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자의 세상보기] 점심- 점 하나 찍고 넘어가기
며칠 전 직장 동료들에게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 한턱을 낸 적이 있었다. 워낙 인심 좋게 음식들을 내오신 데다 잡채까지 서비스해 주셔서 정말 푸짐한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세 끼니를 가르킬 때 쓰는 말이 아침, 점심, 저녁인데 이중에 하나가 실은 한자어이니 그것이 바로 점심(點心)이다. 같은 단어가 우리에게는 점심이고 중국인들에겐 바로 딤섬이 된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마음에 점을 찍듯이’ 간단하게 요기하는 것이란 뜻이다. 한자의 뜻 자체는 음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점 점(點) 마음 심(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것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카트에 넣을 때 쇼핑목록에다 체크 마크를 해 넣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새벽같이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일이 다반사인 현대인에게는 삼시세끼는 기본이고 한두 차례 간식을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먼 옛날에는 하루 두끼니를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한다. 즉 느즈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겸 점심 식사를 하고 나중에 저녁을 먹는 것인데 하루가 느리게 돌아가고 식량까지 부족하기 일쑤였던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그나마 두끼라도 항상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다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말이 낮에 먹는 끼니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을까?
한가지 설은 중국 남송(南宋)시대 한세충(韓世忠)이라는 장군의 아내였던 양홍옥(梁紅玉)의 일화에서 점심이란 말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송나라와 북방의 금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장군의 아내가 손수 만두를 빚어 군사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군사의 수효가 준비한 만두보다 너무 많아 넉넉히 나눠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두의 양이 많지 않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많이 드신 듯 마음(心)에 점(點)을 찍으십시요”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마음에 점을 찍으라는 것은 뭔가를 생각했으면 마음에 종지부를 찍고 그것을 믿도록 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유능한 장군의 지휘 탓인지 인자하고 어진 사모님 덕인지 사기가 충천한 송나라 군대는 금나라 10만 대군을 맞아 단지 8천의 병력으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점심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또 있다. 중국의 고서 ‘벽암록’에 나오는 일화인데 금강경의 대가로 유명했던 덕산(德山, 780-865)이라는 스님과 한 떡장수 노파의 이야기이다. 불경 지식이 아니라 참선만으로도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선불교가 들어와 민중 사이에 인기를 얻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덕산스님이 선불교도들을 깨우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스님이 풍주라는 곳에 한낮에 도착하여 막 시장하던 차에 마침 한 떡장수 노파를 만났는데 이 노파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님 금강경은 잘 아십니까?”“다 알지는 못하지만 알만큼은 압니다.”
“그럼 한가지 여쭈어 봐도 될런지요? 그리고 만약에 제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하신다면 공양은 제가 공짜로 드리겠지만 만약 대답을 못하시면 떡을 팔지 않으렵니다.”
자신의 금강경지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덕산스님은 오늘 점심공양은 그냥 얻어먹는구나 생각하고 쾌히 승낙을 했단다. 그러자 노파가 “스님,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란 글귀가 있지요. 지금 스님께서 점심을 하시려고 하는데 점을 찍으시려는 그 마음(點心)이 과거심입니까, 현재심입니까, 미래심입니까?” 즉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 마음이 얽매여 있느냐라는, 혹은 무엇을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앞의 점심은 끼니로서의 점심이고 뒤의 점심은 점을 찍을 마음이었을 것이니 실로 재치있는, 그리고 까다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덕산스님은 답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지식과 학문이 뛰어난들 지금 이 순간 내마음 조차도 모르는데 이 금강경이 다 무슨 소용이었는가?’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참선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게 점심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한다. 먼 옛날 한 마을에 이웃의 존경을 받는 학자가 한 분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하여 끼니를 건너뛰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안쓰러운 이웃사람들이 “식사는 드셨는지요, 선생님?” 하고 물을 때면 수양을 많이 하신 선생께서는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마음에 점을 하나 찍고(點心) ‘잘 먹었다∼’하면 먹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라고 답하시곤 하였던 모양이다. 배고픈 학자의 실상이야 어쨌든, 그 멋진 말씀은 인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 학자가 어떻게 끼니를 넘겼는지는 잊혀지고 다만 그 점심이란 말만이 전해져 차차 낮에 먹는 식사나 혹은 간식을 ‘점심(딤섬)’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최영출(캐탈리스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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