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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부흥을 꿈꾼다]그들 만의 예배가 필요하다

현승학 목사

K청년을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조용하게 예배만 드리게 해주십시오. 봉사 같은 것 시키면 또 다른 교회로 옮길 것입니다.”

K청년은 그리 크지 않는 교회에서 청년 회장으로, 찬양팀 리더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던 일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완전 탈진으로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더 이상 교회 봉사는 하지 않고 은혜만 받겠다고 결심하고 새로운 교회로 등록도 하지 않고 다니다가 늦게 등록했다.

요즘 청년들은 피곤하다. 교회의 청년들 피곤한 것이 현실이다. 교회에서 조금 열심하면 온갖 교회의 일들을 맡아서 하게 되어 얼마 없으면 탈진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교회의 어른들은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옛날에 청년 때에 나는 반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일이라면 도 맡아서 했는데 요즘 청년들은 힘들다고만 하니…’하면서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교회 자체가 젊었으니까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분들이 연세가 든 것처럼 교회도 나이가 들고 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중직의 자녀는 대부분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청년들을 훈련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봉사하는 일꾼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시각의 차이가 청년들을 탈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탈진을 예방하고 회복하는 방안은 없는가를 질문해 본다.

요즘은 중대형 교회들은 청년예배를 대부분 드리는 것이 추세가 되었다. 사실 청년 예배가 당연시 되는 시대라고 해도 될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청년 사역에서 청년 예배에 대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청년들의 모임은 주로 화요집회, 목요집회, 금요집회 등의 평일 청년들의 교제 모임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전도와 제자 양육 등의 관심, 소그룹 성경공부 등을 통한 부흥 전략 등이 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 예배, 열린 예배, 구도자 예배, 현대 예배 등의 이름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드리는 시대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미국의 부흥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새로운 예배의 형태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에게 예배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러준 것은 예수전도단의 화요 찬양 모임이었다.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가 없는데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로 서게 하는 시간이었다.

80년데 후반에 경배와 찬양운동의 시작은 한국 교회에 예배에 대한 대중화에 힘을 싣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교회들은 전통적인 예배에 만족을 하고 교회

당 안에서 찬송가외의 찬양과 드럼은 생각도 못했고, 기타도 못 치는 형편이었다.

‘청년들만이 드리는 청년 예배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문은 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대형 교회 중심의 청년 예배와 중소형 교회의 청년 예배는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청년들만이 드리는 청년 예배가 필요한 이유는 청년들은 영적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청년들은 주일에 참된 예배를 드리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봉사하는 일에 지쳐있다. 주일에는 예배가 중요함을 알지만 현실은 봉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형교회는 주일 오전에 봉사를 하고 오후에 청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중소형 교회는 토요일 저녁에 예배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청년들이 예배 드리는 시간은 절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분은 평일 저녁에 또 모일 필요가 없이 주일에만 드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는 주일 예배만 드려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영적인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들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른들과 함께 있는 시간 보다 청년들은 권위자들로부터 독립하고자 한다. 강요 받기를 싫어하고 내 일을 내가 알아서 한다는 자

발적인 청년 모임이 필요하다.

둘째는 청년들에게 맞는 메시지와 찬양이 필요하다. 청년은 청년에 맞는 메시지가 있다. 또한 청년들이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청년들의 필요에 맞는 메시지가 청년들을 살린다.

문제는 청년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장년 예배에 청년들을 포함시켜도 무방하다는 리더십들의 생각은 바꿔져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주일 오후 찬양 예배를 청년들을 위한 예배라고 말하면서 청년들 중심의 찬양팀을 만들고 시간대를 주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개념보다 설교자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들이 청년들의 문화와 성격에 맞게, 그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청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이런 말을 했다. “주일에는 장년 예배에 출석하도록 연락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청년 사역자 이전에 예배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위한 준비는 철저히 하지만 하나님께 예배자로는 서지 않는다.

설교자 이전에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청년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가 시작된다. 청년들만이 드리는 예배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

청년들이 부흥하는 교회는 청년 예배에 성공하고 있다.청년목회자는 예배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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