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샐러드 보울'과 '멜팅팟'
김호기 연세대 교수·UCLA 방문교수
필자는 1980~90년대 독일에서 5년 동안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서유럽사회와 미국사회를 비교하곤 한다. 사회복지와 소득분배는 서유럽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 하지만 사회의 활력과 문화적 개방성에서는 미국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서유럽에서 유럽인과 비유럽인 유럽문화와 비유럽문화의 경계는 매우 뚜렷하다. 유럽적 가치.정신.문화를 내심 우월한 것으로 보려는 이른바 유럽중심주의가 여전히 강고한 편이다.
유럽에 남은 사람들이 일군 서유럽사회와 유럽을 떠난 사람들이 세운 미국사회는 분명 사회의 조직 원리와 문화의 재생산 코드가 다르다. 특히 문화적 개방성은 이민국가다운 미국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미국사회는 지난 20세기 동안 서로 다른 사람과 문화가 융화되는 용광로(melting pot)로 불러지기도 했고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로 묘사되기도 했다.
길게 보면 용광로와 샐러드 보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 학자 기 소르망이 관찰하듯이 2~3세대가 지나면서 샐러드 보울은 결국 용광로로 변해간다.
지난 세기 전반 유럽에서 건너 온 이민자들의 삶이 그러했고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이민자들은 그 경험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부딪치는 민족적 정체성의 변화와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 어떻게 국가와 시민사회가 대처하느냐에 있다.
관찰자인 필자가 보기에 문화적 개방성에서 미국사회는 서유럽보다 분명 포용적이다. 교육 및 법률을 포함한 각종 사회제도들이 문화적 개방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미국문화에로의 자연스런 융화가 이뤄지기 위해 마련돼 왔다. 하지만 이 문화적 개방성은 최근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9.11 이후 미국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애국주의 경향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지역 계층 인종 등에 따른 문화 전쟁 또는 문화적 양극화 현상이다.
세계화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과 국민통합은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데 있다. 그들이 갖게 될 문화적 충격 및 소외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사회에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 및 문화적 배려가 국가와 시민사회 모두에게 요구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다민족화가 빠르게 진행돼 왔다. 지난 해 한국의 국제결혼율은 13.6%에 달했고 농어촌 남성은 3명 중 1명이 외국여성과 결혼했다. 문제는 이런 경향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이 매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기보다는 마음 속에 장벽을 쌓아 두는 게 현실이다.
한국적 용광로 또는 샐러드 보울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공론화와 정책이 매우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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