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크라이슬러]1925년 설립 단숨에 미 '빅3'
사진▶지난 1940년대에 출시된 뉴요커는 크라이슬러의 대표적인 세단이었다.뷰익 부사장출신 크라이슬러
한때 미국산 자동차의 '빅3'로 군림했던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1925년 월터 크라이슬러에 의해 창립됐다.
컴퓨터 산업의 초창기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와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친밀한 관계였던것 처럼 자동차산업의 초창기에도 창업자들 사이에 제휴와 동맹이 있었다.
이 와중에 크라이슬러는 뷰익자동차의 사업부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뷰익에 근무할 당시 다른자동차 보다 강성이 뛰어난 철제 바디를 개발하는 등 자동차 업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며 결국 뷰익사의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뷰익을 소유한 GM사와 아무런 혈연관계없이 가장 높이 오를수 있는 부사장자리를 역임한 크라이슬러는 더 이상 오를곳이 없다고 판단해 독자적인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게된다.
그가 처음 개발한 '크라이슬러6' 자동차는 양산 첫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려 3만 2000대나 판매한 '크라이슬러6'의 성공에 고무되어 후속모델 '임페리얼80'을 선보였다. 특히 임페리얼 시리즈로 인해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캐딜락 링컨등과 함께 미국산 럭셔리카 회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1928년들어서는 그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자동차 레이싱사업에도 뛰어 들었다. 그 결과 당시에는 획기적인 112마력의 엔진을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했으며 그후 더 높은 성능의 엔진을 잇달아 개발했다.
1920년대 후반기 들어서는 다지와 플리머스사를 전격적으로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이로 인해 크라이슬러는 미국자동차 시장 제3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1940년대에는 다른 메이커와는 차별되는 전략을 구사했다. '뷰티플 크라이슬러'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디자인에서 한발 앞서가는 자동차 모델을 속속 선보였다. 이때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미국시장 점유율 제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2차세계 대전을 맞아 전쟁산업체로 변모한 크라이슬러는 종전 후에는 전시에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지프'자동차를 선보였다. 하지만 1950년대 접어들면서 시장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포드에게 2위자리를 내주었다.
1960년대부터 힘을 중요시하는 '머슬카' 개발에 앞장선 크라이슬러는 1970년대들어 갑자기 찾아온 석유파동으로 판매가 급감해 부도위기에 빠지게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자동차업계의 귀재로 알려진 리 아이아코카였다. 그는 35명의 부사장 중 33명을 해임하고 8500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대대적인 감량경영으로 크라이슬러사의 본질적인 체질개선을 추진해 나갔다.
특히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묶고 근로자들의 연봉도 일률적으로 감봉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벌였다. 아이아코카의 이같은 경영방식은 현재 위기에 빠진 GM과 포드가 벤치마킹하고 있을정도로 대성공 이었다.
1984년에는 세계최초의 미니밴 다지 캐러밴을 선보였으며 90년대에는 소형차 히트작인 니온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메르세데스와 합병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사로 거듭 태어났다.
두회사의 동맹은 지역적 측면과 생산차종 측면에서 서로가 도움이 되는 윈-윈 합병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산 자동차의 중후함과 유럽산 메이커의 앞선 디자인이 합해졌다는 크로스 파이어등 각종 신모델을 속속 개발 GM과 포드와는 달리 별다른 경영난을 겪지 않은채 착실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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