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로프의 유일한 외국인 발레리나 유지연씨
"뉴욕은 에너지가 있어 좋다"러시아 키로프발레단 발레리나 유지연씨
300명 무용수 중 유일한 외국인
맨해튼 뉴욕시티센터에서 공연
"동양인이라고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느끼거나 외톨이가 된 적이 없어요. 전 오히려 러시아 생활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지난 1일부터 3주간 뉴욕시티센터 공연에 들어간 키로프발레단의 무용수 유지연(31.사진)씨는 싱그럽게 웃었다. 유씨는 300여명의 댄서가 소속된 키로프발레단의 유일한 외국인여성이다. 다른 한 명은 우크라이나계 오스트리아인 남성 무용수.
유씨는 1991년 9월 세계 최고 발레리나의 꿈을 안고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이 불던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던 열네살의 소녀로 잠시 되돌아갔다.
"공항엔 두터운 외투를 입은 육중한 러시아 남성들이 있었지요. 그들이 얼마나 어둡고 험상궂어 보였던지요."
그 후로 17년간 유씨는 키로프발레단이 있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에서 살았다. 유씨는 키로프발레단의 부속학교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거쳐 키로프에 입성 세계 정상의 댄서들과 공연해왔다.
서울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유씨는 유행가가 흐르면 몸을 흔들어대던 아이였다. 엄마도 아빠의 피도 아닌 것 같아 걱정하던 차에 할머니가 "연예계로 나가 가수들 뒤에서 춤출까 걱정되니 무용을 제대로 시켜보자"고 권했다. 할머니는 그 옛날 체조와 배구를 했던 스포츠 여성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유씨는 예원학교에 들어가 선배들을 제치고 콩쿠르를 휩쓸었다. 예원중학교 다닐 때 바가노바에서 연수 온 남자 발레선생이 한 소녀를 눈여겨보고 갔다.
6개월 후 발레 선생의 부인이 아예 초청장을 들고 찾아와 "재능이 탁월하니 한국에서보다 키로프에서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소녀를 설득했다.
초청장을 받아 든 유씨는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누레예프 바르슈니코프 등 세기의 댄서들을 배출한 꿈의 발레학교에 가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운명이었다. 유씨는 키로프에서 진실한 친구들을 발견했다.
"서울에선 상을 타면 질투하며 따돌림을 당했는데 러시아 무용수들은 실력을 인정하고 순수하게 대하더군요."
유씨는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난 95년 바가노바 국제 콩쿠르 예술상을 수상하며 키로프발레단에 드미솔리스트로 입단했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22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키로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들도 공연을 보러가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요.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 두터운 외투와 부츠 차림으로 입장해 극장 안에서는 구두를 갈아 신어요. 무대에서 이런 청중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랍니다. 이런 뿌리 깊은 전통이 아마도 예술을 발전시키는 힘인 것 같아요."
유씨는 한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스웨덴.태국.브라질.멕시코까지 세계 각국에서 공연해봤다. 뉴욕에 온 것은 2002년에 이어 두 번째.
"각 도시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어요. 저는 뉴욕의 독특한 분위기와 에너지가 좋아요. 물론 한국음식도 먹고 싶어요."
유씨는 4일부터 6일까지 공연될 '세헤라자데' 중 오달리스크 역으로 나오며 15일부터 17일까지 올려지는 '근접한 소나타(Approximate Sonata)'에서 2인무를 춘다.
티켓: $35.60.75.110(212-581-1212) 일정: 4월 1~20일 뉴욕시티센터: West 55th St. between 6&7 Ave.
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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