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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의 월하탄금도>

이경윤(李慶胤ㆍ1545~1611)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그림)는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산수인물화첩> 에 실려 있는 그림 중 한폭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경산수(小景山水)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림의 초점은 거문고를 타는 선비에게 맞춰져 있다.
그리고 주변의 바위와 나무, 달은 배경 구실을 하고 있다.
앞쪽의 바위는 흑백의 대비가 뚜렷한 면으로 이뤄져 있고, 뒤쪽의 바위는 비스듬히 솟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공간이 크게 확대돼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浙派) 계통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금(琴)을 타는 노인과 그 옆에서 차를 끓이는 시중드는 아이, 깊은 산 정자에 앉아 마시는 차 한 잔 등이 보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달빛을 바라보며 거문고 타는 선비, 달빛을 받아 더 조용한 밤 풍경. 그림 속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거문고 소리 여백을 타고 물 끓이는 소리도 들리고, 슬쩍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릴 것 같다.

이 그림이 그려진 16세기 말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거문고로 ‘영산회상’ ‘여민락’ ‘보허사’ 같은 곡을 배워 익혀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겼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문고를 친구삼아 한적(閑寂)함을 달래고, 거문고의 조촐한 ‘흥’을 빌어 외로움과 번민을 노래했다.

‘시서금주(詩書琴酒)’로 대표되는 여러 풍류 중에서 ‘마음의 번민을 씻어주는 데 거문고보다 나은 것이 없더라’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음악 서신을 비롯, 선비들이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거문고를 어루만진 일상의 기록은 수없이 많다.

옛 선비들은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선비들의 교양처럼 여겼다.
혼자 즐기는 풍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거문고였다.
거문고를 금(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禁)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 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통 회화가 화가의 개성적인 창의성보다 동 시대 사람들의 공통된 의식이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월하탄금도> 는 이경윤 개인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배후의 화의(畵意)는 어디까지나 그를 포함한 당시 선비 계층의 공통된 의식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화면의 주인공은 이경윤 자신일 수도 있고, 일반적인 선비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월하탄금도> 는 이경윤의 손을 빌렸으되, 당시 선비들의 공통된 정신세계가 반영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경윤의 호는 낙파(駱坡)ㆍ낙촌(駱村)ㆍ학록(鶴麓)이다.
왕족으로서 조선 성종의 열한번 째 아들인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종증손이며, 청성군(靑城君) 이걸(李傑)의 아들이다.
그는 일찍부터 절파풍(浙派風)의 대가 김시와 교유하면서 김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영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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