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사랑ㆍ정ㆍ애정<2>
이상봉/철학박사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으니, 한국어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정이라는 단어가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연애적인 용어처럼 사용되고 있고, 정이라는 단어는 가족적이며 보편적인 용어처럼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내가 볼 때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즉, 간단하게 사랑이라고 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게 되면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아주 간단하게 짚어 보아도 우선, 부부간의 사랑이 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형제나 자매간의 사랑 등등에서 부터 더 나아가 그냥 남녀간의 사랑, 취미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등으로 끝없이 이어져 나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여러 경우조차도 부부간의 정, 부모와 자식간의 정, 형제와 자매간의 정 등등에서는, 정이라는 단어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동의어로 쓰여 질 수가 있지만 남녀간의 사랑을 남녀간의 정이라고 하게 되면 어감 자체가 전혀 달라지게 되고 취미에 대한 정, 조국에 대한 정이라고 하게 되면, 그 때는, 아예 틀린 문장이 된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정이라는 단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어에서는 사랑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쓰이는 단어가 바로 정이다. 왜냐하면 정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 뿐만이 아니라 미움 까지도, 모두 다 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여 정과 사랑의 차이점을 짧게 표현해 놓는다면 정은 조강지처(糟糠之妻)와 같은 의미를 풍기고 있는 반면에 사랑은 첩이나 정사(情事)와 같은 의미를 풍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어의 표현에 '첩년 같은 년' 이라는 표현이 엄연히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어가 이상한 것은 그 정이라는 것을 사랑보다 더 높이 받들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정부(情夫)와 정부(情婦) 사이의 사랑을 정사라고 하면서 '정'자를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한번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은 지탱할 것이 없이 그것으로 모든 관계가 끝나면서, 서로 서로 원수와 같은 사이로 되는 감정이지만 정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남아 있는 끈끈한 미련같은 감정이다.
하지만 정이 들어가 있는 단어라고 해서 모두 다 좋은 의미로만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을 통하다'는 '간통하다' 라는 의미로 쓰여 지고 있으니까.
자아, 이 쯤에서 이 글을 끝내야 되겠는데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을 택하겠느냐? 아니면 情을 택하겠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사랑을 택하겠다. 나는 사랑을 택하는 사람이고 또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를 또다시 묻는다면?
나에게는 사랑이 우선이고 정이라는 것은 그 사랑 뒤에 따라 오는 부수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에는 나의 인생을 걸지만 정에다는 나의 삶을 걸지 않겠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