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UCI의대 도은미 교수] '봉사할수록 제 삶이 풍족해져요'
빈민국 환자들 보고 충격, 30대에 의대 진학
이날 행사는 프랑스에 본부를 둔 세계 각국 의사들의 의료봉사 모임 ‘세계의사회(Doctors of the World, 이하 DOW)’ 미국 지부가 세계인의 보건과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을 선정, 수여하는 연례 ‘보건 및 인권 리더십 어워드’ 시상식.
이 상은 지난 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수상하기도 해 화제를 모은 권위있는 상이다.
지난 10일 뉴욕 브리지워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보건 및 인권 리더십 어워드’ 시상식 직후 수상자들과 함께 자리한 도은미(왼쪽) 박사.
올해의 수상자 3인은 에이즈 퇴치와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컬럼비아대 공중보건학과장 알렌 로젠필드 박사와 아프리카의 아동복지 향상과 에이즈 예방을 위해 활동해 온 그래미상 수상 경력의 여가수 알리시아 키스 그리고 DOW 소속으로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펴 온 30인의 의료인들이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30인의 의사들을 대표해 와싱턴 주립대병원 소아과 마크 스미스 박사와 함께 이 상을 공동수상한 한인 도은미(영어명 엘렌) 박사.
현재 UC 어바인 의대 교수로 샌타애나의 UCI 패밀리 헬스센터에 근무하는 도 박사는 30인의 의사들 중 유일한 한인으로 지난 1999년 이후 매년 1개월씩 치아파스를 찾아 의료봉사를 해왔다.
치아파스는 멕시코 남단 과테말라 접경지역의 주로 멕시코 내에서도 소외된 마야족 원주민들이 사는 오지를 포함한다. 스패니시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통역이 필요할 정도.
"멕시코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이죠. 수도 전기도 없는 곳에선 원주민들이 100년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요."
맨발로 다니는 이들도 많고 아이들이 복통을 호소하면 대개는 회충탓이다. 장티푸스와 말라리아 폐결핵 등 후진국성 질병이 창궐하고 당뇨환자에게 인슐린을 주려 해도 집에 냉장고가 없어 줄 수가 없다.
의료봉사를 하는 병원은 인구 만 명 정도인 알타미라노시에 있다. 수녀들이 세운 병원인데 원주민들은 몇 시간을 걸어 버스를 타고 찾아온다.
도 박사가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는 이유는 그가 의사의 길에 접어든 계기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간호사로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어머니를 따라 도 박사 가족이 미국에 온 것은 그가 열 살때인 1968년. 그의 어릴 적 꿈은 유엔 통역관이었다. 가주로 이주 LA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UCLA 언어학과에 진학하면서 도 박사는 어릴 적 꿈에 조금씩 다가갔다.
외국어를 좋아하는데다 재능도 있었던 그는 영어와 한국어는 물론 스패니시 불어 독어 일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하게 됐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다중어 통역을 맡기도 했던 그는 대학원에서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격(TESOL)을 딴 뒤 한국에 갔다.
외국어대에서 1년간 강의하던 도 박사는 4개월의 유럽여행을 떠났고 여행길에 세계인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당시 이디오피아에서 기근이 들어 많은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걸 방송을 통해 봤어요. 힘든 사람들에겐 의료가 가장 필요한 서비스란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에 돌아온 도 박사는 의대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낮엔 애덜트 스쿨서 영어를 가르치고 밤에는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 등을 배운 끝에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의대에 들어갔다.
그 때 그의 나이 서른 살. 의대 공부를 마치고 가주로 돌아와 하버-UCLA 메디컬 센터 레지던트 사우스센트럴의 소규모 병원 디렉터를 거친 그는 2000년 UCI 의대로 옮기기 전 멕시코 치아파스로 향했다. 이유는 '필요한 사람에게 의술을 쓰고 싶어서'.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적당한 곳을 찾다 치아파스로 결정했죠. 전에 주로 스패니시를 쓰던 환자들을 상대했던 것도 한 이유고요."
DOW와 관계를 맺은 건 이 때부터다. 5개월간 봉사활동을 한 뒤 UCI로 돌아온 도 박사는 이듬해부터 매년 한 달씩 치아파스를 찾아 인술을 펴고 있다.
남들이 쉽게 하기 힘든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 온 그는 나름의 봉사관을 피력했다.
"봉사를 통해 타인과 사회 세계를 위해 공헌하는 기쁨은 참으로 큽니다. 저는 봉사를 하면 봉사자가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도 깨닫게 되고 인생을 뜻깊은 시간들로 채울 수 있고요."
무심히 사무실 한쪽에 놓인 토산품으로 시선을 돌리던 도 박사의 얼굴이 불현듯 환해진다. 지난 달 떠나온 치아파스 원주민들을 떠올린 탓일 게다.
임상환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