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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와인' 같은 사람

이정아 수필가

요즘 들어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운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사람 사귀는 일이 귀찮아졌다. 아는 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마음으로 못 챙기는 사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곳 저곳에 아는 사람들만 만들어두고 몸도 마음도 따르지 못하는 일이 생기니 내가 정한 '친구'의 정의가 모호해진 것이다.

대소사에 체면치레로 봉투만 보내려니 성의없는 내 마음을 생각하면 예의도 아니다 싶다.

집의 전화는 아예 받질 않는다. 꼭 필요한 이는 메시지를 남길 것이며 메시지를 안 남기는 사람은 큰 볼일이 없는 사람이거나 수다 떨 목적으로 전화하는 사람이니 피차에 시간낭비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나의 사는 방식이 너무 드라이 하다고 하나 내 생각과 비슷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내가 회장으로 있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회에 동참하여 내게 팍팍 힘을 실어주시고 있는 분이 계시다. 닥터 윤은 은퇴계획을 세우고 중가주에서 이곳 남가주로 이사오셨다. 늙으면 차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봉사할 곳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한인타운 복판에 집을 사신 것이다. 그 분이 여생을 봉사할 곳으로 찍으신 곳이 코리아타운 도서관이어서 덩달아 내가 행복하다.

닥터 윤은 시간도 물질도 아낌없이 봉사하신다. 후원회 예산으론 벅차서 구입을 망설이던 '조선향토대백과' 20권 전질을 사도록 기부금을 내 주셨고 이번 북세일 때도 봉사자들을 위해 아침식사와 끝난 후의 뒤풀이 저녁까지 사주셨다. 그 전날 책 정리 할 때부터 두 내외분이 참석을 하셔서 밥을 사주셨기에 연달아 세끼의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인생살이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마취과 의사여서 생사의 기로에 있는 많은 이들을 만나는 삶이었단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은 순간의 차이인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되었다며 길게 오래도록 살기 보단 어떻게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까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하신다.

70세가 넘었으면 병에 대해서라든가 죽음에 대해서 자손들에게 미리 일러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언을 미리 해 두고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인위적인 조작은 삼가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다. 그런 대화를 자식들과 안한 채 부모가 노환으로 입원하면 자식된 도리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모의 생명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라고 하신다.

그것은 냉정하게 볼 때 시간의 낭비요 의료비의 낭비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큰 고통이라는 것이다. 평온하게 가시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는 말씀이셨다. 그러기에 '노인학'이라는 학문을 노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도 공부해야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죽는다'는 철학자의 말에도 공감하였으며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쓴 소노 아야꼬의 계로록(戒老錄)도 읽어보았다. 그리고 닥터 윤이 삶의 모델로 삼았다는 스캇 니어링의 자서전도 읽었다.

결론은 늙음도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다만 늙음이 낡음뿐이라면 너무 서글플 것이다. 늙어도 생각이나 마음만은 낡지 않도록 늘 새롭게 가다듬으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45~64세의 중 장년 층 기성세대를 요즘엔 'Well Integrated New Elder'의 머릿글자만 따서 이름도 아름다운 'WINE족'이라고 한다. 숙성된 와인의 향을 풍기는 닥터 윤 내외분처럼 나도 원숙한 삶을 펼치며 더 농익은 깨우침으로 늙고싶다.

보졸레 누보라는 와인이 출시 되었다기에 한 병 구입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는 와인을 마시면 성숙한 와인족이 될 수 있으려나 기대를 품어본다. 새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그 삶을 배우고 싶은 인생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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