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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 칼럼] R.S.V.P.

 영어 초대장의 말미(末尾)에는 R.S.V.P. 혹은 r.s.v.p.라 쓰고 전화 번호가 적혀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R.S.V.P.는 “Repondez s'il vous plait”라는 불란서 말을 줄여서 쓴 것으로 영어로 고치면 “Reply, if you please”가 되고 우리말로 하자면 “회신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에 응할 것인가 아닌가를 전화로 알려달라는 부탁이다.

 미국에서 우리가 받는 초대장의 대부분은 한글 초대장이고 그것은 거의 전부가 결혼식 청첩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친척이나 친한 친구 외에도 이름만 보아서는 얼른 생각나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청첩장이 온다. 교회에서 예식을 올리고 교회 친교실에서 피로연을 하는 경우에는 청첩장 외에 교회로 가는 약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회신을 부탁하는 R.S.V.P.는 없다.

 결혼식의 때와 장소를 알렸으니 가능하면 참석하여달라는 뜻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네 예전 결혼식은 한 동네 살면 의례 가는 것이지 꼭 청첩장 받아야만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 머리숫자 세어서 머릿수대로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객이 예상외로 많으면 상에 젓가락 한 벌 더 놓고 끼어 앉게 하고 국수 한 냄비 더 삶아서 대접하면 되었다. 입장권 사지 않고도 들어가는 ‘열린 음악회’가 요새는 유행이라지만 오래 전에 벌써 우리에게는 동네 걸인까지 포함한 잔치로 ‘열린 결혼식’이 행해졌었다.

 이와 같은 ‘열린 결혼식’이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혼식에 가보면, 하객이 너무 많이 온 것인지 친교실이 너무 협소한 것인지, 어떤 때는 앉을 자리가 없고 사회자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가 있다. 자리를 마련하느라 쩔쩔매는 주인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서성거리다 보면 꼭 무슨 밥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빨리 나가고 싶어진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고 왔는데 불청객이 된 기분이다.

 요새는 간혹 영어 청첩장을 받기도 한다. 그 청첩장에는 반드시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카드가 끼어 있다. 회답하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해서 카드에는 ‘참석, 불참석’ 두 개의 난이 있고 둘 중에서 한군데에 표시를 하고 자기 이름을 써서 이미 우표까지 붙은 반신 봉투에 넣어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일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치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뭐니 뭐니해도 참석 인원수 파악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지정한 날짜까지 회신 카드를 보낸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데 일인당 100불이 넘는 저녁을 어림짐작으로 호텔에 주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청첩장 받았는가, 받았으면 결혼식에 올 것인가 아닌가 전화로 따져 물을 수도 없고, 그저 느낌만으로 식탁에 자리를 배정했는데 막상 결혼식 당일에는 올듯하던 사람이 오지 않고 못 온다고 하던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나도 예전엔 카드 받고도 회신하지 않았거든? 가면 되지 무슨 연락이 필요한가 싶어서. 그런데 내가 직접 당해보니까 그게 아니야.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되겠더라구. 알아야 준비를 하지, 안 그래? 내 이번에 아주 절실하게 느꼈어. 앞으로는 반드시 회신 보낼거야.”

 성장한 자식의 결혼은 집안의 경사이고 그 경사에 초대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따라서 가능한한 빨리 참석 여부를 알려주는 것은 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사는 최소한의 예의는 될지언정 결코 체면이 깎일까 봐서 점잔을 뺄 일이 아니다. 정확한 응답에 의해 정성드려 준비한 잔치에서 마음껏 축하하고 즐기는 결혼식… 그것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즐겁고 능률적이며 격조 높은 사회로 변화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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