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에 신의 뜻은 없었다'
안유회 기자의 무비리뷰
'킹덤 오브 헤븐'의 공성전은 일부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긴 했지만 대규모 세트와 엑스트라를 동원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됐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과 감정이입의 극화된 주인공이라는 포맷에서 '킹덤 오브 헤븐'은 '글래디에이터'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게르마니아를 복속시키면서 정복에서 수성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권력투쟁에 휘말려 아내와 아이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로마 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의 '글래디에이터'. 아내와 아들을 잃고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서구와 이슬람이 200년간 충돌한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기사 발리안(올랜도 블룸)의 '킹덤 오브 헤븐'. 막시무스라는 인물 자체가 가공인 데 반해 발리안이 실존인물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두 역사극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십자군 전쟁은 90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신의 뜻이라며 이슬람 지배하의 예루살렘 탈환전쟁을 시작한 이후 8차례에 걸쳐 200년간 지속됐다. '킹덤 오브 헤븐'은 2차 십자군 전쟁 이후 3차 십자군 전쟁 이전인 1186년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의 감정이입을 자극하는 주인공인 발리안은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나 배우의 연기에서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에 미치지 못한다.
대장장이 발리안은 아들의 죽음에 상심해 아내가 자살한 뒤 삶의 의미를 잃은 인물이다. 자살은 죄악이라서 아내의 장례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이블린의 영주 고프리(리암 니슨)는 "내가 네 아버지"라며 예루살렘으로 가자 한다. 블룸의 연기는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몰려오는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195분 짜리를 145분으로 만들면서 감정선이 잘려 나갔을 수도 있지만 결국 '킹덤 오브 헤븐'은 건조하다. 아내 시신의 목을 자르고 목걸이를 빼앗은 사제를 살해할 때도 발리안은 건조하다. 교회 기사단의 수장인 기 드 루지앵(마튼 초카시)과 정략결혼하는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와 발리안의 사랑도 불꽃은 일지만 뜨겁지 않다. 예루살렘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턴)는 나병을 앓는 탓에 가면을 써서 아예 표정을 볼 수 없다.
이에 반해 십자군 전쟁은 스펙타클하고 역사적 사실은 균형이 잡혀있다.
제작비 1억4000만 달러의 영화에서 스펙타클은 이슬람 군주 살라딘(가산 마수드)과 발리안이 벌이는 막판 40분간의 전투신에 집결된다. 투석기와 이동 망루를 동원한 대규모 전투신은 영화의 압권이다. 디지털로 사람들이 수를 불리긴 했지만 공성전은 거대한 세트와 대규모 엑스트라를 동원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됐다. 이슬람군의 거대한 망루가 밧줄에 묶여 쓰러지는 장면도 실사로 촬영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현재성에서 '킹덤 오브 헤븐'은 '글래디에이터'에 비해 휘발성이 강하다. '글래디에이터'의 경우 공화정의 꿈이 암살당하고 제정으로 고착되는 로마 정치체제에서 현재의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어두운 암시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킹덤 오브 헤븐'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부시 대통령의 십자군 발언 같은 현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1000년 뒤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자막이 이를 말해준다.
스콧 감독은 기독교와 무슬림의 묘사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티베리우스(제러미 아이언스)는 "처음엔 신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부와 땅을 위해 싸운 거였어"라고 말하고 발리안은 "내가 지키려는 건 예루살렘의 성벽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친다. 이슬람 군을 이끄는 살라딘은 흔히 사악한 적으로 묘사된 이슬람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관용의 인물이다. 이만큼 이슬람 묘사에 신경을 쓴 할리우드 영화도 드물다.
6일 개봉. 등급 R. 와이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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