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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립스틱 짙게 바르고

내 어릴 때 별명은 ‘이미자’였다.
함지박 만하게 큰 입이 가수 이미자씨를 닮아서 이다. 당시 집에 텔레비젼이 없었던 터라 이미자씨가 어떻게 생겼나 보통 궁금한게 아니었는데 어느날 고모집에 갔다가 우연히 텔레비젼에 나온 이미자 씨를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텔레비젼에 나온 이미자씨랑 내 얼굴이 꽤 흡사해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외모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어릴때라 ‘노래는 참 잘하는데 되게 안 예쁘다. 나도 크면 저렇게 생겨지겠네’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철이 들고 외모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앵두같이 도톰하고 예쁜 입술은 아니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입술의 단 몇 센치 만이라도 작아 보았으면 하는 이룰 수 없는 바람이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생겼다.
우선 큰 입술은 립스틱 선택의 폭을 좁게 했다. 새봄의 꽃밭처럼 갖가지 화려한 색깔의 립스틱은 항상 나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큰 입술을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선 미용사원이 권해 준대로 늘 밤색계통의 립스틱만 발라야 했다.
핸드백과 구두는 물론, 의상과 립스틱 색깔은 곧 죽어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밤색이나 베이지색 계통 일색인 옷장 문을 열 때마다 늘 한숨이 나왔다.
‘점쟁이가 입이 커서 평생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이건 너무했다….’
핑크나 빨강 계통의 옷은 내게 있어 꿈의 색깔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말이다.
한국의 김혜수라는 여자 탤런트가 유행시켰다던가.
언제부터인가, 주위에 있는 여자들의 입술이 다 커지기 시작했다. 커다랄 뿐만 아니라 두툼하기까지 했다. 현대적이고 섹시한데다 시원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크고 두툼한 입술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단 몇 인치라도 입술을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입술선 바깥으로 모두 립스틱을 바른다고 했다. 일부 형편이 되는 여자는 거금을 들여 입술을 두툼하게 하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던가.
돈을 들여 수술할 필요도, 거울 보고 애써 입술 선을 크게 그릴 필요도 없는 입 큰 나는 룰루랄라 할 일이었다. 예쁜 색깔에 매혹돼 사다만 놓았지 단 한번도 발라본 적 없는 빨간색, 핑크색 립스틱을 원없이 바를 수 있으니까.
빨강색, 핑크색은 사람을 생기있고 활발하게 만든다. 주위 사람들이 얼굴이 활짝 폈다며 좋은 일 있느냔다. 평소 색조 화장없이 립스틱 하나만 달랑 발라왔고, 지금도 그냥 립스틱 색깔만 화려한 걸로 바꾸었을 뿐인데 사람이 달라 보인단다.
90년대 말 한국 IMF가 터진 이유를 한국 여성들이 무덤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검은색 계통의 립스틱을 발랐기 때문이라고 누가 쓴 글을 본적이 있다. 당시 지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이유로 커피색 계통의 립스틱이 한국 여성들 사이에 대유행이었는데 온 나라를 뒤덮은 그 칙칙한 색깔이 국운을 상실케 했다는 것이다.
커피색 계통은 아니지만 밤색 계통의 립스틱만 바르던 나는 그 글을 읽고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마후 산지 1년도 안된 새차가 고장나자 이게 밝은 색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서인가 괜히 신경이 쓰여진 기억이 있다.
오늘도 나는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로 입술을 비추어 본다. 분홍색 립스틱이 발라진 입술이 내가 봐도 참 쓸만하다.
이렇듯 큰 입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를 수 있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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