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디아스포라 일기>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최혁

목사·뉴저지 포도나무교회

인천에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유도를 해야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는 이 시간이 고역이었다. 어두컴컴한 유도장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유도장 정면에 붙어있는 액자의 글은 아직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유연함이 능히 강함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첫 시간에 유도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진정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이 일본열도를 제압한 한 상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될 것 같다.

일본열도를 달구는 한국의 상품은 현대의 자동차도 아니고, 삼성의 전자제품도 아니다. TV드라마 ‘겨울 연가’이다. 주인공 배용준은 일본의 평범한 아줌마, 아가씨에서부터 고이즈미 수상에 이르기까지 욘사마로 존경받으며 그들의 맘을 열광시킨다. 좀 억지스런 스토리와 상황설정, 지루한 이야기 전개. 그런데도 일본에 ‘겨울 연가’ 신드롬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부드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시종일관 욘사마 배용준의 부드러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모든 면에서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부드러움의 강점을 터득한 사람이다. 교향악단에서 팀파니를 치는 친구는 팀파니가 타악기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팀파니는 때리는 악기가 아니라 떼는 악기라는 것이다. 가죽에서 스틱(타봉)을 부드럽게 뗄 줄 알아야 팀파니의 소리가 제대로 난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처음 치는 사람은 피아노 건반을 때린다. 그러나 루빈스타인이나 호로비치 같은 노장의 손놀림은 강한 포르테에서도 부드럽고 유연하다.

사람의 인격도 마찬가지다. 인격이 성숙할수록 그 인격을 나타내는 언어는 부드럽다. 그 언어가 문제를 해결한다. 성경의 말씀을 보자.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은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언25:15). ‘부드러운 혀’란 부드러운 언어습관을 말한다. 이런 언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아름답게 발전시킨다.

어떻게 부드러운 언어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부드러운 말은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에서 나온다. ‘겨울 연가’ 얘기를 또 해 보자. 준상(배용준)이의 삶은 결코 부드러운 삶이 아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다. 엄마는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분주한 여자다. 즉 준상이는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나중에는 눈까지 멀었다. 삶은 그를 거칠고 억세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준상이는 한번도 비극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모든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간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매우 부드러운 언어였다. 이런 상황설정과 그의 인생에 대한 태도가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은 긍정적 상황만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긍정적 상황에서뿐 아니라 부정적 상황을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난다. 실패자에게 있어서 부정적 상황은 부정적 언어를, 부정적 언어는 다시 부정적 상황을 만들어 간다.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그의 인생은 실패를 향해 줄달음치게 된다.

2002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은 프린스턴대의 천재 수학교수 존 내시에 관한 실화다. 제자 엘리사와 결혼한다. 그후 심한 정신분열을 겪는다. 결국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병원에 평생 입원해야 할 신세가 됐다. 엘리사는 짐을 챙기며 남편이 병원에 들어가는 날 헤어지려 한다. 그러나 남편을 두고 집을 떠나려던 엘리사는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남편 곁에 있기로 결심한다. 엘리사는 남편을 포옹하면서 말한다.

“이 느낌이 진실이에요. 이 깊은 꿈에서 깨어나는 기능은 이 머리에는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여기 가슴에 있을 거에요. 난 기적이 꼭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엘리사는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기로 결심했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정말 남편은 점점 회복되고 다시 프린스턴 교수로 일하게 된다. 1994년에는 그의 ‘균형이론’이 노벨상을 타게 되었다. 엘리사의 부드러움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강한 것은 쉽게 부러진다. 성미가 거칠고, 말이 강한 사람은 항상 넘어진다. 부드러움은 훈련된 인격이다. 인생의 축복받는 사람들은 모두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 부드러움이 결국 강한 뼈를 꺾는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