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몽상가들]68년 파리...우린 혁명을 꿈꿨다
영화의 질풍노도 시대 한 가운데서 만난 매튜와 이사벨, 테오. 그들은 영화를 통해 모든 것을 소통한다. 테오가 매튜에게 던진 첫 마디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을 아느냐는 물음이고 이사벨이 배운 첫 영어 단어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에서 진 세버그가 외치는 “뉴욕 헤럴드”다.
이들에게 영화는 세상의 전부다. 이사벨은 ‘숲의 저 편’(Beyound the Forest)의 베티 데이비스처럼, ‘크리스티나 여왕’(Queen Christina)의 그레타 가르보처럼 유혹의 몸짓을 던진다. 3명의 영화광은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 러베르 브레송, 클로르 사브롤의 영화에 대한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고다르의 ‘외부인들’(Bande a Part)의 주인공보다 빨리 루브르 박물관을 달리고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중 누가 더 뛰어난 코미디언인가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The Dreamers)는 그저 영화광의 영화는 아니다.
‘순응자’(The Conformist·1970)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1972)에서 정치와 섹스를 현기증 나는 영상에 녹여냈던 베르톨루치. 막스와 프로이트에 심취했던 그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1987)와 ‘리틀 붓다’(Little Buddha·1993)에서 아시아의 이국취향으로 물러났다. 이제 그는 ‘순응자’와 ‘파리에서의…’의 뒤를 잇는 ‘몽상가’로 1970년대 성정치학의 치열함으로 돌아가고 이로써 파리 3부작을 완성한다.
베르톨루치 감독과 원작소설 ‘성스런 순진한 사람들’(The Holy Innocents)의 작가 길버트 아데어는 1968년 파리 5월 혁명의 현장에 있었다. ‘몽상가’에서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녹아있는 영화를 얘기한다. 베르톨루치는 이렇게 말한다. “60년대에는 마법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그러니까 ‘몽상’이라고 하자. 우리는 영화와 정치, 음악, 재즈, 로큰롤, 섹스, 철학을 하나로 녹였다.”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의…’에서 처럼 파리 5월 혁명을 섹스를 통해 얘기한다.
‘파리에서의…’는 계급과 성을 뛰어넘는 공유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5월 혁명의 실패를 아프게 되씹는다. 텅빈 아파트, 격렬하지만 무미건조한 섹스가 끝나고 진(마리아 슈나이더)은 “난 그 남자 이름도 몰라요. 이름도 몰라요”라고 절규한다.
베르톨루치가 ‘몽상가들’에서 얼마나 다르게 5월 혁명을 재평가하는가는 실내 공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리에서의…’의 아파트는 사막처럼 황량했고 섹스는 모래처럼, 갈증으로 갈라진 입술처럼 사각거렸다.
그러나 ‘몽상가’의 집은 오아시스처럼 단물이 흐른다. 벽에 붙은 ‘마오주석만세’라고 쓰여진 포스터와 배우들의 사진, 식탁을 가득 채운 성찬들, 서가에 빽빽한 책…그 속에서 테오와 매튜는 논쟁한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하는 것은 농부를 죽이는 살육이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왜 에릭 크랩턴이 아니라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듣는지 아느냐 ”
그리고 섹스. 한 침대에서 발가벗고 자는 이사벨과 테오의 근친상간, 영화 퀴즈에 틀린 테오의 자위와 처녀성을 바치는 이사벨과 매튜, 그리고 피. 남자와 여자가 부끄럼 없이 성기를 드러내며 3명이 나체로 뒤엉켜 자는 그들 만의 콤뮨에서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의…’에서 뱉은 아픈 고백은 긍정문으로 변환한다.
그럼에도 ‘몽상가들’의 고백은 허전하다. 첫사랑과 첫 경험의 떨림과 환희, 통증이 총천연색으로 장식된 작은 콤뮨은 5월 혁명의 제단에 바치는 기억의 꽃다발이다. “(1968년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68년 이전에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키스를 하면 벌금형에 처해졌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유의 상당 부분이 68년에 성취된 사실을 모른다.” 베르톨리치의 고백처럼 ‘몽상가들’은 첫 경험같은 68년 혁명을 긍정하지만 거기엔 현재성보다는 사라진 과거에 대한 쓸쓸함이 배어있다. 당대의 문제로 고민하기 보다는 과거를 추억한다. 그래서 ‘몽상가들’의 아름다움은 일출의 광채가 아니라 일몰의 노을이다.
매튜의 만류를 뿌리치고 테오는 바리케이트 너머 진압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진다. 경찰이 몰려오고 시위대는 흩어지고 카메라에는 바리케이트와 돌과 화염병이 어지러운 거리를 비춘다. 거기 매튜가 홀로 서있고 에디트 피아트의 ‘장밋빛 인생’이 흐르고 자막은 거꾸로 흐른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홀로 1968년 5월 파리의 거리에 서있다. 모두들 가버리고 무심한 세월이었다고.
6일 개봉. 등급 NC-17(17세 이하 관람 불가), Laemmle’s Monica(310-394-9741)·Lammle’s Sunset-5(323-848-3500) 상영.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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