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김명열/미중서부 한인낚시회 회장
흔히 현실에 처한 자기 환경이나 생활을 정확히 간파하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현실에 순응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일컬어 현명한 사람, 또는 사리판단을 분별할 줄 아는 선인(善人)이라고도 한다.
자기 분수를 망각하고 오만방자하며 주접을 떠는 사람을 지칭해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는 속담을 비유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옛날 고려시대였다고 한다. 어느 시골 집에 40이 넘어서 본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살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인물이 무척 잘 나고 똑똑하니 20세 미만에 사방에서 혼사 권유말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눈이 얼마나 높은지 어느 처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총각의 아버지는 그만 죄를 범해 옥에 갇히게 됐다. 그러자 총각은 곧 죄 지은 자의 아들이 돼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귀한 집 옥같은 도련님이 하루 아침에 신분이 변해 무서운 죄인의 아들이 되고 만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총각은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고 눈물만 솟아났다. 할 수 없이 이제는 손수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아야 할 형편이 됐는데 낫과 도끼를 빌리러 가도 어느 누구도 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불우한 날이 지속되고 있던 어느 날 그가 몇 집을 돌다 상심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바로 뒷집 처녀가 그의 사정을 알고는 도끼와 낫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것을 받아든 총각은 한 없이 감동이 됐다. 그녀는 아주 가난한 집 처녀로 생김새도 수수해 전에는 총각의 눈에 별로 들지도 않던 여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 처하고 보니 그처녀의 친절과 보살핌은 총각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고 감동하게 됐다. 그로부터 처녀는 남모르게 늘 그 총각을 도와주었고 위로해 주며 그것을 계기로 그들은 친해졌고 나중에는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바로 이런 때 총각의 아버지가 출옥해 나왔다. 본시 총각의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한 탐관의 음해를 받고 옥에 갇혔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벼슬을 살게 되고 가정은 풍요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총각의 집은 옛날처럼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사방에서 혼삿말이 수없이 들어왔다. 이렇게 되니 총각의 마음도 같이 변해버렸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운때 은혜의 고마운 손길과 사랑을 베풀어준 처녀를 언제 봤냐는 식으로 차버리고 어느 부자집 요염한 딸과 약혼을 했다.
그후 얼마 뒤 총각의 아버지는 또다시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갇히게 됐다. 이번에는 정말로 큰 죄를 범했기 때문에 중형을 받게 됐다.
이러자 사람들의 발길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뚝 끊기게 됐고 혼인을 약속했던 부자집 딸 집에서는 파혼을 통보해 왔다.
총각은 생각하면 할수록 신세가 처량하게 됐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보니 총각은 옛날 자기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도움을 주었던 그 처녀가 무척이나 그리웁고 생각이 났다.
총각은 단숨에 그 처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교제하고 혼인할 것을 바랐으나 처녀는 일언지하에 냉정히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그 처녀는 곧 다른 곳에 혼처가 생겨 시집을 가버렸다.
이렇게 되고보니 총각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내심적으로 몹시 후회하며 자신을 탓하며 살다가 그만 병을 얻어 앓다가 얼마 후 끝내 죽고야 말았다.
이러한 일을 알게된 모든 사람들은 말하기를 “흥, 죽어도 싸지.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더니 죽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이 속담이 널리 세상에 전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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