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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기믹'의 꼼수 정치

박용필 논설실장

한국에서 '약장수'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속임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옛 장터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품목은 '뱀기름'(Snake Oil) 로션. 뱀의 독성이 담겨있어 몇번 바르면 여드름이나 주름 기미가 싹 없어진다며 선전을 해댔다. 그러고는 얼굴이 좀 상해있는 아줌마를 골라 로션을 잔뜩 발라줬다. 하루만 지나면 감쪽 같이 없어진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 약장수 앞에 선 이 여인. 깔끔한 얼굴로 나타난 게 아닌가. 분장한 걸 모르는 아낙네들은 놀랄 수 밖에. 약장수는 '뱀기름'을 눈깜짝할 사이에 팔아치우고는 줄행랑을 쳤다.

이같은 약장수의 꼼수를 시골 장터에선 '기믹'(Gimmick)이라 불렀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기믹'이 사라지는가 싶더니만 프로 레슬링이 불씨를 살려냈다. '기믹'을 씨름판에 끌어들여 히트를 친 것.

짜고 치는 게임이 프로 레슬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선수들의 '기믹' 때문이다.

절묘한 테크닉에 꼼수를 곁들이니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웃음보가 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 스포츠에 '흥행'을 접목시켰다고 할까. 그래서 협회 이름도 '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다. 미국에서 레슬링 챔피언은 할리우드의 수퍼스타에 버금가는 인기와 부를 누린다.

나온 김에 레슬링 얘기를 더 해보자. 짜여진 각본대로 경기를 치르는 게 프로 레슬링이지만 그래도 기술을 걸고 치고 박고 하는 건 진짜다. 피를 흘리는 것도 가짜가 아니다. 게임 전에 이마를 살짝 면도칼로 그어놨으니 조금만 충격을 줘도 피가 나오게 돼있다. 출혈량도 적고 회복도 빨라 일부러 이마에 상처를 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막힌 '기믹' 아닌가.

프로 레슬링은 출전 선수의 역할이 미리 정해진다. 좋은 역을 하는 선수는 '페이스'(Face) 나쁜 역을 하는 선수는 '힐'(Heel)이다. 천진난만한 아기 얼굴(Baby Face)을 가졌다고 해서 '페이스'가 됐고 비겁하게 뒤꿈치(Heel)로 상대를 때린다고 해서 '힐'이란 별명이 붙은 모양이다.

대표적인 '페이스'는 헐크 호건이다. 헐크 흉내를 내며 셔츠를 찢어 던지고는 우람한 가슴팍을 내보이는 6척 거구의 사나이. "착한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면 경기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호건은 80~90년대 청소년들의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다.

뜬금없이 프로 레슬링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한국의 개헌 정국이 미국의 씨름판과 비슷해서다.

야당 쪽에서 보면 개헌안을 대통령의 정치적 꼼수 곧 '기믹'이라고 의심한다.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운줄 뻔히 알면서도 시나리오에 따라 개헌안을 꺼냈다는 것. 그래서 노무현은 '참 나쁜 대통령'이란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레슬링 용어로는 '힐'이라고 할까.

이에 발끈한 노 대통령은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라며 "이번 개헌은 차기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말하자면 자신은 '페이스' 곧 '착한 대통령'이라는 게 아닌가.

이처럼 개헌 논란이 한국의 정치판을 업그레이드 시킬지 아니면 몇단계 끌어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앞으로 펼쳐질 '페이스'와 '힐'의 한판 싸움. 온갖 '기믹'이 판을 칠테니 프로 레슬링 못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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