리는 것을 꺼렸지만 서씨의 실력을 알아본 주위 사람들의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현재 직원 7명을 두고 여느 때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서씨는 "세상의 모든 결혼식은 곧 '행복'이다. 기쁜 날을 위해 준비하는 신랑신부들과 발맞춰 가는 것이다 보니 매 순간 감동이다"라며 "신랑 신부 본인이 직접 고른 것들이 결혼식에 채워져 그들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루로 기억되는 것을 볼 때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생활 18년 동안 줄곧 중앙일보와 함께였다고 했다. 이민 초기 뚜렷한 정보 수단이 없었던 미국에서 그는 중앙일보를 신뢰했다고 한다. 서씨는 "한인사회에서 신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은 한인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며 "메이저 신문사인 중앙일보의 기사 내용을 신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를 앞서가는 진화하는 중앙일보가 되기를 독자로서 조언했다. 서씨는 "대부분 SNS을 통해 우리 회사를 알고 찾아온다. 그만큼 인터넷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웹사이트나 모바일을 강화해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중앙일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수아 인턴기자 jang.suah@koreadaily.com

2018-10-01

[창간특집 시리즈 '독자를 만나다'] "신문기사 덕분에 '사회인 야구' 관심 커져"

남가주한인리그 15년째 운영 2003년 4팀서 현재 46팀 확산 토요일마다 경기…열기 뜨거워 야구장 마련못할 때 가장 답답 매주 중앙일보통해 소식 전달 관심 조성해줘 가입 문의 많아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다. 메이저리그 각 팀들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살 떨리는 순위 경쟁을 벌이는 시점이다. 특히 LA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열기가 뜨겁다. 콜로라도 로키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3파전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 빅리그 못지 않게 야구 열기로 펄펄 끓는 곳이 있다. 바로 사회인 야구, 클럽팀들이다. 비록 순수한 아마추어지만 승부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메이저리거 못지 않다. 사회인 리그는 특히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장장 15년의 세월 동안 그 현장을 지키며 달려온 사람이 있다. 남가주한인야구협회(WWW.LAKABASEBALL.COM) 회장을 맡고 있는 케빈 박(사진)씨다. 남가주 한인 야구협회는 야구를 좋아하는 LA 및 오렌지 카운티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모여서 만든 협회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인다. 아무리 뜨거운 날씨에도 리그는 중단되지 않는다.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현재는 '라카(LAKA.LA Korean American) 리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박 회장에게 사회인 야구를 시작한 동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03년 다운타운 의류업과 식품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친선을 목적으로 모여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 후 4팀이 모여 리그를 만들었다"면서 "몇 년이 흘러 점점 커지게 됐고 2009년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눌 만큼 성장했다. 지금은 무려 46개의 한인 팀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도 그때 만들어진 팀들이 LA와 오렌지카운티에 모여 리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5년 동안 리그를 운영하면 어려운 점이 한둘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경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달라 시비가 붙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회장이란 타이틀로 서로 잘잘못을 결정해야한다. 그게 어렵다면 어려운 점"이라며 "그리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야구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할 때 답답하기도 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중앙일보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리그 소식을 한인 커뮤니티와 공유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매주 화요일에 중앙일보 스포츠섹션을 통해 LAKA리그의 중요한 경기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는 "신문에 기사를 내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해준 중앙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신문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라카리그를 알게 되고,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함께 경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가입 문의가 지속적으로 오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원대하고 본질적이다. 박 회장은 "시설이나 금전적인 점에서 개선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라면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사람을 만나게 하고, 그 안에서 형, 동생, 친구가 생긴다. 그런 우애를 만들어가고 있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라카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그런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 가도록 하고 싶다. 아울러 한인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문의:(213)494-4288 (케빈 박) 이승권 기자 lee.seungkwon@koreadaily.com

2018-09-28

[창간특집 시리즈 '독자를 만나다'] "20대도 신문 보고 많은 정보 얻어요"

6년전 미국와 식당 웨이터로 2년간 아껴 첫 식당 '짠' 개업 기발한 메뉴로 승부 입소문 슈토·물대포 등 사업 확장 사업하면 신문 안볼수 없어 타운 소소한 삶 보도해주길 많은 사람이 그렇듯 미국에는 공부를 하러왔다. 2012년 12월 LA에 도착했을 때 지갑에는 100달러뿐이었다. 생활비를 벌어야겠기에 카페 서빙 파트타임으로 '취직'을 했다. 카페에서 서빙을 하면서 '공부에도 힘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서버 일을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두세 군데 매장에서 동시에 일을 하기도 했다. 카페, 횟집, 구이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파트타임 일을 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2014년 본인만의 가게를 열었다. 그렇게 라이언 손(28.사진)씨는 미국 온 지 2년만인 스물 다섯 살에 '사장'이 됐다. 두렵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식당 운영을 도왔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횟집, 장어집, 순댓국밥집 등에서 설거지부터 배달까지. 식당일은 일상이었다. 여러 식당에서 서버로 일을 하면서 '내가 가게를 하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다른 곳에는 없는 메뉴로 손님을 끌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치와 치즈, 돈가스를 결합한 '김피돈'도 그중 하나였다. 또 감자튀김에 달걀프라이를 곁들여 먹는 손님을 보고 감자튀김과 달걀프라이, 치즈, 치토스를 합쳐서 '마약감자'라는 이름을 붙여 메뉴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류언론까지 찾을 정도로 히트메뉴가 됐다. 그렇게 손 사장의 첫 식당 '짠'은 성공을 거뒀다. 이후 규모를 늘려 이제는 일식당 '스시혼', 구이점 '물대포', 로바다야키 '슈토'까지 LA한인타운에 4개 업소를 운영한다. 각 업소마다 마음 맞는 파트너들이 있어 가능했다. 사업 확장이 빠르고 참신한 아이디어 때문에 손 사장과 파트너들을 요즘 타운 요식업계에서는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 힘든 점도 많았다. 특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업 파트너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장사를 시작한 이후 한인타운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특히 최근 한인타운에 타인종들이 많이 유입돼 다양한 인종의 입맛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그는 "백인들은 담백한 맛을 좋아하고, 흑인들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편인데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면서도 "한 메뉴에서 최고가 돼 '노포(대대로 내려오는 오래된 식당)'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중앙일보를 보는 열혈독자다. 20대는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손 사장은 다르다. 그는 "사업을 하면 신문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새로 생기는 법률이나 규정 등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는 주류판매 시간연장 법안이나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 사업에 직결되는 정보들을 신문에서 얻는다. 특히 부동산 섹션을 보면서 꼼꼼히 공부한다고 했다. 신문에 조언도 했다. 그는 "노숙자 셸터 같은 큰 이슈도 좋지만 타운내 소소한 일상도 소개해줬으면 한다"면서 "예를 들어 벼룩시장이라든가 남모르는 선행같은 이야기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요식업이 쉽다고 생각하고 도전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재료관리부터 세무정보까지 모든 것을 한곳에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졸업할 때는 창업까지 지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가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맨땅에 헤딩'하듯이 했기 때문에 어렵게 배워야 했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다른 분들과 나누는 것이 꿈입니다." 조원희 기자 cho.wonhee@koreadaily.com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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