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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속으로]"영어, 이 애물단지'

윤시내 메릴랜드

‘애물’이란 어휘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애를 태우는 물건이나 사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어려서 부모 앞에 죽은 자식을 일컬으며, 다른 하나는 사랑하여 아끼는 물건이라는 뜻.(한자로는 ‘愛物’)

비록 사전에는 두 가지 뜻으로 구분하여 설명했을지라도 애물이란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라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하다.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가 애를 태울 일이 없고 아끼는 것이 아니면 잘못하여 망가질까 조바심을 칠 이유가 없다.

혹시라도 나가서 다치든지 나쁜 길로 들어가 신세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말썽꾸러기 자식을 앞에 놓고 “어이구, 이 애물단지야” 하고 탄식하는 것은, 애물을 넘어 애물단지(꿀단지, 보물단지 식으로)까지 되도록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이니 잘못한다고 내버릴 수 없고, 두고 보자니 속이 바작바작 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있는 것을 애타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물건이 아닌 것도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면 영어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는 싫건 좋건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영어만은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니 애물단지임에 틀림이 없다.

대중 앞에서 연설하거나 학술 발표 대회에 나갔을 때 좀 더듬거리고 당황해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학교에 가서 아이들 선생님과 마주앉아 있는데 영어가 혀끝에서만 뱅뱅 돌 뿐 나오지를 않아 급기야는 아이가 통역으로 나서야 되는 형편이 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신토불이라 하였으니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만큼 길어진 지금, 말도 한국어만큼은 영어를 할 때가 된 듯 싶은데 빵과 우유 대신에 계속 밥하고 김치를 먹어서인가.

얼마전 한 신문에 난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 발표 기사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소수민족(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월남)을 대상으로 한 영어 사용 능력에 대한 현황 결과, 한인들의 영어 능력이 하위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성별로 비교했을 때 남자는 4위, 여자는 3위).

미국에서 30년 이상을 산 한인들 중에서 영어를 매우 잘한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은 20.4%로 다섯 명에 한 명 꼴이고, 미국 생활에 동화하는 비율도 오래 살았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다.

한국인들이 자영업을 주로 하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살며 영어를 구사할 기회가 적은 것이 영어 사용 능력을 저해하는 중요 원인 중의 하나이며, 다른 인종과의 융화를 이루고 지역 사회와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 혜택을 빠짐없이 받기 위해서는 “언어습득에의 노력이 필수”라는 결론이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니 인제 영어 아주 잘 하겠지 ” 하는 부러움 섞인 질문을 친지나 친구에게서 받지 않은 한인은 아마 한 분도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정말 곤란하다.

미국거지라는 비꼬임을 당하는 판인데 그나마 영어라도 잘할 것이라고 잔뜩 이편을 부러워하는 사람에게 “미국 산다고 다 영어 잘하는 거 아니예요” 하고 대답하기가 싫다.

그것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다른데 정신 쓸 틈이 없었다는 변명처럼 그들에게는 들릴 것이고, 또한 처음에는 말을 못해서 답답하고 애가 탔는데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럭저럭 의사 소통이 되면서부터는 영어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였다는 부끄러운 고백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인 교회에서 실시한 영어교실에 예상외로 많은 한인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은 한편 반갑고 한편 씁쓸하다. 이제라도 영어를 배우겠다는 노력이 반갑고, 그 동안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우리가 당한 막대한 손실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그러나 바람은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영어를 유창하게 해보려는 회오리바람이 미국 전역으로 퍼진다면, 앞으로 십년 후에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미국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영어 사용 능력을 다시 조사했을 때 한국이 상위에 속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의 습득에는 ‘노력이 필수’라고 한 그들의 연구 결론이 과연 타당한 것이었음을 우리가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늦바람아, 한번 신나게 불어와라. 그래서 이 영어라는 애물단지 때문에 맺힌 가슴 속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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