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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만폭동도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산수(山水)를 그린 정형 산수와는 달리 실제 경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실경(實景) 산수다.
실경 산수는 정형 산수 특히 복고적인 산수에 염증을 느낀 작가들에 의해 많이 그려졌다.
그렇다고 서양의 사진과 같이 사실적인 산수화가 아니며 약간씩의 회화적 변형이 가미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경 산수의 역사는 길지만 본격적으로 그러지게 되는 것은 중국의 경우 17세기 중엽 안휘파 화가들에 의해서다.
조선은 18세기 전반의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4)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그려졌다.

실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그가 금강산 여행에서 받은 강한 인상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보다 깊은 차원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새로이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실학이 등장해 사상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실질적이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산수화의 경우는 실경화라고 할 수 있다.
머리 속에서만 가능한 관념 산수보다는 주변에 보이는 경치를 그려 본다는 것이다.
정선은 우리의 가장 빼어난 경치인 금강산을 즐겨 그렸으며 그 밖에도 경기지방과 서울 여러곳의 경치를 그렸다.

정선의 실경 산수화 발생의 또한 요인으로는 중국에서 실경화가 유행한 것도 꼽을 수 있다.
조선보다 반세기를 앞서서 중국 강남 지방의 안휘성의 황산을 그리는 풍조가 성행했는데 많은 화가들이 이에 참여했다.
홍인을 필두로 소운종·매청·매경·사사표·석도와 같은 많은 화가들이 끊임없이 황산을 묘사했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우리 화가들이 금강산을 마냥 그린 것과 유사한 태도다.
정선은 전통적인 절파계의 북종화법과 새로이 유입된 남종화법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창안해 냈다.
<만폭동도> 는 정선의 독특한 필치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금강산 속의 만폭동 경치를 그린 것이다.

멀리 수직으로 뻗어 오는 암석은 금강산의 특이한 봉우리 모습이며 앞의 소나무와 인물들도 그의 독특한 표현들이다.
그림 전체에서는 신속하고 기운차며 탈속한 듯한 붓놀림이 잘 느껴지는데 이러한 것은 정선의 특별한 솜씨일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정선파의 특성이기도 하다.

김영희 <미술평론가>

김영희 <미술평론가>

정선은 평생 여러 차례 금강산 일대를 유람했고 1백여 폭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부감법(俯瞰法)을 써서 구도를 잡은 금강전도(金剛全圖)를 많이 그렸다.
뾰족한 암봉은 수직준법으로, 나무숲이 우거진 토산은 미점준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산에 바위가 많고,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우리 산야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선의 화풍은 많은 후배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겸재 일파(一派)’를 형성했으며, 민화의 금강산 그림에서도 그 잔영을 엿볼 수 있다.

정선의 실경 산수화의 의의는 정선과 이웃에 살면서 30여년간 교류하였던 조선후기의 문인화가인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겸재 스스로 새로운 화법을 창출하여 그간의 병폐와 누습을 단번에 씻어버렸고, 그 결과 조선의 산수화법이 겸재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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