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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DC 홈리스 체험 단기 선교단 1기들의 이야기

봉사 통해 나누는 삶의 의미 체득

홈리스 체험 시간 중 홈리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배하영 중앙장로교회 학생. 이후 이들은 홈리스의 친구가 됐다.

홈리스 체험 시간 중 홈리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배하영 중앙장로교회 학생. 이후 이들은 홈리스의 친구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23일은 나와 13명의 친구들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나와 13명의 친구들은 아버지와 아들 딸과도 같은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나는 왠지 저들을 나의 친구라도 부르고 싶은 자각을 느끼고 있다. 아마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다보면 이러한 나의 생각이 단지 충동적이지만은 않다고 공감해 줄 사람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가능한한 감성에 억매이거나 과장하거나 은유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술해 감으로써 보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려고 한다.

 8월 22일, 버지니아 날씨답지 않게 수은주는 화씨 100도를 넘어 가고 있었다. 지각하는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1시까지 교회로 모이도록 알려 두었다. 그러나 정작 지도 교사인 내가 시간을 어기고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자꾸 시계를 들여다 보면서도, 어찌 할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시가 넘었다. 나는 무작정 하던 일을 덮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앞까지 찾아와 준 학생들과 서둘러 DC에 있는 평화나눔 공동체 선교센타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릴 기다리고 있던 박정숙 집사님에게서 - 박집사님은 무용 전문가로서 DC의 빈민가 자녀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린 간단한 워십 댄스와 찬양을 배웠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되어 있는 홈리스 친구들을 위한 준비에 하나였다. 이어서 우리는 홈리스에 관한 비디오를 보며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숨 돌릴 시간도 없이 13명의 학생들은 150명분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다들 처음 만드는 것이라서 우왕좌왕 하기도 했지만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탱탱 얼려둔 150병의 물과 함께 우리가 만든 샌드위치를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거긴 우리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오지 않으면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잠을 자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저들을 버렸거나 저들이 세상을 버렸거나 둘중에 하나일 것 같은 저들은 모두 흑인이었다. 우린 저들과 원을 만들고 손을 잡았다. 13명은 서로 몰려 있었지만 최상진 목사님의 지도에 따라 사이 사이에 끼어 들어 저들의 검은 손을 맞 잡았다. 이들과 손잡는 방법은 조금 특이했다. 교차잡기? 그러니까 왼손은 오른쪽으로 오른 손은 왼쪽으로 하여 서로 맞잡는 방법이다. 서로 가까이 다가설수 밖에 없도록 고안된 것 같았다. 흑인 친구중 한명이 나서서 능숙하게 대표 기도하였고 이어서 줄을 섰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물을 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배식이 끝나고, 우린 저들 한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이름을 부르며 찬양과 율동으로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들 다가가 허그하고 악수하며 "God bless you" 라고 말해 주었다. 학생들은 거침없이 저들을 안아 주었다. 겨우 머리만 들이대는 학생도 있었으나 모두들 예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이 행동하였다. 두어명의 학생들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멀치감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강요하고 싶지 않아 그냥 두었다. 다시 걸어 돌아와 저녁을 스스로 지어먹고 설거지를 하고 최상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비디오를 보았다. "사이구" 엘에이 폭동에 대한 다큐멘타리였다. 우린 최 목사님의 인도로 Workshop을 시작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지한 모습들이다. 녀석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린 오늘 하루를 나누었고 찬양과 기도하는 시간을가졌다.
 
 8월 23일, 누군가 예약해 놓은 셀폰 알람이 울렸다. 5시 30분! 3명의 학생들이 먼저 깨어 일어났다. 우린 모두들 일어나 우리끼리 새벽 기도회를 가졌다.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왠지 숙연하였다.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병사들 처럼. 우린 오늘 홈리스가 되는 날이다. 14가 공원을 향해 40여분 걸어 갔다. 어깨에는 퀴퀴한 냄새나는 옷 가지가 담겨 있는 검은 쓰레기 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영낙없는 홈리스!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군데 군데 자리를 잡고 벤치에 앉았다. 앉자마자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 진짜 홈리스다운(?) 학생도 있었다. 나는 저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했다. 어느 교회팀이 도착하여 음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학생들은 아무도 받아 먹지 않았다. 두어 시간 후 학생들은 최 목사님의 지도로 교대로 공원을 한 바퀴씩 돌았다. 검은 보따리를 들쳐 메고…

 정오가 지나며 우리는 15가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는 벤치가 아닌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도록 배치되었다. 다들 잘 따라 주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홈리스와의 대화들이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일대일로 혹은 2-3명이 팀을 이루어 대화들을 하고 있었다. 홈리스와의 만남 그리고 대화! 이 첫 경험은 이렇게 쉽사리 이루어졌다. 아주 얌전하게만 보이던 여학생이 더 적극적이어서 놀랐다. 홈리스의 40%는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후유증으로 정신의 이상을 얻은 후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젊은 홈리스의 대부분은 마약이나 알콜 중독이 원인이었다고 하고… 저들은 원래부터 게을렀던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간간히 사람들이 찾아와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주고는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가족 단위로도 오고 개인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턱없이 부족한 듯 보였다. 우린 계속 굶고 있었으나 아무도 배 고프다는 투정은 하지 않았다. 대개는 흑인이었으나 일본인도 있고 히스패닉도 있고 한국인도 있었다.
 
 우린 마침 이날이 마틴 루터 킹목사 40주년 기념일이어서 기념 행사가 열리는 링컨 기념관까지 걸어 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13명의 학생들에게 물을 사주고 말았다. "살았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다시 걸어서 센터로 돌아 오며 거리의 악사들을 만날 때 마다 우리는 돈을 주거나 티셔츠를 나누어 주었다. 센터로 돌아왔다. 한시간 반을 걸어온 학생들은 그러나 아무도 쓰러지려 하지 않았다. 쉴틈도 없이 하루를 굶은 배고픔도 잊은체 우리는 홈리스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을 먼저 만들었다. 핫덕이었다. 그리고 다시 공원에 가서 저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기도하였다. 대표 기도를 하는 흑인 영감의 기도에 학생들은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혼신을 다하는 흑인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열광적인 기도! 누군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밤이라도 새며 기도할 기세였다. 궁핍한 자의 기도는 저토록 간절한 걸까? 영혼의 기도는 저런 모습일까?

 물과 음식을 나누어 주고 센터로 돌아와 드디어 우리들을 위한 저녁을 스스로 지어 먹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반찬 투정을 한다던 학생들도 열심히 먹는 일에만 충실하는 모습이었다. 집에서 각자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보관하였던 반찬들이 동이났다. 당연하지! 2차 워크샵을 가진후 우리는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어제와는 달리 사뭇 진지해진 모습이었다. 겨우 한페이지를 채우던 학생들이 2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3페이지를 쓰기도 했다. 잠시 휴식할 시간을 주어 하루의 피로를 풀도록 하였다. 샤워를 하고 밤 10시 30분, 우리는 다시 모두 모였다. 우리는 오늘 우리들이 만난 홈리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무언가 흥분한 모습이었다. 마치 오랜 만에 만난 친구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미 홈리스는 저들의 친구가 되어 있었고 저들의 선생이 되어 있었다.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하는 시간은 여느 때와 달랐다. 저들은 새로운 세상을 본게 틀림없어 보였다. 비젼이 바뀌었노라고 말하는 학생조차 있었다.

주일 아침이 밝았다. 모두들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이제 주일 아침 홈리스 예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홈리스들과 드리는 주일예배. 학생들과 나는 조금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되는 것을 느꼈다. 20여명의 홈리스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 어느 흑인은 문 앞에서서 "미니스터! 미니스터!....." 하고 수없이 반복적으로 외쳐댔다.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 처럼. 우리는 치아가 하나도 없는 그의 발음때문에 한참 후에야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 채릴수 있었다. 나는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내내 그를 주시했다. 60세는 넘었을 것 같은 그는 홈리스답게 헐벗고 깡마르고 어느 만큼은 정신이 분열된 그리고 매우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하는 모습, 찬양하는 모습, 말씀을 경청하는 그 모습만은…. 어쩌면 그 선하디 선하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나는 지금껏 저렇게 간절한 기도자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임신 7개월째라는 여인도 있었다. 그가 출산을 하면 즉시 아기를 빼앗긴다는… 핑크색 셔츠를 입고 나타난 피아니스트는 한때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그의 연주는 나의 혼을 빼앗고 말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사진에 담고 또 담았다. 우리는 저들과의 예배를 마친후, 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청소를 하고 다들 모여섰다. 몇몇 부모님들이 오셨다. 원을 그리고 서서 우린 한마디씩 기도하기로 했다. 나는 여기에 저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두려 한다. 배하영, 이희성, 장은지, 송진아, 이슬애, 김종민, 정세원, 박기범, 송우현, 김성원, 안치현, 양승찬, 이광희….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속에 살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이 순간 나는 저들의 선생이 아니었다.
 
 중앙장로교회 정정호 집사(571-228-8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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