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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황색인종 혐오주의

아시안에 대한 서구 백인들의 대표적인 편견으로 황화론(黃禍論:The yellow peril theory)이라는 게 있다. 이는 황색인종의 발흥을 그냥 두면 서구사회에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에 서구 국가들이 힘을 합쳐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하는 황당한 이론이다.

처음 이 이론을 주창한 사람은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 독일황제 빌헬름 2세였다.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일본의 국력이 점점 커지면서 유럽열강의 아시아 진출에 방해가 되고 있었다는 점이지만 밑바탕에는 백인 중심의 국제질서 속에 아시아 국가가 끼어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편견이 깔려 있었다.

이후 황화론은 서구인들에게 있어서 동양인에 대한 견제와 차별의 도구로 줄곧 활용되어 왔다. 동양인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이 황색인종 혐오주의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황색인종에 대한 서구인들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4∼5세기 유럽의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불러온 훈족의 압박도 그렇거니와 13세기 러시아와 이슬람 세계에까지 세력을 떨쳤던 몽골제국의 공세는 유럽인들에게 훨씬 구체적으로 황화의 공포를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황화론이 활개를 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1차대전 직후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백인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한다는 이유로 당시 부족한 노동력의 충원수단으로 급격히 유입되기 시작한 아시안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 때도 일본인을 겨냥한 황화론이 풍미했으며 70년대 이후에는 중국 등 다른 아시안들에 대해서도 꼬투리만 보이면 어김없이 황화론을 들고 나와 견제의 고삐를 죄곤 했다. 지난 9.11테러 이후 점차 고조되고 있는 미국인들의 반이민 정서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문명충돌론’ 등을 등에 업고 아시안 이민자들의 발흥을 제어하려는 21세기판 황화론의 성격이 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동안의 황화론은 대부분 일본 아니면 중국이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도 서구인들의 황화론적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졌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국은 그 동안의 고도성장을 발판으로 경제·문화·스포츠등 각종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의 국력 신장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국제사회로부터의 견제 또한 그만큼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급증하면서 한국계는 이제 미국내 주요 소수계의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한국 음식과 풍습을 고수하고 있으며 문화에 관한 한 결코 백인들에 꿇릴 것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미국은 여전히 백인들의 나라여야 한다고 믿는 일부 인종차별론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반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 미국 방송의 개고기 관련 왜곡보도로 한인사회가 들끓고 있다. 뉴욕의 공중파 방송의 하나인 워너브라더스11이 한인들은 뉴욕서도 개고기를 사고 팔며 식용으로 즐기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함으로써 한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탓이다.

방송은 교묘한 편집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전체 한인을 악의적으로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백인이 대분분인 그들의 시청자들에게 한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추하게 그려냄으로써 결과적으로 황색인종 혐오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번 개고기 왜곡보도를 전형적인 황화론의 관점에서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보도를 두고 많은 한인들이 그토록 분개하는 것은 미국 방송이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순전히 자기들만의 잣대로 해석하고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염소나 코요테를 개로 몰아세우는 식의 엉터리 보도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철석같이 믿는 오만함을 보면서 이제 막 발돋움 하려는 소수계에 대해 미국인들이 그처럼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황화론적 섬뜩함을 느끼는 것이다.

일찌기 서구인들에게 황화론의 빌미를 제공했던 칭기즈칸은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영웅이었다. 그는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을 통일시키고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과 서로 영토확장을 펼쳤다. 하지만 세계사에 있어서 그의 위대함은 대제국 건설이 아니라 동서양 문화의 만남과 융화에 있었다. 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칭기즈칸은 침략자요 정복자였지만 그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자세를 가졌고 그것이 세계 최대의 제국을 세우고 이끌어 간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진정 21세기 세계제국의 국민이 되기를 꿈꾼다면 더 이상 타 인종 비방·배척에 열 올릴 것이 아니라 감싸안으며 더불어 살아가려 했던 칭키즈칸의 포용정신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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