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연 사상연구회] 사랑과 자유
함석헌(1901-1989)이 그 전 생애를 통해서 추구한 것은 크게 두 가지 가치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의 길(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과 자유의 길(정치, 사회, 문화적 민주주의)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이 살며 추구했던 가치는 그가 사랑하던 조국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1979년과 1985년, 그는 한국인 최초로 서구 퀘이커교도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다. 함석헌이 살았던 20세기에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네 가지 이념이나 사상은, 위계질서나 지배체계로 대표되는 유교, 국가폭력을 동반한 일본 제국주의, 유물론적 측면의 공산주의, 그리고 배타적, 독선적 의미의 기독교였다. 이 네 가지는 지금까지도 우리 의식구조와 매일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함석헌은 이런 문제에 대해 동시대인들과 함께 온몸으로 부딪쳐 한 가닥 희망의 빛을 찾아냈다. 그 희망의 빛을 우리는 ‘자유’나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포용성’이나 ‘다양성 존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위계적 유교에 대항해서는 초월적인 노장사상, 폭력적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국익 우선주의보다는 국가 간 이타심을 강조하는 평화주의, 유물론에 대항하여서는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유신론, 그리고 편파적 기독교에 대항하여서는 보편적 역사주의 혹은 종교(이념)적 다원주의를 추구했고 이러한 종합적 요소를 그의 씨알 사상에 함유하고 있다. 함석헌은 1970년 4월 19일, 4·19 혁명 10돌에, 조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했다. 그에게 씨알은 국가주의 의미를 함유한 국민이나 주체성보다는 객체성이 강조되는 백성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여겨지는 표현이다. 씨알에는 ‘우리’, ‘올라감’, ‘얼’ 등 공동체와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는 우주 전체,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 그리고 활동하는 생명력 등의 뜻이 담겨 있다. 그가 사용한 이 씨알이라는 말은 민초, 자연인, 순수한 사람 등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며, 노자 표현을 빌리면 “다듬지 않은 나무” 같은 사람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함석헌은 격동의 한국사를 통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말 못 하는 씨알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벙어리’가 된 씨알의 입을 열고, 그들의 닫힌 영혼을 일깨우려고 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1957년 3월 『사상계』, ‘할 말이 있다’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벙어리 역사다. 무언극이다. 이 민중은 입이 없다. 표정이 없다. 사람인 이상 입이 없으리만, 있고도 말을 아니 하고 자라온 민중이다. 사람인 담에야 속이 없으리만 그 속을 나타내지 않고 온 사람들이다.” 함석헌은 이렇게 한국사를 맹목적인 복종과 무조건적인 침묵의 역사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각자가 가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 누릴 것을 역설했다. 그래서 『씨알의 소리』 발간사를 통해서 그는 한국의 언론이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고 “옛날 예수, 석가, 공자의 섰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신문입니다”라고 강변했다. 이렇게 그는 자기 목소리를 상실한 씨알을 위해 기꺼이 씨알의 목소리가 되었다. 김성수/『함석헌 평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