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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세이>‘쥐 인간’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프로이드가 언급한 ‘쥐 인간(Rat Man)’은 1910년 발표한 "한 강박 노이로제 환자에 대한 기록"이란 논문의 주인공이다.
1907년 10월 프로이드를 찾은 이 환자는 29세의 변호사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강박증으로 고생했으며 최근 3, 4년 간 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강박 환자들의 흔한 특징으로 주춤거리며 애매 모호하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환자에게 [자유연상]을 이용하여 아무리 이상하거나 말이 되지 않더라도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하지 말고 말하게 했다. 그 결과 프로이드는 환자가 여러 가지 성적 충동으로 인해 시달림을 알게 되었다.
4살 때 이 환자는 하녀 두 명이 그들의 치마 속을 들치면서 그 속에 손가락을 넣어보라는 유혹을 받았다. 그 후 환자는 여자의 나체를 보고 싶은 충동을 가졌으며 5살에는 그런 충동에서 성기가 발기해 당황해했다.
그런데 그는 곧 부모가 그런 생각을 눈치챘으리라 걱정했으며 나중에는 나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어떤 무서운 일이 반드시 발생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강박적으로 반복되었다. 그것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서 발생하리라는 걱정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고통에 하도 시달린 나머지 우울증이 심해져서 한번도 실행한 적은 없었지만 면도칼로 목을 잘라 자살하려는 충동도 자주 떠올랐다.
증상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1907년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기동 훈련 시 야영했을 때 한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고문할 때 쥐들이 속에서 우글거리는 항아리 위에 죄인을 강제로 앉게 하는데 이때 쥐들은 항문을 쑤시고 들어가 탈출하려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환자는 쥐들이 아버지와 여자 친구의 항문을 뚫고 들어간다는 장면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버지는 이미 9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점이다.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다. 그가 3살 때 유모를 이로 깨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환자를 때려 심하게 책망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더 과거를 연상시켜 봤더니 ‘쥐 인간’은 7살 때 한동안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혹시 부모가 그 생각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래 고민했던 두려움까지 회상되었다.
또 12살 때에는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유산을 많이 얻어 그녀와 결혼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꿈같은 소망은 마음에 품은 적도 있었다.
이렇게 사별한지도 오래된 아버지를 대상으로 발생한 [쥐 강박]에는 미움, 죄책감, 징벌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랑과 미움이란 극단적으로 대립된 감정은 흔히 분리된 다음 한 쪽이 억압되는데 보통 억압된 쪽은 미움이다. 이것은 강박 환자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여자 친구에 대한 환자의 [쥐 강박]은 어린 시절 경험한 성적 학대의 대상이 현재의 애인으로 변형된 결과로 보아도 무난하겠다.
‘쥐 인간’은 학업을 마치는 대로 그동안 사귀던 여자와 헤어져서 집에서 중매해 주는 다른 여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많은 노이로제의 증상에는 [부차적 소득] (Secondary Gain)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의 질환은 학업을 일찍 마치고 중매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를 지연시키는 효과까지 지닌 셈이다.
‘쥐 인간’은 11개월에 걸친 치료 끝에 완치되었다. [작은 한스]와 함께 프로이드가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정신 분석 성공 케이스였다. 그러나 그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조제프 황제의 장교로 참전했던 "쥐 인간"은 전사함으로써 애석하게도 더 이상 논문이나 학문지상에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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