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 퇴임하는 선준영 유엔대사
오는 6월 공직생활 40년을 마치고 정년퇴임하는 선준영(64) 주유엔대사는 통상외교 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직업 외교관이다.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등 국제기구에 관여,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외교통상부 서열이나 나이에서도 최고참이다. 선 대사는 항상 후배들에게 안보 외교·경제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스스로 공부하는 외교관의 모습을 보여왔다. 퇴임을 앞둔 선 대사를 맨해튼 45스트릿에 있는 주유엔한국대표부 대사 집무실에서 만났다.-외교관 생활 40년을 마무리하는 심정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대학 4학년때인 고등고시 행정과(외교) 13기에 합격해 지난 63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학을 다니면서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지요. 고건 국무총리와 고시 동기이긴 하지만 제 자신이 어느새 고등고시 13~14기 출신중 외교통상부에 남아있는 마지막 인물이 되었습니다(웃음).
다른 분야에 한 눈 팔지 않고 외교부내 모든 부처를 거치다 보니 어느새 4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하는 기분입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참 행복한 외교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발전, 민주화, 남북한 군사적 대치관계 속에서 한국의 외교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항상 도전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탓에 다른 국가의 외교관처럼 편안했던 적은 없었지만 보람은 컸다고 생각합니다.”
-유엔 외교가에 선 대사의 ‘골프 외교 철학’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소개해 주시죠.
“외교와 골프는 공통점이 세가지 있습니다. 먼저 스탠스(Stance)입니다. 골프를 칠 때 기본 자세가 정확해야 하듯 외교도 입장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매 순간 침착함을 갖고 행동마다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윙 후 골프채를 끝까지 휘두르는 것(follow through)과 같이 외교에서는 후속 작업(follow up)이 중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적인 방미 일정을 마무리했더라도 실무진이 후속 작업을 진행해야 성과가 구체화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골프를 잘 치면 외교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요즘에는 마음이 안정된 탓인지 공이 잘 맞습니다.” (참고로 선 대사의 핸디는 16이다.)
-통상교섭 분야에서 남다른 활동을 많이 하셨다는데.
“외교통상부에서 통상문제에 대한 협상을 가장 많이 한 외교관일 겁니다. 항공협정, 쌀시장 개방 등이 포함됐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한미 쇠고기협상, 한일 어업협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협상 실무자로 참가했고 협상이론도 만들었지요.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경제차관보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기존 외교부에 통상교섭본부 기능이 강화된 외교통상부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안보 외교, 통상 외교가 함께 병행해 나가면서 제 몫을 찾는 외교가 중요합니다.”
-바람직한 한미 관계는 어떤 것인지요.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 밑바탕에는 한미 동맹관계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에서 미군 3만7천여명이 사망했고 주한미군은 아직도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전쟁후 무상원조, 자본·기술·노하우 지원 등은 물론 한국 생산품의 판매시장을 제공하고 있지요. 미 교육시스템 도입을 통해 선진 정보를 배웠고 그 경험은 산업화, 근대화에도 기여했습니다. 한인 2세 등이 각계 각층에 자리잡고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한미 관계와 외교활동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지요.”
-퇴임후 계획하신 일은 있습니까.
“강연회 등을 통해 축적한 경험 등을 나눌 생각입니다. 한국의 유엔분담금 규모는 10번째입니다. 외교 위상이 높아진 만큼 국제기구 사무국에 한인들이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또한 제네바와 유엔 등 국제기구와 통상분야에서 쌓은 경력 등을 바탕으로 국제기구 자문역할을 맡을까 합니다. 물론 유엔 회원국 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국제기구 기여를 통해 한국의 국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생각입니다.”
-외교관 생활중 힘들었던 것은.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된 상황에서 주재국에 북한의 상황과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 등을 설명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반응이 ‘남이든 북이든 한국 아니냐’는 것입니다. 아직도 일부 외국 정부는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한국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이지요.
지난 76년 이란에서 정무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란의 영자지 ‘이란타임스’ 편집장에게 판문점 사건의 배경을 한참 설명하는데 편집장이 ‘한국인은 폭력적이다’고 말하더군요. 79년 영국대사관 근무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국 정부 관계자도 한국인은 폭력적이다는 언급을 했지요.
남북한이 동시에 거짓말쟁이로 몰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94년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받았을 때 북한측이 밝힌 내용과 다른 사실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을 한 후 이행계획서를 만들어 일부 조항을 수정했는데 당시 국무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이행계획서를 수정한 일이 없다고 발표한 겁니다. 이때 워렌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미키 켄터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국은 남북한이 모두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엔에서 남북한 대표부의 교류는 어떤 수준입니까.
“유엔에 남북한 대표부가 설치돼 있지만 그리 가깝지는 않고 필요할 때마다 만나는 통로 역할은 하고 있습니다. 쌀 지원 등 국내 문제보다는 주로 외교문제에 대한 통로로 활용하고 있지요. 남북 관계가 좋아질수록 유엔 대표부의 역할은 날로 확대될 것이며 앞으로 그렇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동포사회에 퇴임 인사를 전한다면.
“세계 각지를 다니며 외교관 생활을 했지만 유엔대사로 재직한 지난 3년이 가장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40년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인들과 뉴욕 동포들의 우의와 협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지켜나가면서 한미 양국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길,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이 한미 동맹관계를 유지, 강화하는 길입니다. 한미 동맹 협력관계가 모국의 번영과 안정에 직결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요. 세계 중심인 뉴욕에서 동포들이 각계각층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생활하는 모습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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