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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내전의 땅' 시에라리온을 가다 (6)

비전투원인 시민들의 손목절단으로 악명 높은 혁명연합전선 (RUF)의 지도자 포데이 산코가 지난 5월17일 체포됨으로써 시에라리온 내전은 전환점을 맞았다.

5월 들어 숨가쁠 정도로 잇달아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말미암아 99년 7월에 맺은 로메평화협정은 이미 휴지가 돼버렸다.(따지고 보면, 평화협정은 이름 뿐 그동안에도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반란군 두목은 체포됐지만, 91년부터 무려 9년을 끌어온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인구 5백만의 시에라리온은 언제 새로운 전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감에 덮여 있다. 이같은 새로운 위기상황은 ▶시에라리온 유엔평화유지군(UNAMSIL) 활동에 대한 재검토와 더불어 ▶반란군에 사면장을 준 로메 평화협정(99년7월) 자체가 원인무효라는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하면, ▶반란군 RUF가 유엔평화유지군(UNAMSIL) 4명을 죽이고 5백여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터지자, ▶ 프리타운 시민들의 항의 데모가 5월8일 RUF의 우두머리인 포데이 산코 집 앞에서 벌어졌고, ▶ 데모대를 향해 산코의 경호원들이 총격을 가해 9명의 사망자를 낳자 ▶ 신변에 위험을 느낀 포데이 산코가 어디론가 잠적한 뒤 ▶RUF의 라이벌 무장세력이자, 정부군 출신으로 구성된 혁명평의회군 (AFRC) 쪽에서 산코의 집을 급습, 산코 측 경호원 7명이 죽었다.

그 후 한동안 행방이 알려져 있지 않던 산코는 9일 뒤인 5월17일 바로 자신의 집 근처에서 체포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간 탓에, 미처 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동부 밀림으로 가질 못했다. 그동안 몇몇 경호원들과 함께 동네 뒷산에 숨어 지내다 붙잡힌 것이다.

한때는 로메 평화협정(99년 7월)에 따라 부통령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정치인으로 변신, 2001년 차기 대통령을 꿈꾸었던 산코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 손에 내일 죽을지 모르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은 포데이 산코의 신변은 안전하다. 시에라리온 티잔카바 정권이나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산코를 함부로 다루지 못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동부밀림에 근거지를 두고 다이아몬드 채굴 지역을 포함한 국토의 절반을 지배하는 1만5천명의 강력한 반란군 때문이다.

자신의 지도력을 벗어난 일부 반란군의 돌출행동으로 결과적으로 지금의 고단한 처지가 됐지만, 산코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런 산코를 섣불리 다뤄 반란군을 자극할 경우, 시에라리온은 걷잡을 수 없는 내전의 불길에 휩싸일 게 뻔하다.

더구나 반란군은 일부 인질을 풀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3백명에 이르는 UNAMSIL군을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이다. 막상 내전이 본격화될 경우, 이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프리타운으로 진격해올 것이란 예측도 가능하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는 까닭에는 구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이나 미국 둥 서방국가들의 미지근한 태도도 한몫 한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RUF 반군 손에 잡혀 있는, 주로 잠비아 군인들인 UNAMSIL군 인질을 구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NATO 쪽에 신속대응군 얘길 꺼냈었다.

그러나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가 나설 곳이 아니라는 태도다. 지난 91년과 92년, 소말리아에서 미국 해병 18명이, 르완다에서 벨기에 군인 14명이 잇달아 피살된 악몽 때문이다.

유고의 밀로세비치를 전쟁범죄자로 몰아세우며 코소보전쟁을 주도했던 미국, 영국 등은 그러나 자국 교민을 구하기 위한 소규모 파병 말고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 본격 파병할 생각이 없다.

현재 시에라리온에서 작전 중인 소규모 영국군도 조만간 철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노리던 쿠웨이트의 석유 등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지역이 아닌 이상 전투부대 파병→장기주둔→사망자 속출이라는 부담을 구태여 떠 안을 이유가 없다. 인구 5백만의 시에라리온은 뜨거운 감자와는 거리가 멀다.

5월 하순 현재 시에라리온에 주둔 중인 UNAMSIL군은 9천명. 지난 2월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한 1만1천명 수준에 아직 2천명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문제는 보충병의 양보다는 질에 있다. 인도군과 나이지리아, 잠비아, 케냐, 레바논, 방글라데시 등 제3세계 병력이 UNAMSIL군의 주력을 이룬다.

9년 내전이란 긴 경력과, 다이아몬드로 맞바꿔 사들인 강력화기로 무장한 반군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반란군에게 인질로 잡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시에라리온 같은 휘발성 강한 분쟁지역에 장비, 화력, 훈련 등 모든 면에서 허약한 제3세계 군대가 유엔평화유지군으로 가는 상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안에서조차 "클린턴은 싸구려 평화을 바라고 있다"는 얘기가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현재 영미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자국군대 파견은 뒷전에 둔 채, 허약한 UNAMSIL군을 전면 보강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로메 평화협정이 맺어지기 이전에 시에라리온 반란군과 맞서 싸워온 서부아프리카 질서유지군(ECOMOG)을 부활시켜, 이 지역의 강국인 나이지리아군을 주축으로 시에라리온 내전 해결을 맡기는 것이 최우선 검토사항이다. 최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모인 서아프리카 9개국 대표들도 ECOMOG군 재파병을 긍정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법 뭉갠 정치적 사면조치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무관심과 이해득실에 따른 정치논리에 희생을 강요당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9년을 끌어온 시에라리온 내전이다.
코소보 난민의 2배가 넘는 2백만명이 피난을 갔고, 20만명 쯤이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손목 절단이라는 반란군의 무자비한 테러전술은 악명을 얻은 지 오래다.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면, 시에라리온 내전은 잔혹한 전쟁범죄행위자들에게 평화협정과 사면이란 절차를 통해 면죄부를 준 특이한 기록을 지니고 있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비전투원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강간 방화 납치(여자, 소년병) 등은 1949년 제네바협약과 그 부속문서들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전쟁범죄행위다.

제네바협약 제2조는 자의적인 살인과 신체훼손을 제네바협약의 중대한 위반 사항으로 꼽고 있다. 발칸전쟁과 르완다내전을 둘러싼 국제재판도 바로 이 제네바협약의 조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에라리온 9년 내전과정에서 포데이 산코가 이끈 반란군 RUF가 저지른 잔혹행위는 변명의 여지없이 제네바협약을 위반한 범죄행위 그 자체다. 로메 평화협정에 명시된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면"을 받은 산코였지만, 현 상황에서는 사면 자체가 원인무효라는 법리적 해석이 가능하다. 평화협정이 백지화되었다는 전제 아래서다.

포데이 산코는 지난 4월23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란 게 때로는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포데이 산코를 포함한 RUF 지도부 어느 선에서 범죄행위 명령이 내려졌는지는 지금도 논쟁의 여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범죄행위 그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총체적인 책임은 총사령관 격인 포데이 산코가 질 수밖에 없다. (끝)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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